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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호랑이
과연 대륙 다운 스케일일까.
상해에서 북경, 베이징까지 가는 길만 대략 20시간이 소요됐다.
사실 이 정도의 거리는 비행기를 타는 게 맞겠지만 여행길도 겸하는 거니 괜찮을 터다.
다만 베이징에 온 목적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우리 구단주 나으리가 왜 이리 선심을 써주셨을까.
평소에도 배포가 크다 보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복병이 숨어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북경에 도착하자마자 향하게 된 장소.
다름아닌 북경LPL이 벌어지고 있는 경기장이었다.
대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옆동네 결승전을 구경 온 셈이다.
"아마 경기장도 이곳이 될 거라고 해요. 미리 한 번 오는 것도 나쁘지 않죠?"
"나쁘지는 않네. 나쁜 것은 우리 구단주씨의 수완이지."
츠위의 물음에 빈정대듯 대답하자 못마땅한 듯 눈썹 끝을 내려온다.
의도야 어찌 됐든 이제 막 경기를 끝냈는데 하루 만에 일터에 다시 뛰어든 건 참 기분이 뭣하지 않은가.
당사자도 아닌데 저 자리에 서있는 것 같아서 싱숭생숭하다.
한 편으로는 시험 문제 다 풀고 엎드려 자는 듯한 기분이기도 해서 그럭저럭이다.
"사실 저도 내키지는 않았는데 스케줄상 어쩔 수 없었어요.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기차 여행 꽤 무리했다구요?"
"그냥 기분의 문제야. 네 선택은 옳았다고 생각해."
빈정거리긴 했지만 내심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성과를 냈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그러면서도 일에 대한 부분은 빼먹지 않는다.
어젯밤 분위기에 취해 넘어갔더라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일이다.
최소한 한 달 동안은 이곳에서 대회가 열릴 일은 없다.
현재 내가 앉아있는 이 장소는 지금껏 경기를 치렀던 어느 경기장과도 다른 스케일을 자랑했다.
"상해에 비해서도 엄청 큰데.. 베이징LPL은 원래 이곳에서 치러?"
"에이, 설마요. 이번이 처음이고 결승전만 빌린 거에요. 대표전부터는 쭉 이곳에서 치르게 되겠지만요."
아무리 세계 각지 돌아다녀 봤다고 자부하게 된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의 경기장으로도 쓰였던 속칭 새둥지.
수용 인원수만 10만 명에 가깝다.
이만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건축물은 전 세계적으로 따져도 많지가 않다.
2008년도 베이징 올림픽의 개회식 및 폐막식 장소로도 쓰였던 경기장이다.
이곳 베이징 국립 경기장에서 북경LPL의 결승전과 차후 있을 대표전이 열리게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그렇다 쳐도 다른 팀원들은 무대 경험이 적으니 한 번 둘러보지 않았다면 곤욕을 치렀을지 모른다.
"오오.. 나 초딩 때 여기서 올림픽 하는 거 봤는데."
"뭐, 초딩? 난 그래도 중딩은 됐다. 머리에 피도 안 말랐구만."
"한 살 차이 주제에 생색내기는."
나는 당시에 고딩이었다 이 놈들아.
뒷좌석에서 떠들고 있는 팀원들의 대화는 어쨌든.
올림픽 경기장으로 설계된 곳 답게 스케일이 대단하다.
마치 나뭇가지들이 얽힌 듯 새둥지처럼 지어진 외부 구조 눈에 띄지만 역시 중요한 것 내부다.
하늘에 구멍이 뻥~ 뚫려있다.
천장이 없는 탓에 개방감이 물씬 풍긴다.
진정 야외 무대라는 표현이 걸맞는 장소다.
'적어도 상해처럼 홈그라운드 느낌은 적으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 괜찮으려나.'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기엔 경기장이 심각하게 크긴 하다.
단순히 좌석에만 앉아도 최대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아직 개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중앙 무대에 빈 공간이 드문드문 보인다.
입석까지 생각한다면 10만 명은 가뿐하게 넘고 어쩌면 15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른다면 부담감도 평소의 배가 될 수밖에 없을 터다.
"그런데도 빈 좌석이 없을 지경이네. 베이징이 상해보다 사람이 많아?"
"딱히 그렇지는 않아요. 아마 오늘 경기 하는 팀이 가진 인지도가 크게 영향을 미쳤을 거에요."
대체 어느 정도의 팀이길래 이 정도의 관중 몰이를 할 수 있는 걸까.
머릿속에서 하나 짐작이 가는 바가 떠올랐다.
한국에서도 적지 않게 있었던 일들이다.
1세대 E-스포츠 갤럭시 크래프트 당시에는 상당히 흔했다.
선수들의 네임드가 관중 몰이에 미치는 영향이 정말 컸다.
유명 선수가 결승전에 진출하면 티켓 매진은 물론이고 사전 입석조차 힘든 경우가 많았다.
해운대 10만 관중의 신화라던지 여러가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로드 오브 로드는 좀 덜한 편일 텐데.
이윽고 무대 위로 오늘 경기를 치르게 될 선수들이 입장했다.
경기장 위쪽 팽팽한 강철실들에 매달려있는 직육면체 모양의 스크린을 통해서도 생생히 보인다.
얼굴까진 기억나지 않지만 유니폼을 보니 이제서야 기억이 나는 듯하다.
"우측 팀은 시현씨도 아시죠? IC와 함께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팀 중 하나인 THEY에요. 그리고 다른 한 팀은 베이징에서 상당히 유명한 게임단으로 음.. 죄송해요. 이 이상은 모르겠어요."
눈썹을 찌푸리고 고민해봤지만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지 츠위가 옆머리를 비비꼬았다.
뭐, 모른다고 타박하는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나머지 한 팀은 쩌리가 될 가능성이 무궁무진 하니까.
'딱히 내 기억에 남아있는 팀도 아니고. THEY라면 압도할 만한 기량이 차고 넘치겠지.'
경기장의 수용 인원이 많아진 탓에는 시설 덕분도 물론 있을 거다.
아니, E-스포츠가 올림픽 경기장으로 쓰였던 장소에서 치러지다니.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기 싫어 오게 된 사람들도 분명 적지 않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THEY라면 납득이 간다.
"순수한 인기만 따지면 IC보다는 역시 THEY에요. 솔직히 IC는 만년 2등이라는 이미지가 조금 있으니까 말이죠. 사실 오늘 경기 자체는 그렇게 접전이 예상되지 않는데 THEY를 응원하기 위해 많은 팬들이 왔다고 들었어요."
"그렇구나, 츠위가 아주 똑똑하네 똑똑해."
"치.. 놀리는 거면 그런 칭찬 싫어요."
북미의 전통적인 2대 강호가 CLC와 TSL이라면 중국은 THEY와 IC다.
둘 중에 하나를 꼽자면 다소 논란은 있겠지만 역시 THEY.
특히 해외에서는 THEY의 인지도와 인기가 압도적이다.
'헤이샤오와 클래식러브..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팀이니 말이야.'
탑솔러의 한국.
미드의 북미.
원딜러의 중국.
여기서 원딜러의 중국이란 이미지를 만들어버린 선수가 바로 헤이샤오다.
그 자존심 드센 트리플리프트조차 자신이 한 수 아래라고 인정했을 수준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피지컬은 피장파장 비슷한 급이지만 맵리딩에서 차이가 난다.
솔직히 트리플리프트는 맵리가 안돼서 잘리는 경우가 자주 나오는 편이다.
이를 서포터가 어느 정도 커버를 치긴 하지만 헤이샤오는 혼자서도 알아서 잘한다.
그리고 클래식러브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중국 최고의 정글러.
내가 알고 있던 미래에서 헤이샤오를 제외하면 중국 한국 내 인지도가 가장 높았던 중국 선수였다.
그런 둘이 현재 한 팀에 소속돼 있으니 THEY의 강함이 짐작될 만하다.
"그래서 THEY가 어느 정도 강팀인지 보여주고 싶어서 이런 자리까지 마련한 거야?"
"취지는 이전에 상해 경기장 갔을 때와 같아요. 한 번 둘러보는 편이 여러모로 좋겠고.. THEY에 대해서는 시현씨도 관심 있으실 것 같아서요."
츠위의 말은 다분 옳다.
대표전까지 올라오게 된다면 반박의 여지가 없는 우승 후보.
반드시 한 번은 넘어서야 할 적이니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다.
'전성기의 헤이샤오가 어느 정도인지 느긋하게 관람을 해볼까.'
이윽고 양 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스크린을 통해 THEY의 화면이 맞춰지자 10만 명에 가까운 관중들이 야단법석 경기장을 무너뜨릴 기세다.
상해에서도 IC의 팬들이 정말 많았지만 이곳 북경은 그 이상이다.
정말로 대부분의 관중들이 THEY의 팬이라 생각되어질 정도다.
이만한 인기를 만들어낸 팀의 경기력은 과연 어떠할지.
열 명의 선수들이 소환자의 전장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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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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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역대 최대 규모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중국 섬머 시즌의 LPL.
열두 지역의 조별 리그는 하나하나 끝나가고 있다.
가장 먼저 막을 내리게 된 지역은 아무래도 상해였다.
처음으로 개막식을 올렸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리고 그 다음이 된 지역은 북경, 베이징의 LPL.
이에 대한 이야기가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선 한창이었다.
◈역시 THEY야. 팬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지.
이번 시즌도 북경의 범은 확고하네.
어느 곳처럼 죽쑤는 일 없이 기복이 없어.
지난 시즌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만 안 일어나면 이번 우승은 THEY다.
▷www상해 돌려 까는 거니?
▷IC도 잘했어. 쿡야가 조금 말도 안되게 더 잘했을 뿐이지.
▷그러는 THEY는 스프링 시즌 때 대표전 본선도 못 가고 탈락하지 않았냐? 어딜 깝죽 대고 있어.
글쓴이-그건 로얄CN 개놈들이 수작 부려서 그렇고 본선만 가면 무조건 우승이었어.
▷데푸풋, 네 다음 행복회로~
명실상부 중국 최강의 팀이라 손 꼽히는 THEY는 어째서 3시즌의 롤드컵에 진출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세계적 강팀들이 한 번씩은 겪었던 메타 부적응에 하나 있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지난 스프링 시즌 때 불운이 겹쳤기 때문이다.
북경LPL을 별일 없이 우승을 하고 대표전에 진출했으나 조별 리그조차 뚫지 못하고 탈락.
만약 본선만 갔어도 롤드컵에 진출할 리그 포인트가 확실하게 모였을 상황이었다.
여기에 로얄CN이 우승까지 해버리자 THEY는 롤드컵 진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구설수에 오르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존재했다.
◈중경은 이번에도 로얄CN이 올라오려나?
제발 와서 THEY한테 개박살 났으면 좋겠다.
그 치졸한 색히들 밑바닥이 어서 드러나야 하는데.
아직도 스프링 시즌 일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음.
▷걔넨 평생 까여야 돼. 더러운 놈들.
▷꼴도 보기 싫은데 그냥 떨어지고 안 올라왔으면 좋겠다.
▷로얄CN은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안 들어.
어째서 THEY 같은 강팀이 조별 리그조차 뚫지 못했을까.
여느 팀들이 그러하듯 조별 리그는 보통 설렁설렁하게 치른다.
본선 무대에서의 전력 노출을 피하기 위함이다.
당시 THEY가 솔직히 조금 아슬아슬 하긴 했다.
마지막으로 치러질 경기의 승패에 따라 결과가 정해지게 됐다.
같은 조에 속해있던 로얄CN이 이기면 본선 진출.
반대로 지게 되면 본선조차 가보지 못하고 탈락.
하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별 걱정을 하진 않았다.
로얄CN은 새로운 미드라이너를 받아들이며 급 물이 오른 상태였다.
상대하는 팀은 썩 강력한 팀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로얄CN이 연달아 2패를 내줬다.
그 탓에 THEY는 근소한 차이로 승점을 밀리게 되었고 본선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렇게 약팀 상대로 깨진 팀이 본선 가서 우승www
처음부터 태클을 걸었어야 했는데 설마 우승할지 누가 알았겠냐.
원래 그냥저냥한 팀이었으니 실수한 줄만 알았지.
로얄CN 놈들은 얼굴에 아주 철판을 깔았어.
▷지들 딴에는 그렇게 해서라도 우승하면 팬들이 좋아해 줄줄 알았는 갑지.
▷나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외국 선수 안 쓴단 팀이 영입이나 하고 자빠졌고.
▷미드 원래 소국인이었잖아. 그냥 존재 자체가 짜증나는 팀이야.
최근에는 조금 덜해지고 있다고 하나 얼마 전만 해도 대놓고였다.
해외에서 온 프로게이머들을 차별하는 분위기.
원래부터 그렇기도 했거니와 스프링 시즌 때의 사건 영향이 조금 있었다.
THEY와 IC를 둘 다 떨어뜨리고 롤드컵의 진출을 확정지었던 그 사건 말이다.
원래 미운 놈은 하는 짓마다 사사건건 마음에 안 들기 마련이다.
감히 우리 THEY와 IC의 롤드컵 진출에 물을 먹이다니.
쭉 살펴 보니 하나 깔거리가 있더라.
미드라이너인 ChadoRE가 과거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사실 그가 잘못한 것은 딱히 없었다.
상황이 안 좋게 맞물렸을 뿐이다.
한 마디로 세트로 까이게 됐다.
이 탓에 해외 선수들에 대한 편견이 한층 두터워진 게 사실이다.
본래부터 중국 자체가 외국인에 대한 배척이 강하니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니다.
◈근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로얄CN이 잘하긴 잘해.
미드라이너 영입도 성공적이었고 원딜러는 원래부터 잘했고.
탑솔러도 네네톤만 들면 미쳐 날뛰고..
팀의 전체적인 기량이 물 올랐다고 해야 하나?
쨌든 실력 하나는 깔거리가 없어.
▷그렇게 잘하는 선수들이 스프링 시즌 조별 리그에선 대체 왜 그랬데?
▷그날만 유독 컨디션이 나빴는 갑지www 그날만 유독!
▷뭐, 잘하긴 함. 잘하니까 우승까지 했겠지. 롤드컵도 준결승까지 갔고.
악평이 굉장히 짙은 팀이나 실력 하나는 뛰어나다.
그 실력이 인기로 연결되지 않으니 아직은 빛 좋은 개살구.
하지만 쭈욱 기량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면 혹시 모른다.
로얄CN 그놈들 뽀록으로 한 번 우승한 거 아니냐?
굴린 돌이 박힌 돌 빼냈다는 그런 사정도 적지 않았다.
차근차근 실력을 증명해나간다면 고정 팬층도 생길 것이다.
로얄CN이 소속된 중경에서는 이미 이변이 싹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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