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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입 밖으로 나오는 걸 막지 못했다.
나우갓은 우직을 바라보며 한 소리 내뱉었다.
"..내 말 제대로 전했으면 이런 일 안 생겼잖아."
"이게 왜 내 탓이야. 네네톤이 요즘 OP라서 그런 거지."
짜증이 묻어 있는 나우갓의 물음에도 우직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쿡야 쪽에서 네네톤을 밴해버렸다.
하지만 이는 예삿일이다.
최근 네네톤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프로들 사이에서는 시즌4는 네네톤이 지배한다.
그런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전부터 네네톤 장인으로 유명했던 나우갓으로는 억울한 심정이었다.
네네톤이 좋아진 건 좋지만 밴이 되는 일이 잦아졌다.
게다가 OP라서 밴을 했다는 명분도 생긴다.
'제길, 이래서 도발을 더 세게 했어야 됐다고.'
올마스터가 한 발자국 뺀 꼴임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다.
네네톤을 못한다고 게임이 말리는 건 아니다.
다른 챔피언들도 충분히 소화할 역량이 있다.
하나 문제가 있다면 다른 탑 챔피언들은 픽을 보고 해야 한다.
그래야만 라인전을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갈 수 있다.
무상성인 네네톤에 비하자면 상당히 귀찮다.
자신 혼자 정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게 걸린다.
"네네톤 밴 됐는데 후픽해도 되나?"
"글쎄, 나보단 미드한테 허락을 받아야지."
우직의 대답에 나우갓은 살짝 인상을 지었다.
솔로 라인은 기본적으로 상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라인의 중요도에 있어서 미드가 탑보다 우위.
팀의 미드라이너인 차도리가 우선권을 가지게 된다.
이전에 한 번 시비가 있었고 코치에 의해 판가름 났다.
탑솔러로서 자존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솔직하게 맞다.
로드 오브 로드에서 가장 중요한 라인.
다름아닌 미드와 정글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갈리지 않는다.
'시즌4에 들어선 탑도 중요도가 올랐는데..'
항변을 하는 건 차도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나우갓이 채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차도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상관없어."
"아, 그래.."
어색하지만 뚜렷한 중국어.
처음에는 간단한 인사말도 하지 못했던 차도리는 변했다.
조금씩 간단한 회화부터 배워나가더니 결국 웬만한 말은 이해하게 되었다.
말을 하는 건 아직 서투르지만 의미를 이해하는 데엔 문제가 없다.
'이 녀석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지.'
싫어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우갓은 차도리의 플레이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드 라인에서 안정적으로 파밍하며 격차를 누적해나간다.
역으로 밀릴 때는 최대한 손해를 덜 보며 기회를 노린다.
아군이 무언가를 해줄 때까지 잠자코 기다린다.
그런 쥐새끼 같은 플레이를 장기로 삼는 녀석이다.
물론 그의 합류 이후로 로얄CN이 부쩍 강해진 건 사실이다.
또한 그 쥐새끼 같은 플레이가 팀에 안정감을 부여했다.
미드 라인이 무너지지 않는 덕분에 자신도, 우직도 공격적인 플레이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됐다.
환영해야 할 일임에도 친숙해지지 않는다.
성격이든, 게임 내 성향이든 썩 달갑지가 않다.
생리적으로 안 맞다는 소리가 이런 케이스일 테다.
'딱히 성격이 안 좋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음울한 녀석이야.'
어찌 됐든 후픽 양보를 받았으면 됐다.
혹시 몰라 이야기를 꺼냈지만 다른 팀원들과 코치도 긍정했다.
무난하게 진행되는 첫 번째 세트의 밴픽.
깜짝 놀랄 신호탄이 역시나 터져 나왔다.
"야흐오..? 저거 할 만한 사람 올마스터 말고 없지?"
"야흐오면 탑 아니면 미드.. 어쩌면 정글도 가능성 있겠네."
"아니, 탑이야."
호들갑스런 팀원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나우갓이 한 마디.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던 나우갓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결승전이니 만큼 당연하지만 명백히 다른 사정이 있는 모습이다.
잠시 뜸을 들인 나우갓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네네톤을 밴한 이유가 바로 저거겠지. 네네톤은 야흐오의 카운터니까."
"그래? 근데.. 뭘 잡아도 이길 수 있지 않나?"
"나도 저거 탑으로 쓰는 건 노답으로 알고 있어. 뭐, 그렇다고 방심하진 않겠지만."
출시된지 2주가 채 안된 신규 챔피언 야흐오.
로얄CN의 선수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야흐오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박한 상태다.
이전만 해도 최소 한 달 정도는 신규 챔피언이 잘 쓰이지 않았다.
스킬 구성이 간단하거나, 특별히 OP인 게 알려지지 않는 이상 그러했다.
하지만 로드 오브 로드 유저들이 많아지며 꿀을 빠는 것의 중요성이 올라갔다.
누구보다 앞서 꿀을 빨기 위해서 신챔프를 연구한다.
일반 유저들도 그럴 지언데 프로들은 오죽할까.
챔피언 자체가 숙련도도 많이 타고, 숙련도가 된다 해도 챔피언이 애매하다.
미드에 설 때는 그나마 낫지만 탑으로서는 절대 아니올시다.
팀원들은 나우갓의 말에 너도나도 반대표를 던졌다.
"생존기 없는 근접 챔프를 어떻게 탑으로 쓴다는 거야?"
"내가 보기에도 미드 같아. 야흐오 탑으로 쓰면 갱 당해서 죽기 딱 좋으니까."
"장막 쓸 일도 없으니 대부분 미드로 픽하지. 나도 미드에 한 표."
실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유저들 사이에서 야흐오의 평은 최악을 치닫는다.
처음에는 패시브가 괜찮아서 좋은 챔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스킬들이 너무 생뚱맞기 짝이 없다.
일단 생존기가 없다는 점이 너무 크다.
돌진기도 사거리가 짧아 쓰기 힘들다.
궁극기는 에어본시에만 발동할 수 있어 조합 빨을 받는다.
결정적으로 W스킬, 돌풍 장막이 상성을 너무 심하게 탄다.
원거리 챔피언을 상대로도 썩 쓰임새가 좋지는 않다.
일단 스킬이 있기는 하니 쓰는 정도일까.
문제는 근접 챔피언을 상대할 땐 쓸 일이 아예 없을 정도다.
한 마디로 카운터 치기가 너무 수월하다.
즉, 탑에 온다면 야흐오를 카운터칠 챔프는 차고 넘친다.
네네톤이 대표적이지만 그 외에도 한두세네 개가 아니다.
그럼에도 올마스터는 구태여 탑을 선택한 듯 싶었다.
"어, 뭐야. 정말 탑이야?"
"거봐. 내가 뭐랬어. 도발을 하면 먹혀든다니까."
자신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자 나우갓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상대가 마지막으로 가져간 챔피언은 구리가스와 토이치.
탑이나 정글 구리가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별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니다.
"원딜 야흐오에 정글 토이치 탑 리심 이런 거 아니려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니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지?"
"직트로 원딜도 하던데 야흐로도 못할 거 없잖아."
이러저러 추론이 오가지만 희박한 이야기다.
나우갓은 침착하게 어떤 챔피언으로 카운터를 칠까.
수 초, 고민하여 결론을 이끌어냈다.
고작 수 초면 충분한 일이었다.
"나 리픈 한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정글은 몰라도 탑리픈은 힘들지. 솔랭도 아니고."
"나는 찬성. 리픈이 네네톤보다 야흐오 잘 잡을 걸? 상성 차이 심각한 걸로 아는데."
리픈을 하겠다는 충격적인 발언에 팀원들과 코치까지 순간 술렁였다.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이내 해도 될 거 같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당연히 이러저러 상황을 계산한 끝에 나온 결론이다.
'리픈이 나올 거라 상상이나 했겠어?'
나우갓은 당황하고 있을 올마스터를 생각하며 히죽 웃었다.
리픈은 최근 솔로랭크에서 탑과 정글을 막론하고 각광 받고 있다.
하지만 대회에서 리픈은 어지간하면 기용되지 않는다.
이유인 즉, 성장하지 못하면 1인분도 할 수가 없다.
대회 픽으로 쓰이는 탑솔러는 성장을 못해도 1인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작정하고 말리는 등 변수가 많은 대회에서는 범용성이 넓은 픽이 선호된다.
'결정적으로 라인 스왑에 취약해.'
그 점은 문제될 게 없었다.
야흐오 또한 라인 스왑해서 좋을 게 없는 챔피언이다.
더욱이 올마스터의 성격이라면 도전장을 마다하지 않을 터다.
결승전 인터뷰 자리에서도 말을 하지 않았던가.
나우갓은 자신있게 리픈을 픽했다.
그렇게 게임은 시작해버렸다.
올마스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탑라인에 섰다.
'이걸 정말로 와주다니. 이러면 이기는 건 식은 죽 먹기지.'
결승전 내 한 번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 쇼맨십 좋아하는 올마스터가 내뱉은 발언을 저버릴 리 없지 않은가.
그래도 이렇게 빨리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완벽하게 바를 수밖에 없는 최상의 구도.
유리하기에 더욱 침착해야 한다.
요상한 꼼수 잘 부리기로 소문난 올마스터다.
'하려면 하라지. 그 어떤 짓을 해도 승패는 변하지 않아.'
자신을 대표하는 챔피언은 네네톤이지만 리픈 또한 그에 준한다.
기본적으로 근접AD 딜탱 챔피언은 전부 잘 다룬다.
올마스터가 방심을 노리고 픽했을 야흐오.
이미 솔로랭크에서 몇 번이나 상대를 해봤다.
그보다 조금 더 숙련도가 있다 한들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다.
챔피언의 스킬 메커니즘에서 리픈은 야흐오를 철저하게 압도한다.
리픈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메카닉.
평캔을 완벽에 가깝게 소화할 수 있는 자신이다.
야흐오의 라인전이 무난할 가능성은 만에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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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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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내로라하는 강팀, THEY를 상대로 어찌 3연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이는 단순히 예상치 못한 챔피언을 꺼내서만은 될 수 없다.
로드 오브 로드는 혼자서 하는 게임이 아니다.
아무리 괜찮은 챔피언이라도 상성을 타고, 조합 빨을 받는다.
특히 대회 무대에서는 한 선수가 엄청 잘 커도 포커싱 받아서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 흔하다.
때문에 나는 늘 시나리오를 짠다.
흔히 말하는 심리전의 일환이다.
이렇게 하면 상대는 저렇게 받아치겠지.
이를 카운터 격인 챔피언을 꺼내 엎어 버린다.
하지만 이는 솔직하게 어려운 방법이다.
상대가 생각대로 움직여 주면 좋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물론 자신 있어 한 거지만 내심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종종 다른 한 가지의 방법을 쓰곤 한다.
'바로 격장지계.'
상대 팀에 자존심이 무척 강한 선수가 있으면 일이 많이 편해진다.
일례로 지난 섬머 시즌의 한국 롤챔스.
꿀꿀이의 경쟁 심리를 부추겨 손쉽게 2세트를 따냈다.
현재 경기에서 내가 하려고 하는 바가 그것이다.
7전 4선승제로 진행되는 결승전.
당장의 승리가 아닌,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그러한 이유로 네네톤을 밴했고 야흐오를 선픽했다.
"대회에서 리픈이라니.. 라인 스왑으로 카운터 쳐버리죠?"
"그럼 야흐오도 힘들지 않나?"
"에이, 리픈보다는 버틸 만하지 그 장막도 있잖아. 실드도 있고."
야흐오 대 리픈의 라인전 구도.
팀원들도 아는 바가 있는지 대화가 오간다.
확실히 둘의 상성은 최악에 가깝다.
"스왑해서 좋을 게 없으니까 그냥 해."
"리픈이 평타만 쳐도 이길 거 같은데.."
"니가 하면 그렇겠지. 내가 하면 안 그래."
"힝.."
신규 챔피언 야흐오가 출시되고 2주쯤 지났을까.
챔피언에 대한 분석은 어느 정도 되었다.
쿡야 애들은 물론 상대도 파훼법을 알고 있다.
장막으로 스킬 막을 게 없는 챔피언을 하면 그만이다.
즉, 근거리 챔피언으로 카운터를 치면 된다.
대표적인 챔피언이 두 가지.
네네톤, 그리고 저 리픈이다.
'솔로랭크 모스트에 리픈이 있었지.'
상대의 챔피언 폭을 조사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아니겠는가.
나우갓은 네네톤 장인이지만 다른 챔피언들도 두루 다룰 줄 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이 바로 리픈.
최근 솔로랭크에서 승률과 픽률이 급상승하고 있는 다크호스다.
테이커가 롤드컵에서 미드 리픈으로 화제를 만들지 않았음에도 뜰 챔프는 역시 뜨는 모양이다.
미드는 아니고 탑과 정글이지만 어쨌든.
어디까지나 솔로랭크 전용 픽이고 대회에서 리픈을 하는 건 힘들다.
그럼에도 꺼내 들었다는 건 야흐오를 상대로 어지간한 자신이 있다는 의미다.
사각!
리픈과의 라인전이 시작된다.
검집에서 뽑은 예리한 도로 미니언을 썰어낸다.
조급해 하지 않고 막타만 천천히.
하지만 상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딜교환을 하고 싶어서 아주 근질근질 하나 본데.'
근접해서 평캔을 욱여넣고 싶은 듯 안달이 난 움직임이다.
하긴 평캔이란 테크닉이 공개적으로 알려진 지는 몇 달 되지 않았다.
현 시점에서 평캔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리픈 장인은 몇 없다.
그런데 자신은 그 평캔을 할 줄 아니 세상을 다 가진 듯 하겠지.
안타깝게도 리픈의 스킬 구조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어떻게 하면 야흐오로 리픈을 요리할 수 있을지.
그 과정에 대해서도 맛깔스런 레시피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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