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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할 줄 알고 있었소
첫 번째 세트, 그리고 두 번째 세트와는 전혀 다르다.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게임 대체 누가 캐리한 걸까?
<만약 토이치가 일부러 물린 거면 토이치가 잘한 게 맞습니다. 하지만 과연 일부러일까요? 저 더우니 버빈의 날카로운 눈은 토이치가 죽기 직전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확신합니다.>
<일부러 물렸다면 연기력이 정말 대단하죠. 그 상황에서 원딜을 정확히 차낼 거라고는 정말 그 누구도.. 아, 아닙니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토이치를 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토이치가 되살아난 덕분에 쿡야가 한타를 대승했다.
여기까지라면 정말 역시 올마스터 뛰어난 판단력이다.
딱 그 정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한타의 대승이 바론까지 이어질 줄이야?
용 근처에서 일어난 첫 번째 한타는 방아쇠였다.
바론이 먹히고, 억제탑이 깨지고!
상상도 못했던 상황이 현실로 벌어진다.
스노우볼이 굴러가는 속도가 기하급수.
그럴 수 있는 근원은 역시 올마스터였다.
올마스터의 필리언이 과감한 이니시를 가능케 만들었다.
<대체 무슨 연유로 필리언을 가져갔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본 결과 암살자를 겨냥한 픽 같습니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도 쏠쏠한 이득을 거두고 있죠?>
<먼저 물고 싶어도 물 수가 없습니다. 왜? 간신히 죽여도 되살아나니까! 문제는 대치를 하는 것도 답이 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폭탄 지고 뛰어드는 말화이트. 어째서 미드 필리언을 했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화이트의 이니시는 누구나가 인정한다.
엄청난 돌진 거리를 자랑하는 궁극기.
CC기로 끊는 것도 불가능해서 이동기가 없으면 무조건 맞는 수밖에 없다.
얼핏 좋아 보임에도 픽률이 낮아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니시를 걸면 뭣하는가?
딜이 약해서 상대가 죽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딜템을 올리면 라인전을 못 버틴다.
그나마 프로 리그에서는 조합상의 이유로 쓰이지만 선호되는 픽은 아니다.
그런 말화이트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충한다.
머리에 폭탄 하나 지고 뛰어드니 데미지가 야무지다.
<말화이트와 킹트록스가 폭탄 하나씩 지고 딜러진한테 박으면 무조건 따내고 시작합니다. 이니시가 너무 좋아서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이에요!>
<지난 A조 준결승전 인터뷰에서 츠타이가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의외성 있는 카드를 꺼낸다면 케이왈츠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도진기와 수입푸드가 결코 이번 경기에서 못하고 있는 게 아님에도, 오히려 라인전부터 시작해
꾸준하게 활약을 하고 있음에도 난공불락입니다.>
넘어설 수가 없는 성벽이다.
이니시는 거는 것도 안되고, 걸리는 것도 안된다.
케이왈츠로서는 답답함만이 쌓여 간다.
애석하지만 시곗바늘은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한타.
필리언을 중심으로 다섯 팀원들이 봇라인을 향해 진격한다.
자칫 잘못하면 돌려깎기가 아니라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
아니, 봇라인 억제탑이 깨진다면 이후의 미래는 없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케이왈츠다.
쿡야가 움직이기 전에 선수를 치며 승부수를 띄워왔다.
<네네톤! 리심! 한꺼번에 들어가면서 물겠다.. 하지만 성장 차이가 이미 벌어졌거든요? 잘못하다간 던지는 그림만 나올 수..>
<진짜는 따로 있었습니다! 도진기의 아링이 측면에서 후진입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쭈욱 잠복하고 있었거든요!>
필리언만 어떻게 잡아낼 수 있다면.
아니, 잡아내더라도 글로벌 골드 차이가 심각하다.
결과적으로 게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필리언을 공략해낼 열쇠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케이왈츠의 입장에선 모든 것을 쏟아낸 한타였다.
<아, 읽혔어요! 유혹 피하고 구슬까지 피하고! 발화 걸어보지만 대악마 실드 발동하니 넉넉하게 막아냅니다.>
<방심을 해줬으면 먹힐 만도 했는데 마지막까지 집중력이 대단합니다. 회심의 암살 실패함으로서 한타 정리되는 그림입니다. 미드 라인도 좋지가 않아서 막는 것은 힘들어 보이네요.>
미드 라인의 억제탑은 무너졌다.
거대 미니언들이 진격하며 쌍둥이 포탑을 두들긴다.
고르키 혼자 힘겹게 막아보지만 시간조차 끌 수 없다.
쌍둥이 포탑이 허물어지고, 넥서스가 부숴진다.
이것으로 세 번째 승리를 달성했다.
쿡야가 결승전의 진출을 확정 짓는 순간이었다.
.
.
.
* * *
지난주 이후로 많이 개선이 되기는 했나 보다.
MVP를 아주 적절하게 선정했다.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세트에서 MVP로 선정된 것은 나.
마지막 세트는 가장 많은 킬을 쓸어담았던 차우차우가 되었다.
"저..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요?"
"뭐 어때, 충분히 잘했으니까 떳떳하게 있어."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눈치를 다 본다.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 일어났던 소란을 알고 있다면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원래 MVP라는 게 꼭 잘하는 사람만 주는 건 아니다.
엄청나게 잘하면 연속으로 주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그렇긴 해도 어지간하면 다른 사람을 주려고 포커싱을 맞춘다.
그래야 인터뷰할 사람도 늘어나고 방송 분량도 나올 것 아닌가.
그리고 세 번째 세트의 경우 내 필리언은 팀원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 시대에는 없는 서포팅형 미드라이너.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해도 무리는 아니다.
'설사 알아봤다고 해도 토이치도 충분히 잘했지.'
이 서포팅형 미드라이너는 고질적인 단점을 가진다.
아군이 못하면 진짜 할 게 없다.
토이치 살리고, 아군 머리 위에 폭탄 달아주고.
그렇게까지 했는데 아군이 귀신 같은 스로잉을 보여주면 현실에서 빡침사 할지도 모른다.
위험한 상황이 없지 않았는데 토이치가 포지셔닝을 잘 잡았다.
차우차우의 기량이 제법 무르익었다는 증거다.
물론 용한타에서 이니시 당한 건 좀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잘 풀렸으니 됐다.
'근데 인터뷰는 대체 언제 시작하는 거야?'
경기가 끝나고 칼같이 나간 사람도 있지만 남은 사람이 더욱 많다.
주위의 수만 관중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부스 안이었다면 부담감이 적었을 테지만 밖이다.
개방된 장소에서 이만한 눈길을 맞는 건 아무리 나라도 부담스럽다.
이윽고 드디어 준비를 마친 아나운서가 종종 걸음으로 다가왔다.
이미 몇 번이나 이야기를 나눴던 그녀.
나는 여친이 있는데 본인은 없으시다는 그 분이다.
"첫 번째 세트와 두 번째 세트의 MVP 올마스터 선수와 인터뷰 시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신지요?"
"그럭저럭 안녕합니다."
내가 시큰둥하게 받아치자 어색한 미소를 지어온다.
늦게 와버린 복수를 유치하게 해줬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자꾸 수첩을 쳐다 본다.
"안녕하셔서 다행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마검사로 굉장히 돋보이는 활약해주셨는데요. 그중에서도 빵테온과 리심을 솔킬딴 명장면 빼놓을 수 없겠죠? 혹시 우연인가요, 아니면 의도하신 바인가요?"
빵테온의 방패치기를 씹고, 리심의 스킬들을 흡수해냈다.
경기를 치른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두 챔피언 모두 상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컨트롤만 받쳐주면 마검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근데 따라하시면 안돼요."
"솔로랭크에서 마검사충이 엄청나게 양산될 것 같은 발언 잘 들었습니다. 그럼 질문 이어 가도록 하겠는데요…"
그렇게 첫 세트, 두 번째 세트.
겸사겸사인지 세 번째 세트에 대한 것도 질문이 나왔다.
<아쉽게 MVP를 받지는 못했지만 세 번째 세트에서도 필리언으로 멋진 활약 해주셨어요? 흔치 않은 챔피언을 꺼내게 된 계기 말씀해주실 수 있으시나요?>
<수입푸드가 이니시를 좋아하는 선수라 왠지 던져줄 것 같아서 꺼냈는데 경기 내에서도 던져주더라고요. 덕분에 쉽게 이겼습니다.>
중국어로 말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살짝 건방질 수도 있지.
이미 그런 컨셉을 확실하게 잡아 놀았다.
어쨌든 이것으로 인터뷰는 끝인 걸까.
생각하던 찰나에 수첩을 빠르게 훑어본 아나운서가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질문이 있습니다. 혹시 츠타이 선수의 준결승전 인터뷰 보셨는지요?"
"예, 보긴 봤습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눈을 마주치자 상당히 긴장해있다.
수첩을 신경 쓰는 것도 그렇고 대략 이유를 알 것 같다.
흥미로운 인터뷰를 뽑아내자.
아마 윗사람들이 억지로 질문 사항을 추가했을 테다.
"츠타이 선수는 올마스터라면 결승전까지 올라올 것이다. 하지만 믿을 만한 파트너가 없는 이상 결승전은 힘들어질 것이다. 그런 주장을 해왔는데요. 여기에 대해 특별히 하실 말씀.. 계신가요..?"
조심스럽게 말을 맺어오는 아나운서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평소에 좀 장난스럽게 대꾸하긴 했어도 상황은 나름 가린다.
곤란한 질문을 한다고 시큰둥하게 대답하진 않는다.
아주 친절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짓밟아준다.
"그가 말한 의견은 대체적으로 맞습니다. 도진기와 수입푸드가 함께 나오는 경우를 생각해서 몇 가지 수를 준비해뒀던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을 틀렸습니다."
중국 최고의 미드라이너로 손 꼽히는 츠타이가 틀렸다?
아나운서와 카메라는 물론 수만 관중들의 이목이 모아진다.
순간 떠드는 소리마저 사라졌을 정도로 관중석이 고요해졌다.
"츠타이와 제가 비견이 되는 선수다.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로 혼자서도 충분히 압도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만족하실 만한 답변 되셨다면 좋겠네요. 이상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평가했다면, 내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자유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곳은 중국 상해다.
어쩌면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 돼버릴지도 모른다.
'오오, 반응 뜨거운 거 보소.'
관중석에서 파도가 거세게 인다.
일부 IC의 광팬들이 사나운 반응을 보이는 모양이다.
의도했던 것보다 살짝 못 미치지만 그럭저럭 만족한다.
결승전을 향한 도화선에 거센 불을 붙였다.
.
.
.
* * *
중국 내 여러 로드 오브 로드 커뮤니티 사이트들.
그 많고 많은 사이트들이 대번에 폭주해버렸다.
화젯거리는 단 하나, 바로 올마스터에 대해서다.
◈올마스터 패기 발산kkkk
뭐지? 자기 과시?
말투부터 불안하더니 결국 한 번 저지르고 마네.
다른 팀도 아니고 IC를 상대로!
저러다 지면 개쪽일 텐데 뒷일 생각 안 하나?
▷IC가 어느 정도 팀인지 모르는 거 아니야?
▷쿡야가 지금까지 상대한 팀들은 IC에 쨉도 안되는데www
▷올마스터인지 뭔지 요즘 잘난 척 쩔던데 결승전에서 발렸으면 좋겠다.
▷저런 말하고 결승전 날 솔킬 당하면 웃길 듯.
중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게임단 중 하나인 IC.
실력 또한 탄탄하고 기복이 없어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상해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팬들에게도 인지도가 두텁다.
그런 IC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다니?
몇몇 광팬들이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먼저 운을 띄운 건 올마스터가 아니었다.
◈아, 인터뷰 대충 봐서 몰랐는데 츠타이가 먼저 도발했구나.
목소리가 잔잔해서 눈치를 못챘지.
글로 정리해보니 이해가 된다.
츠타이는 올마스터랑 자신이 동급이고, 팀의 기량 차이가 나니까 맞붙으면 질 수가 없다.
이런 말을 돌려서 한 셈이네.
▷저게 왜? 맞말 아님?
글쓴이-자기네가 무조건 이긴다는 소리잖아. 올마가 빡칠 만하지.
▷츠타이는 그래도 나름 예의 갖춰서 말했는데 올마스터는 너무 직설적이잖아.
▷중국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경어가 안되나 보지kk 근데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잘하긴 하지만.
확실히 IC는 상해 뿐만 아니라 타지역에서도 인기가 많은 팀이다.
그렇긴 해도 압도적인 수준까지는 될 수 없다.
중국에 있는 게임단의 수가 어디 한두 개인가.
흥분한 IC의 광신도들도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반응은 평이하다.
정확히는 그들의 대결이 상당한 볼 거리가 되겠다.
최소한 치킨각은 나오겠구나.
타지역의 결승전이지만 체크해두고 반드시 보자, 이런 느낌이다.
◈상해 LCL 결승전 관심 좀 인다?
올마스터 잘한다, 잘한다 하는데 어느 정도 잘하는지 솔직히 모르겠거든.
마검사는 확실히 잘하는데 강팀 상대로 한 게 아니잖아.
IC 상대로 하는 거 보면 답 나오겠지.
큰 소리까지 뻥뻥친 실력 어디 한 번 보자구.
▷IC면 중국 내에서도 손가락에 무조건 꼽는데 캬아~ 이걸 걸어버리네.
▷올마스터도 엄청 잘하지 않나? 난 솔직히 팬인데 이겼으면 좋겠다.
▷감히 IC한테 도전장을 내밀다니. 길가다 귤껍질이나 밟아라.
▷12등급 IC빠 에너지가 감지되었습니다!
절대로 한 마디를 지지 않는 올마스터.
그로 인해 중국 전역의 관심이 상해로 집중된다.
어느 대회가 그러하듯 결승전은 유독 시청률이 높다.
존재감을 과시하기에는 이보다 더가 없는 기회다.
하지만 과연 기회가 될지, 아니면 독박이 될지.
주목도를 모은 만큼 리스크도 적지가 않다.
당사자들보다 팬들이 더 살 떨리는 결승전이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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