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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원딜러
과거 르풀랑이 Q선마를 했던 데는 이유가 있다.
궁극기인 흉내가 스킬을 고대로 복사한다.
아니, 데미지를 약간 증폭시켜서 따라한다.
'그런데 지금은 기본 데미지로 적용이 되지.'
즉, 스킬 레벨이 고저가 궁극기 데미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한 패치가 수 달 전에 있었다.
이것이 어떤 변화를 불러 일으킬지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다 테이커가 윈터 시즌에서 한 번 선보인 이후 확 떠버렸다.
'테이커 입장에서는 아쉬운 노릇이겠네..'
물론 지금의 테이커는 모르고 있을 테니 상관이 없긴 하다.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조금 많이 걸린다.
롤드컵에 진출하지 못한 탓에 자랑하는 미드 리픈을 알릴 기회도 사라졌다.
가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긴 한데 어쩐지 살짝 미안한 감정이 인다.
찰칵!
아무튼 게임은 진행되고 있다.
아이템은 나올 대로 나온 상태다.
아테나의 부패한 술잔과 라둔의 죽음투구.
이 정도로 나온 르풀랑은 거칠 것이 없다.
파앗!
날조를 사용해 정글 벽을 넘는다.
게임이 유리하다는 것은 적 정글의 시야도 먹었다는 의미다.
아군 정글러가 리심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사앗..!
유령을 먹고 있던 두두에게 속박의 사슬을 건다.
두두는 나에게 얼음덩이를 투욱 던지고 도망가려 하지만 안된다.
사앗..!
퍼엉!
또 하나의 사슬과 함께 침묵.
점멸로 도망가는 선택지조차 잃고 만다.
아군 정글러 리심이 당도할 시간을 벌어냈다.
이~쿠우!
리심이 두두를 뒤로 차내며 한 번 더 연계한다.
침묵의 표식을 던지고 날조로 짓밟는다.
술잔을 올린 르풀랑은 지속딜이 막강하다.
하드 탱커에 속하는 두두조차 얄짤없이 사망하고 만다.
'이렇게 끊어만 먹어도 상대 입장에서 숨이 턱턱 막힐 거야.'
코리아나와 르풀랑의 합류 속도는 격이 다르다.
게다가 킬 결정력도 말이 안 나오는 수준이다.
방금도 거의 어거지로 두두를 옭아매 따버렸다.
딜러는 물론 탱커조차 무사하지 못한다.
이미 전 라인의 적들을 최소 한 번씩은 죽였다.
첫 번째 세트 이상으로 스노우볼이 굴러간다.
"저희 근데 게임 빨리 끝내야 돼요. 쟤네 클 시간 주면 르통기한.. 아시죠?"
"응, 내가 니보다 운영 잘해."
"힝.."
그러고 보면 르통기한이라는 소리도 있었다.
르풀랑으로 후반 가면 한타 존재감이 극히 떨어지게 된다.
과거 Q선마 르풀랑은 진입해서 스킬쿨 한 번 돌리면 끝이었다.
'그건 옛날 르풀랑 이야기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방식의 르풀랑은 유통기한이 없다.
후반 가도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는 않다.
플레이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
전혀 다른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Qookya AllMaster님이 미드 2차 포탑을 지목.
앞선 세트와 비슷한 대치 구도가 이루어진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와 달리 압박이 효율적이지 못하다.
직트처럼 글로벌 궁극기로 다른 라인 압박해서 강제로 돌려 깎고 그런 게 안된다.
그러다 보니 앞라인도 탱탱하고 라인 클리어도 좋은 상대는 시간을 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지금의 상황은 르풀랑이 안 쓰이는 이유와도 같다.
라인전이 끝나고 양 팀이 뭉치면 르풀랑이 정말 실직자가 돼버린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르풀랑은 분명 그러했다.
파앗!
파앗!
적 블루 지역의 벽을 넘고 한 번 더 좌측으로 꺾는다.
상대의 뒷라인을 느닷없이 급습한다.
터억!
사앗..!
꼬그모에게 표식을 던지고 사슬로 긁어 터트린다.
광우스타가 나를 향해 쿵쾅! 내려 찍으려 하지만 늦는다.
그 전에 날조를 재사용해 원위치로 돌아왔다.
"꼬그모 반피 나갔고 광우스타 쿵쾅 빠졌어. 가자."
"오오! 지렸다.."
정말로 지렸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플레이다.
보는 입장에서도 아찔한 죽음의 외줄타기.
자칫 잘못해서 쿵쾅이라도 맞았다간 꼼짝 없이 죽었다.
하지만 맞지 않았고 적의 체력과 스킬을 뺀 이상 스노우볼이 굴러간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겨우 미드 2차 하나 밀고 끝나지 않는다.
르풀랑의 궁극기 쿨타임은 정말 짧다.
쿨타임 감소 아이템을 갖췄다면 더더욱이다.
한 번 더 진입해서 기회를 만들어낸다.
파앗!
파앗!
적팀의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을 노릇.
대놓고 두 번 대쉬해 코리아나를 긁고 사라진다.
대응을 하려고 마음 먹었을 땐 감쪽같이 없어져 버린 후다.
그렇게 한 번 긁어버리고 잠시 기다리면 또 쿨타임이 돌아온다.
<해일이당-!>
아군 서포터 인어에 의해 이니시가 걸린다.
높은 파도가 적 진영을 덮치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어떻게 포지셔닝을 잡아야 할지 잠시 망설임이 인다.
르풀랑으로 암살을 하기에 적절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파앗!
한 번 땅을 박차고 점멸로 벽을 넘는다.
두 번 연달아 나간 표식이 코리아나를 침묵시킨다.
마지막으로 사앗..! 화면에 금빛 사슬이 잠시 일어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Qookya AllMaster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코리아나는 보호 구슬과 보호막으로 자신을 두텁게 보호했지만 안된다.
표식 두 개를 연달아 터트리며 발화까지 걸리면 딜러진은 순삭이다.
라인을 클리어하며 아군의 진입을 저지해야 할 적 미드가 죽었다.
미드 라인의 억제탑을 공짜로 챙길 기회다.
"어? 코리아나 언제 죽었지."
"방금 피만 깎은 게 아니라 따버렸어..?"
"빨리 밀기나 해라."
두 눈 뜨고 코 제대로 베인다.
미달리의 창은 보고 피하기로 하지, 르풀랑은 알고도 당해야 한다.
상황만 받쳐주면 즉발적인 암살도 가능하다.
상대로 하여금 버틴다는 선택지를 빼앗아 버린다.
찰칵!
이제는 탱커조차 무사치 못하다.
마법 저항력을 뚫어내는 관통의 지팡이가 나왔다.
이제는 더 효율적으로 포킹을 도모할 수 있다.
그렇다, 포킹이다.
'누킹이 아니라 포킹.'
엄밀히 말하자면 누킹도 된다.
누킹이 되는데 포킹도 될 뿐이다.
현재 르풀랑의 사기성을 정리하자면 대략 그러하다.
아이템트리 하나 바꾼 것으로 르통기한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
.
.
* * *
쿡야 베이더스의 부스 건너편.
THEY는 심각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이번 판을 지면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
"꼬그모가 미드 막으면서 탑 안고 최대한 버텨보자."
"쟤네 바론 칠 수도 있는데.. 어떡하지?"
"내가 한 번 볼게."
팀에서 유일하게 파란 장신구를 들고 있는 헤이샤오가 살펴봤다.
파란 장신구는 아주 먼 거리의 시야를 한순간 밝혀준다.
짧은 시간이지만 상대가 바론을 치는지는 알 수 있다.
─적팀이 바론 백작을 처치하였습니다!
"…."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그럼에도 침착하게 게임을 이어나간다.
THEY는 시즌3 이후로 기복을 겪었다.
멘탈이 무너질 상황은 수도 없이 당해왔다.
사실상 끝나버린 게임이지만 최선을 다한다.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다음 판을 어떻게 할지 구상할 시간을 벌어내기 위함이다.
"르풀랑 들어오면 광우스타가 점멸 해보자. 그거 밖에 답이 없다."
"오케이.. 해볼게."
팀의 정글러 클래식 러브가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지시했다.
메인 오더를 맡은 그로서는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복잡한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상대가 도착해버렸다.
두 번째 세트의 운명을 결정지어질 대치 상황이 이루어졌다.
"르풀랑 무빙 보이지? 오는 순간 잘 물어봐."
"큰 기대는 하지 마. 시도는 해볼 테지만.'
물론 클래식 러브도 가능성을 높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만에 하나, 성공을 한다면 게임을 이길 확률이 조금은 생긴다.
상대의 바론을 빼고 르풀랑의 성장을 저지해서 시간을 번다.
'딜러진이 무효화의 장막만 갖출 수 있다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걸어볼 만한 도박인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지는 게 확정된 게임이 아닌가.
클래식 러브를 포함한 다섯 팀원들의 눈동자가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윽고 올마스터의 르풀랑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파앗!
예상했던 대로의 움직임이다.
르풀랑이 벽을 넘었다.
곧 있으면 한 번 더 움직일 것이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이번 게임을 뒤집을 수 있는 역전의 발판이다.
사앗..!
금빛 사슬이 뿜어지며 공격을 해왔다.
그런데 하나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르풀랑은 한 번 더 진입해오지 않았다.
대신 탱커인 싱나드를 향해 모든 딜을 쏟아부었다.
"어? 아니..!"
롤 하는 사람의 입에서 아니라는 말이 나올 때는 경우의 수가 하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을 때.
싱나드를 포함한 THEY의 모든 팀원들이 순간 당황을 금치 못했다.
체력 아이템은 물론 정령힘의 향상까지 나온 싱나드는 탱키하다.
극후반에 가면 썩 좋은 챔피언은 아니지만 대신 중후반까진 괴물 같을 정도다.
그런데 그런 싱나드의 체력이 절반이 넘게 푹 빠졌다.
"극딜도 아닌데 뭐 이리 세.."
"바론이라 그런가? 조금 심각하게 많이 다네."
탱커의 체력이 이렇게나 빠지면 한타가 열려도 진입하다 녹는다.
어떻게 한 번 라인을 밀고 우물에 보내 체력을 회복시켜야 하나.
클래식 러브가 고민하던 그때 르풀랑이 또다시 진입해 왔다.
터억!
터억!
사앗..!
표식을 연달아 날리고 속박의 사슬로 터트린다.
일련의 견제가 싱나드를 향해 또다시 들어갔다.
저 두 스킬은 터트린다는 전제 하에 엄청나게 강력하다.
'그래서 그런 폭딜이?'
당장의 의문이 해결된 클래식 러브였지만 방금으로 게임이 끝났다.
발화가 붙은 싱나드가 활활 불타오른다.
다행히 궁극기와 특성의 체젠 덕에 어찌저찌 살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그나마 남았던 한타의 여지마저 사라지게 된다.
"르풀랑 궁쿨이 저렇게 짧았나. 3렙 궁이라 그런가.."
"르풀랑 하나에 휘둘리다 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르통기한, 후반이 갈수록 힘이 빠져야 한다.
그런데 올마스터의 르풀랑은 어찌 된 영문인지 라인전은 라인전대로, 한타는 한타대로 막을 수가 없다.
대체 어떤 식으로 운용을 한 건지 분석을 하기엔 시간이 지나치게 촉박하다.
─아군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탑라인의 미니언들과 미드 라인의 거대 미니언을 앞세워 진격해온다.
또다시 궁극기가 돌아온 르풀랑이 지긋지긋한 견제를 쏟아부었다.
거의 스치듯 맞았던 코리아나가 즉사.
그대로 넥서스가 파괴되며 게임의 패배에 종지부가 찍어졌다.
"아니, 무슨 게임사 사장 아들이라도 돼? 이상한 챔피언들이 밑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와."
"진지하게 말하자면 사장 아들이라도 안되겠지.. 르풀랑이 패치된지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냥 창의력이 겁나게 풍부하나 봐."
올마스터가 어떤 선수인지는 조사도 충분했고, 대비책도 완벽했다.
오늘의 경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차고 넘쳤다.
아무리 독특한 챔피언을 한다고 해도 안정적인 운영을 바탕으로 한타 싸움에 간다면 질 수가 없다.
그런데 그 한타가 두 판 연속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신들이 정비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물밀듯 밀어붙인다.
그것을 가능케 만든 중심은 올마스터.
전혀 듣도 보도 못한 픽으로 게임을 주도해낸다.
"밴카드로 막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설마 또 있을까?"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오늘도 분명 무언가 생각해둔 게 있을 거야."
"그래도 우리가 1픽이라서 다행이긴 하네. 혹시 역으로 직트나 르풀랑을 가져가는 건 어때?"
"무리야. 해본 적도 없는 픽이고 딱 봐도 숙련도가 필요해 보이잖아."
팀의 미드라이너, 미바야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따지고 보면 두 번째 세트의 패배는 미드 차이.
하지만 이를 구태여 탓하는 팀원은 없었다.
그저 올마스터가 너무 잘했다.
그리고 르풀랑의 픽에 대한 대처가 부족했다.
당장 다음 세트를 어떻게 극복할 지가 관건이다.
메인 오더를 맡고 있는 클래식 러브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안정적인 게임 운영은 우리 THEY의 컨셉이자 게임 철학이기도 하지. 근데 이걸 밀고 나가다간 아마 또 비슷하게 당할 거야. 나는 여기서 한 번 꼬는 게 맞다고 생각해."
클래식 러브의 말에 나머지 네 명의 선수, 그리고 코치 또한 잠자코 들었다.
타개할 만한 실낱 같은 희망이 있다면 붙잡아야 한다.
THEY의 중심은 분명 헤이샤오지만 클래식 러브가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다.
원딜러가 캐리할 만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이번에는 스릴 있게 가보자.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몰아붙일 수 있는 조합. 대신 원딜러가 알아서 살아야 할 텐데.. 괜찮겠어?"
헤이샤오가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정해졌다.
지금까지 헤이샤오가 선장을 맡았다면 이제는 클래식 러브다.
안정적이지만 캐리력이 넘친다.
그가 운전석에 올라탄 이상 조금 거칠어진다.
하지만 결코 전복되는 일은 없다.
클래식 러브라는 정글러가 최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최대 기량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정글 챔피언.
역전의 신호탄을 쏘아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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