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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할 줄 알고 있었소
이번 두 번째 세트에서 상대가 지향하는 바.
한 마디로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미드에 묶어두고 탑과 봇을 들쑤시며 스노우볼을 굴렸다.
그 첫 단추가 바로 1렙 로밍이었다.
'참, 장신구만 있었어도 절대 안 당했을 텐데.'
앞으로 한 달이 조금 더 남았을까.
시즌4부터는 장신구 와드라는 게 생기게 된다.
유지되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쏠쏠한 활용이 가능하다.
지금 시점에서 따지는 건 당연히 에바 터는 소리다.
그리고 사실 그건 사소한 계기에 불과했다.
작정하고 몰아붙이는 IC는 이름값이 부족하지 않았다.
당장 닥친 여건에서 게임을 풀어나가야 한다.
현재 시간은 20분을 조금 넘은 중반대.
라인전은 당해야 했지만 이후로는 버티고 있다.
최대한 한타를 지양하며 성장에 몰두하는 그림을 그려낸다.
"봇 2차 먹으라 하고 빼. 쇈이랑 탈리반이 윗라인 쭉 밀고 있으니까."
"쟤네 파이어뱃 귀환타면 우리는 2차까지 못 갈 거 같은데요?"
"밀면 좋은 거고 못해도 궁극기는 뺄 수 있잖아."
시간을 끈다는 건 한 마디로 줄다리기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뒷걸음친다.
실수로 넘어져서 고꾸라지지 않도록 팽팽한 줄을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뒷걸음 치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게 포인트.
이를 해내려면 귀찮더라도 오더를 내려야 한다.
아주 세심하게 인원을 배분하여 적이 과격한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만든다.
파앙!
파앙!
상대는 봇라인의 2차 포탑을 깨트리고 철수했다.
그동안 밀려온 미니언 웨이브는 내가 받아먹는다.
헤일의 불빠따는 라인 푸쉬에 정말로 좋다.
그 사이에 쇈과 탈리반은 탑라인 1차 포탑을 깼고 2차 포탑에 약간의 피해를 입혔다.
잘하면 2차 포탑까지 깰 수 있어 보이지만 안된다고 생각한다.
적 탑라이너가 하필 파이어뱃이기 때문이다.
<기가 갤럭시 브레이커!>
의병대를 타고 달려온 파이어뱃이 궁극기를 내리깐다.
파이어뱃의 궁극기, 불바다 미사일은 사거리가 무척 길다.
대신 조준하기 힘들다는 게 단점이지만 미니언을 상대로라면 무조건 맞힌다.
탑라인 2차 포탑을 깨려던 아군의 원대한 꿈은 역시 제지되었다.
'그래도 궁극기를 뺐으니 그것만으로도 선방한 셈이지.'
파이어뱃은 궁만 잘 깔아도 1인분이 되는 챔프다.
반대로 궁극기가 없으면 딱히 할 게 없는 챔피언이기도 하다.
목적대로 시간을 끄는데 성공해냈다.
물론 이렇게 조금씩 내주면서 시간을 끄는 것도 결국 손해가 누적된다.
늦게 지냐, 빨리 지냐 정도의 차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조합이 가지는 성장 기대치가 비슷할 때의 이야기.
수비적인 조합이라는 건 한타 조합이라는 뜻과도 일맥상통하다.
목표치까지 성장만 한다면 충분히 게임을 비벼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성장을 잘해야 하는 사람은 나다.
적어도 3코어는 나와야 혼자서 싹 쓸어 담는 그림이 나온다.
'나온다 해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기대를 해봄직한 것도 사실이다.
프리딜 구도만 나온다면 하드 캐리가 가능.
그것이 헤일이 가진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다.
흔한 AP챔피언들과 다르게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쇈은 와드 두 개 들고 봇 가서 탈리반이랑 같이 시야 작업해."
"형은요?"
"응, 나는 탑라인 CS 먹을 거야."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이기적인 플레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내가 봇라인에 남아봤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자칫 잘못해서 CC기라도 잘못 맞으면 그대로 죽는다.
시야 작업을 할 때 생존기의 유무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그에 반해 쇈과 탈리반이라면 무리 하지 않는 한 안 죽는다.
현재 시간 24분.
앞으로 2분 뒤면 용이 젠된다.
이 타이밍이라면 설사 실수해서 한 번 죽어도 큰 손해로 연결되지 않는다.
탈리반은 몰라도 쇈은 곧바로 궁극기를 사용해 백업이 가능하다.
아군의 실수까지 감안해서 판을 짜는 훌륭한 오더!
내가 기업을 운영한다면 바람직한 블랙 기업이 될 것이다.
파앙!
파앙!
바론의 송곳니에 이어 쿠단의 소용돌이까지 나온 덕에 라인 푸쉬가 예술이다.
아군 미니언 웨이브보다 앞서 나가 쭉쭉 적 미니언들을 처리한다.
마지막으로 적 쌍둥이 골렘과 아군 늑대까지 얌얌.
기가 막힌 포식을 한 덕분에 코어 아이템을 맞출 골드가 나왔다.
세 번째로 선택할 아이템은 굉장히 보기 드문 구인묘의 격분검이다.
"형 슬슬 안 내려오면 위험해요."
"곧 가니까 잘리지 말고 사리고 있어봐."
이렇게 세 아이템이 나온 헤일의 프리딜은 한 마디로 미쳐 날뛴다.
구도만 갖춰지면 탱커고 딜러고 싸그리 아이스크림이다.
문제는 상대가 과연 그 구도를 내줄 것인가.
'CC기도 많고 이니시도 좋아서 상당히 까다로워.'
지금부터는 순수한 기량 싸움이 된다.
정신 바짝 차리고 호랑이굴에 고개를 들이민다.
내 오더에 발맞춰 최대한 시야 작업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밀린다.
전체적인 게임의 양상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상대가 와드를 지우는 걸 막을 수 없다.
어느 정도 저지선이 펼쳐지긴 했지만 중요한 용 쪽 시야는 어두컴컴한 상태다.
하지만 아직 용이 젠되기까지 30초 가량 여유가 있다.
조금씩 전진해서 상대가 용을 치기 힘든 라인까지만 가면 된다.
어쩌면 그 생각은 안이했을지도 모른다.
<기가 갤럭시 브레이커!>
난데없이 떨어진 불바다 미사일이 아군의 진영을 양단했다..
그로 인해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아군이 피해를 입었다.
시야라도 있지 않은 이상 이렇게 정교한 이니시를 거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이 주변에 미처 지우지 못한 와드가 하나 있겠지만 지금 따져봤자 의미가 없는 일이다.
푸욱!
한타는 이미 걸렸고 회피는 불가능이다.
적 정글러 리심이 아군 헤이클린에게 음파를 맞히고 돌격한다.
깜짝 놀란 헤이클린이 투망을 사용해 내뺐다.
그런데 리심의 궤도가 기묘하게 꺾였다.
이~쿠우!
노골적으로 원딜러를 노렸던 건 페이크였다.
자신의 경로를 예측하게 만들고 전혀 엉뚱한 위치로 점멸을 사용했다.
만약 의도한 것이라면 매드무비에 나올 법한 슈퍼 플레이다.
역시 세계 수준에서 먹히는 팀답게 팀원들의 수준이 전부 높다.
이렇듯 한가롭게 품평을 하기엔 내가 처한 상황이 썩 좋지가 않다.
방금 리심이 열과 성을 다하며 차버린 대상.
적 진영을 향해 배달된 사람이 하필이면 나였다.
파아앙!
급하게 차버렸기 때문에 각도는 영 좋지 않다.
하지만 상대에겐 이를 받아먹을 수 있는 스킬들이 충분하다.
산다라가 파앙! 구체를 굴리며 나를 기절시켰다.
연이어 들어간 광우스타의 박치기가 한 번 더 나를 높이 띄운다.
양분된 아군은 잘 큰 리심과 파이어뱃에게 농락 당하고 있다.
한타의 구도는 명백히 최악이다.
주력 딜러인 나는 세 명의 적에게 둘러 쌓였다.
앞대쉬를 한 크레이브즈까지 폭딜을 쏟아 부어온다.
이 순간을 잡아채기 위해 눈 깜빡이는 것조차 참고 있었다.
파바바바밧!
산다라가 쏘아낸 다섯 개의 구체가 나를 노려온다.
그 막대한 데미지가 닿기 직전 챠랑~! 청량한 파동이 울려 퍼진다.
클린즈로 상태 이상을 풀어낸 나는 궁극기, 불멸이 발동했다.
<불멸의, 존재다!>
수 초동안 상대의 공격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는다.
그래봤자 찰나, 발악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틀렸다.
상대에게 포탑을 내주면서까지 코어템을 기다린 건 다름이 아니다.
더욱이 곧바로 클린즈를 바로 사용하지 않은데는 다 이유가 있다.
파바방!
파바방!
헤일의 평타가 세 갈래로 나뉘어지며 적들을 후려친다.
두 번째 코어 아이템 쿠단의 소용돌이의 효과.
크레이브즈는 물론 산다라와 광우스타도 무사할 수 없다.
파바방!
파바방!
부랴부랴 도망가지만 한 명만 패면 족하다.
광우스타를 때리니 두 개의 투사체가 추가로 발사된다.
쿠단의 소용돌이에 의해 저절로 광역 피해가 가해진다.
결국 보다 못한 광우스타가 나에게 탈력을 걸었다.
이렇게 되면 무적이 끝나자마자 퍼부어지는 폭딜에 역으로 당한다.
내 체력이 아직도 낮은 상태였다면 분명 그렇게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회복해버렸지.'
반피 아래로 깎였던 체력바는 어느새 원상복구됐다.
세 번째 코어 아이템 구인묘의 격분검.
주문력과 공격 속도를 올려주는 것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다.
체력이 50% 미만으로 떨어지면 생명의 힘을 불태운다.
그 효과는 추가 공격 속도와 더불어 흡혈 능력을 부여한다.
단순한 피흡이 아닌 주문 흡혈까지 붙어있다.
헤일의 평타에 묻어나는 모든 피해가 체력으로 환산된다.
상황만 갖춰지면 규격 외의 힘의 발휘하는 존재.
헤일은 한타 캐리에 누구보다 최적화된 챔피언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앞점멸로 홍염을 뿌린 후 불빠따로 두들겨 팼다.
최대치에 준하는 공격 속도가 크레이브즈를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눈치 챈 산다라가 점멸로 도망가지만 늦었다.
─더블 킬!
크레이브즈에게서 빼앗은 레드 버프가 요긴하게 작용한다.
따라가서 두 대 더 뺨따구를 후려치는 것으로 마무리.
남은 적은 광우스타를 포함한 앞라인이다.
'뭐, 갈 것도 없겠구만.'
쇈이 나한테 궁극기를 안 썼길래 의아했는데 공격적으로 사용했다.
적 앞라인은 두 명이서 네 명을 막아내는 기염을 토해냈지만 결국 무너진다.
슬슬 지원을 와야 할 아군들이 나의 손에 죽어버렸기 대문이다.
구워어어-!
믿었던 딜러 두 명이 녹아버리자 광우스타가 구슬프게 운다.
듣기로 고기는 매타작을 하는 편이 더 부드러워진다더라.
서포터 치고 단단한 편에 속하는 광우스타는 확실히 때릴 맛이 난다.
─트리플 킬!
나를 밀쳐 내며 끈질기게 도망갔지만 결국은 따라잡힌다.
그 사이 나머지 적들은 마무리 당했다.
내가 세 명을 상대한 탓에 아군의 손실은 전혀 없다.
파앙!
파앙!
자연스럽게 코앞의 용을 치며 핑을 찍는다.
찍는 대상은 당연히 바론 백작.
조합의 특성상 나를 제외한 아군의 화력은 보잘 것 없다.
'그래도 쇈이랑 한나면 어찌저찌 잡을 수는 있겠지.'
한 번에 두 개의 오브젝트를 전부 챙겨버린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덕에 가능할 듯 보인다.
그런데 아군 놈들이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주춤댔다.
"어, 뭐지..? 마무리?"
"밑에 뭐야. 쟤네 왜 죽었어."
"형 살아있네요.. 당연히 죽었는 줄 알았는데."
"..닥치고 바론이나 가렴."
떨떠름한 반응으로 보아하니 아직 정신을 덜 차렸다.
그럼에도 그동안 내린 갈굼이 헛되지 않은지 바로 움직인다.
시간을 계산하건데 충분히 먹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용을 처치했습니다!
전투 지속력을 올려주는 생명의 힘 덕분에 용은 수월하게 잡을 수 있다.
곧바로 봇라인을 쭉쭉 푸쉬한다.
아직까지도 파괴하지 못했던 1차 포탑이 금새 허물어진다.
'내가 생각해봐도 상황이 참 기가 막히게 잘 떨어졌어.'
녀석들이 어리둥절 할 만도 하다.
누가 봐도 꼼짝없이 죽을 상황이었다.
모든 특성을 공격에만 부여한 헤일.
그리고 적절한 아이템 선택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렇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게임은 의도했던 대로 정확히 흘러갔다.
아니, 이 정도의 상황까진 바라지도 않았는데 참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마치 입롤처럼 비벼진 한타는 순식간에 게임을 뒤집어엎었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아군이 바론 백작을 처치하였습니다!
적들이 그렇게나 노력해서 가져갔던 2차 포탑까지 밀어버렸다.
코어템 세 개가 전부 공속템인 덕엔 타워링이 엄청나게 빠르다.
고작 한 번의 한타로 잃은 것이 대체 얼마인가.
적들의 입장에서 어안이 벙벙하겠지만 이게 헤일이다.
단 한 번만 한타 프리딜 제대로 넣으면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들어낸다.
차후 시즌4에 RPG메타라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귤이나 까먹을 것이 나오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여건만 받쳐준다면 지금도 당연히 해낼 수 있다.
그만큼 플레이어의 기량과 게임의 수준에 영향을 많이 받긴 하지만.
'이런 아비규환에선 못할 것도 없으니까.'
아무리 나라도 LCF같은 곳에서 이 짓은 못한다.
하지만 운영과 포커싱이 체계화되지 않은 중국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상대가 내준 사소한 빈틈을 놓치지 않고 비집어 열었다.
찰칵!
마지막 쐐기를 박을 수 있는 네 번째 코어아이템이 완성됐다.
구입한 아이템은 바로 조냐의 물시계.
평소라면 라둔의 죽음투구를 반드시 올렸겠지만 다 이유가 있다.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IC다.
"갈릭아, 한타 시작하면 헤일한테 일단 궁 써라."
"아.. 아까는 제가 미처 못 봤는데 이번에는 확실하게 쓸게요."
"누구처럼 욕하지 말고 알겠지?"
"..? 누가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저는 욕 안 해요."
클끼리가 그렇게나 간나색히를 부르짖었던 팀이기도 하다.
절대로 실수 없이 게임에 종지부를 찍는다.
미드 라인을 향해 물밀듯 치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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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최근 3연참을 못하고 있어요.
이유는 1부 수정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