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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할 줄 알고 있었소
필리언을 픽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냥 소소하게 좋다.
픽을 했다는 자체만으로 이득을 가져다준다.
'추가 경험치 획득이 은근히 쏠쏠하지.'
필리언을 포함한 아군은 경험치 획득량이 8% 증가한다.
미묘한 수치지만 의외로 도움이 된다.
수입푸드가 열심히 쏘다녔음에도 갱각이 잘 안 나왔던 이유.
아군의 레벨업이 조금씩 빨랐기 때문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요소다.
진짜는 도진기와 수입푸드의 플레이 성향.
필리언의 존재 하나로 둘을 마크할 수 있다.
"더 내려가지 마. 욕심내다가 끊기는 수가 있어."
"상대 여기 다 있다. 아링까지 보였어!"
팀원들이 급박하게 떠들어댄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타.
용 앞에서 두 팀의 전력이 맞붙기 직전이다.
그 사전 작업으로서 시야 싸움이 활발하다.
한 치라도 더 깊이 와드를 박고, 반대로 상대의 와드는 지워낸다.
이는 상당한 위험 부담을 동반한 플레이다.
당연하다.
조금이라도 시야가 넓어야 한타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반대로 시야가 좁으면 예상치 못한 갑툭튀에 당해버릴지도 모른다.
서로의 실력대가 높아질수록 시야의 중요성은 무궁무진해진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새 욕심을 낸다.
여기서 한 뼘만 더 깊은 곳에 와드를 박자.
상대보다 조금은 실력이 부족한 아군이다.
그리고 도진기와 수입푸드는 그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졌다.
무의식 중에 내비친 빈틈을 자연스럽게 잡아챈다.
음파를 맞힌 수입푸드의 리심이 돌격했다.
노리는 것은 다름아닌 아군 원딜러 토이치였다.
이~쿠우!
음파로 날아가 방로로 꺾으며 점멸로 걷어찬다.
아군의 제지를 뚫어내며 강제로 이니시를 걸었다.
차우차우의 토이치를 차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를 호응하기에 거리가 조금 멀다.
만약 수입푸드 혼자였다면 실패로 끝났을 이니시.
도진기의 아링이 전광석화처럼 질주한다.
죽음의 불타는 손길로 시작하는 풀콤보가 틀어박힌다.
아군 서포터 쏘냐가 힐을 주며 탈력을 걸었지만 돌이킬 수 없다.
막대한 데미지는 아이스크림 마냥 토이치를 녹여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리심이 땅치기와 힌두인을 퍼엉!
회피가 불가능한 한타가 열리고 말았다.
쿠와아앙-!
상대가 들어왔다면 아군도 마찬가지다.
아군의 두 탱커 킹트록스와 말화이트가 냅다 들이박았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뒤섞여버리는 한타.
그러나 지금의 구도라면 승패는 명명백백하다.
기습당한 아군과 달리 적들은 이미 태세가 만반이다.
탱커 두 명이서 무언가를 해볼 상황이 아니다.
결정적으로 앞라인을 때릴 원딜러가 죽었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가 없는 구도다.
하마터면 정말 그렇게 될 뻔했다.
<씹고! 뜯고! 맛보고! 꿰뚫고! 끄하하하하!>
죽었다고 생각했던 토이치가 살아있다?
아링의 풀콤보에 녹아나기 직전.
내가 시간 회귀를 걸었다.
한 번 죽기는 했으나 되살아났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탱커 두 명이 진입했던 뒷라인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말화이트와 킹트록스가 적 원딜러 고르키를 물어버렸다.
하지만 두 명의 딜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딜템을 올리지 않은 순수한 탱커.
게다가 상대 서포터는 랄라다.
슈퍼 세이브에 이만큼 좋은 서포터가 없다.
그럼에도 고르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4, 3, 2, 1.. 펑!'
필리언의 Q스킬, 시한 폭탄의 위력이다.
데미지는 어지간한 궁극기 못지 않다.
대신 사거리가 짧고 터지는데 시간이 소요된다.
그 고질적인 단점을 아군과의 연계로 극복했다.
시한 폭탄은 아군에게도 설치할 수 있다.
아군 탱커의 머리 위에 달아 깔끔하게 배달.
CC기 연계로 붙든 다음 시한 폭탄을 터트린다.
막대한 위력의 폭탄 두 개가 퍼엉!
원딜러 하나 순삭시키는 건 여반장이다.
전세는 글자 그대로 역전되었다.
─더블 킬!
Qookya ChowChow님이 학살 중입니다!
되살아난 토이치가 프리딜을 뻥뻥 쏴재낀다.
반대로 적팀은 원딜러가 끔살나버렸다.
아링은 살아있지만 토이치를 잡는데 모든 딜을 퍼부었다.
이니시를 걸었던 리심은 진작에 죽었다.
어째서 하고 많은 챔피언들 중에 필리언을 골랐을까?
그 대답이 되는 한타 구도다.
속된 말로 야무지게 비벼졌다.
"이게 이렇게 비벼지네?"
"망한 줄 알았는데 이걸 이겼어."
"용가야 되나? 아니면 미드 포탑?"
꼼짝없이 물리고 시작했던 한타다.
원딜러가 차인 시점에서 져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를 놓고 보니 이게 웬걸?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지 보이스 채팅이 유난스럽다.
"닥치고 바론 가렴."
"저희 몸 안될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그냥 가지 말고 닥치고 가라고 했잖아."
상대팀은 전멸에 준하는 상황이다.
아링과 랄라가 살기는 했으나 망신창이.
반드시 우물에 가서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가장 성가신 리심까지 죽었으니 해볼 만하다.
여건 자체는 갖춰졌으나 이제 고작 게임 시간 16분이다.
화력도 애매할 뿐더러 무엇보다 몸이 되지 않는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을 뿐이지 다들 체력이 넝마가 돼있다.
특히 탱커 두 명은 툭 치면 억 하고 죽어버릴 지경이다.
그러니까 그냥 죽으면 된다.
편하게 죽으면 알아서 살려준다.
'지금 필리언은 한 마디로 개사기지.'
정확히는 12레벨부터다.
궁극기의 쿨타임이 30초도 되지 않는다.
W스킬, 태엽 감기.
모든 스킬의 쿨타임을 10초씩 감소시킨다.
여기에 아테나의 부패한 술잔과 블루 버프.
쿨타임 감소치를 최대치까지 맞췄다.
바론에 달려가는 사이에 궁극기 쿨타임이 거의 돌아왔다.
─아군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킹트록스의 희생을 바탕으로 바론 백작을 잡았다.
대신 용을 내주기는 해야겠지만 상관없다.
비교하기도 민망할 지경으로 바론 백작이 무조건 좋다.
'아주 어처구니가 없을 거야.'
중반 한타 한 번 패배했다고 바론을 먹히다니?
어쩌면 또 포즈를 걸어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필리언의 픽이 이를 가능케 만들었다.
상대가, 특히 수입푸드가 무리하게 이니시를 걸 거라 예상했다.
그걸 역관광치며 가능하다면 바론 백작까지 연결시킨다.
생각했던 것보다 게임이 아주 잘 풀렸다.
'미안하지만 재역전따위는 없어.'
변수라고 해봤자 아링이나 리심의 깜짝 이니시다.
내가 두 눈 뜨고 살아있는 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질래야 질 수가 없는 판이 짜여졌다.
더욱이 아군의 조합은 이니시가 탁월하다.
언제든 원하는 때에 한타를 걸 수 있다.
바론 버프를 두르고 미드 라인을 압박한다.
째깍! 째깍!
대치 구도에서 필리언은 할 게 많은 챔피언이다.
유령화 뺨치게 이동 속도를 상승시켜 주는 E스킬, 시간 조작을 걸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그러다가 사거리에 들어오는 상대에게 폭탄을 선물해준다.
퍼엉!
시한 폭탄이 타겟팅으로 박히며 상대의 체력을 조금씩 깎아낸다.
폭발하는데 4초가 걸리지만 타겟팅이라는 점은 확실한 메리트.
이동 속도가 빨라서 걸고 빠지고, 걸고 빠지고 반복할 수 있다.
실드로 막기 쉽다는 점 때문에 불리할 땐 썩 신통치 못하다.
하지만 유리할 때는 이만큼 껄끄러운 스킬이 또 없다.
상대는 야금야금 갉아먹히다 미드 1차를 내주게 된다.
"점멸 없는 상대 브리핑."
"리심, 아링, 랄라 이상입니다!"
고르키는 점멸이 있나, 없나 제대로 못 봤는데 있는 모양이다.
이전 한타에서 말화이트 궁극기에 박힌 후 그냥 공중에서 폭사한 듯하다.
이렇게 되면 가장 노리기 쉬운 상대부터 노린다.
"박아."
내가 랄라를 핑 찍고 나서 3초 후 한타가 일어났다.
말화이트의 궁극기가 미드 2차 포탑을 낀 상대팀을 덮쳐버렸다.
띄워진 대상은 랄라 혼자 뿐이다.
아링도 맞을 뻔했지만 반응 좋게 황천질주로 내뺐다.
'뭐, 랄라만 순삭하면 끝났지.'
아쉽지만 아링의 궁극기를 뺀 것도 나름 큰 수확이다.
시한 폭탄이 퍼엉! 터지자 랄라는 찍소리도 못하고 하늘나라다.
또다시 아비규환의 한타가 일어난다.
촤앙!
촤앙!
탱커 두 명을 갖다 던지고 토이치는 프리딜 구도.
상대 입장에서는 대체 누굴 물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토이치를 무는 게 정상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토이치를 물면 내가 되살린다.
그렇다면 나를 무는 건 어떨까?
완전 현명한 생각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째깍! 째깍!
시간 조작이 계속해서 돌아가며 내 발걸음을 빠르게 만든다.
유령화의 근 두 배에 준하는 이동 속도 55% 상승.
이 효과가 항시 유지된다.
가뿐하게 몸을 돌려 리심의 음파를 피해낸다.
결국 상대가 노릴 수 있는 대상은 토이치 뿐이다.
네네톤이 토이치를 물어 뜯고 리심이 궁극기로 뻥! 까버린다.
열심히 죽이긴 했지만 다시 부활해버린다.
째깍! 째깍!
이번에 빠르게 만드는 대상은 토이치다.
시간 조작은 자신 뿐만 아니라 아군, 심지어 적한테도 걸 수 있다.
이동 속도가 느려진 리심은 속수무책 카이팅 당한다.
리심은 방로를 사용해 도망갔지만 이미 죽어있다.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머리 위에서 3초, 2초, 1초 줄어든다.
시한 폭탄이 퍼엉! 터지며 리심을 마무리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혼자 남게 된 네네톤은 졸지에 샌드백 행이다.
원래 저 챔프가 한 번 적을 무는데 실패하면 그대로 끝이다.
유통기한 챔프가 괜히 유통기한이겠는가.
토이치에게 시간 조작을 걸어주자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Qookya ChowChow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아군이 적에게 당했습니다!
아군에서도 손실이 있었다.
적 주력 딜러 두 명이 살아있었으니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다.
가장 먼저 들어갔던 말화이트가 점사 당해 죽었다.
하지만 뭐 딱히 상관없다.
그대로 밀어붙인다.
"박아."
"..네."
안 죽은 쪽이 눈치껏 박으면 된다.
미드 2차 포탑을 넘어 억제 포탑을 향한다.
아링도, 고르키로 체력 관리가 제법 준수하다.
물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라인 클리어도 된다.
그러니까 미니언 대신 맞아주면 된다.
마파두부의 킹트록스가 눈물을 머금고 뛰어든다.
슈웅~!
퍼엉!
곧바로 아링과 고르키에게 점사를 맞아 죽는다.
하드 탱커에 속하지 않은지라 의외로 물렁살이다.
하지만 한 번 죽어도 킹트록스는 부활한다.
패시브에 의해 첫 번째 부활을 맞이한다.
'그리고 또 한 번.'
한 웨이브 기다리는 잠깐동안 시간 회귀의 쿨타임이 돌아왔다.
정말 사기스럽게도 조금만 신경 써주면 궁쿨이 20초대다.
또다시 점사를 맞아 죽은 킹트록스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되살아난다.
되살아나서 묵묵히 샌드백 역할을 수행한다.
─적팀의 억제탑을 파괴했습니다!
어거지로 미드 라인에 고속도로를 개통시켰다.
그리고 라인 상황이 좋은 봇라인도 2차 포탑을 파괴한다.
두 번의 한타로 인해 글로벌 골드의 격차가 넘사벽이 됐다.
돌이킬 수 없을 지경까지 승기가 기울었다.
적들의 입장에서 사이즈도 안 나오는 상황이다.
'진짜 답이 없는 건 누굴 물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부분이겠지만.'
필리언을 처음 상대하는 이는 답답한 벽을 느낀다.
누굴 점사해야 이길 수 있을지 도저히 모르겠다.
원딜을 잡아도 부활하고, 나를 잡기에는 까다롭고.
그렇다고 앞라인부터 치면 원딜러가 프리딜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해법이 없지는 않다.
라인전 구도에서 말려버린다거나.
궁극기도 쓰지 못하게 하고 녹여버린다거나.
이 두 가지 상황에서는 필리언의 존재감은 급감한다.
그런데 라인전은 이미 끝났고, 상대의 조합상 나를 물기가 쉽지 않다.
즉, 상대에게 승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의 실수조차 기대할 수 없는 쐐기를 박아버린다.
"빠듯하긴 했는데 미카엘의 그릇 완성됐어요!"
"그래, 상대가 아마 나를 물려고 할 테니까 칼 같이 써. 니 목숨이 걸려있다 생각하고."
설사 노린다고 해도 쉽사리 물려줄 내가 아니다.
하지만 세상사 유비무환인 법 아니겠는가?
잠깐의 기절만 풀 수 있으면 그대로 죽어도 상관없는 게 필리언이다.
자기 자신한테도 당연히 시간 회귀를 사용할 수 있다.
─Qookya AllMaster님이 봇라인의 억제 포탑을 지목!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돌려깎기를 진행한다.
5전 3선승의 다전제 세 번째 판.
이미 두 번의 승리를 따낸 상황이다.
이번 게임을 이기는 것으로 종지부가 찍힌다.
쿡야 베이더스의 결승전 진출이 확정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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