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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할 줄 알고 있었소
국위선양(國威宣揚).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국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화제다.
속된 말로 국뽕이다.
보기만 해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이만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E-스포츠의 팬이 아닌 일반 시청자들도 한 번 들어본 기억이 있는 인물이었다.
"해외에서는 Unknown Error, 한국에서는 올마스터로 유명한 김시현 선수가 북미와 유럽, 그리고 한국을 넘어 이곳 중국에서도 대활약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하는 사람이길래 이름이 그리 많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봤다면 필히 그렇게 말했을 직업군.
프로게이머는 자신의 이름 외에도 여러가지 가명을 사용한다.
그렇게 설명을 해도 돈을 받고 게임을 해? 허허.. 세상 좋아졌누.
이런 말을 하실 게 분명하실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이러한 경기장, 그리고 해외라는 사실을 제시하면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게 된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려운 일 하시는 분들인갑네 그려~.
경기의 내용이 변하지 않아도 장소가, 무대가, 인지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명명백백하게 영향을 미친다.
향후 E-스포츠의 성장이 급변하게 될 정도로 말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단 한 명의 선수.
유리나 특파원을 대동한 취재진들이 빠르게 발걸음을 놀렸다.
"보시다시피 현장이 굉장히 북적입니다. 중국 현지, 그리고 해외의 다른 나라들 가리지 않고 취재진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인터뷰를 따내기 정말 어려웠는데 다행히도 김시현 선수가 협조를 해주셨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따는 게 더 현실성 있어 보일 지경이다.
카메라만 대체 몇 대가 있는 건지 손가락으로 다 셀 수가 없다.
취재진들 사이에 경쟁이 불붙어 의도적인 몸싸움까지 벌어지고 있다.
올마스터 본인이 괜찮습니다,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성과없이 돌아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화면을 통해 사전에 녹화했을 인터뷰가 재생되었다.
"안녕하세요, 올마스터 선수. 아니면 김시현 선수라 불러드려야 할까요?"
"올마스터로도 괜찮습니다. 제가 곧 경기 들어가 봐야 하니 짤막하게 부탁드릴게요."
유리나 특파원이 마이크를 건네며 낭랑하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어지간히 와글대는 이곳에서 장기간 인터뷰는 어차피 불가능.
인터뷰의 내용은 미리 준비한 몇 가지 간략한 내용이었다.
"중국행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지금까지 우승을 못해본 지역이 중국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잠깐 우승하러 왔습니다."
"언어나 문화 차이로 힘든 점이 많으실 것 같은데 후회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저는 영어와 중국어 모두 할 줄 압니다. 때문에 의사소통 문제는 겪은 적이 없고 문화 차이는 저를 스카웃한 쿡야측에서 많은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말씀하신 꿈이 이루어지기 직전이 되셨어요? 긴장하고 계신가요?"
"긴장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경기를 보게 될 시청자들은 긴장을 하셔야 할 것 같네요."
정말로 빠르게 랩이라도 하듯 전투적인 인터뷰다.
이를 진행하는 특파원도 대단하지만 받아치는 쪽도 만만치 않다.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해본 듯 아주 자연스럽게 필요한 대답만 딱딱 해낸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계신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계신다면 한 말씀 해주시죠?"
"언제나 그러하듯 오늘도 실망할 일이 없는 경기 약속드리겠습니다."
방대한 내용의 인터뷰는 고작 1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서로가 엄청나게 빨리 대화를 주고 받았다.
이윽고 화면은 각각 반으로 나뉘며 뉴스 데스크와 현장을 모두 비친다.
현재 CBS의 여덟 시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아나운서가 굉장히 놀랍다는 어조로 물었다.
"세 개 국어라니 정말 놀랍습니다.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었군요?"
"모든 프로게이머가 그렇다기 보단 김시현 선수의 경우 원활한 팀플레이를 위해 독자적으로 언어 습득을 했다고 합니다. 그 수준은 현지인과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 정도라고 하니 자신의 직업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거라 사료되네요."
다소 흥분한 듯한 유리나 특파원의 화면이 접힌다.
방송 화면은 아나운서가 있는 뉴스 데스크 쪽으로 집중되었다.
"E-스포츠, 축구가 야구가 단순한 공놀이에서 출발했듯 게임 또한 스포츠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하나의 문화입니다. 방금과 같은 규모의 대회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니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시각으로 게임을 보는 것은 선입견이 될 수 있겠는데요. 그 E-스포츠의 중심에서 한국을 알리고 있는 자랑스러운 김시현 선수와의 인터뷰 시간 가져보았습니다."
일반인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오~ E-스포츠 나쁘지 않네.
관심이 전혀 없는 연로하신 분들도 좋아하실 만한 국뽕 터지는 보도였다.
올마스터 덕분인지는 몰라도 게임에 대한 선입견은 차츰 옅어져 가고 있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으나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알게 된 셈이다.
반대로 올마스터의 팬, 혹은 로드 오브 로드의 유저들.
한국 최대 규모의 로드 오브 로드 커뮤니티 잉벤에서는 난리가 났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게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CBS 여덟 시 뉴스에 올마스터 등판ㅋㅋㅋㅋ
무슨 마실 나온 것 마냥 잠깐 우승하러 왔데ㅋㅋ
그만한 발언을 할 스펙이 되는 선수라는 점이 되게 재밌다.
근데 대체 무슨 픽을 하길래 시청자들이 긴장까지 해야 함?
└다른 선수면 몰라도 올마스터는 ㄹㅇ임.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잘못하면 티몽 같은 거 나올지도 모름!
└티몽은 에바 털고ㅋㅋ 근데 진짜 별별 희귀한 챔프 다 하긴 함.
└대체 뭘 하려고 그러지? 중국 방송 어케 보냐? 누가 포탈 좀.
솔로랭크에서 나와도 팀원들한테 별별 소리 다 들을 챔피언.
그걸 대회 무대에서 해버리는 사람이 바로 올마스터다.
단순히 시도만 좋은 게 아니라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국내에서만 해도 그가 대회에 나왔다 하면 솔로랭크가 발칵 뒤집혔다.
올마스터를 따라하는 충들이 온갖 민폐를 다 저지르고 다닌다.
현재 중국의 사정도 별반 다를 게 없는지 이미 상당한 이슈를 몰고 왔다고 한다.
이번 결승전의 내용물, 그리고 결과에 의해 더욱 번질지도 모른다.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는 빅 매치.
한국은 물론 해외까지, 수많은 롤유저들의 관심이 중국 상해를 향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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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부터 규모 하나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밀리지 않았으나 오늘은 특히 역대급이다.
이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던 고급스러운 퀄리티.
상해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 주변은 완전히 대축제다.
경기의 시작은 여덟 시 반부터지만 낮부터 꾸준하게 행사가 펼쳐졌다.
어디선가 본 듯한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로드 오브 로드 관련 캐릭터 상품 등이 즐비하다.
이런 걸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한 번씩은 와보고 싶은 장소가 아닐까.
하지만 이제는 진짜를 진행해야 할 시간이다.
3만 석의 관중석이 전부 차버렸다.
그럼에도 물밀듯 밀려오며 빈 공간을 꽉꽉 채우고 있다.
<황혼이 어둠에 젖어 드는 늦은 저녁입니다. 상해가 자랑하는 야경을 잔뜩 즐기고 오셨는지요? 이제부터는 그보다 더 웅장한 경기를 관람하실 시간입니다. 상해 LPL의 결승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캐스터인 더우니 버빈의 외침에 호응 하는 수만 관중들.
입석을 감안해도 5만이 최대일 경기장에 6만 명이 넘게 들어섰다.
하도 발디딜 틈없이 들어선 탓에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중국이다.
흔한 대륙의 샐러드 바.jpg처럼 의외로 안정감이 있다.
<현장에 들어오시는 관중 여러분께서는 스태프들의 통제를 반드시 따라주기를 바라며 슬슬 선수들도 준비가 끝났을 시간이죠?>
<아직 사인은 떨어지지 않았으면 세팅은 거의 끝나갈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경기에 양 팀 모두 걸은 것이 적지 않은 만큼 세심하게 작업 완료하고 있는 듯하네요.>
그도 그럴 게 준결승전 인터뷰부터 미리 주고 받았다.
어느 쪽도 자신들이 반드시 이길 것이다.
이는 사전 인터뷰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쳐 엄청나게 불꽃이 튀었다.
그야말로 모순이다.
절대로 질 구석이 없다는 IC.
반드시 뚫어낼 자신이 있다는 쿡야.
정확히는 올마스터와의 신경전이 대단했다.
말빨 하나는 서로가 밀리지를 않아 누구 말이 옳은 건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은 중국이다.
그리고 상해의 팬들이 모이는 장소다.
열기는 어느 한 쪽을 향해 치우쳐질 수밖에 없었다.
<상행의 고룡! 위풍당당! 이 자리에 한두 번 서본 선수들이 아니거든요? 오늘도 좋은 모습 보여주리라 기대가 됩니다!>
더우니 버빈과 쥔차이가 호들갑을 떨며 선수들의 등장을 알린다.
정말 오랫동안 상해의 왕좌에서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임단.
그들의 팬들이 경기장이 떠나가라 울리운다.
최소로 잡아도 3/4, 그러니까 4만 명이 넘는 팬들이 경기장에서 사자후를 터트리고 있다.
<이에 맞서는 팀은 올마스터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쿡야 베이더스~! 그런데 반응이 조금 싸늘하죠?>
<체감 온도의 차이가 극명합니다. 상해의 용! 그 자리에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알 수가 있는 광경이네요.>
최근에 조금 잠잠하긴 했지만 본성이 어딜 가진 않는다.
은근슬쩍 편파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대놓고는 못한다.
먹고 살기 팍팍해지고 싶지 않다면 알아서 사려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방금 관중들의 반응이 잔인했던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모른다.
IC를 응원했을 수만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우~~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대륙 다운 매너를 보여주는 팬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일방적인 공기 속에서 과연 제 경기력을 펼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우롱과 조소가 가득 찼다.
이윽고 모든 선수들이 단상에 올라섰다.
<더 이상 뜸을 들이면 곤란하겠죠! 가볍게 양 팀 주장들의 각오 한 마디씩 듣고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IC의 주장 츠타이입니다!>
방금 전 환호했던 관중들이 그대로 하나의 구호를 외친다.
어지간히 눈치가 없지 않은 이상 알 수밖에 없다.
츠타이!
IC의 팬이란 에이스인 그의 신봉자라고도 할 수 있다.
소리가 만드는 파도가 사방에서 무대를 덮친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최선을 다해 좋은 경기 보여주겠습니다. 언제나 사랑해주시는 팬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벌써부터 승자의 여유를 가지려는 걸까.
도발따위 할 필요도 없다.
산뜻하게 인사를 마무리한다.
이어서 마이크를 건네 받은 이는 올마스터.
지난 8강 때와 달리 사건사고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생길지도 모른다.
관중석의 반응은 냉담하고 박정했다.
야유는 물론 이곳저곳에서 믿기지 않는 소리까지 퍼부어진다.
대륙의 사람들은 정말 예절이라고는 눈곱 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인터넷만 조금 검색해 봐도 알만한 사실들은 장본인들은 모른다.
그만한 여파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한 사람.
기죽기라도 한 줄 알았던 올마스터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반응이 썩 좋지 않네요.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에는 달라질 겁니다. 제가 마술을 하나 걸어드리죠.>
마이크를 통해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순간, 아주 잠깐이나마 정적이 흘렀다.
광분한 수만 관중들이 한 명의 사내에게 제압 당했다.
그 효과는 수 초도 되지 않아 풀렸지만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현장의 공기는 그 전과 후로 명백하게 달라졌다.
적어도 폭도와도 같았던 이들은 잠잠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스타가 어째서 이 먼 중국까지 와서 푸대접을 받아야 할까?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그가 아니라면 누가 성난 관중들 앞에서 당당히 제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처음 중국에서 경기를 치렀을 때 조금.
상해 LPL의 결승전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많이.
이제는 전부를 바꾸기 위한 고된 여정의 시작이 코앞이다.
<세계 최고의 리그! 중국 최대의 도시! 상해 LPL의 첫 번째 경기의 밴픽이 막을 올립니다!>
선수들은 각자의 부스로 돌아간지 오래다.
이미 세팅을 맞춰 놓은 자리에 착석하며 지체없이 경기를 시작한다.
Incredible Carrier 대 쿡야 베이더스의 결승전, 그 첫 번째 세트.
이목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한 명의 선수에게 집중됐다.
과연 큰 소리 떵떵친 대로 활로를 찾을 수있을 것인지.
현장의 수만 관중들은 물론 수백만 시청자들까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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