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681화 (68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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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모름지기 결승전이라 함은 웅장해야 한다.

도전했을 수많은 팀들이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오직 두 팀만이 남아 이 자리에 섰다.

어울리는 자리가 돼주지 못한다면 곤란하다.

더욱이 베이징 올림피 경기장에서 치러지는 LPL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중국 로드 오브 로드 유저들에게 있어 롤드컵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과장이나 보탬없이 결승전 중의 결승전.

대국의 위상을 한껏 뿜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중국인들은 그리 생각했고, 개최측 또한 실행에 옮겼다.

<쌀쌀함을 넘어 추워지려 하는 11월의 중순입니다. 곧 첫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이 때. 정말로 수많은 팬분들이 자리를 지켜주시고 계십니다.>

캐스터 카오야의 담담한 말씨를 기다렸던 수만의 관중.

아니, 10만을 훌쩍 넘어 경기장을 빽빽히 채우고 있다.

지난 준결승전 A조의 경기 당시를 훌륭히 재연해냈다.

하지만 그것만이었다면 단순히 관중의 수가 많을 뿐이리랴.

카오야가 크게 한 번 숨을 들이마셨다.

뜸을 들인 후 힘차게 내뱉는다.

동시에 사방에서  무언가가 힘차게 쏘아진다.

아직 채 노을이 지지 않은 오후의 하늘을 호화롭게 뒤덮는다.

경기장의 주변의 호수 수면이 색색깔의 밝은 빛으로 요동친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새록새록 추억이 솟을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당시 가난한 학생으로서 차마 경기장에는 가지 못하고 술집에서 분위기만 내었는데 인생이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요.>

<저도 공감을 표합니다. 각 지역 LPL의 수많은 해설진들 중에서 제가 이 자리에 섰다는 사실이 참으로 영광스럽습니다.>

당연하게도 베이징 올림픽 당시와 비할 바는 되지 못한다.

하룻밤 쏘아 올렸던 폭죽만 수백억원 상당의 가치를 지녔다고 하니 말 다했다.

E-스포츠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예산이 거기까지 닿지는 않는다.

불꽃놀이는 짤막하게 진행되었고 밤하늘은 다시 어둡게 물들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상상이나 할 수 있는 풍경이었겠는가.

그만큼 E-스포츠의 현재가 밝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렇게 중계진들이 시청자들이 별로 궁금해 하지 않을 지난 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사이.

선수들은 부스 안에서 나름대로의 준비를 마쳤다.

오늘의 주인공들이 무대에 설 순간이 도래했다.

<숱한 화제를 날리며 결국 이 자리까지 도착했습니다. 쿡야 베이더스, 이번 시즌에 처음 LPL에 합류한 신생팀임에도 믿기지 않을 전설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선수들을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지역별 LPL의 우승을 차지하고.

한 번 더 각 지역의 패자들을 무찔르며 올라왔다.

중국을 대표하는 THEY조차 잡아버렸다.

아무리 행운이 겹친다 해도 신생팀으로서는 불가능할 바늘 구멍이다.

불가능을 억지로 실현케 한 선수.

올마스터의 경기를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온 이들이 상당수다.

쿡야의 선수들이 입장하자 경기장이 떠나가라 함성이 울린다.

이어서 반대편에서도 위풍당당하게 등장한다.

<지난 스프링 시즌의 패자. 말이 필요 있을까요? 로얄CN이 한 번 더 우승을 차지하고자 합니다.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스프링 시즌 LPL의 우승팀은 로얄CN이었다.

이러저러 이야기가 많기는 했지만 결과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다시 한 번 결승전 자리에 섬으로서, 강호 OMC를 3대0으로 격파함으로서 실력을 증명해냈다.

오늘의 경기로 인해 진실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저희가 시간을 상당히 넉넉하게 잡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많이 끌렸습니다. 이 넓디 넓은 올림픽 경기장을 가득 메운 로드 오브 로드의 팬들이 보이십니까? 정리에 혼선이 빚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준결승전 A조의 경기는 무난하게 광중 수를 채웠다.

만원을 시킨 것만으로도 대흥행.

하지만 오늘은 격이 다르다.

이미 객석에 빈 자리를 찾아볼 수가 없다.

입석이 가능한 공간에도 사람들이 불편할 정도로 부대꼈다.

그럼에도 바깥에서 어떻게 밀고 들어 오려고 성화를 내고 있다.

안 받아들이면 그만이지만 어찌 팬들을 내몰 수 있겠는가.

가능한 안쪽을 효율성있게 채우려고 노력하다 보니 시간이 소요된다.

그로 인해 경기의 시작이 예상보다 조금 늦어지고 말았다.

<이제 막 오신 분들도 있지만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시는 분들도 정말 많습니다. 아직 줄을 서고 계신 분들께는 양해 말씀드리며 양 팀 주장의 각오 듣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쿡야 베이더스의 올마스터입니다!>

관중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고작 한 시즌에 불과한 단 기간에 헤이샤오에 필적하는 인지도를 쌓았다.

중국 로드 오브 로드 유저들 중 더 이상 그를 모르는 이가 없다.

금일 결승전에 올라온 열 명의 선수들 중 당연 으뜸.

실력으로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인기만 따지면 그러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플레이를 선보이며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폭탄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는 올마스터의 손해 주어져서는 안될 게 쥐어졌다.

<올마스터입니다. 오늘도 솔로랭크를 터트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광중석 여기저기서 웃음보가 터진다.

어떤 이들은 제발 하지 마! 외치면서 부정을 표한다.

어느 쪽이든 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올마스터가 어떤 선수인지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발언이다.

고작해야 삼 개월 남짓.

경기를 치른 시기만 따지면 두 달 정도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 수가 많다는 이 중국에서 올마스터가 유명해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기네스북에 등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전설을 써내려 왔다.

마침내 오늘 그 종지부가 찍힐지, 아니면 허무하게 막을 내릴지 알 수 있다.

<역시 첫 마디부터 임팩트가 남다름을 과시합니다. 이에 맞서는 로얄CN의 주장! 공격적인 카이팅으로 유명한 우직입니다.>

먼저 입을 연 올마스터의 발언이 강렬했던 만큼 기대치도 높아진다.

그런데 듣고 나니 힘이 쫘악 빠져버린다.

든든한 체구에 걸맞게도 우직의 말씨는 참으로 여유로웠다.

잘하겠다, 열심히 하겠다, 로얄CN을 응원해줘서 고맙다.

기대치에 한참은 못 미치는 발언이다.

보다 못한 캐스터 카오야가 지난 이야기를 꺼내버렸다.

<지난 준결승전 A조의 경기는 참으로 뜨거웠습니다. 혹시 원딜러로서 올마스터와 한 번 겨루고 싶다. 그런 마음은 없으십니까?>

세계 최고의 원딜러, 헤이샤오를 격파했다.

물론 이겼다고 보기에는 살짝 애매하기도 하다.

전통적인 원딜러가 아닌 뉴메타.

직트 원딜로 라인전을 이기고 게임을 캐리해냈다.

하지만 어쨌든 결과만 놓고 보면 이긴 게 맞다.

프로 원딜러라면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카오야가 정말 대답하기 곤란한 부분을 캐물었다.

이에 우직이 담담한 어조로 답변하였다.

<저보다 더 원하는 팀원이 따로 있어서요. 해도 될 얘기인지 모르겠는데.. 나우갓이 탑에서 한 번 맞상대하고 싶다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조금은 마지못한 어조다.

지난 준결승전 B조의 인터뷰.

네네톤만 든다면 올마스터를 이길 수 있다.

나우갓의 도발은 아주 약간의 화제를 냈다.

아주 약간의 화제.

올마스터가 이에 대답을 한 것도 아니고, 애시당초 무슨 라인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정말로 어느 라인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올마스터다.

그런 만큼 둘의 결전은 요원하기만 했다.

<저도 이야기를 들었고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밴픽은 제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래도 한 가지 약속드리자면 도전을 해오실 때 제가 물러서진 않겠습니다.>

요원하기만 했던 둘의 결전이 이 자리에서 반쯤 정해졌다.

팬들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며 올마스터가 대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확정이라고 보기에는 이르다.

최근 네네톤은 명실상부 탑라인의 1티어 챔피언.

또도 박사를 제외한다면 막아 설 수 있는 이가 없다.

굳이 나우갓의 저격이 아니더라도 밴을 할 만한 카드다.

즉, 쿡야가 밴을 한다면 네네톤은 가져가고 싶어도 못 가져간다.

혹은 쿡야가 네네톤을 선픽할지도 모를 일이다.

캐스터 카오야가 마지막으로 일련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안 그래도 폭발할 것만 같은 기대를 더욱 업시켜 주는 쿡야와 로얄CN의 주장이었습니다! 이제는 눈으로 확인을 해야 할 시간이겠죠. 양 팀 선수들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부스로 돌아갔고, 이제 곧 첫 번째 세트가 막을 올리겠습니다.>

우직 선수의 실력이 뛰어나고, 재밌는 경기를 하는 건 좋다.

문제는 발언 수위가 너무 건전해서 재미가 떨어진다는 평이 있다.

로얄CN의 인기가 없었던 데에 조금은 일조하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캐스터 카오야와 올마스터가 훌륭히 커버를 쳐냈다.

물론 약속이 지켜질지는 알 수 없다.

대답을 한 이가 올마스터가 아니었다면 그러려니 넘어갔을 것이다.

지난 준결승전에서도 폭탄 발언을 그대로 지킨 그이기 때문에 기대할 만하다.

바야흐로 첫 번째 세트의 밴픽 무대가 막을 올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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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난 스프링 시즌의 패자.

롤드컵 준결승의 자리에 올라 중국을 빛낸 로얄CN.

그러나 자국의 팬들에게는 혹독한 평가를 받아왔다.

프로게이머는 일반적인 스포츠 선수들과 다르다.

반쯤 엔터테이너의 역할을 겸하니 만큼 여론에도 민감하다.

경기를 할 때마다 온갖 사이트들에서 이야기가 불거진다.

경기를 이겼으면 좋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함에도 비난의 여론밖에 없었다.

이것이 선수에게 있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당해본 적 없는 이들은 알 수 없으리라.

'하지만 결국은 다시 이 자리에 섰다.'

경기장 중앙 좌측의 로얄CN 부스 안.

팀의 탑라인은 맡고 있는 나우갓이 중얼거렸다.

자존심이 유난히 강한 그로서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매 경기 최소 한 세트는 상대 탑라이너를 압살해냈다.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평가가 늘 묻힌다.

네네톤의 왕이라며 띄워주는 정도다.

로얄CN에 몸담기 전부터 있어왔던 수식어.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해야 할 자신이 아니었다.

'현 탑솔러 중에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어.'

솔로랭크도, 대회에서도 밀린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실제로 경기의 성적을 통해 증명을 해냈다.

그럼에도 세간의 평가는 늘 제자리 걸음.

나우갓은 고민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어느 날 올마스터라는 넉자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실력이 있는 선수다.

확실히 이름값을 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 정도는 자신도 못하지 않는다?

그가 특별하게 뭐가 있단 말인가.

곰곰이 따져볼 것도 없이 결과는 도출됐다.

독특한 챔피언.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픽의 기용.

즉, 실력이 아니라 재밌으니 유명해진 것이다.

'바오즈의 말이 백 번 맞아.'

쿡야 베이더스가 8강에서 맞붙었던 상대.

킹 게이밍의 미드라이너, 바오즈의 발언에 나우갓은 공감했다.

단순히 그와 친분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잔재주나 부리는 삐에로 같은 녀석이지.'

독특한 픽으로 상대의 방심이나 노리는 사이비.

자신이 하고 싶던 말을 바오즈가 그대로 해줬다.

결과가 좋지 않았던 탓에 의미는 없었지만 자신은 다르다.

네네톤만 잡으면 라인전을 질 자신이 없다.

상대의 노림수 따위 실력으로 밟아 뭉개면 그만이다.

그렇게 같잖은 뉴메타를 역으로 분쇄해 버린다면?

그제서야 세상은 겉이 아닌 속,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해줄 것이다.

"그런데 우직 너.. 캐스터가 안 물어봤으면 말 안 하려고 했지?"

"나 그런 말 못하는 거 알잖아. 어쨌든 했으니 된 거 아니야."

올마스터에게 조금 더 거하게 도발을 걸고 싶었다.

그래야만 자신이 원하는 1대1 구도를 매칭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때문에 부탁까지 했는데 고작해야 한다는 소리가 맞상대하고 싶다.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는 녀석이다.

'딱히 기대도 안 했지만.'

온순한 초식 동물 같은 우직의 성격상 말이라도 꺼내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말을 꺼내기는 했으니 녀석 치고는 나름대로 큰 마음 먹은 셈이다.

결과적이나마 일이 잘 풀렸으니 됐다.

시작돼버린 첫 번째 세트의 밴픽.

식스맨 체제인 쿡야 베이더스는 선수의 구성으로 얼핏 알 수 있다.

"오, 쟤네 갈릭이 빠졌어."

"도발이 제대로 먹힌 건가?"

쿡야의 베이더스의 탑솔러 갈릭이 빠졌다.

그 자리를 올마스터가 대신하고 있다.

변수가 없지는 않겠지만 높은 확률로 탑을 올 것이다.

그런데 하나 결정적인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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