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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라인전 단계에서 지나치게 잘 큰 티바나.
게임의 흐름은 간단하고 명료해진다.
그냥 들이박으면 막을 수가 없다.
쿠와앙-!
어느새 블루 지역을 돌아온 티바나가 미드 2차 포탑에 다이브를 친다.
이를 지키고 있는 네 명의 적.
당연히 CC기 연계로 붙들었다.
그렇게 맹공을 퍼부어도 죽을 생각을 안 한다.
<부시안 점멸 빠졌습니다. 영락검에 힌두인 터트려서 물어버리니까 답이 없어요.>
<티바나가 시간 끄는 사이에 미드 2차 깨졌고 이건 이대로 용까지 먹히겠네요.>
티바나는 CC기가 부족한 챔피언이다.
이를 합리적인 아이템 세팅으로 극복해냈다.
영락한 기사의 검과 힌두인의 철갑옷.
두 가지 모두 적을 둔화시키는 액티브를 가졌다.
몸까지 단단한 티바나가 원딜러를 강제로 물어버린다?
카이팅이고 나발이고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스치듯 맞았는데 원딜러의 반피가 나갔다.
<네네톤도 CS 수급에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성장을 못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티바나가 너무 잘 컸어요.>
<괴물입니다 괴물. 레벨부터 압도적으로 높아요. 그래도 티바나가 어쌔신의 신발이라 망정이지 아테나였으면.. 아, 팔고 바꿔버리네요.>
라인전 단계에서는 분명 어쌔신의 신발이 좋았다.
하지만 슬슬 한타 페이즈에 접어들면 CC기가 위협적이다.
골드가 넉넉한 덕에 아이템 선택 폭도 넓다.
강인함이 있는 아테나의 신발로 바꾸며 바늘 갑옷.
이제는 그 어떤 것도 티바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티바나 스플릿 돕니다. 이걸 네네톤이 막을 수가 있나요..?>
<티바나 입장에서 네네톤은 문제가 안되죠. 타워 맞아가면서 때리다가 정글몹 잡아서 피흡하고. 이러면 결국은 2차 나갑니다.>
라인전 단계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지던 성장 격차.
네네톤은 이제 거치적 거리지도 않는 존재다.
때려봤자 하나도 안 달고 달아봤자 피흡한다.
반드시 굴러갈 수밖에 없는 스노우볼.
로얄CN은 선택을 내려야 한다.
<일단 부시안이 내려가고 나머지 세 명이 바론 견제를 합니다.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긴 해요?>
<아직 게임 시간대가 많이 흐르지 않아서 네 명이 바론을 잡기에는 애매합니다. 스틸 위험도 있겠고요. 이대로 원딜러가 최후의 숨결 갖춰질 때까지 시간 벌어볼 작정 같습니다.>
유리할 때 바론 잘못 치다가 게임 비벼지는 수가 있다.
티바나의 스플릿으로 게임의 주도권을 가져간 쿡야 베이더스이나 결정타를 박기엔 시간이 이르다.
아직 아이템이 더 갖춰지고 레벨링도 더 해야 한다.
그런데 티바나는 이미 완료한지 오래다.
판단 또한 대단히 과감하다.
포탑을 끼고 있는 부시안을 향해 무작정 뛰어든다.
─세나찡 복수다!
부시안은 당연히 카이팅을 하며 도망갔다
네네톤의 도움도 있고 아군 진영인지라 어렵지 않아야 했다.
하나 문제가 있다면 티바나가 상상 이상의 괴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속도가 워낙 빠르고 CC기도 있어서 부시안 따라잡는 건 순식간이네요. 순식간에 잡아 뜯었습니다!>
<아까 점멸이 빠졌기 때문에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 같습니다. 영락검 하나 들었을 뿐인데 세네요.>
화염 숨결과 영락검의 %데미지.
그리고 현재 티바나는 기동성이 무척 좋다.
인간 상태로 화염 폭풍을 두르다가 궁극기를 쓰면 지속 시간이 리셋된다.
유령화급으로 오랫동안 유지되는 이동 속도의 증가는 원딜러의 도주란 선택지를 삭제시킨다.
카이팅 따위 당연 엄두도 낼 수 없다.
<네네톤이 때려보다가 역으로 쫓겨나죠? %뎀이라서 얄짤이 없습니다.>
<이거 티바나 안 막으면 억제탑까지 쭉 밀립니다? 결국 구리가스랑 거미여왕이 발에 땀나게 뛰어오는데.. 이러면 바론이 먹혀요.>
티바나가 조금 지나치게 잘 컸다.
네네톤이 붙잡고 부시안이 카이팅 하는 그림.
그냥 개무시하고 닥돌하니 부시안이 죽어버린다.
결국 나머지 팀원들이 부리나케 달려와 티바나를 포위한다.
<레이드! 레이드 시작했습니다. 바론 내줘도 된다. 어떻게 티바나라도 한 번 잡겠다! 작정을 했죠?>
<어차피 바론은 무조건 먹혔습니다. 티바나라도 잡으면 바론 버프를 버틸 수 있는 시간을 1분 가량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쉬워 보이지가 않아요.>
RPG 게임으로 따지면 보스몹 레이드다.
정말로 용 형상을 하고 있어서 그런 느낌이 난다.
일단 들어가는 것은 탱커부터.
루나가 밤하늘의 검을 던져 티바나를 묶었다.
안타깝게도 딜러 한 명은 죽었지만 충분하다.
그도 그럴 게 네 명이다.
쪽수 앞에 장사 없다고 붙들고서 패니 체력이 달기는 단다.
그런데 때리는 쪽도 만만치 않게 단다.
<구리가스 잘못 들어갔다가 점멸이랑 술통 폭탄 빠졌습니다. 정말 깜짝 놀라서 내빼버리네요.>
<점멸을 쓴 판단은 옳았습니다. 티바나가 만약 점멸로 물어 뜯었으면 죽었거든요. 숨결 맞히고 퍽퍽 때리니 데미지가 상상을 초월하네요.>
티바나가 이 정도로 좋은 챔피언이었던가.
괴물처럼 잘 큰 티바나를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어떻게 한 번 잡기는 했으나 끝이 아니다.
RPG게임과 달리 리젠 시간이 상당히 빠르다.
이윽고 보스몹이 다시 태어났다.
더욱 강력해진 모습으로 말이다.
<스킬 포식자에 영약까지 사버렸습니다. 다섯 명이 점사를 하지 않는 이상 티바나는 절대 못 죽입니다.>
<와, 괴물이라는 말 밖에 나오지가 않네요. 보통 하나가 잘 커도 어떻게 점사를 잘하고 광역 스킬 최대한 맞히고 하면 한타를 비벼볼 수 있는데 안 보입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역전이 될지 보이지가 않습니다.>
게임 스코어가 엄청나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3대5.
게임 시간은 이제 겨우 25분이다.
중계진들의 난리법석과는 달리 게임은 의외로 박터지지 않았다.
지금껏 제대로 한타가 일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티바나 하나에 휘둘리다 보니 한타 자체가 일어날 일이 없다.
그렇게 무난하게 갔음에도 티바나의 성장이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더우니 버빈이 고개를 저으며 게임의 상황을 읊는다.
<티바나의 분당 CS가 12개에 가까워졌습니다. 자기 CS 다 먹고, 적 정글까지 빼먹고. 거미여왕은 자연스럽게 말라 죽었습니다.>
<거미여왕은 이제 실뭉치 셔틀이에요. 한타 존재감이 서포터 이하입니다. 이대로 네 명이 탑 밀고, 티바나가 봇 밀면 게임 굳혀지는 그림입니다.>
운영 캐리라는 것은 사실 팀원들의 호응에 기대는 바가 있다.
내가 여기서 이 정도 어그로 끌어주면 위에서 이득 봐야지.
그런데 팀원들이 기대한 만큼 못해준다면?
스플릿을 하는 입장에서 게임이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하지만 티비나는 혼자서 다해 먹는다.
압도적으로 성장해 다이브를 척척 해낸다.
정글로 사용될 때는 딜도 탱도 이니시도 애매한 챔피언이 탑으로 쓰이니 만능이다.
이윽고 게임의 종지부가 찍히게 될 마지막 한타가 열렸다.
<더 뒷걸음질 칠 공간이 없습니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뒤로 물리면 그대로 낭떠러지. 게임, 아니 결승전이 끝납니다!>
<어떻게 기적 같은 카이팅과 그림 같은 스킬 연계 들어가면서 한타 이기는 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힘들겠지만 해야 합니다.>
억지라는 것은 해설자들이 더욱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
희망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중요도가 낮은 대회도 아니고 결승전이다.
중계진으로서는 입장이 굉장히 난처하다.
─블루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이미 철거 직전이었던 봇라인의 억제탑이 파괴되고 말았다.
나머지 네 명의 쿡야 선수들이 진격하는 탑도 시간 문제다.
사실상 내주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다.
그렇다고 내주면 미래가 어두컴컴하다.
우물쭈물하는 로얄CN의 판단을 도와주려는 듯 티바나가 움직였다.
네 명의 선수들이 지키고 있는 봇 억제 포탑.
무섭지도 않은지 용으로 화해 냅다 덮쳐버렸다.
쿠와앙-!
홀로 로얄CN과 포탑의 맹공을 받았음에도 끄떡없다.
오히려 티바나는 앞으로 진격하고 로얄CN은 슬금슬금 뒤로 뺀다.
이미 마음에서, 패기에서 기세가 밀렸다.
─블루팀의 억제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로얄CN이 뒷걸음질 친 순간 미래는 사라졌다.
내줘서는 안될 구역에 입성을 허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 미드 라인 또한 웨이브가 좋지 않다.
<순식간에 3억제탑이 완성됐습니다.. 시간 차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한타를 두 번 정도 대승 하지 않는 이상 재생할 시간은 못 법니다.>
<각 라인 마다 거대 미니언 두 마리씩 나오고 있고, 티바나는 다시 미니언 때려서 궁극기 채우고 있습니다. 여기서 끝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쌍둥이 포탑을 끼고 결사항전을 한다 한들 무사할 수 있을까.
방어력300에 마법 저항력 200이 넘은 티바나다.
어느새 피흡으로 체력을 적지 않게 회복한 상태다.
쿠와앙-!
쌍둥이 포탑을 무시한 채 대놓고 덮친다.
티바나가 지나간 자리에 불길이 요동친다.
로얄CN은 그 불길의 벽을 넘어갈 수 없다.
넘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가야만 한다.
<네네톤이 궁 켜고 들어가긴 합니다만.. 파루스의 딜에 버틸 수가 없죠.>
<파루스도 %뎀이 강력해서 바늘 갑옷도 안 나온 네네톤은 순식간입니다. 그에 반해 티바나는 안 죽습니다. 진짜 괴물! 괴물입니다!>
지역별 LPL에 이어 대표전까지.
석 달간 치러진 로드 오브 로드 프로 리그가 막을 내리려 한다.
아쉬움따위 남지 않을 압도적인 경기력과 존재감.
쿡야 베이더스가 우승을 확정 짓는다.
<넥서스 파괴되면서 쿡야가 네 번째 승리를 거머쥡니다. 4대0! 이로써 LPL의 영광스러운 우승팀이 결정되었습니다. 쿡야~~ 베이더스~!>
캐스터 카오야의 외침과 동시에 함성과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밤하늘의 위로 수 개의 폭죽이 쏘아지며 우승팀의 탄생을 축하한다.
하늘 위에서 바라본다면 낭만이 느껴지는 풍경이 아닐까.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들은 축제 분위기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쿡야 베이더스의 부스 안이 조명된다.
<불과 5개월 전에 결성되어 이번 시즌 처음 LPL에 진출했습니다. 믿겨지십니까? 누가 이 팀을 신생팀이라 생각을 했겠습니까.>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닙니다. 실수도 있었고, 패배도 없지 않았습니다. 상해LPL에서부터 쭉 중계를 해왔지만 팀의 성장이 정말 눈부십니다. 올마스터라는 사령탑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기적을 써내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질긴 악연이다.
더우니 버빈으로서는 정말 일이 많았다.
하지만 끝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하는 실력을 입증해왔다.
올마스터, 그로 인해 정말 많은 것이 변화했다.
중국 현지 당연한 듯 산재해있던 차별 의식.
외국 선수에 대한 선입견이 씻은 듯 옅어졌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어쩌면 또 이기적인 사람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에는 한 마디 하면 된다.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프로게이머가 누구냐.
헤이샤오?
그리고 또.
누구도 감히 토를 달지 못한다.
그만큼 인상에 지워지지 않을 경기력을 선보였다.
만약 가장 재밌었던, 즐거웠던, 화제가 되었던 시즌을 뽑는다면 2013년의 오늘이 되리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머 시즌이 조금 많이 뒤늦게 막을 내린다.
<쿡야 베이더스의 선수들 일어났습니다.. 단상, 아니 반대편 부스로 넘어가네요. 지난 준결승전에서도 있었던 창면이죠. 참으로 훈훈합니다.>
<로얄CN도 아쉬움이 남겠지만 경기는 끝났고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 합니다. 악수를 마친 양 팀 선수들이 단상 위로 올라옵니다!>
혼이 빠진 듯 책상에 늘어 붙어버린 나우갓.
그런 나우갓의 어깨를 툭 쳐서 세우는 우직.
고스란히 카메라로 방송되며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확실히 멘탈이 나갈 만한 상황이다.
결승전 네 경기 중 세 경기가 탑 차이로 종결지어졌다.
단 한 번 미드 차이로 패배한 차도리는 얼굴이 조금 굳어진 정도.
그렇게 양 팀 선수들이 악수를 마치고 단상 위로 올라온다.
한 쪽은 승자, 다른 한 쪽은 패자.
야유도, 진상도 없이 관중들이 환영해준다.
그 당연한 광경이 놀라울 수밖에 없는 지난 석 달이었다.
<실제 올림픽 트로피를 모델로 순금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어떤 나라, 어느 대회에서 이만한 위엄을 자랑하는 트로피가 존재했겠습니까?>
<오직 세계의 중심, 중국에서만 가능한 스케일입니다. 이어서 선수들의 인터뷰와 함께 수상식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가장 많은 판돈이 오가는 중국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미래.
어떻게 변화할지는 정말 아무도 모를 일이다.
중국, 아니 세계의 E-스포츠는 또 한 차례의 특이점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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