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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호랑이
혼돈! 파괴! 망가!
상해 LPL의 결승전은 가히 충격의 도가니였다.
도저히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경기가 무려 세 번 연속.
명실상부 중국 최고의 강팀 중 하나인 IC가 3대0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것만이었다면 이토록 화제가 많이, 꾸준히 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카지트 캐리력 미쳤다 진짜..
완전히 카정 특화 정글러야.
고독 데미지가 워낙 사기라서 1대1을 다 씹어 먹네.
심지어 리심이랑 발화든 이블퀸도 이기더라.
그렇게 1킬 먹고 적 정글 볼 때마다 죽이면 게임 터짐.
▷갈고리 진화하면 고독Q 두 방에 탱커고 딜러고 다 죽는다. 데미지 소름.
▷근데 반대로 카정 실패하면 인생 망하잖아ww
글쓴이-대놓고 무리만 안 하면 성공하지. 레드 먹고 패시브 평타 묻히면 둔화 장난아닌데.
▷뭐지? 웬 카지트 얘기를 하나 해서 봤는데 요즘 카지트 정글 감?
글쓴이-엉, 상해 LPL 결승 이후로 픽률 급증했잖아.
중국의 솔로랭크는 대이변을 맞이했다.
아니,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얼마 전 있었던 상해 LPL의 결승전이 미친 영향이었다.
고작 한 지역, 그것도 세계적으로는 인지도가 적다고 할 수 있는 중국 리그가 왜?
중국 팀치고는 많이 알려진 IC와 올마스터가 참전했기 때문이다.
상대적 약팀이라고 할 수 있는 쿡야를 이끌고 IC를 압살해버렸다.
아무리 올마스터가 날고 기는 선수라고 하지만 그게 가능이나 한 소리인가?
대체 무슨 마술을 부렸길래 궁금해서라도 찾아보기 마련이다.
인정이란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어마어마한 경기력.
그리고 사용한 챔피언들이 눈에 밟힐 수밖에 없었다.
◈미달리 기동성 살리는 플레이 오져버렸다..
한 다섯 번째 돌려봤을 때 깨달음.
왜 이렇게 자꾸 뛰어다니나 했는데 덫을 쿨마다 계속 깐다.
그래서 맵에 한 덫이 20개쯤 됨.
돌아다니다 보면 하나 밟을 수밖에 없지.
그리고 그거 밟으면 시야 들켜서 갱킹 안되고.
내가 미달리로 탑레 마스터까지 찍었다가 챔프에 한계를 느끼고 접었는데..
한계가 있었던 건 챔프가 아니라 나였구나.
▷미달리 그냥 성장해서 창 던지는 챔프 아님?
글쓴이-나도 그런 줄 알고 수비적으로 파밍만 했었는데 성향 바꿔보니 확 다름.
▷올마스터식 미달리 나도 꿀빠는 중kk
▷덫 깔러간 척 하고 창 날리는 것도 개꿀임!
수비적으로 파밍만 하다 3코어 왕귀를 노렸던 미달리.
어쩌다 창이라도 한 대 맞으면 딜러진이 반피씩 나간다는 사실은 유명했다.
때문에 스프링 시즌 당시만 해도 정말로 유행을 탔다.
하지만 챔피언이 안 쓰이게 된데는 다 사정이 있는 법.
본래 체력과 마나를 올려주던 무효화의 장막이 범용성 있게 바뀌었다.
무효화의 장막은 방어막을 생성해 적 스킬을 1회 무조건 방어한다.
이는 미달리의 포킹에 완전한 카운터가 되는 아이템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픽률이 급감했던 미달리를 올마스터가 되살렸다.
플레이 방식을 바꿔보니 전혀 다른 챔피언이 되더라?
기동성을 살려 공격적인 플레이로 게임의 주도권을 틀어잡는다.
미달리라는 챔피언이 가진 가능성을 극한으로 빠듯이 쥐어짜낸 결과다.
◈올마스터식 헤일도 템만 나오면 말도 안되게 세.
한타에서 그냥 평평평평 말뚝딜 쏟아부으니 다 녹아있음.
3코어까지 버티는 게 곤욕이긴 한데 나오기만 하면 딜 혼자한다 진짜.
원딜러 드럽게 못해도 노상관일 정도로.
▷템트리는 소름 돋는데 저게 효율이 나오나? 죽이지도 못하고 양념만 칠 거 같은데.
글쓴이-이게 진짜 안 해보면 모름. 평타가 광역딜이라서 상대 뭉쳐있기라도 하면 끔살이다.
▷근데 헤일은 이상하게 정이 안 가서..
▷응 노잼캐 안 해. 하루종일 RPG하다가 3코어 뽑고 한타 그게 뭔 재미임.
올마스터 두 번째 세트에서 선보였던 새로운 방식의 헤일.
쿠단의 소용돌이와 구인묘의 격분검이라는 기괴한 아이템을 갔다.
두 아이템 모두 솔로랭크에서조차 구입하는 이가 드문 희귀템이다.
북미의 모 유명 프로게이머에 의하면 해당 유저가 초보인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 만들어둔 함정 카드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 쿠단의 소용돌이가 헤일에겐 그렇게나 잘 맞을 수 없더라.
그리고 사실상 사장된 템인 구인묘의 격분검도 시너지가 좋았다.
프리딜 구도만 갖춰지면 혼자서 원딜러 세 배에 가까운 DPS를 쏟아낸다.
◈그래도 결국 가장 OP는 정글 카지트가 맞지.
이건 무조건 필밴이야.
적 카지트가 한 번 킬 먹으면 게임 끔찍해진다.
못난 아군 정글 백업 가다가 죽으면 얼마나 어이없는 줄 아냐.
생존기도 좋아서 잡는 것도 개힘들어.
그런데 아군이 잡으면 혼자 정글 돌자 처형 당하는 마술~
▷kkkk정글 카지트가 케바케 쩔긴 하지.
▷카지트 풀리면 게임이 로또가 돼버려. 그렇게 생각해보면 올마스터는 운빨 터진 걸지도?
▷선구자의 특권이지. 카정 필승이라는 거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잖아.
강팀 IC를 상대로 3연승.
그 비결은 챔피언의 덕이 크긴 했다.
아무리 올마스터라 한들 로드 오브 로드는 결국 팀게임이다.
개인이 혼자서 기적을 만들어 보기엔 한계가 있다.
단판 승부가 아닌 다전제라면 변수는 희박해진다.
올마스터는 이를 개인의 기량과 독특한 챔피언 활용 방식으로 극복했다.
미달리, 헤일, 카지트 세 챔피언으로 모두 강제 캐리를 선보였다.
하드 캐리가 아닌 강제 캐리.
팀게임에서도 개인의 두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한 번 경기를 본 이들이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강렬했던 올마스터의 플레이는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하나는 익히 화제가 되고 있는 솔로랭크의 개판 오분 전.
다른 하나는 그라는 존재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는지 가시적으로 알렸다는 사실이다.
◈올마스터 잘한다 잘하다 해도 그래봤자 거니 생각했는데.
아니 무슨 약팀도 아니고 IC를 양학하고 앉았네..
막판 카지트는 혼자서 다 죽이고 다녀.
정글 싸움 4대1 터는 거 진짜 소름 돋았다.
▷kkkkkk당하는 쪽 입장에선 흑역사 급이지. 양학 지려버렸다.
▷뭔 양학이야. 마지막 세트 말고는 운 나쁘게 역전 당한 건데.
글쓴이-응~ 운도 실력.
▷운이라기 보단 설계였지. 노렸던 그림 그대로 흘러갔잖아.
혼자서 무리하게 무언가 하려고 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플레이를 했다면 반드시 빈틈을 내주고 말았으리라.
결과적으로 게임을 졌을 뿐이지 IC는 중국에서 손 꼽히는 강팀이다.
막말로 선수 한 명 작정하고 말리는 건 일도 아니다.
때문에 올마스터는 오히려 안정적으로 게임을 이끌었다.
천천히 자신이 캐리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분명 주도권을 가진 건 IC일 텐데도 분기점을 지나가 게임이 비벼진다.
경기 시작 전 올마스터가 언급했던 마술은 어쩌면 이를 일컫는 걸지도 모른다.
.
.
.
* * *
상해에서 맞이했던 아침 중 가장 상쾌한 것 같은 느낌이다.
결승전을 승리로 마치고 뒤끝 찝찝하지 않게 마무리를 하고.
팀원들과 그리고 츠위와 기차를 탔다..?
<오호호, 마술사씨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여기 지금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기차 객실 맞아."
기차 안에 배정된 내 개인 객실.
나는 그 안에서 예은과 화상 통화를 나누고 있다.
인터넷 상태가 영 좋지 않은지 가끔씩 끊기지만 진행은 가능한 수준이다.
<마술사씨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키키킥..>
"…."
예은이 숨 죽인 채 웃음소리를 내며 나를 놀려댄다.
결승전 시작 전에 언급했던 한 마디.
살짝 폼 좀 잡을 겸, 그리고 정황상 필요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부분만 딱 꼬집어서 장난을 쳐댄다.
<혹시 그 츠위라는 애랑 단 둘이 탄 건 아니고?>
"설마, 설마. 당연히 팀원들 전부 있고 다 사전에 모르고 탄 거야."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다.
우승도 했는데 회식으로 어떤 걸 먹는 게 좋을까.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며 경기장을 나오던 도중 있었던 일이다.
평소 내가 타던 것보다 큰 리무진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타래서 탔는데 기차역까지 끌려와버렸지.'
눈치를 채기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게 기차역이 아니었다.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표를 끊는 등의 기계들이 눈에 띄이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큰 음식점인 줄만 알았다.
이곳 중국에서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지난 번 음식점 사건도 있었기 때문에 잠자코 들어갔다.
그런데 그 안에 기차가 한 대 놓여있을 줄이야.
안에서 회식도 겸한다고 하니 믿기지 않았는데 정말이었다.
"북경을 둘러보고 오는 3박 4일 여행 코스래. 내부는 조금 좁긴 하지만 나름대로 아늑하고 재밌어. 식사도 잘 나오고."
<마술사씨는 좋으시겠네~ 누군 1년만에 복학해서 머리 터질 거 같은데.. 중간고사 완전 죽쒔어.>
한국의 롤챔스 서머 시즌이 끝났던 게 8월 중순.
그리고 다음 윈터 시즌이 열리는 게 12월의 말.
아슬아슬 한 학기를 마칠 수 있는 기간이다.
지난 해에 2학기를 쉬었던 예은은 복학을 선택했고 현재 학업과 게임단의 일을 병행 중이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학년을 마쳐 놓는 게 여러모로 좋다나.
쉬운 일이 아님에도 어떻게 잘 해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정말.. 과에 게임 한다고 소문 싹 퍼져서 말 걸어오는 애들도 많고 짜증나..>
"혹시 집적대고 그런 애들 있어도 있어..?"
예은이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내 입장에서도 내심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장래가 창창하다고 할 수 있는 서울대의 법학과 생들.
아니, 예은의 외모라면 학생들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한가하게 기차여행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원래 이미지도 있어서 그런 쪽으로 딱히? 네 얘기 물어보는 애들 많더라. 팬이라고.>
"아.. 그래. 원래 이미지가 있었구나.."
어떤 이미지인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말해주지 않아도 대충 떠오르는 바가 한두세네 개가 아니다.
그런데 서울대 학생들도 게임을 하기는 하는구나.
사실 작년만 해도 공부하는 기계들인 줄 알았다.
아닌 사람도 있다는 사실은 누구를 만나서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응? 옛날부터 서울대 다닌다고 말은 했잖아.>
"너 같으면 접속하면 늘 있는 녀석이 서울대라고 하면 믿겠니.."
하기야 원래 학년 별로 꼭 한 명씩은 있었다.
맨날 같이 놀고, 맨날 같이 게임하고, 맨날 같이 사고 치는데 너는 왜 성적이 좋니?
그런 이해 못할 녀석들보다 몇 수는 위에 계신 예은이니 그러려니 한다.
"그래서 잘 지내고는 있고?"
<만족스럽진 않지만 성적도 나름 이번 학기 졸업할 정도는 되고.. 과에서도 조금은 녹아든 것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 문제가 있었다는 소린 아니지만.>
들어보니 과연 예은 같은 말이라 마음이 놓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은이니 잘 해내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에 하나 일이 생긴다면 숨기지 않고 같이 상의해서 풀어나가기로 했으니 그 또한 믿고 있다.
하지만 이 한 가지만큼은 걸리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혹시 술 먹고 깽판 치거나 고주망태 되거나 하진 않지?"
<뭐래, 살면서 그런 적 한 번도 없었거든? 그리고 나 술 쎄서 작정하고 마신 거 아니면 안 취해.>
그렇다면 내가 본 장면들은 대체 뭐가 될까.
구태여 묻기에는 전후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본인에게 물어본다고 이실직고 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예은이라면 별 일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심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믿고는 있는데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그리고 요즘 술 안 마신지 꽤 됐어. 앞으로도 아마 안 마실 것 같아.>
"양주 매니아가 웬일이래? 혼술 말고 밖에서 마시는 거 말하는 거지?"
놀랍게도 내가 중국에 간지 며칠 되지 않아 술을 끊었다고 한다.
정말로 입에도 대지 않고 금주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고는 하는데..
내가 아무리 예은을 믿어도 그건 좀 범위를 벗어난 듯싶다.
<진짜거든? 술 마시고 일어나면.. 영 기분이 안 좋아져서 끊게 됐어.>
"아.."
어째서인지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겪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깨어나고 주위를 둘러보면 없다.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는 수 차례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뭐.. 믿을게. 혹시 나랑도 안 마시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히히. 좋은 걸로 몇 병 쟁여두고 있으니 오면 풀게. 같이 마시자.>
히죽 웃으며 마시는 시늉을 하는 예은의 모습은 옛날 그대로다.
볼살이 살짝 빠진 것 같기도 한데 술을 끊은 영향일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가게 된다면 가장 먼저 예은과 질펀하게 마시고 싶다.
그를 위한 첫 번째 관문은 통과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번째 관문.
북경을 가게 된 이유는 향락한 여행 때문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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