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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호랑이
샤라라락-!
반달 모양의 거대한 금빛 화살.
일직선으로 쭉 뻗어나가 헤이클린를 그어버렸다.
마치 단두대에 의해 썩둑! 썰리는 것만 같은 광경이다.
그 금빛 칼날이 닿음과 동시에 번쩍인다.
블랙 홀스의 이즈레알이 앞비전을 해 헤이클린의 앞에 섰다.
놀라울 정도로 강력해진 순간 폭딜.
2코어를 깔끔하게 완성된 파랑이즈의 위엄이었다.
퀴리릭-!
헤이클린은 투망과 함께 대탄환을 쏘아내며 피신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박힌 딜링이 어디 간 건 아니다.
궁극기를 포함한 이즈레알의 풀콤보에 2/3이상 체력이 날아갔다.
위험천만해진 원딜러를 대신해 쓰렉귀가 채찍을 쓸었다.
투망에 의해 느려진 이즈레알은 꼼짝없이 맞을 수밖에 없다.
연이어 들어간 사신의 선고는 결정타에 가까워야 했으나.
피슝!
피슝!
둔화된 상태로 아주 자연스럽게 피해버렸다.
이즈레알이 놀라운 카이팅을 보여주며 화살을 쏟아 붓는다.
선고에 실패한 쓰렉귀는 모든 것을 내팽겨 치고 도망갔다.
"쓰렉귀 점멸이랑 탈력 빠졌어!"
"궁극기도 한타 전에 안 돌아올 걸? 포탑 밀고 귀환해서 용 모이면 완벽해."
"역시 주장! 입롤 같은 카이팅이었어요!"
블랙 홀스는 히죽 웃으며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있어 이 정도의 무빙이야 당연한 일.
라인전을 해본 결과 쓰렉귀의 성향이 감에 잡혔다.
'보나마나 위쪽으로 던질 줄 알았어.'
유저 별로 논타겟 스킬을 던질 때 성향이 묻어나간다.
실제로 천상계 유저들끼리는 이러한 신경 싸움이 치열하다.
상대의 성향을 파악하고, 혹은 역이용하기까지 한다.
흔히 말하는 수싸움의 한 갈래다.
이런 수싸움에 있어 블랙 홀스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보다 못하는 상대를 찍어 누를 때는 더더욱.
작년 롤드컵에서 거눙과의 라인전에서도 톡톡히 이득을 챙겨나갔다.
한타에서 나버린 압도적인 화력 차이는 이러한 소소한 이득에서 기인했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상대의 주요 스펠을 빼고 체력까지 깎아놨다.
블랙 홀스는 서포터와 함께 포탑을 철거시켰다.
이미 툭툭 건드려 반쯤 깎아 놓은 1차 포탑은 쉽게 허물어졌다.
"레드 드시고 바로 블루 오시면 리쉬해놓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레드를 리쉬해 놔."
얼핏 의문이 드는 오더임에도 팀원들은 묵묵히 따랐다.
따르는 것만이 완바 게임단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안하무인 블랙 홀스에게 거역했다간 즉각 잘려도 이상하지 않다.
보다 못한 감독이 블랙 홀스를 훈계했다가 좋지 않은 꼴을 보게 됐다.
그만큼 게임단 운영이 막장이란 거기도 하지만 대우도 좋다.
구단주가 어지간히 돈이 많은지 타 게임단들보다 최소 반 배 이상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
샤라라락-!
늑대와 블루를 먹은 이즈레알이 궁극기를 쏘아냈다.
마법 화살의 효과로 인해 궁쿨이 빠르게 돌아왔다.
그 궁극기는 레드 지역으로 뻗어져 나가 노룩패스를 달성했다.
"이야~ 역시 게임 보는 눈이 다르십니다."
"용 합류가 배는 빨라졌어요!"
글로벌 궁극기인 정조준 사격이 한 입 리쉬가 된 레드를 얌얌.
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원딜러의 합류가 한층 빨라진 셈이다.
자연스럽게 용 한타의 기초 토대를 다진다.
시야 싸움에 있어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피슝!
얼음 장판이 묻은 마법 화살이 날아간다.
단 한 방 맞은 카서트의 체력이 눈에 띄게 뜯겨나갔다.
레드 버프와 마나바라기가 더해질 때 이만한 위력이 나온다.
강력한 포킹과 점멸에 준하는 생존기.
중반 타이밍의 이즈레알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 쿨타임 감소까지 최대치로 맞춰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냥 쳐. 우리 인어 있잖아."
"알겠습니다. 애들아 치자."
"오면 제가 파도로 역이니시 걸게요!"
그렇게 용 쪽 시야를 장악해 놓고 바로 버스트에 들어간다.
시간을 질질 끄는 일반적인 원딜 캐리형 조합과는 사뭇 다르다.
오직 완바 게임단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운영 방식.
이즈레알이 힘을 가지는 중후반 타이밍에 스노우볼을 굴리기 위함이다.
역으로 이니시를 먼저 거는 경우 또한 흔하다.
바위나 탈리반 3세 등 강력한 이니시에이터를 가져간 이유가 바로 그 때문.
난전이 될수록 이즈레알의 능력은 더욱 더 빛이 난다.
키잉-!
용의 체력이 절반 가량 깎이자 시작한다.
쓰렉귀가 용을 치던 바위를 잡아 끌었다.
동시에 나머지 적들이 위에서 덮쳐왔다.
<해일이당-!>
이를 인어의 궁극기, 파도의 습격이 받아 넘긴다.
역이니시에 있어 조아라에 준하는 챔피언이 바로 인어.
혼자 적진에 쳐들어온 꼴이 돼버린 쓰렉귀만 덜렁~ 남게 되었다.
두둥실~
결국 물방울을 맞은 후 얌전히 골로 가버린다.
점멸도, 탈력도 궁극기도 빠진 쓰렉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단 하나를 빼놓고 말이다.
쓰렉귀가 남긴 랜턴을 타고 한 명의 적이 딸려왔다.
"뽀로로! 뽀로로 막아!"
"알아서 살 테니 니들은 할 거 해."
블랙 홀스의 오더에 팀원들은 칼같이 따랐다.
탈리반 3세는 바위와 함께 앞라인을 맡았다.
코리아나는 중간에서 적절하게 적을 견제한다.
피슝!
마지막으로 인어는 이즈레알과 함께 뽀로로를 막아낸다.
한 명 자른 데다 역이니시까지 완벽히 걸었다.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완벽한 구도의 한타가 개시됐다.
'뽀로로는.. 침착하게 궁극기 시간만 끌면 돼.'
블랙 홀스는 뽀로로의 상대법을 알고 있었다.
만나는 일이 정말 흔치는 않지만 기억에는 남아있다.
솔로랭크를 하다 보면 겪기 싫어도 겪게 된다.
뽀로로가 궁극기를 사용하면 때려도 달지 않는다.
저 무작정 따라오는 뽀로로를 상대해선 결코 안된다.
5초를 약간 상회하는 시간이었던가.
그쯤 시간을 끌면 알아서 궁극기가 꺼진다.
궁극기가 꺼진 이후부터 천천히 카이팅 하면 끝나는 일.
처음 다이브 때는 아이템이 갖춰지지 않았던 탓에 약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20분 타이밍의 2코어 쌍버프 이즈레알을 혼자 물 수 있는 브루저는 없다.
피슝!
이변을 느낀 것을 첫 마법 화살 맞혔을 때였다.
분명히 얼음 장판은 깔렸으나 불타고 있지 않다.
데미지는 그렇다 치고 CC기까지 먹히지 않다니?
뽀로로 궁극기의 정확한 효과가 무엇인지 모호했다.
하지만 아무러면 어떻겠는가.
상대가 자신에게 도달하는 시간이 조금 빨라졌을 뿐이다.
그래봤자 이즈레알은 비전 점프라는 우월한 생존기가 있다.
게다가 스펠도 두 개 다 살아있어 만에 하라는 건 없어야 했다.
"뭐야, 이게..?"
블랙 홀스가 얼이 빠진 목소리로 자신도 모르게 주절거렸다.
적당히 치다가 비전 점프로 벽을 넘을 생각이었다.
만약 점멸로 따라오면 똑같이 되넘으면 그만이다
.
그렇게 시간을 끌면 뽀로로의 궁극기가 꺼진다.
이후로는 일방적인 카이팅이 시작된다.
분명 그래야만 했는데 상황이 요상하게 흘러갔다.
쿠웅!
벽에 박히고 스턴에 걸렸다.
뽀로로의 돌진은 배인의 벽꿍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블랙 홀스라고 이를 모를 리 없었고 당연히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전 점프를 사용했음에도 벽에 박혀버렸다.
늦게 누른 게 아니라 사용했고, 쿨이 돌아가고 있는데 다시 끌려와 버렸다.
귀신에라도 홀린 듯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자신을 향해 뽀로로가 망치를 내려 찍었다.
구륵!
보다 못한 완바의 미드라이너 코리아나가 구슬의 방향을 돌렸다.
실드는 쿨타임이지만 구슬은 굴릴 수 있다.
굴려서 공기를 잡아 뜯었다.
호롱!
당연하게도 공기팡으로 끝난다.
뽀로로의 궁극기가 유지되는 이상 그 어떤 데미지도, CC기도 무위로 돌아간다.
어떻게 가까스로 살아난 블랙 홀스는 점멸로 벽을 넘었지만.
─적에게 당했습니다!
하늘에서 종말곡이 떨어지며 마무리되었다.
주력 딜러인 이즈레알의 갑작스런 사망.
앞라인에서 부대끼던 바위와 탈리반 3세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만다.
─적 더블 킬!
바위와 탈리반 3세가 죽고 용까지 나갔다.
코리아나는 살아 돌아갔지만 점멸을 써야만 했다.
그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만든 장본인은 되려 큰소리쳤다.
"뭐야 이 미친 판정은.. 나야 그렇다 치고 미드 너는 멍청이야? 앞라인에 궁극기만 잘 썼어도 반반은 갔잖아?"
"그게 저 반반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
블랙 홀스가 눈을 부릅뜨자 코리아나를 플레이 했던 미드는 말을 끊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만 완바 게임단 내에서는 당연한 광경이었다.
아무도 찍소리 못하고 가만히 제 할 일을 해야만 했다.
멋쩍은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크흠! 다음 한타부터는 뽀로로 궁 걸린 사람이 알아서 한 번 CC기 박아. 거기서 내가 조금 더 버티면 궁 끝나고 뽀로로 아무것도 못하니까.'
"아, 알겠습니다. 다음 번에는 실수 안 하도록 해볼게요."
"그렇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뽀로로는 궁극기로 대상을 하나 지정하고 그 대상 이외의 적에게 무적이 된다.
이전 한타에서 대상이 되었던 챔피언은 탈리반 3세.
하지만 블랙 홀스의 오더대로 돌진했기에 뽀로로를 마크할 수는 없었다.
드러워도 완바 게임단에서 살아남으려면 사과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런데.. 만약 주장에게 궁을 걸면 어떻게 하죠?"
팀의 서포터이자 그나마 블랙 홀스와 가까운 치완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즈레알에게 걸어버리면 나머지는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한다.
알아서 카이팅해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블랙 홀스는 또 자신들에게 화풀이를 할 게 분명하다.
때문에 미리미리 답을 들어 놓기 위함이었다.
그런다 한들 남탓을 안 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거야.... 내가 금은 장식 머리띠를 구입하면 해결 될 일이지."
"아하! 다들 주장 말 들었지? 금은 나올 때까지만 한타 걸리면 안된다?"
치완쿠 덕분에 팀원들은 한숨 돌리게 됐다.
그들에게 있어선 당장 한두 판 이기고 지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저 아니꼬운 블랙 홀스에게 찍히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라인전에서 한 번, 한타에서 또 한 번.
완바 게임단은 크게 말리게 되었다.
하지만 블랙 홀스가 건재한 이상 게임은 뒤집어볼 여지가 있다.
거친 입과 더러운 성격에 비례해 실력 또한 뛰어난 남자다.
나머지 팀원들은 그저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됐다.
.
.
.
* * *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용한타에서의 승리.
내가 이즈레알을 한 번에 끊어버린 덕에 쉽게 승기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승과는 거리가 멀다.
쓰렉귀가 죽고 시작했고, 카서트 또한 바위와 탈리반 3세에게 걸려 무사치 못했다.
'그래도 오브젝트를 두 개나 챙겼으니 글로벌 골드로는 한참은 이득이야.'
용과 미드 1차 포탑은 아군의 것이 되었다.
상대팀으로서는 다소, 아니 많이 어처구니 없었을 수 있는 패배다.
이즈레알이 너무 어이없이 짤려버렸으니 말이다.
'지금 뽀로로 벽꿍 판정이 조금 심각하게 좋긴 해.'
리메이크 전, 그러니까 현재의 다리웁트 E스킬과도 비슷하다.
점멸을 사용한다고 해도 일단 끌리면 무조건 딸려온다.
그런 무자비한 판정을 뽀로로의 벽꿍도 똑같이 가졌다.
덕분에 이즈레알을 손쉽게 잘랐고 이는 한타의 승리로 연결됐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어지간히 조심하겠지.'
절대로 벽꿍각을 안 주려고 할 것이다.
방금과 같은 깜짝 킬은 더 이상 노릴 수가 없다.
상대 이즈레알의 아이템 창에 금은 장식 머리띠가 보였다.
'저걸 대체 왜 올린 걸까?'
아군의 조합은 CC기가 부유하지 않다.
기껏해야 두두와 카서트의 슬로우 정도.
봇라인이 여유로웠던 걸 보면 쓰렉귀의 선고 때문은 아닐 터다.
소거법으로 남게 된 건 내 뽀로로의 벽꿍과 궁극기 정도다.
하지만 겨우 벽꿍에서 벗어나려고 사기엔 나름대로 비싼 아이템이다.
'설마 저걸로 뽀로로 궁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 설마가 아마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뽀로로가 워낙 안 나오다 보니 사람들이 잘 모른다.
방금 한타에서도 쓸데없이 카이팅 치던데 그거 쥐뿔도 도움 안된다
.
아무리 깔끔하게 허리를 돌려도 0.1씩은 멈추기 마련이다.
그 0.1초 때문에 따라잡혀서 죽으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냥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만 가는 게 최선이다.
'뽀로로 궁은 데미지도, CC기도.. 심지어 금은 장식 머리띠도 효과가 없다는 걸 모르나 보네.'
참 안타까워서 가르쳐주고 싶을 지경이다.
적어도 그 바람은 이룰 수 있을 듯싶다.
한 번 영혼까지 호되게 털려보면 뼛속까지 각인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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