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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636화 (63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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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할 줄 알고 있었소

다음날 아침.

질펀한 회식 자리를 끝내고 숙소에서 푹 잠에 들었다.

가능하면 술은 피하려고 했는데 분위기상 어쩔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둘러보는 게 썩 좋은 기분이 아니야..'

중국에 오게 된 지는 두 달이 넘었다.

시간이 적지 않게 흘렀음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곳과 달리 미국에서는 금방 적응을 했는데  의아하다.

'이유야 명확하지.'

그때는 그래도 혼자라는 자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혼자가 아니다.

흔히 말하는 외로움탐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는 잡생각은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 옳다.

수차례의 경험으로 그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현재 시각 10시 반.

예은과 화상 통화를 하는 시간은 보통 여덟 시 전후다.

숙취 때문에 꾀죄죄한 몰골로 얼굴을 비출 수는 없으니 오늘은 조금 미뤄야겠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방 안에 딸린 화장실에서 샤워를 마쳤다.

끼익.

대충 가볍게 몸단장을 하고 거실로 나왔다.

다행히도 숙취는 많이 가라앉았고 속도 나쁘지 않다.

배도 출출하니 가볍게 빵이든 뭐든 먹을까.

부엌 의자에 츠위가 다소곳 앉아 있었다.

"아침 드실 거에요?"

"..주면 먹지."

혹시 아침을 만들고 쭉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닌지.

다행히도 그건 아니라고 한다.

북어국만 끓이고 적당히 개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며 거실 쪽 TV를 가리켰다.

과자와 음료수가 어질러져 있는 것 보면 대충 둘러대는 소린 아닌 듯하다.

"고맙다, 잘 먹을게."

"뭘요. 별 것도 아닌데요."

그 별것 아닌 것 덕분에 중국에서의 생활이 지탱되는 걸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즉석에서 데워주는 따뜻한 북어국.

한국 쌀로 지은 흰 쌀밥과 한 술 뜨니 속이 개운해진다.

그렇게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칠 즈음.

입가심으로 츠위가 타준 차 한 잔을 입에 적실 때였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우물쭈물 손가락을 꼬던 츠위가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말해왔다.

"인터뷰.. 그렇게 해도 괜찮겠어요?"

장난기가 가신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어조다.

따지는 듯한 기색은 없다.

선수들 간의 도발이야 퍼포먼스의 한 갈래.

과민반응 하는 팬층도 있지만 소수다.

하지만 이곳 상해에서 보자면 그 비율이 적지 않다.

"어차피 IC를 응원할 사람들이잖아?"

"후우.. 시현씨는 긴장되지도 않으시나 봐요. 저는 선전포고라도 한 것 같아서 가슴이 콩닥콩닥한데."

나라고 긴장이 되지 않을 리가 있을까.

그저 완벽하게 준비할 뿐이다.

한 마디로 예비 보험을 줄줄이 들어 놓는다.

상대가 어떤 수를 꺼내도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시원스레 저질러준 건 저도 좋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지기라도 하면.."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 마. 그리고 원래 결승전 쯤되면 그 정도는 다 해. 사전 인터뷰 자리 등에서."

시답잖은 도발이 메인이 되는 게 사전 인터뷰다.

어차피 무조건 주고 받게 될 도발이다.

조금 일찍 도발을 주고 받는다고 문제 될 일 있을까.

뭐, 팬심이라는 게 안 좋은 쪽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건 어디까지나 소수고, 흔히 말하는 진지충들이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일거리를 만든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단순한 격장지계가 아닌 노리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게 있기 때문이다.

세간의 관심을 미리미리,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린다.

'단순히 성적을 거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어제 있었던 준결승전의 승리.

관광이라 불러도 될만큼 일방적이었다.

단 한 판도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팀은 몰라도 나는 그러했다.

경기 스코어 또한 3대0.

완벽이란 말이 어울리는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로는 안돼.'

만족할 만한 성과가 맞다.

하지만 여기에서 만족하기엔 너무 크다.

중국행을 결정하게 된 가장 커다란 목표.

나 개인의 안위를 일컬음이 아니다.

이전부터 들은 바는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그 이상이다.

이곳 중국에서 생활을 하며 확실하게 깨달았다.

해외 선수들에 대한 은근한 무시.

아직 영입이 활발하지 않은 초기임에도 이 정도다.

차후 시간이 흐를수록 양극화는 더욱 골이 깊어진다.

아니, 외국 선수는 왜 우리보다 돈을 더 받아?

당연하게도 해외에서의 실적이 바탕돼 있는 보상이다.

'한 번 눈 돌아간 이상 되돌리긴 힘들어.'

시기, 그리고 열등감.

명백히 자신들보다 잘한다.

하지만 그들은 중국인이 아니고, 중국어를 못한다.

외국인인데 중국어 못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인종 차별 등의 문제가 괜히 생기는 게 아니다.

한 번 자신들의 이기심이 받아들여지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어느샌가 당연시 한다.

그것이 익숙해진 순간 돌이키기 힘들다.

사회의 악과 같은 인종 차별이 뿌리 뽑히지 않는 이유와도 같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지금의 나만이 가능하다.

"뭐, 믿고 있어봐. 알아서 다 해결할 테니까."

"..같이 라고 했잖아요?"

살짝 삐졌는지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도 주고 받았다.

"그래, 아침밥도 고맙고 네 덕에 힘내서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죠? 필요한 것 있으면 사양 말고 말해주세요. 뭐든 맡겨만 주세요!"

방긋 웃는 츠위의 머리 위에 살포시 손을 얹으며 꾹 눌러줬다.

아침밥 잘 먹었다는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나는 방으로 돌아갔다.

털썩 책상 앞의 의자에 주저앉는다.

'큰 소리치긴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지.'

한 시도 허투루 보낼 여유는 없다.

다가오는 결승전은 결코 만만치 않다.

츠위의 도움은 고맙게 받겠지만 경기의 난이도는 그대로다.

'상대가 여유로운 것도 그럴 만 해.'

IC의 미드라이너, 츠타이는 대놓고 밝혔다.

자신들이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양 팀의 기량 차이는 어지간한 수준조차 아니다.

좁히는 것은 불가능에 한없이 가깝다.

이는 어떻게 반박하기가 힘든 사실이다.

'아군의 실력이 부족한 건 맞는 말이니까.'

TCG를 상대로는 그럭저럭 버텨냈다.

케이왈츠를 상대로는 척 봐도 힘에 겨웠다.

그런데 IC는 그 둘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경험도 많고, 에이스도 여럿이고 상대로서는 완전히 최악이야.'

영입을 통해 강해진 게 아니다.

IC는 상해의 고룡이라는 별명답게 이전부터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드넓은 중국에서도 가히 1,2위를 다투는 게임단.

최근에는 신흥 강팀들이 여럿 등장한 탓에 조금 밀리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LPL을 통해 증명해 나가고 있는 와중이다.

팀의 호흡도 깔끔할 뿐더러 개개인의 기량이 전부 높다.

특별히 문제점도 없어서 파고 들기 힘들다.

정면 승부, 힘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힘싸움이 되면 쿡야가 무조건 불리하다.

로드 오브 로드는 팀게임.

혼자서 할 수 있는 한계는 명확하게 그어져 있다.

나조차 수차례 아픈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

팀게임이라고 솔로 캐리가 불가능한 게 아니다.

여건만 받쳐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 여건이라 함은 다름아닌 운영.

상대가 철두철미하게 운영을 한다면 파고들 틈이 사라진다.

반대로 운영이 완벽하지 않다면 파고들 만한 여지가 존재한다.

중국팀들의 경우 운영보다는 개인 기량, 그리고 기세로 게임을 가져가려 한다는 특징이 있다.

운영이 아예 없다는 소린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미숙하다.

서로가 싸우지 못해 안달이 난 중국 내에서는 상관없지만 바깥.

해외 리그에서 최고위의 성적을 거둘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초중반 상대를 해야 하는지 분석이 끝나면 대처 방법이 잡히게 되니까.'

막가파로 부딪히는 중국팀도 충분히 먹힐 구석이 있었다.

파훼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해외팀과도 해볼 만하다.

하지만 상대가 내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것저것 사정 봐주지 않는다면 못할 것도 없다.

혼자서 압도해낼 자신이 있다고 한 건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세컨드 에이스가 없다는 여건은 어렵다.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건 역시 꿀챔.

정확히는 시기적절한 챔피언의 운용법이다.

여러가지, 정말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준비해 놓는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로드 오브 로드에 접속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연습이 없다면 실전에 미숙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 서버에서 연습을 하기엔 걸리는 부분이 좀 많네.'

세상사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구태여 그 불안정한 요소를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선택하는 것은 중국 서버가 아닌 유럽 서버.

여러 나라 전전하다 보니 가진 아이디는 정말 많고 많다.

그 중 하나에 접속해 게임을 시작했다.

.

.

.

* * *

Incredible Carrier.

약칭 IC는 중국의 대형 항공사가 후원하는 게임단이다.

후원 측의 재정 상태도 넉넉하고 게임단은 성적이 잘 나온다.

당연스레 선수들의 대우도 탑 클래스다.

이 정도 지원해주면 프로게이머도 할 만하지.

어지간한 대기업들 뺨따구 후리는 복지를 자랑한다.

총 4층으로 이루어진 IC 숙소 내의 한 켠, 주전 선수들의 연습실에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어때? 써보니까 쓸 만해?"

"글쎄, 아직까지는 느낌이 안 오네. 어쩌면 평생 안 올지도 모르고."

대화를 나누는 이는 IC 1군의 탑솔러인 푸드득.

그리고 미드라이너인 츠타이였다.

대부분의 게임단에선 미드와 정글은 한 세트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IC는 미드와 탑의 호흡이 가장 좋았다.

그 둘의 시너지가 가장 빛을 발하는 무대는 한타다.

상대가 사릴 여유따위 주지 않는다.

푸드득의 환상적인 이니시에 츠타이의 그림 같은 광역기가 더해진다.

상대의 철벽 같은 수비라인을 와르르 무너뜨린다.

가히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버리는 기적.

중국의 많고 많은 게임단들 중에서도 IC가 특별할 수 있는 이유였다.

"필리언이라.. 부활이 있으면 내가 이니시 걸기 한층 수월해지지. 연습해두면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해보고 있는 건데 영 신통치가 않아. 봐바."

푸드득의 눈동자가 츠타이의 모니터로 향했다.

이미 30분이 넘어버린 중후반이다.

게임은 슬슬 막바지에 이르르고 있었다.

'봇라인이 너무 터져버렸나.'

경기의 상황은 지극히 불리했다.

그토록 불리한 상황에서 한타가 걸렸다.

적 탈리반 3세의 강제 이니시가 츠타이의 필리언을 가둬버렸다.

츠타이는 자기 자신한테 부활을 걸어 한 턴 버틸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아군이 전멸.

고작해야 생명 연장의 꿈이었다.

부활하자마자 포위된 츠타이는 두 번째 죽음을 맞이했고 거기서 게임은 끝이 났다.

"경기를 볼 때도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필리언부터 점사를 당하니 역시 무력해지네."

"맞아. 직접 해보니까 단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일단 딴 건 다 제쳐두고 라인전이 너무 힘들어."

평타 모션이 너무 극악이라 CS를 먹기 힘들다.

게다가 마나 소모도 많아서 마나 회복템을 두 개나 가야 한다.

솔로랭크에서는 도저히 못 써먹을 수준.

스크림에서도 딱히 기대되는 픽은 아니었다.

"상대가 조합을 조금만 날카롭게 짜오면 먼저 점사 당해 죽을 걸? 무엇보다 딜이 Q밖에 없잖아."

"하긴, 내가 들어간다 해도 딜이 안 나오면 말짱 헛것이지. 그래도 상황 봐서 쓸 만할 것 같기도 하고.."

푸드득이 걸고, 츠타이가 쓸어 담는다.

그것이 IC의 기본적인 전략 중 하나이다 보니 둘은 서로의 챔피언 선택에 피드백이 많다.

혼자서는 활용하기 힘든 챔피언도 조합을 이뤄 경기에서 써먹기도 한다.

"필리언은 그렇다 치고 마검사는? 그쪽이 진짜 아니었어? 요즘 솔로랭크에서 엄청 핫하던데."

"그것도 장단점이 너무 명확해. 2레벨 솔킬만 조심하면 진짜 별 게 없더라."

반대로 상대에 대한 대비책도 같이 연구하고 있다.

다가오는 결승전에서 요주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올마스터.

그가 최근에 꺼내든 챔피언들은 이미 낱낱이 분석했다.

"대회랑 솔랭에서 꺼낸 건 전부 확인해봤지? 요즘 또 뭔가 꺼내든 것 있어?"

"그렇지. 그런데 최근엔 솔로랭크를 안 하고 있더라고. 혹시 부캐를 돌리나?"

조금 치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사 유비무환인 법 아니겠는가?

특히 올마스터처럼 독특한 챔피언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선수를 상대로는 더더욱이다.

알고도 당해버린 케이왈츠 같은 녀석들도 있지만 자신들은 당연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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