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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원딜러
지난 화요일, 준결승전 A조의 경기가 치러졌다.
그 열기는 정말로 뜨거워서 넓디 넓은 올림픽 경기장이 우리로 보일 지경이었다.
기본 객석은 물론 무대 주위의 빈 공간에 설치한 간이 의자까지 채워버렸다.
하지만 오늘, 토요일에 열리게 된 준결승전 B조의 경기는 한산하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여백의 미가 치러지는 경기의 중요도를 대변해준다.
이를 예측했는지 무대 주변에는 간이 의자가 깔려있지 않다.
입석으로 보기 위해 공짜로 온 관중들이 눈치를 보며 빈 의자에 앉고 있다.
그래도 별 상관이 없을 만큼 경기장이 절반 가량밖에 차지 않았다.
중계진들로서도 상당히 맥이 빠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세간에서는 오늘의 경기는 사실상 승패가 정해졌다. 그런 이야기가 나왔었죠.>
<예, 뭐 사실.. 양 팀의 전력 차가 극심하긴 했습니다.>
더우니 버빈이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젓는다.
준결승전 B조 카이지 게이밍 대 로얄CN.
경기는 이미 세 번째 스코어에 접어들었다.
그 삼 세트 연속 압도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세간의 예상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게임으로 증명하는 와중이다.
라인전부터 운영까지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털어버렸다.
<오브젝트를 내주더라도 교환을 하거나, 다른 노림수가 있으면 게임을 지탱할 수 있는데.. 이건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뒷걸음질만 치고 있어요.>
<용 가져가는 걸 알면 탑 타워라도 모여서 밀던가, 게임이 조금 많이 답답합니다.>
지난 준결승전 A조의 경기가 워낙 뜨거웠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B조의 경기는 루즈해서 못 봐주겠다.
그러한 사실을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도 아는지 빠르게 스노우볼 굴려나간다.
꾸드득!
나우갓의 네네톤이 궁극기를 켠 채 다이브를 실행했다.
거대한 칼이 묵직하게 또도 박사를 썰어냈다.
또도 박사는 스턴에 걸린 채 반항도 못하고 얻어맞는다.
체력이 바닥까지 도달한 후에야 스턴이 풀린다.
점멸과 궁극기를 사용해 부리나케 도망가지만 늦었다.
미니언을 탄 네네톤이 점멸로 추격한다.
점멸 후 이어지는 강화된 천참만륙!
거대한 칼이 원형으로 휘둘러지며 또도 박사를 끝장내버렸다.
<야성을 계산 해서 일부러 Q안 쓰고 있다가 또도 박사가 점멸로 도망갈 때 따라가서 긁어버리는 판단! 역시 네네톤의 왕다운 모습입니다.>
<또도 박사를 잘못 다이브 치다가는 체젠에 역관광을 당하는데.. 얼마나 때리면 죽는지 잘 알고 있네요.>
네네톤의 스킬딜은 강화를 하지 않으면 그저 그렇다.
이 강화 스킬을 얼마나 잘 쓰냐가 네네톤의 숙련도를 말해준다.
네네톤의 왕이라 불리우는 나우갓답게 엄청난 모습이다.
최근 그렇게나 OP라는 또도 박사가 맥을 추리지 못하고 있다.
<또도 박사를 일부러 열어준 것 같습니다. 해봤자 자신을 못 막는다. 지난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었죠. 네네톤 들고 라인전을 질 자신이 없다!>
<그런 말을 해도 될 정도로 무척 잘합니다. 정글러가 다이브를 쳐주기는 했지만 그 다이브를 칠 수 있는 여건을 만든 게 나우갓이거든요? 탑차이, 게다가 봇라인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로얄CN은 전체적으로 라인전이 강하다.
선수의 성향부터가 공격적이며 라인전이 강력한 챔피언을 한다.
봇라인에서 이루어지는 2대2의 교전.
로얄CN의 서포터 바베가 이니시를 걸었다.
캬아악-!
가시오가피의 궁극기, 메두사의 응시는 자신을 바라보는 적을 석화시킨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적은 높은 비율의 둔화를 먹인다.
얼핏 의아한 픽이지만 바베는 이 가시오가피로 롤드컵의 준결승을 견인했다.
롤드컵때 공개가 됐기 때문에 별 상관이 없다는 걸까.
비중이 적다고 여겨지는 오늘의 경기에도 꺼냈다.
가시오가피가 석화시킨 테러스티나를 향해 부시안이 풀딜을 꽂아 넣는다.
─세나찡 복수다!
간단하게 따버리고 인어를 추적한다.
맞히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부시안의 궁극기가 풀딜로 꽂혀버린다.
인어는 안간힘을 내며 도망갔지만 따라잡힌다.
부시안의 점멸 평타 이후 푸슝!
꿰뚫는 불길이 인어를 마무리했다.
<카이지 게이밍도 준비를 많이 해오긴 했습니다. 탑과 봇을 안정적이면서 성장 기대치가 높은 픽을 하고, 미드를 르풀랑이라는 최근 핫한 챔피언을 기용했죠.>
<아마 르풀랑이 솔킬은 따지 못해도 탑과 봇을 풀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를 안고 픽을 한 것 같은데 역으로 라인전을 밀리고 있네요.>
올마스터가 선보인 이후로 솔로랭크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르풀랑.
이 르풀랑에 카이지 게이밍도 삘이 꽂힌 건지 나름 조커 카드라고 꺼내들었다.
그 결과는 암담하길 넘어 처참한 수준이다.
차도리의 코리아나가 한 번씩 공을 굴릴 때마다 체력바가 갈려나간다.
제대로 CS도 못 먹고 하드 디나이만 당하며 망신살을 뻗치고 있다.
양 미드의 실력 격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라인전이었다.
이제는 그 고통 받던 라인전이 그리워질 구도가 도래했다.
<탑이랑 봇 포탑 깨졌고, 미드는 일부러 안 깬 거죠? 어차피 탑봇이 알아서 이기는데 미드는 안정적으로 파밍하면서 왕귀하면 된다는 판단입니다.>
<르풀랑이 강력하다고는 하나 술잔과 마법 관통력의 신발 이거 두 개 달랑 들고는 원딜도 못 잡습니다.>
준비는 진짜 열심히 해온 듯싶다.
하지만 실력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
성장 차이를 바탕으로 밀어버리자 어떻게 버티지도 못한다.
르풀랑은 라인 클리어 한다고 날조로 들어갔다가 죽는다.
가시오가피가 석화를 걸고 네네톤이 휘젓자 분신 채로 사라진다.
그대로 억제탑이 쭈욱 밀린다.
설상가상 바론까지 나간다.
중계진들도 할 말을 잃은 채 묵묵히 상황만을 나열한다.
<차이가 너무 압도적이라 딱히 부연 설명 할 게 없네요..>
<오늘 경기에서 로얄CN이 보여주고 싶은 바는 아마 이걸 겁니다. 우리 라인전 진짜 세다. 독특한 챔피언 꺼내도 실력을 받아칠 자신이 있다. 팀의 기량과 색깔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증명을 마친 걸로 보입니다.>
차마 중계진 입장에서 로얄CN이 결승전에 올라갔다는 전제 하에 말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정도라면 대충 어떤 늬앙스를 말을 한 건지 누구라도 알아 듣는다.
결국 바론 버프를 바탕으로 물밀듯 치고 가는 로얄CN에 의해 한 번 더 고속도로가 개통된다.
탑라인의 억제탑이 밀어지며 그대로 쌍둥이 포탑까지 진격한다.
<카이지 게이밍이 준결승까지 올라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반증하듯 전략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받쳐줄 숙련도, 그리고 선수의 기량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경기였습니다.>
<이건 막을 시늉도 못하죠. 바론 버프 없어도 상대가 안되는데 있으면 타워 상관없이 쭉쭉 밉니다. 로얄CN이 결승전 진출을 확정 짓고 말았네요.>
중계진들의 어조가 담담하다.
아쉬움이 남을 만큼 경기가 치열했던 것도 아니다.
세 경기 모두 비슷하게 압살을 당했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긴장감 하나도 없다.
준결승전 B조의 경기는 평이하게 마무리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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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무리 결과가 정해진 경기라고 해도 과정을 보기는 해야 한다.
취식실의 TV를 통해 흘러 나온 준결승전은 예상 그대로였다.
단 한 가지를 빼놓고 말이다.
<네네톤의 왕! 장인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깔끔한 캐리 보여주셨습니다. 네네톤만 잡으면 누가 오던 이길 수 있다, 지난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던 발언, 혹시 결승전에서도 유효할까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는 기본적으로 짓궂다.
그래야만 조금 더 화제가 될 만한 거리를 유출시킬 수 있다.
아나운서의 물음에 질문 받은 나우갓이 아주 자신있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라인전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글 개입이라던가 여러가지 염두에 둬야 하지만 동실력, 그리고 같은 조건이라면 네네톤으로 절대 안 집니다.>
<제가 알기로 쿡야의 올마스터 선수가 가끔 탑도 섭니다. 올마스터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말로 들어도 되겠습니까?>
<올마스터뿐만 아니라 그 누가 와도 제 네네톤은 세계 최강입니다. 그것을 상대도 알기 때문에 결승전에서 제 네네톤을 밴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은 일을 아주 자랑스럽게 늘여 놓는다.
단순한 도발, 혹은 자랑일 수도 있지만 계산 하의 발언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있으면 탑으로 한 번 맞붙어보자.
그런 의도가 녹아있다 생각이 된다.
나우갓의 인터뷰를 전부 들은 츠위가 잡담을 떠들었다.
"엄청난 패기네요. 빨간 머리 선장이 울고 가겠는데요?"
"산적왕과 동수를 이뤘다는 그분? 확실히 패기가 넘치긴 하네."
현재 네네톤은 탑라인에서 거의 무상성을 자랑한다.
그나마 카운터라고 할 만한 게 파이어뱃인데 너프 먹었다.
그리고 특성은 알려진 바대로 탱커에게 웃어준다.
게다가 현재 정글 메타도 굉장히 공격적이라 다이브가 수월하다.
다이브 특화 챔피어인 네네톤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시기다.
현재 LPL에서 네네톤 밴픽률이 미쳐 날뛴다는 게 그 증거다.
살짝 불안해진 눈초리인 츠위가 나를 흘깃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또 하실 거에요?"
"응, 할 건데."
"..에휴, 그럴 줄 알았어요."
츠위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슬슬 내 패턴에 대해 감을 잡은 듯싶다.
그래도 역시 불안한지 마저 이야기를 이어왔다.
"홧김에는 아니죠..?"
"응, 아니야."
"그럼 됐어요."
상당히 쿨한 반응이다.
당연히 꼬치꼬치 캐물을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그 연유가 궁금해졌다.
"헤이샤오를 상대로도 저질렀는데 네네톤 왕 정도야 별것 아니리라 믿어요."
"오, 과격한데? 나우갓이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봐?
"음.. 여자의 감이에요. 단순히 여흥을 목적으로 한 발언은 아닌 듯 해보여요."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을 뻔했다.
다행히 츠위는 TV화면을 바라보고 있어 들키지는 않았다.
여자의 감이라.
그거 사실상 찍기랑 별반 다를 거 없지 않나?
"이쒸..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에 감을 더한 거거든요? 제가 막 아무렇게나 타인을 비방할 사람을 보여요?"
"그래 그래, 계속 해봐."
알고 있지만 츠위가 함부로 누군가를 단정한 적은 없다.
생각이 상당히 깊은 편이고 타인을 헤아릴 줄도 안다.
그럼에도 나우갓의 언행이 거슬렸다는 건 뚜렷한 이유가 있을 터다.
"같이 MVP에 올라온 두 선수는 별 다른 말 안 했잖아요. 근데 저 선수만 유난스러운 거 보면 개인적인 감정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돼요."
"그렇구나, 츠위가 아주 똑똑해 똑똑해."
"..저 화내요?"
확실히 츠위의 말은 일리가 있다.
그리고 사실 나도 어렴풋하게 눈치를 채고 있었다.
말투나 태도 등에서 본심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물론 내가 관심법을 쓰는 것도 아니고 확실하진 않다.
아주 약간 언짢은 정도.
비슷한 감정을 츠위도 느낀 듯하다.
"저도 츠위 누나 말에 동의하는 게, 나우갓 쟤는 프로 아닐 때부터 썩 소문이 안 좋았어."
"나도 알아. 쟤 라인전 이기면 입 개털잖아. 지면 정글이랑 싸우고."
"그래도 프로되고 나서는 조용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본성이 어디 가냐. 코치한테 통제 당하는 거겠지."
취식실에는 나와 츠위말고도 다른 팀원들도 앉아있다.
결승전의 상대가 될 팀이 경기를 하는 만큼 시청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각자 짚이는 바가 있는지 떠들어온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메딕이 떠오른다.
'네네톤 장인들끼리는 통하는 바가 있는 건가.'
국경과 국적을 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가장 네네톤으로 유명한 메딕도 과거가 찬란하다.
나우갓 또한 그에 뒤지지 않는 인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니들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어차피 네네톤은 한 번 잡으려고 했어."
"오, 멋있다! 근데 쟤 네네톤 겁나 잘하던데."
"나 솔랭에서 만났을 때 탈탈 털린 적 있음."
"그걸 뭐 자랑이라고 얘기 하냐."
"난 탑솔러가 아니잖아 임마~."
티격태격 말다툼을 해대는 마파두부와 차우차우는 어쨌든.
남은 일주일의 기간동안 빠듯하게 준비를 해둬야 한다.
준비라 함은 결승전의 시나리오.
저 나우갓이라는 녀석의 도발이 정말 진심이라면 생각하고 있던 바를 이루기가 더욱 쉬워진다.
"화이팅! 힘내세요."
떠들썩한 팀원들 사이에서 츠위가 작게 기합을 외친다.
그 모습이 아빠 힘내세요! 하는 거 같아 입가가 절로 흐뭇해진다.
없던 힘도 날 것 같은 기분.
츠위를 보고 있자면 딸 자식을 한 명 둔 듯한 느낌이다.
"임마들아, 바로 연습 들어갈 테니 따라와."
"오, 네네톤 카운터가 뭔지 보여줍니까?
"기본기 연습이야 얌마."
"우~~!"
챔피언도 중요하지만 기본기가 없다면 말짱 헛것이다.
방금 전 카이지 게이밍의 경기가 그러지 않았던가.
결승전의 직전까지 팀원들을 빠듯하게 굴릴 좋은 명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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