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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호랑이
현재 로드 오브 로드는 선입견이 많이 짙다.
게임으로서 연구가 깊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물론 그 탓도 있지만 애초에 하려고 하질 않는다.
좋은 챔피언들 놔두고 왜 굳이 비주류 챔피언을 하겠는가?
사실 이는 겁나게 옳은 말이다.
특히 자신의 티어가 낮다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로서는 전략의 폭을 넓히는 일이 더없이 중요하다.
몇몇 개의 챔피언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벅찬 선수들은 그럴 짬이 안 나겠지만 나는 다르다.
상황에 맞춰 가장 적절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다.
이번 게임에서 내가 내놓은 답은 다름아닌 뽀로로였다.
그것도 리워크가 되기 이전의 뽀로로다.
'어처구니를 넘어 눈을 의심할 지경이겠지.'
전 세계 모든 대회에서 공식전 전적 0전 0승 0패.
뽀로로는 대회에서 단 한 번도 픽이 되지 못한 비운의 챔피언이다.
스킬 하나하나는 분명 사기 같으나 직접 해보면 영 아니올시다.
귤선장이랑 비슷한 과라고 보면 된다.
─미니언들이 생성되었습니다.
미니언을 따라 라인에 올라가니 상대가 라인 스왑을 걸었다.
보기 드문 챔피언임에도 상대법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확실히 뽀로로는 대회에선 사용하기에 껄끄러운 점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걸리는 부분이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라인전이 조금 약하고 상성을 탄다.
다른 하나는 라인 스왑에 대처할 수 있는 픽이 아니다.
'그런데 이즈레알을 해줘버리면 둘 다 해결이 되는 셈이니까.'
상대의 봇듀오는 이즈레알과 인어다.
이즈레알의 약한 라인전을 넘기기 위해 라인 스왑을 걸어왔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택이며 그 결과, 내 뽀로로는 디나이를 당할 수밖에 없다.
두 챔피언 모두 지극히 견제에 특화돼 있다.
'하지만 킬 결정력이 부족해.'
세 번의 평타를 강화시키고, 힐과 딜을 동시에 하는 인어.
그리고 포킹 하나에는 일가견이 있는 이즈레알.
저 둘은 흔히 말하는 짤짤이 조합으로 악명이 높다.
상대의 체력을 지속적으로 깎아낸다.
자신들은 힐을 사용해 체력을 유지한다.
조금씩 스노우볼을 굴린다.
상당히 잘 맞는 조합임은 틀림없다.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고질적인 단점이 있지만.
철써덕~!
인어가 뿌린 물줄기가 뽀로로의 뺨따구를 찰싹 때린다.
넘실거리는 물결은 인어가 라인전에서 강할 수밖에 없는 근원이다.
상대 체력을 깎고 자기 체력은 채우니 당연하다 마다인가.
"형, 탑 버틸만 해요?"
"됐으니까 봇 다이브나 성공 시켜."
확실히 짜증나지만 그 뿐이다.
체력을 깎아낼 뿐 그 이상은 하지 못한다.
짤짤이 챔피언은 킬 결정력이 부족하다.
이는 원딜러와의 호흡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뽀로로를 상대로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투욱-!
아군 정글러 마파두부의 두두가 뱉은 얼음덩이가 날아갔다.
노리는 대상은 봇 포탑에 짱박혀 있는 상대 탑솔러.
탈리반 3세는 바로 깃창을 사용해 내빼려 했지만 막혔다.
쓰렉귀의 점멸 사슬 채찍에 의해 정확히 끊어졌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굴리고 굴린 연습이 성과가 있었을까.
다소의 스펠 손실은 있었지만 기어코 따냈다.
성공했기에 오히려 방심할 수 없다.
이제는 아군의 탑, 바로 내 차례다.
파아악!
적 정글러 바위가 다이브를 시도해왔다.
별안간 점멸로 벽을 넘어 한순간에 돌격.
바위의 Q스킬, 돌주먹은 풀차징시 막대한 데미지를 자랑한다.
글자 그대로 바위 같은 주먹이 틀어박힌다.
이어서 인어의 물방울까지 연계돼 온다.
이를 점멸로 피해내긴 했지만 점사가 들어왔다.
강려크한 바위의 3타와 이즈레알의 마법 화살.
어지간한 챔피언은 반항도 못하고 그대로 순살 치킨이다.
'뽀로로를 제외하고.'
죽지 않는다.
죽을 수가 없다.
뽀로로의 패시브가 진가를 발휘한다.
현재 체력의 10%가 넘어가는 피해는 반절로 줄인다.
깎이는 듯 싶던 체력이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춰 선다.
포션을 빨은 회복력과 반절로 줄어들은 데미지가 서로 상쇄된다.
결정타를 박아 넣는다.
쿠웅!
나를 열심히 때리던 바위가 거꾸로 고꾸라졌다.
점멸 이후 E스킬 과감한 돌격으로 포탑을 향해 밀어낸 결과다.
그 효과는 추가 마법 피해와 더불어 1.5초 간의 스턴.
배인과 비슷한 벽꿍이라는 판정을 가졌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이미 점멸이 빠졌던 바위는 벽꿍을 당함으로서 죽은 목숨이다.
포탑에게 한없이 얻어 맞으며 수명을 다했다.
적들은 어떻게 나라도 따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인어는 탈력까지 걸었고 이즈레알은 앞점멸 했다.
마지막 한 방을 우겨 넣기 위한 투자다.
올곧게 뻗어나간 마법 화살이 나를 향해 그대로 적중한다.
"어... 사네요?"
"저걸 뽀로로 패시브로 살아버리네."
"나 같았으면 키보드 집어 던졌다."
적의 한 방 공격이 강력할수록 진가를 발휘한다.
바위도, 이즈레알도 분명 스킬을 적중시켰다.
하지만 그 데미지가 반절에 가깝게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
'뽀로로 상대로 다이브 할 조합이 아니었어.'
적 서포터 인어는 라인전 짤짤이가 강하다.
대신 킬 결정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다.
그런 주제에 이즈레알을 지키기 위해 탈력까지 들었다.
뽀로로의 패시브를 무시하고 데미지를 가할 수 있는 스펠.
발화가 없다면 뽀로로는 정말 생각 이상의 이상으로 안 죽는다.
그렇게 설계된 챔피언이고 그렇기에 강할 수 있는 챔피언이다.
상대의 조합에 따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뽀로로는 분명 안 좋은 챔피언이지만 무대에 따라 가능하다.
이번 판에서 뽀로로가 가지는 가치는 절대적이다.
찰칵!
구입하는 아이템은 욕망의 칼.
치명타를 10% 늘려주는 속칭 돈템이다.
원딜러로도 자주 갔지만 파밍하기에는 최적화된 아이템이다.
'뽀로로에게 정말 잘 맞아.'
뽀로로는 장인들에 의해 두 방향으로 연구되었다.
하나는 일반적인 템트리인 삼종신기, 영락한 기사의 검.
잭트나 발렐리아와 비슷한 형식으로 플레이한다.
이는 분명 괜찮은 템트리지만 부족하다.
임팩트가, 그리고 뽀로로의 가능성을 전부 활용해내기 말이다.
앞선 두 챔피언과 뽀로로는 분명하게 다른 점이 있다.
'치명타의 효율성이 말도 안되지.'
때문에 룬도 일부러 치명타 룬을 들었다.
굉장히 희소하지만 이미 증명된 바다.
장인들이 수백 판씩 연구해본 결과 치명타 세팅이 의외로 괜찮더라.
이로 인해 생기는 두 가지 단점.
공격력이 부족해지고, 라인전을 버티기 힘들어진다.
이를 W스킬, 굳건한 의지로 극복한다.
공격력과 방어력, 그리고 이동 속도까지 상승시켜 주는 효과를 가졌다.
이 덕분에 다이브를 수월하게 버틸 수 있었다.
'장인들이 정말 열심히 시간을 투자한 성과야.'
그들의 노력을 내가 조금 빌려 쓰려고 한다.
뽀로로가 대회에도 먹힐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 희생양으로 더없이 적절한 상대이며 한 판이다.
.
.
.
* * *
대회 무대에서 뽀로로를 꺼내다니?
아무리 올마스터가 가지각색의 챔피언 폭을 자랑한다고 하나 이건 아니다.
도를 넘어도 이건 한참을 넘었다.
중계진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의견만이 쏟아져 나왔다.
<그 어떤 대회에서도 뽀로로가 픽된 적은 없었습니다. 오늘이 바로 세계 최초 대회픽으로 뽀로로가 기용된 순간입니다.>
짐짓 흥분을 가라앉힌 더우니 버빈이 말을 늘여 놓았다.
올마스터가 픽해버린 뽀로로.
흔치 않다는 정도가 다른 챔피언들과 격을 달리한다.
제아무리 비주류 챔피언이라 해도 최소한 몇 번은 대회 경기에 나온 이력이 있다.
하지만 이 뽀로로란 챔피언은 2013년 11월까지 경기에 나온 적이 없다.
공식 출전의 전적이 승리고 패배고 간에 단 한 번도 없었다.
훠궈로를 보며 히죽 웃은 더우니 버빈이 말을 이어나갔다.
<솔로랭크에서도 안 나오는 챔피언을 대회에서..? 답이 없는 선택지, 도저히 불가능, 무리..! 그렇게 말씀하셨죠?>
<…다이브 실패 이후 경기가 조금 산으로 가는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판을 했던 훠궈로의 입장에서도 당연히 할 말이 있었다.
만에 하나, 알고 보니 다른 라인으로 좋더라.
상해LPL 결승전에서 IC를 상대로 보여줬듯 카지트 같은 경우면 또 모른다.
하지만 올마스터는 탑으로 픽했고, 탑으로 플레이하고 있다.
탑 뽀로로는 솔랭 픽률이 소수점 아래 자리를 기록하는 비주류 챔피언이다.
확실하게 안되는 픽이라 판명이 나버렸다고 여겼다.
<상대의 다이브를 역이용! 뽀로로의 픽이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되리라 예상을 하고 있었죠.>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없으신 거 같은데..>
세 명의 중계진 중 유일하게 뽀로로의 픽이 전략적 판단이다.
그렇게 긍정한 사람이 더우니 버빈이었다.
사실 그로서도 무언가 생각하는 바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비슷한 상황을 수차례나 겪어봤다.
당연히 안돼야 하는 픽으로 기적을 일으킨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눈 앞에서 일어나니 안 믿을 수가 없다.
희한하게도 올마스터의 손에 들리면 뭐든 좋아 보인다.
<그래도 이렇게 안정적으로 파밍 구도가 이루어지면 완바가 나쁠 게 없어요. 마나바라기가 완성된 이즈레알의 한타 캐리력은 보증 수표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미 마나소드가 나왔고 얼음 장갑까지 나온다면 이즈레알을 막을 수가 없죠!>
예상을 벗어난 뽀로로의 활약 때문에 경기장의 시선이 치우쳐졌다.
한 번 분위기 전환을 하기 위함일까.
캐스터인 카오야가 요란스럽게 이즈레알의 성장을 주목시켰다.
그리고 이는 이번 경기의 주요 포인트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원딜러인 블랙 홀스가 무난하게 성장을 한다면?
아니, 많이도 필요없다.
정확히 20분 내외로 마나바라기만 띄우면 한타각이 야무지다.
<하지만 뽀로로가 성장한다면 이즈레알을 충분히 마크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데요?>
<예, 좋은 지적해주셨습니다. 뽀로로의 궁극기는 원딜러를 포커싱 하는데 효율적입니다. 만약 일반적인 원딜러였다면 힘들지도 몰랐을 겁니다!>
더우니 버빈의 반박에 훠궈로가 고개를 내저었다.
중계진들 사이의 의견이 완벽하게 갈리고 말았다.
<모르셨어도 이상하진 않습니다. 완바 게임단은 원딜러인 블랙 홀스를 엄청나게 밀어주니까요!>
<그거야 저도 조사를 했으니 모르진 않습니다만.. 전형적인 원딜 중심의 팀 아닙니까?>
<원딜러를 밀어주는 속칭 진시황 메타를 제대로 보여주는 팀이죠. 보통 이런 팀들의 경우 극후반을 지향하지만 완바 게임단은 다릅니다.>
로드 오브 로드에 존재하는 다섯 포지션들 중 원딜러의 후반 캐리력은 으뜸이다.
미드라이너조차 원딜러에 비하면 한 수, 아니 두 수 이상 아래라고 볼 수 있다.
치명타의 딜 기대치가 폭발하기 시작하면 정말 혼자서 적 다섯 명을 잡아낼 딜이 나온다.
때문에 원딜 중심의 조합은 그 치명타 아이템을 완성시키는 후반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즈레알은 치명타 템을 안 가는 추세죠. 파랑이즈라면 말할 것도 없어요. 독특하게도 완바 게임단이 가장 강력할 타이밍은 중반 한타입니다!>
블랙 홀스의 이즈레알에게 모든 것을 집중시킨다.
레드는 물론 블루 버프까지 그가 독식한다.
타 원딜러와 달리 이즈레알은 두 버프 모두 효율이 좋다.
쌍버프를 들고 있는 중반 타이밍의 이즈레알.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이즈레알을 잘한다고 알려진 블랙 홀스.
후반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막강한 캐리력을 발휘한다.
이른바 실전형 원딜 캐리 조합이라며 광저우에서는 이미 유명세를 떨쳤다.
<쿡야가 초반에 2킬을 가져가며 좋은 스타트를 끊기는 했으나 이후의 스노우볼로 이어지지 못했거든요? 글로벌 골드의 격차는 사실상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버빈 해설위원이 언급한 뽀로로가 대인 포커싱이 좋다고는 하나 이즈레알입니다. 그것도 쿨타임 감소가 최대치에 방어력까지 높은 파랑이즈입니다. 이건 블랙 홀스가 카이팅 실수라도 하지 않는 한 못 잡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럴 일은 없는 선수라 생각하지만요.>
초반 라인 스왑 구도에서 살짝 흔들릴 뻔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어진 경기의 흐름은 무난하다.
서로가 아이템을 갖추고 레벨링을 한다.
무리하지 않고 한타 페이즈로 넘어가는 중이다.
이렇게 되면 완바 게임단은 나쁠 게 없다.
아니, 확실하게 이즈레알의 캐리력을 폭발시킬 수 있다.
더우니 버빈을 제외한 캐스터와 중계진의 예상은 일치했다.
과연 어느 쪽의 말이 맞을 것인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용한타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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