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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할 줄 알고 있었소
어둠 속에서 귀를 찌르는 벌레의 날갯짓.
노텀에게 얻어맞을 대로 맞은 산다라의 위로 떨어진다.
아니, 떨어지지조차 않았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찍고 재도약한다.
적을 한 방에 처리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묘기.
2단 점프로 얼음마녀의 앞에 착지한다.
사르륵..!
주위는 아직 어둠이 가득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팀원 한 명이 죽었다.
그리고 사인이라 생각되는 괴물이 자신의 앞에 있다.
깜짝 놀란 얼음마녀가 궁극기로 나를 얼리려 한다.
<꽁꽁 얼어라!>
하지만 발동은 무효로 돌아간다.
얼음마녀의 올라간 손은 다시 떨어졌다.
1초간 은신 상태로 접어드는 카지트의 궁극기.
아공간 암습으로 얼음마녀의 스킬을 캔슬시켰다.
곧바로 핑크 와드가 박히긴 했지만 늦었다.
내 공격이 들어가는 게 한 발 빨랐다.
제대로 된 방어 아이템 하나 없던 얼음마녀는 그대로 사라진다.
─더블 킬!
도마뱀 장군의 혼령을 포함해 대략 3코어다.
최후의 숨결, VF소드, 미개한 방망이.
막대한 공격력과 방어구 관통력은 자비가 없다.
'지금 카지트의 AD계수는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지.'
세 개의 스킬을 모두 합하면 과장없이 4.0AD 계수가 넘어간다.
여기에 패시브 평타까지 맞았으니 당연히 찍소리도 못한다.
그렇게 두 명의 적을 삭제시켰다.
하지만 적들도 놀고 있지 않는다.
키잉-!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적팀들은 상당히 필사적이다.
쓰렉귀가 그랩을 던져 나를 잡아 끌었다.
<세나찡 복수다!>
그 복수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쓰렉귀일 텐데 어쨌든.
적 원딜러 부시안이 거리를 주지 않고 총알을 연사한다.
여기에 탈리반 3세까지 깃창으로 돌진!
가용 가능한 모든 스킬들을 나에게만 퍼붓고 있다.
'그래봤자 이미 딜러 두 명이 죽은 상황이지만.'
이윽고 기다리던 아군의 지원이 도착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다름아닌 쇈.
한타가 열렸을 땐 이미 발동돼 있었다.
나의 진입과 발맞춰 보호막을 덧씌웠다.
등 뒤에서 튀어나온 쇈이 쓰렉귀와 탈리반을 무력화시킨다.
푸드득!
그리고 나는 날아오른다.
깜짝 놀란 부시안이 점멸로 도망갔지만 사지다.
고독이 부시안을 갉아먹는다.
─트리플 킬!
카지트를 상대로 어설프게 도망가면 이렇게 된다.
주위에 아군이 없으면 1.5배에 가까운 추가 데미지.
뭐, 침착했다 해도 어차피 죽었을 테니 의미는 없다.
그렇게 부시안을 마무리하고 돌아보니 딱 알맞게 양념이 쳐져 있다.
교육의 성과가 빛을 발한 모양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척척!
군대에서 말년 병장이 되면 대충 이런 느낌이 난다.
─쿼드라 킬!
펜타 킬!
마무리..!
Qookya AllMaster님은 전설적입니다..!
비공식 펜타 킬도 아니고 그냥 펜타 킬이다.
이번 시즌 상해 LPL의 첫 번째 펜타 킬.
2군 리그인 LSPL에서 AP마검사로 한 건 거두긴 했지만 아무래도 진짜는 이곳이다.
마지막이 될 예정인 세 번째 세트를 펜타 킬로 깔끔하게 유종의 미를 거뒀다.
'시작과 끝이 전부 펜타 킬이 된 셈인가.'
시작과 끝은 우리가 아자!
다녀온 군부대의 구호가 생각난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임팩트가 있으니 됐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적팀의 억제탑을 파괴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시간이 15분밖에 흐르지 않았다.
하도 정글을 터트려버린 탓에 체감 시간이 빠를 뿐이다.
하지만 굳이 귀환을 택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Qookya AllMaster님이 수풀에 지원을 요청!
게임이 이쯤 터지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행동 하나하나가 영혼이 나간 듯 얼이 빠져버린다.
역시나 기다린 보람은 헛되지 않았다.
후욱!
쇈의 도발이 더티 파밍을 하러 온 산다라를 향해 그어진다.
그 위로 날개짓 하며 날아오른다.
2단 점프로 순식간에 부시안의 앞에 착지했다.
─더블 킬!
패시브 평타와 레드 버프.
침뱉기의 둔화가 모두 중첩되자 도망갈 수 없다.
따라가서 한 번 더 콰직!
갈고리가 내려찍히자 부시안은 운명을 달리한다.
깔끔한 솔킬이었지만 하나 안타까운 점도 있다.
부시안을 마무리한 자리에 서리밭 길이 그어졌다.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한 얼음마녀가 나를 꽁꽁 얼린다.
<꽁꽁 얼어라!>
이번에는 캔슬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 궁극기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처 체크하지 못한 듯 핑크 와드를 박았다.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을 텐데 방금의 한타가 미약한 트라우마가 됐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수 차례의 교전으로 체력 손실이 심각한 상태다.
경우의 수 자체를 배제 하려는 듯 탈리반 마저 깃창을 그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어쩔 수가 없는 숭고한 희생이었다.
그 희생을 바탕으로 파워센도가 아름답게 그어진다.
아군 서포터 쏘냐가 이전 한타에서 활약하지 못한 울분을 토해낸다.
타라랑~♪
생존기도, 스펠도 모두 잃은 얼음마녀와 탈리반은 마무리된다.
이로써 적의 생존자는 쓰렉귀 하나 뿐이다.
그리고 이미 미드 라인을 통해 거대 미니언이 도착하고 있다.
LPL 우승을 향한 실크 로드가 열렸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쌍둥이 포탑을 깨고 넥서스를 향해 진격.
내가 없음에도 마지막까지 침착하다.
절대로 시간을 끄는 우를 범하지 않고 밀어붙인다.
가장 먼저 죽었던 산다라부터 차례대로 부활했지만 당연히 늦는다.
넥서스가 허물어지며 쿡야 베이더스의 우승이 확정지어졌다.
"와아아아아!"
"이겼어! 이겼다고!"
모니터의 화면에 떡하니 떠오르는 두 글자.
이전 세트와 달리 초조함 따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일말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승리다.
나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부둥켜 안고 아우성친다.
난리법석, 그만한 요란을 떨어도 될만한 순간이다.
기분 나쁘게시리 무릎 꿇고 내 허벅지를 끌어안는 차우차우도 봐줄 만하다.
'이르긴 하지만 조금 기뻐해도 되겠지.'
상해 지역 LPL의 우승.
달리 생각해 보자면 이제 겨우 지역별 예선을 통과한 셈이다.
지역들 중 수준이 높은 곳에 해당하는 상해기 때문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아직 멀은 것도 사실이다.
한 번 더 치러야 할, 절대 미끄러져서는 안될 중요한 대회가 남아있다.
그럼에도 오늘 만큼은 신나게 웃고 떠들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차우차우를 일으켜 세우고 한 번 크게 손을 마주쳤다.
"진정하고 슬슬 가야지?"
나를 제외한 팀원들의 시선이 항하는 장소.
그리고 내 엄지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무대.
우승팀으로서 당당히 무대에 설 시간이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두 시간 전, 수만 관중들의 야유를 받을 때와는 다른 입장이 됐다.
등등한 걸음으로 부스 밖을 나간다.
일반 경기장에 비하면 선수들의 공간이 협소하다 할 수 있는 상해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
안 그래도 거리가 얼마 되지 않은데 걸음 거리조차 날아갈 듯 가볍다.
단상 위까지 걸어가는 보폭은 거칠 것이 없다.
'역시 이러한 반응인가.'
그토록 응원하던 IC가 져버리고 야유를 퍼붓던 내가 캐리를 해버렸다.
관중들은 역시 중국 다운 무대 매너를 선보이고 있다.
아니, 뭐 중국답다고 하기엔 뭣하다.
작년 롤드컵에서 CLC가 TWA에 져버렸을 때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CLC의 팬들이 우르르 일어나 경기장 밖으로 퇴장했다.
그 비슷한 일이 이곳에서도 일어나는 중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수가 많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퇴장한 이들은 전체 관중의 대략 1/3.
처음 경기장에 들어왔을 때 확인했던 바에 의하면 관중 대부분이 IC의 광팬이었다.
비율을 따져보자면 결코 많은 수가 아니다.
팬들의 입장에선 혹독한 경기였음에도 남아있다.
그러한 변화가 일어난 이유는 짐작이 간다.
이윽고 지체없이 순서가 시작되었다.
"상해 LPL 대망의 결승전~! 그 우승팀.. 역대 상해 역사상 두 번째 입니다. 쿡야 베이더스가 영광스런 상해의 용으로 우뚝 섰습니다!"
캐스터 더우니 버빈이 속에 있지도 않을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의 진심이 어떻던 간에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면 됐다.
한 차례 입에 발린 듯한 낯간지러운 포장이 씌워졌다.
어차피 아무리 말해봐야 호응도 없을 텐데.
모두가,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다.
과아아아아아아-!
우승 선언이 떨어진 순간 경기장이 떠나갈 듯 요동친다.
그랬던 것도 아주 잠시.
함성에 파묻혔던 한 마디의 단어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확실히 윤곽을 띄기 전에 나의 손에 마이크가 잡혀졌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선수를 증명하는 것은 외모, 출신 등이 아니다. 정말로 알고 싶으면 그 선수의 경기를 봐라.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총 세 번의 경기로 저 자신을 증명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게 되면 바뀔 것이다.
여러분께 하나 마술을 걸겠다.
상당히 오글거리지만 프로게이머, 단순히 게임을 잘하는 것만이 왕도인 직업은 아니다.
살짝 폼 잡고자 그런 말을 내뱉었고 또 한 번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그런 거 알 바겠는가.
관중들의 호응을 이보다 더 이끌어낼 방법은 없었다.
이제 그들의 눈에 보이는 건 한국에서 온 프로게이머가 아니라 바로 나 올마스터다.
그리고 내가 건 마술은 고작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자리를 함께하는 관중, 시청자들은 바뀌게 될 것이다.
국적과 선입견이 타파되며 선수가 본모습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곳 상해에 나의 흔적을 깊이 새겨 놓았다.
..마스터!
올마스터!
불확실했던 윤곽은 나의 말이 끝나는 것을 계기로 굳어졌다.
나를 지칭하는 네 글자가 전 방위에서 울려 퍼진다.
어쩌면 적의에 가까운 감정을 품었을 관중들을 매료시켰다.
프로게이머로서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답답하기 그지없었던 중국 생활.
그 보상이 막혔던 댐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듯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더 이상 무슨 언변과 행동이 필요할까.
하고 싶은 말은 말았지만 더 할 말은 사라졌다.
차례는 다시 캐스터에게 넘어갔다.
"첫 번째 세트에서 미달리로, 두 번째 세트에서 헤일로! 마지막 세트에서 카지트로 펜타 킬을 보여주며 잊혀지지 않는 명경기를 만들어냈습니다. IC의 선수들도 멋진 경기력을 선보였지만 조금 더 임팩트가 있었던 쪽은 쿡야, 그리고 올마스터! 새로운 상해의 용으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제멋대로 떠드는 더우니 버빈을 뒤로 하고 나는 들고 있던 마이크를 건넸다.
캐리를 한 사람은 내가 맞다.
하지만 혼자서는 이 자리에 설 수 없었다.
나를 제외하고도 쿡야-베이더스 에는 다섯 명 더 선수들이 있다.
한 명, 한 명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결승전의 주인공이다.
함께 경기를 치른 IC의 선수들도 또한 포함되는 말이다.
"먼저 응원해주신 팬분들께 사과 말씀드리겠습니다. 절대 방심하지 않으려 했지만 세상에 절대는 없었습니다. 그 결과, 부끄러운 패배를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결코 후회하진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부딪혔고 결과에 승복합니다. 부족한 저희를 대신해서 올라가게 될 쿡야 베이더스와 절대 잊을 수가 경기력을 선보인 올마스터. 그들이라면 믿고 맡겨도 되리란 생각입니다."
고고하게 지켜오던 자리를 굴러온 돌에게 빼앗겼다.
그 분함이 묻어 나오더라도 이상치 않다.
그럼에도 떨리는 손으로 실수없이 할 말을 이어나간다.
IC가 어째서 강팀인지,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없었는지 알 것 같은 대목이다.
중국에선 정말 흔치 않게도 인성이 돼있는 팀과 선수들이다.
나쁜 중국인도 있지만 좋은 중국인도 많다.
구구절절 자세하게 항변했던 츠위의 이야기가 마음 속 깊이 와 닿는다.
직접 경험해본 중국은 나쁘지만은 않았다.
마이크를 내려놓은 IC의 주장 츠타이가 나에게 손을 건네온다.
확실하게 받아 쥐었다.
괜찮아!
괜찮아!
사방에서 여태까지와 다름 울림이 있다.
상해의 터줏대감 IC의 인망은 알아볼 수 있는 광경이다.
부끄럽다고 할 수 있는 3대0의 대패를 하였음에도 팬심은 꺾이지 않았다.
그런 IC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츠타이에게서 바톤을 이어받았다.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경기력을 선보였음에도 찝찝했을 수 있던 뒤끝.
몇몇 과격한 중국인들이 만들어낼 수 있던 소란이 사전에 잠재워졌다.
하나 좋은 추억을 만들어나간다.
중국에서의 첫 번째 목표였던 상해 LPL의 우승.
그리고 대표전에 대한 진출권을 당당히 틀어 잡았다.
상해에서 가장 들뜨게 된 밤은 천천히 무르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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