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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제나 하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게임의 승패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당연하다.
어찌 승부의 세계에서 100%를 찾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설마 라인전에서 터져버릴 줄이야.'
당황스러운 상황임에도 도진기는 천천히 자신의 실수를 되짚었다.
힘의 영약을 구입해 온 올마스터의 판단.
자신이 섣부르게 달려들었을 때 역으로 카운터를 치겠다.
그런 의도를 가진 선택임을 단박에 눈치챘다.
때문에 조심했고 원거리에서 견제만 넣었다.
우월한 마나를 바탕으로 체력을 깎아두기만 해도 마검사는 아무것도 못한다.
가끔 긁어오는 알파 슬래쉬는 위협이 될 수 없다.
실제로 게임의 흐름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그런데 2레벨에 뜬금없이 딜교환을 걸어왔다.
미니언은 자신 쪽이 조금 더 많았고 싸운다면 질래야 수가 없었다.
탄탄했던 계획은 입롤 같음 플레이로 인해 근본부터 무너지고 말았다.
'뭐, 어쩔 수 없나.'
미드 라인의 패배로 인해 게임을 지고 있다.
낯부끄러운 상황임에도 도진기는 침착하게 제 할 일만 수행했다.
이제 와서 한탄 한들 엎어져버린 물.
솔직히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절대 돌파 불가능한 전략을 구상해왔다.
하지만 올마스터라면 어떻게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수따위 하지 않았음에도 정말로 해내 버렸다.
'한 수 배운 셈치면 되겠지.'
지금 당장 지고 있는 한 세트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걸고 있는 바가 적지 않았으므로 미련 또한 남는다.
그렇지만 오늘의 패배가 성장의 계기가 된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소득이 아닐까.
막바지를 향해 흘러가는 게임을 보며 도진기는 감탄을 내뱉었다.
한숨이 아니라 감탄이다.
드높은 명성과 뛰어난 피지컬.
그 두 가지를 가진 선수는 찾아보면 분명 있다.
흔치는 않지만 매 시즌 최소 한 명씩은 태어난다.
그러나 올마스터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돌파구를 찾는다.
예상을 근본부터 뒤집어 흔든다.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 중에서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가장 이상적인 프로게이머.
팬들이 원하는 스타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
아마추어 때도 얼핏 느꼇던 감정은 프로가 돼서, 이 자리에서 그와 겨루며 더욱 확고해졌다.
─억제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마지막 억제탑이 허물어졌다.
게임 시간 25분, 버틸 만큼 버텨봤지만 이 이상은 무리다.
이래 봬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
불리한 상황임에도 수성하며 후반을 도모해봤다.
하지만 이 생각 자체가 이미 틀려먹었음을 모를 수 없다.
빵테온은 물론 리심도 유통기한이 한참은 넘었다.
성장을 못해버린 이상 존재감은 미미하다.
특히 라인 클리어가 안된다는 게 결정적.
스노우볼을 굴려야 하는 조합으로 초반에 말리면 이렇게 된다.
상대의 실수를 기대해봤지만 파고들 틈이 없었다.
올마스터 하나 막는데 들어가는 인원만 최소 두 명.
돌려깎기가 진행되며 3억제탑까지 와버렸다.
치이이잉..!
3코어가 나온 싱나드가 닥돌한다.
쌍둥이 포탑의 공격을 맞으며 아군의 진영을 교란시킨다.
탈리반 3세의 궁극기까지 끼얹어지자 움직일 공간이 없을 지경이다.
"마검사! 마검사 마크해!"
"위에서 온다!"
탱커진도 위협적이지만 진짜는 올마스터.
궁극기와 유령검으로 가속한 마검사가 미친 듯이 달려온다.
한 번 썰리기 시작하면 탱커고 나발이고 없다.
딜러는 그냥 1초만에 저세상 행이다.
말화이트가 달려오는 마검사를 향해 1인궁을 냅다 박았다.
사샤샤샥-!
스치지도 않은 듯 점멸로 자연스럽게 지나친다.
그리고 바로 이즈레알을 긁어버린다.
비전 점프를 사용해 도망갔으나 실패.
알파 슬래쉬에 그인 순간 이미 끝이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첫 번째 죽음을 신호로 시작한다.
줄줄이 꼬치 꿰이듯 죽어나간다.
사실 마검사를 땄다고 해도 변하지 않았을 흐름이지만 정신 승리마저 실패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도저히 힘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주위의 적을 되는 대로 베어낸다.
결국 우물에까지 들어와서 인어를 토막내고 같이 전사.
그 사이에 나머지 적들이 쌍둥이 포탑과 넥서스를 철거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깔끔한 패배였다.
도진기는 헤드셋을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주 잠깐 경기의 내용을 곱씹고 싶었다.
그러기도 전에 누군가 자신의 어깨 손을 올려놓았다.
"비켜."
"…."
꼬리 내린 개는 자리에서 내려와라.
수입푸드가 강압적으로 지껄였다.
평소 같았으면 싸움이라도 날 흐름이다.
하지만 도진기는 구태여 반박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임을 졌으니 볼 면목이 없다, 그런 마음은 결코 아니다.
마음 속에서 일어난 감정은 기대였다.
자신은 정말 최선의 최선을 다하고도 패배했다.
수입푸드는 과연 어떤 대답으로 게임을 풀어나갈까.
그리고 올마스터는 이를 어떻게 받아칠까.
"그래, 부탁한다."
"뭐?"
자신과 수입푸드는 그런 말을 주고 받을 만큼 동료애가 남아있지 않다.
그는 얼척이 없어 자신을 흘겨 봤지만 이내 자리에 착석해 세팅을 시작했다.
.
.
.
* * *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파격적인 한 판!
로드 오브 로드 역사에 손 꼽히는 명장면이다.
불과 2레벨에 일어난 교전이었지만 한 번 본 사람은 없다.
몇 번이고 돌려보고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솔킬이었다.
마검사가 빵테온을 솔킬 내며 게임의 주도권을 가져갔다.
실제로 경기 중 한 번, 경기가 끝나고 다시 한 번 리플레이가 틀어졌다.
<코앞에서 날아오는 방패치기를 알파 슬래쉬로 피해낸다, 글자 그대로 입롤이 맞습니다. 이론상 가능하다는 사실도 저는 처음 알았어요!>
<설사 알았다고 해도 시도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먼저 싸움을 걸었다는 것부터가 우연이 아니라 의도였다는 거거든요?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가 않습니다.>
진작에 태세 전환을 완료한 더우니 버빈의 입에서 극찬이 쏟아져 나왔다.
이미 경기는 끝났고 MVP는 올마스터로 선정되었다.
이견이 붙을 수가 없다..
솔직하게 당장 묻고 싶을 지경이다.
대체 어떤 정신머리를 가져야 그런 생각과 시도를 할 수 있는건가.
8강 때도 물론 2레벨 솔킬이 멋들어지게 터졌다.
하지만 상대가 마검사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선 빅가이 선수를 지탄하는 비난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는 경우가 달라도 한참은 다르죠. 대회 무대에서 빵테온을 꺼낸 도진기의 과감한 판단도 멋졌지만 더욱 과감했던 쪽은 올마스터였습니다. 게임의 결과와 상관없이 두 선수 모두 흔치 않은 발상으로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어요.>
<빵테온이 정말 웬만하면 AD챔피언은 무조건 이깁니다. 적어도 라인전에서는 질 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해요. 그런 빵테온을 역으로 솔킬각 잡아버리면서 게임 시원하게 비벼버렸어요? 간만에 이색적인 경기 나오면서 현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보니 빅가이가 못한 게 아니었다.
입롤을 실현하며 빵테온을 솔킬을 내버린다.
이 올마스터의 마검사를 대체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을지.
오늘의 경기도 지난 8강처럼 속수무책 끝나버리는 게 아닌지.
두 번째 세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이미 선수들의 준비는 끝났고 경기의 시작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먼젓번과 달리 선수들의 구성이 바뀌었다.
케이왈츠에서는 이번에도 에이스 두 명이 모두 출전하지 않았다.
<바톤 터치라도 해버린 분위기죠? 도진기가 밴치로 물러나고 츄안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정글러는 수입푸드. 지금의 선수 변경에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어쩌면 케이왈츠 측에서는 첫 세트의 패배가 도진기의 실수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고작 한 번의 실수로 쓰지 않기에는 아까운 선수기도 하거든요? 일단은 두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두 번째 세트의 밴픽 시작하겠습니다.>
조금 의아하긴 하나 나름대로의 의도가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야 말로 올마스터의 마검사가 힘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게 마검사의 하드 카운터.
챔피언의 상성도 물론 있지만 진짜 까다로운 건 역시 정글이다.
생존기가 없기 때문에 킬각이 나오기가 쉽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개인 기량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번 판에서도 과연 가능할까?
아무리 올마스터라 한들 수입푸드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다.
<수입푸드는 지금까지 LPL에 네 번 출전했습니다. 전적을 따지자면 2승 2패. 그런데 이 2승 중 하나가 IC를 상대로 한 경기였어요?>
<조별 리그, 아니 본선까지 통 틀어서 유일하게 IC를 상대로 승리했던 팀이 케이왈츠입니다. 1승 2패로 다전제의 패배를 하긴 했으나 한 세트마저 못 딴 팀이 한둘이 아닙니다. 당시 수입푸드가 미드와 봇을 터트리고 라이너급으로 성장하면서 한타에서 힘으로 찍어 눌렀죠. 굉장히 임팩트 있던 경기라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상해의 고룡, IC를 상대로 유일하게 한 방 먹여버린 선수가 바로 수입푸드다.
초중반 매서운 갱킹으로 휘몰아치며 성과를 거둬냈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압박해 억지에 가까운 킬각을 잡아낸다.
중국 선수들의 특징상 공격적인 정글러는 많으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개인의 피지컬, 그리고 판단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다.
한 번 포텐이 터진 수입푸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2승 2패, 분명히 좋은 울림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이 수입푸드가 못해서 진 경기는 없었어요?>
<예, 속된 말로 팀원들이 게임을 좀 던졌죠. 그리고 정글러의 태생적 한계도 안 좋게 작용했습니다.>
현재 3시즌의 정글러는 성장 속도가 참으로 느리다.
그나마 2시즌 때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배가 고프다.
개인이 잘 커서 혼자 싹 쓸어 담는 건 불가능.
솔로랭크에서도 보기 힘들 지경인데 대회 무대에서는 더더욱이다.
아군의 실수를 더 이상 커버하지 못하고 지는 게임이 두 판 있었다.
대전 상대 IC, 그리고 준결승전에서 상대했던 스네이크 스포츠.
두 팀 모두 어지간한 강팀이라 상대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반대로 팀원들이 제 역할만 해주면 올마스터 못지 않은 하드 캐리가 가능합니다. 전 라인에 영향을 주면서 게임을 원하는 대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그런 잠재력이 있는 선수에요.>
<맞습니다. 도진기가 단단한 방패라면 수입푸드는 날카로운 창이죠. 과연 두 번째 세트는 어떠한 흐름으로 갈지. 양 팀의 밴픽, 이전 세트와 크게 다를 게 없거든요? 미드 라인만 버텨준다면 수입푸드가 특유의 캐리력을 발휘해내는 그림 충분히 그려볼 수 있겠습니다!>
공교롭게도 이전 판과 미드&정글 픽이 같다.
쿡야는 마검사와 탈리반, 케이왈츠는 빵테온과 리심.
하지만 이를 플레이 하게 된 선수들이 다르다.
앞선 세트의 실패를 반복할 리도 없다.
어느 팀이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구도다.
팬들의 기대 속에 게임이 시작하려던 찰나.
더우니 버빈이 중요한 걸 발견한 듯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거 설마 정글 마검사인가요? …3, 2, 1! 확정되었습니다. 이러면 미드 탈리반이 되는데 괜찮을런지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대도 일반적인 미드 챔피언은 아니죠. 실수일 가능성.. 아예 없지는 않지만 설계일 가능성이 큽니다. 올마스터라면 하고도 남습니다!>
더 이상 눈치를 볼 이유가 사라졌다.
잘했으면 잘했다고, 그럴 만한 선수라고 당당하게 극찬할 수 있다.
더우니 버빈조차 이미 자존심 따위 버리고 정상적인 해설을 지향하고 있는 판국이다.
어쨌든 양 팀의 밴픽이 확정되고 두 번째 세트가 시작했다.
첫 세트가 미드 대 미드의 싸움이었다면, 이번에는 정글 대 정글의 싸움이다.
올마스터와 수입푸드의 불꽃 튀는 정글 전쟁이 시작한다.
살짝 아쉬웠던 경기의 흐름에 의외성이 터지며 더욱 큰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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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의도적으로 마검사의 밴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상대는 얼씨구나 또다시 마검사를 가져갔다.
여기까지는 정말 계획했던 내.
'나를 상대로 정글로 덤벼온단 말이지.'
수입푸드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비웃음을 풍겼다.
자신을 상대로 미드도 아닌 정글로 덤빈다.
게다가 챔피언도 마검사다.
하다 못해 탈리반이었다면 괜찮은 승부가 되겠군.
투지가 불타올랐겠지만 마검사는 아니다.
게임을 말려버릴 방법이 열댓 가지는 더 머릿속에 떠올랐다.
'도진기처럼 멍청이 짓만 안 하면 돼. 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템포를 올려나가자.'
만약 상대가 올마스터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이전 세트를 못 봤더라면 카정을 갔을 것이다.
감히 대회에서 마검사 정글 따위를 하다니.
응징을 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봐버린 이상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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