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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할 줄 알고 있었소
상대의 전략은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다.
챔피언 픽에서부터 변화가 뚜렷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나를 잡아두는 정도에 불과했다.
'슬슬 극단적인 수를 둘 타이밍인가.'
비효율적인 수준으로 스펠을 쏟아부어 나를 따낸다.
이러한 철저한 에이스 마크에 대한 경험은 정말 많다.
직접 당해보긴 했지만 본 적도 빼놓을 수 없다.
본래의 미래에서 SKY T1 K가 롤드컵을 우승하고 전 세계적인 강팀이 되었을 적.
어떻게 하면 미드라이너인 테이커를 막을 수 있을까?
수많은 팀들이 가지각색의 전략으로 그의 발목을 붙잡고자 했다.
그 결과, 테이커 특유의 멋진 슈퍼 플레이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적도 분명 있었다.
반대로 테이커 말리기가 성공하면서 SKY T1 K를 이겨버린 팀도 적지 않았다.
대적하는 상대의 수준이 높을수록 선수 한 명의 선에서 해결하기 힘들어진다.
제아무리 피지컬이 뛰어나고, 챔피언 폭이 넓고, 판단력과 운영이 뒷받침된다 해도 한계는 명확하다.
'나도 예외가 되진 않아.'
꿀챔프를 활용해서 변수를 만들어볼 수는 있다.
두 번째 세트에서 헤일로 행했던 게 바로 그것.
하지만 그것도 상식선에서지 상대가 도박적일 정도의 수를 둬오면 반드시 빈틈이 나온다.
이번 세 번째 세트에서 상대가 노리는 게 그것일 것이다.
짜온 조합을 보건데 분명 그러하다.
라인전은 물론 한타까지 철저한 마크.
궁지엔 몰린 IC가 짜낼 수 있는 최고의 한 수다.
'만약 라인을 섰다면 꼼짝없이 당했겠지.'
때문에 일부러 포지션을 정글로 바꿨다.
항상 시야에 노출되는 미드와 달리 정글은 철저한 마크가 불가능하다.
방법이 없지는 않지만 여건이 돼야 하는 거지 의도적으론 못한다.
이것만으로도 상대는 게임이 엄청나게 말린 셈이다.
그런데 과연 고작 대인 마크를 피하자고 정글을 했을까.
라이너에 비해 성장이 늦을 수밖에 없다는 단점.
솔로랭크에서는 의외로 쉽게 극복하는 볼 수 있다.
바로 카정으로 킬을 따고 무지막지 잘 풀렸을 때 말이다.
티링!
아군 봇듀오에게 리시를 받고 2레벨을 찍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한 가지가 다르다.
원래 시작해야 할 블루가 아닌 레드 스타트.
게임을 내가 원하는 흐름으로 이끌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었다.
'단순히 빡리쉬가 필요해서는 아니고.'
레드를 먹자마자 바로 바론 벽을 넘어 잠입한다.
적 블루 옆에 있는 자그마한 수풀 안.
방금의 카정 루트를 활용하면 원주인보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나를 마주치는 순간 적 정글은 죽은 목숨이 된다.
쿠! 챠앙!
아주 대담하게 탈리반 3세가 벽을 넘었다.
그냥 마주치기만 해도 도망가기 힘들 텐데.
이렇게 생존기까지 빠진다면 만약이란 여지가 사라진다.
'하긴 생각지도 못했으려나.'
레드를 먹자마자 바로 블루로 달려왔다.
현재 시즌3에는 쌍버프만 먹어도 3레벨이 찍힌다.
때문에 정글 루트만 반듯하게 돌면 카정 당할 일이 없다.
굉장히 옳은 생각이고 정석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상황을 직면하면 더욱 당황스러워진다.
푸슝!
정글러의 필수 스펠, 단타를 사용해 블루의 막타를 뺏어 먹는다.
어? 나 아직 단타 쓰지도 않았는데 블루 골렘이 죽어버리네?
탈리반 3세가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일격이 들어간다.
쿠직!
갈고리가 내려 찍히며 탈리반의 살점을 크게 덜어낸다.
혼자 있는 적에게 무려 45%에 달하는 추가 피해.
약칭 고독은 1대1 상황에서 사기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패시브가 묻은 평타까지 더해지자 사실상 끝이 났다.
쿠화악!
점멸로 벽을 넘어 깃창 시간을 벌어보려 하지만 헛수고.
아마 2초가 약간 안되게 남았을 터다.
미안하지만 기다려주는 일은 없다.
날개뛰기로 도약해 확실하게 마무리한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나를 말리려던 것이 상대의 목적이었던가.
안타깝게도 그 이상은 이룰 수 없어 보인다.
한타 조합이 좋든 CC기 연계가 강력하든 극복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성장의 격차.'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생각 이상으로 손쉽게 풀렸고 이렇게 되면 다음 킬도 여반장이다.
─Qookya AllMaster님이 얼음마녀를 지목.
얼음마녀는 AP메이지 치고 안정감이 있는 픽에 속한다.
생존기가 워낙 좋으며 CC기도 많아서 다이브 치는 게 까다롭다.
하지만 정글 카지트의 고독뎀 앞에서는 얄짤이 없다.
쿠직!
아군 봇듀오가 미니언 웨이브를 예쁘게 몰아넣었다.
포탑을 끼고 있는 얼음마녀에게 다가가 내려찍는다.
현재 카지트에겐 포탑의 끼고 있는 적도 고독 판정이다.
연이어 들어가는 묵직한 평타.
얼음마녀는 자랑하는 생존기 서리밭 길을 사용해 도망가려 한다.
쿠화악!
서리밭 길은 분명 상급의 생존기지만 즉발이 아니다.
이미 얻어 맞아 느려진 얼음마녀는 뒤를 잡히고 만다.
고독 상태에서 내려찍히는 두 번째 갈고리가 목숨을 앗아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라인 스왑을 걸고 정글 루트를 바꾸는 것으로 게임 시간 3분 만에 두 개의 킬을 챙겼다.
안 그래도 코너에 몰린 상대로서는 뼈아픈 실책이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터다.
'기량 차가 있으니 합류 싸움으로 이끌면 해 볼만 하다, 아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렇듯 라인 스왑이 걸리면 서포터의 움직임이 자유스러워 진다.
굳이 라인전에 집중할 이유가 사라지지 않는가.
로밍 싸움이 돼버리면 서포터의 실력 차에 의해 게임이 비벼지는 경우가 잦다.
즉, 한 마리 한 마리 돌아다니는 먹잇감의 개체 수가 많아지는 셈이다.
.
.
.
* * *
상해 LPL의 결승전 세 번째 세트.
수많은 사람들이 숨죽인 채 그 과정과 결과를 기대했다.
네 번째 세트가 이어질지, 아니면 결승전이 끝날지 정해지는 만큼 당연하다.
더욱이 양 팀 모두 이색적인 조합을 선보였다.
IC의 얼음마녀와 산드라.
쿡야의 카지트와 노텀.
대회는 물론 솔로랭크에서조차 보기 힘든 챔피언들이다.
경기의 중요도를 생각하면 결코 허투루 꺼낸 픽들이 아니다.
대체 어떤 게임이 만들어질지 기대감이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소문이 많이 퍼졌는지 시청자 수만 해도 역대 상해 LPL의 최고치를 가뿐히 돌파했다.
이조차도 해외 시청자 수를 카운트하지 않은 수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경기는 너무 시시하게 끝나가고 있고 준비했던 픽은 위력을 발하지도 않았다.
오직 한 선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소환자의 전장에 있는 열 명의 선수들.
그 중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이는 단 한 명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늑대 한 입이 그렇게나 고팠는데 말이죠.. 그걸 또 대기하고 있다가 인정사정도 없이 바로 죽이고 마네요.>
한 번 킬을 먹기 시작하자 미쳐 날뛴다.
자신의 본거지를 잊은 듯 적 정글에서 그냥 살고 있다.
올마스터의 카지트가 IC의 블루 지역에서 탈리반을 처리했다.
이로써 세 번째 이루어진 카정이다.
<하지만 그래도 날개뛰기가 빠졌거든요? 잘 포위해서 싸먹을 수만 있으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밑에서 쓰렉귀 올라오고 산다라도 백업 옵니다. 부시안도 근처에 있기 때문에 충분히 노려볼 만해요!>
솔로랭크에서는 정말 각광 받을 정도다.
카운터 정글, 약칭 카정을 적 정글에 가서 정글러를 따내거나 몬스터를 빼앗아 먹는 행위.
의아하게도 대회에서는 거의 볼 일이 없다.
이유인 즉, 아군이 백업을 잘 봐준다.
동선상 당연히 아군이 먼저 도착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상대가 똑같이 백업을 오려고 해도 한 발 늦고 말 뿐이다.
대회 무대가 가지는 긴장감을 생각한다면 리스크를 생각해 더더욱 지양하게 된다.
저 올마스터처럼 막무가내 간땡이가 부은 선수가 이상한 거다.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는 듯 샤브샤브의 쓰렉귀가 과감하게 움직였다.
─숨을 곳은 없어!
점멸 채찍 쓸기로 카지트를 넘기며 곧바로 선고로 끌어낸다.
그러면서 절대 도망가지 못하도록 영겁의 감옥으로 가뒀다.
스치기만 해도 2초간 99%의 둔화!
그런데 카지트는 영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콰흑!
평타를 내려치는 동시에 침을 발사한다.
그것만으로도 쓰렉귀의 체력이 눈에 띄게 깎인다.
레벨과 아이템 격차를 생각한다면 지당하다.
하지만 진짜 타격은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다.
─Qookya AllMaster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카지트의 갈고리가 쓰렉귀를 내려찍자 사라졌다.
아무리 성장 차이가 난다지만 그래도 풀피였는데.
그 이유는 더욱 예리하고 길쭉해진 갈고리에 있다.
6레벨에 이르른 카지트는 갈고리를 진화시켰다.
사거리가 늘어나며 잃은 체력에 비례한 데미지를 추가로 가한다.
고독 상태인 상대에겐 무려 12% 해당한다.
쓰렉귀는 얼마 버텨보지도 못하고 순삭 당했다.
감옥에 갇힌 카지트를 열심히 치고 있던 부시안도 곧 같은 운명이다.
─더블 킬!
부시안은 적당히 때리다 도망가려 했지만 카지트가 허락하지 않았다.
점멸로 감옥을 넘으며 평타.
따라가서 내려 찍고 발사하니 남은 것은 시체 뿐이다.
잘 큰 카지트의 위력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이게 카지트가.. 원래 이렇게 센 건 아닙니다. 혼자 있는, 흔히 고독 상태라 불리는 적에게만 추가 피해를 가합니다. 방금은 상황이 딱 알맞게 맞아 떨어진 것 같네요.>
<아마 정글이라는 지형적 특징이 크게 착용했을 겁니다. 미니언이 없어서 1대1 상황을 유도하기가 좋거든요. 정글 카지트라는 의아한 픽을 선택하게 된 이유로 유추됩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더블 킬.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부시안이 2차 포탑 쪽으로 빠진 탓에 조금 멀어지긴 했지만 도착했다.
미드에서 달려온 산다라가 카지트에게 풀콤보를 욱여넣는다.
<부족합니다.. 쇈 보호막 덧씌워지면서 궁극기 데미지 흡수했어요!>
<그래도 탑에서 얼음마녀가 쇈의 궁차징을 끊었기 때문에 한 번 더 검은 구체를 잡아 뜯는다면 마무리를…>
현실은 냉담했다.
반드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
벼랑 끝까지 몰린 츠타이에 비해 올마스터는 여유롭다.
일단 궁극기인 아공간 암습으로 은신한다.
그 직전에 도망가는 듯한 무빙을 밟는다.
산다라는 당연히 한 치 앞에 검은 구체를 뜯었다.
그리고 올마스터는 오히려 앞무빙을 밟으며 접근했다.
<산다라 점멸로 도망가지만 느려졌고 카지트는 날개뛰기 돌아왔고..!>
<게다가 탑도 상황이 아주 안 좋습니다. 소환자의 전장에 밤이 찾아왔어요!>
어째서 미드 노텀이라는 희귀한 픽을 했을까.
쿡야의 미드라이너 아몬드는 올마스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니, 쿡야라는 팀 자체가 중국의 신세상 매직 아니던가.
챔피언 폭이 닮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올마스터의 챔프 폭은 미드 노텀만은 아니다.
노텀은 그가 했던 챔피언들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경기에서는 가장 적절한 픽이 맞았다.
쿠구구궁!
자신의 위치상 미드 백업은 갈 수 없었다.
대신 가까웠던 탑라인에 사냥감이 보였다.
쇈의 궁극기를 끊기 위해 서리밭 길로 접근했던 얼음마녀.
노텀이 빠른 속도로 쏘아지며 쇈의 도발이 긁힌다.
난데없이 찾아온 어둠 탓에 얼음마녀는 반응이 늦었고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어둠은 밑에 쪽.
올마스터와 츠타이의 교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검은 구체가 또 안 맞았어요. 한 번 더 갈고리 긁히며 산다라 전사! 트리플 킬, 아니 사실상 쿼드라 킬이 맞겠죠?>
<혼자서 네 명의 적을 잡아내며 마무리를 띄웠습니다. 마지막 세트가 될 수 있는 이상 끝까지 해보긴 해야겠지만.. 앞선 두 게임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합니다.>
이미 태세를 전환한지 오래인 더우니 버빈이 상황을 정확하게 나열했다.
일단은 입장이 입장이니 만큼, 또 이곳 경기장의 관중들이 대부분 IC를 응원하러 온 만큼 진실은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승기가 이미 기울어졌다는 사실은 게임 보는 눈이 조금만 있어도 알 수밖에 없다.
이거는 아예 역전 자체가 불가능한 격차다.
<또 솔용을 순식간에 해버리면서 글로벌 골드의 격차.. 이제 별 의미는 없습니다만 더욱 더 벌어지고 말았네요.>
<게임의 스노우볼이 너무 빠르게 굴러갔습니다. 보통은 한 번 킬을 따도 양 팀 모두 정비 시간 가지고 천천히. 그런데 올마스터는 그런 게 없어요. 그냥 적 정글 들어가서 혼자 무쌍을 찍습니다. 이니시도 좋아서 이건.. 끼고 있는 포탑이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합니다.>
그로부터 2분 쯤 지났을까.
소환자의 전장에 다시 한 번 밤이 찾아왔다.
미드 2차 포탑을 끼고 있는 산다라를 향해 쏘아지는 그림자.
그 위로 덮쳐진 한 마리의 메뚜기가 미쳐 날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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