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01 인천공항 상륙작전 =========================
한국의 롤챔스 윈터 시즌이 끝난지 이주일 가량.
북미와 유럽 또한 차차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게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래딧에서도 최근 메타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저 엿 같은 악어는 언제까지 나오는 거야?
징글맞은 도마뱀과 식칼맨도 마찬가지야.
파밍파밍 절대 안 싸워.
서로 싸워봤자 못 딴다는 걸 드디어 깨닫게 된 거지.
└난 이미 포기했어. 그걸 아니까 옵저버도 탑을 안 비추잖아.
└um.. 선수들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게 좋지 않을까?
글쓴이-탑만 그러면 말도 안 해. 미드도 별반 다를 게 없다고.
한국보다는 비교적 사정이 낫다.
작정하고 후반을 지향하는 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 비하면 지루하긴 마찬가지다.
프로게이머들에게 있어 성적을 내는 건 가장 큰 목표다.
쇼맨십도 결국은 성적이 잘 나올 때나 가끔 할 수 있는 거다.
결정적으로 이번 시즌의 메타 자체가 그냥 재미가 없다.
─저거 봐, 미달리가 창을 맞혔어!
한 대 더 맞히면 포탑을 깰 수 있지 않을까?
아니야, 구리가스가 술을 마셔서 체력을 회복하고 있어!
앞으로 두 대는 더 맞혀야 된다고 젠장할!
이 빌어먹을 것들이 매 경기에서 반복되는 게 현 대회 메타야.
놀라운 건 저 장면들이 가장 박진감 넘치는 요소라는 거지.
└LOLOLOL 가끔 챔피언도 바뀌지. 저거 봐, 직트의 물풍선을 랄라가 실드로 막아냈어!
└미드의 라인클리어를 줄여야 해. 수성 하는 쪽의 어드밴티지가 너무 큰 것 같아.
└무슨 수로 줄인다는 거야? 데미지를 너프해? 아니면 미니언의 체력을 올려?
└어떤 쪽으로 해도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아. 무리수는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야.
초반에 어이없는 한 번의 실수로 게임이 확 기울어버린다.
인베에서 킬 한 번 먹으면 스노우볼 확 굴러가고.
정글러가 카정 당하면 라이너들도 따라서 망해버리고.
시즌4에 새로 등장한 장신구 와드와 선취점의 골드 획득량을 낮춘 취지는 바로 그것일 테다.
솔로랭크는 그럭저럭 긍정적인 영향을 몰고 왔다.
하지만 대회에서는 게임사의 의도 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섣부른 싸움을 지양하는 대회 무대에서 싸울 이유가 아예 사라졌다.
어차피 싸워봤자 별로 이득 보는 것도 없는데?
오히려 조합을 좋게 가져가서 안정적으로 한타를 보는 게 낫다.
천상계와 대회에서는 이미 그것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이거 그냥 시즌2로 회귀했다고 생각하면 편하지 않아?
그때도 라인전보다는 한타 위주로 갔으니까.
어떻게 보면 시즌3이 너무 치고 박고 싸웠던 거지.
└적어도 보는 입장에서는 급박한 게 나아. 그때는 최소한 한타는 했잖아?
└용 젠될 때마다 한타하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지.
└지금은 용 내주고 타워 챙기면서 경기 빌어먹게 길게 보잖아.
글쓴이-하긴 요즘은 용 중요도가 많이 내려가긴 했어.
과거에는 용을 내주면 게임을 진 것처럼 부들부들 했다.
용이 주는 글로벌 골드가 상당하다 보니 무시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달리해보자.
어차피 용 하나 먹는 거나 포탑 하나 먹는 거나 글로벌 골드는 비슷하다?
그리고 포탑을 먼저 깨면 운영적으로 주도권을 갖는다.
상대 입장에서 압박이 조금은 어려워진다.
즉, 게임이 장기전에 들어가기 쉬워졌다.
─결국은 이거잖아.
상대가 밀고 들어오면 수성하고.
용 먹으려고 하면 반대 쪽 타워 돌려 깎고.
그런 식으로 시간 끌면서 장기전 들어가는 거지.
└결국 한타 조합 좋은 쪽이 게임을 비비더라.
└색다른 시도 제법 나왔는데 결국은 막혔어GG
└탈력이랑 힐이 너무 좋아져서 그래. 공격하는 쪽이 심각하게 불리해.
시즌4 패치 이후로 공격적인 메타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밴과 조합, 그리고 새로운 챔피언들에 따라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이를 테면 미드 르풀랑과 정글 빵테온 등.
스노우볼 굴리기 좋은 챔피언들이 새로이 부상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수 번 패치가 있었다.
그 방향성이 전부 수비 쪽에 웃어줬다.
원래 로드 오브 로드 게임사가 자신들의 의도대로 게임을 안 하면 난리가 난다.
결국 게임사의 의도대로 되기는 됐다.
더 이상 유저들이 조절할 수 있는 밸런스 범위를 벗어났다.
프로들도 재밌는 게임 당연히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공격적으로 하면 성적이 안 나온다.
수비적으로 푸는 것만이 현 메타의 해법이다.
세계의 여러 지역의 롤챔스에서 이미 증명이 되었다.
그 결과가 팬들로서는 썩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고착화된 메타.
장기전이 당연하게 된 게임.
줄어들 수밖에 없는 롤챔스에 대한 관심.
게임사가 무언가 판단을 내리지 않는 한 악순환은 계속 된다.
하지만 자신들인 옳은 패치만 한다고 철썩 같이 믿는 게임사가 과연 번복을 할까?
이변이라도 있지 않는 이상 현재의 메타는 한동안은 이어질 것이다.
언제나 이변을 몰고 다니는 누군가가 인천 공항에 상륙했다.
.
.
.
* * *
공항에 처음 발을 디뎌서 감동한 부분은 정말로 별 게 아니었다.
공항 수속 절차를 밟을 때 나는 내국인으로 분류가 된다.
근 반년 간 그 당연함을 느끼고 살지 못했다.
우리나라 사람인 덕에 심사 과정이 굉장히 간략하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점이 또 한 가지.
공항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
일부러 사람들이 적은 밤 시간대를 택한 보람이 있다.
'아, 시끌벅적 하지 않아서 좋다.'
나라가 넓은 중국에서는 도시간의 이동을 비행기로 해결할 때가 많다.
기차나 차로 갔다가는 며칠씩 걸려버리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저러 일이 바빴던 탓에 자주 쏘다녀야 했다.
주제에 맞지도 않는 이미지 메이킹.
그리고 언론에서 워낙 소란을 떨어댔다.
TV에서나 보던 공항 난리법석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다.
가능한 숨겨서 비행기 예약을 했음에도 신기하다.
어찌 알았는지 공항에서 내리면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냥 어쩌다 마주친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버젓이 팻말을 들고서 말이다.
'그래도 역시 한국까지 쫓아올 수는 없겠지.'
한국에서도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귀국 날짜를 상당히 신경 써서 잡았다.
특히 오늘은 괜시리 발목 잡힐 일 없으면 싶다.
타박타박.
입국 수속을 마치고 걸어 나왔다.
여느 공항처럼 떠들썩하긴 하지만 나를 알아보는 듯한 눈치는 없다.
조금 자의식 과잉이긴 한데 최근 워낙 시달려서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쭉 걸어나가자 주위가 조금은 한산해진다.
세계에서도 손 꼽히는 시설을 자랑한다는 인천 공항답게 쉼터가 참 많다.
특히 앉을 공간이 많다는 게 인천 공항의 특징이다.
그럼에도 굳이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를 찾아갔다.
자연스럽게 착석하여 들고 있던 캐리어를 내려 놓는다.
그리고 옆 사람의 어깨 위에 손을 걸친다.
"어쭈구리?"
"뭐 어때."
작은 머리가 기울어지며 내 오른 어깨를 툭! 겁나 세게 때린다.
모양새만 보면 기댄 것 같지만 순간 어깨뼈가 빠지는 줄 알았다.
오른손이 움직이는 것 보면 다행히 나가지는 않은 듯하다.
"애기야, 조금 많이 아프다."
"애기한테 한 번 죽어볼래?"
예은이 왼쪽 팔꿈치로 내 배를 격하게 찍었다.
감정을 실은 듯 상당히 육중한 일격이다.
남들 눈에는 아프게 보일지언정 나로서는 그리웠던 감각이다.
"근데 더 때리면 정말로 위장이 파열될지도 몰라.."
"그래서 싫어?"
"그건 아니고."
오른팔에 힘이 들어간다.
꼭 힘을 주지 않아도 도망갈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다.
마침 예은도 생각이 맞아 떨어졌는지 파고들듯 안겨온다.
익숙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틀림없이 예은의 것이다.
"살 빠졌어? 얼굴이 아주 반쪽이 됐네."
"원래 내 얼굴이 니 반쪽쯤 되는데? 이 얼큰아."
"네가 작은 거지 내가 큰 게 아니야."
절대로 내 얼굴은 일반인의 평균치다.
이 녀석 머리통이 너무 작은 것 뿐이다.
왼손을 올려 머리칼을 쓰담자 익숙한 촉감이다.
부드럽게 손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든다.
"여기 공항이거든?"
"조금만 더 이대로 있자. 혹시 바빠?"
"아니."
아무리 한적한 장소라고는 해도 공항이다.
주위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없을 리 없다.
그래도 크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는 한 괜찮다고 본다.
약속 장소를 조금 멀리 잡은데는 그러한 사정도 있었다.
만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껴안으면 주위 사람들 보기 민망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곳에서라면 웬만한 스킨십은 허용이 된다.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
"바보, 언제적 드립이야 대체. 그리고.. 지금은 안돼."
고개를 숙이자 예은이 내 입술에 손가락을 얹는다.
가늘게 인상까지 쓴 걸로 미루어봐 진심인 듯하다.
포옹은 되면서 키스는 안된다니.
장난 같은 멘트로 찌르긴 했지만 내심은 결코 장난이 아니다.
나로서는 굉장히 참기 힘든 유혹이다.
아니, 나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남자들이 그러하리라.
혹시 몰라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를 알아본 듯한 사람은 없다.
나도 예은도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고 정면은 인파가 지나가지 않는 장소다.
솔직히 살짝만 하면 별 일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절대 안된다고 선을 그으니 속이 타들어간다.
"살짝도 안돼?"
"..참아."
완강히 거부 의사를 내비쳐온다.
아니, 나도 참을성이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곧 그러기가 민망한 상황이 와서 그러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안될 이유가 없다.
조금 더 밀어붙이자 우물쭈물.
무언은 긍정이라고 빠르게 해치우자.
고개를 들이밀자 예은이 나를 힘주어 밀었다.
"아니 그.."
"왜 그러는 건데..?"
공공장소에서 그렇고 그런 짓 하는 건 분명 엄청난 민폐다.
그래도 안 들키면 땡.
정도를 지키는 선에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너무 거부만 하면 삐지는 수가 있다.
'혹시 저녁으로 삼겹살에 마늘이라도 싸 먹고 온 건 아닐 테고.'
예은의 얼굴을 지긋이 노려보았다.
역시 기분 탓이 아니었는지 조금 말라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렀다.
머뭇거리던 예은의 입술이 얕게 띄어졌다.
"고백할 게 있는데.. 듣고 화내지 마?"
"들어보고 나서."
사귀게 된 이후 서로 아무것도 숨기지 말자.
이야기를 꺼냈던 건 분명 예은이었다.
그런 예은이 나에게 고백할 게 있다라.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섭섭할 수밖에 없다.
마음을 먹는 데만 1분 남짓의 시간.
호쾌한 평소 성격을 생각한다면 의문이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들려온 예은의 한 마디는 도저히 믿기 힘든 부류의 이야기였다.
"나 …펴버렸어."
예은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
.
.
* * *
솔직하게 조금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생각을 깊게 해보면 내 잘못이 맞다.
중국으로 가기 전 날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예은의 심리 상태는 상당히 불안했다.
운이 좋아 하루 결항된 탓에 이별의 시간을 오래 가지게 되었지만 그 뿐.
반년의 시간 동안 예은은 나 이상으로 당연 힘들었을 것이다.
"많이.. 충격이야?"
어떻게 첫 마디를 꺼내야 할까.
내 대답이 늦어지자 예은이 걱정스러운 듯 물어온다.
슬슬 시간도 되었고 빠르게 마무리를 짓는 게 맞아 보인다.
"생각을 해봤는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어떤 기분이었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날 만나기 전부터 예은과 술은 정말 뗄래야 땔 수 없는 관계였다.
그 좋아하던 술을 끊었다.
아무리 다음 날 숙취가 문제가 된다고 해도 예은에게 있어 거의 유일한 스트레스 풀이 방법이었다.
상당히 좋아하는 기호 식품이라 컬렉션까지 있었을 정도다.
술을 끊게 된 동안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겠는가.
엎친 데 덮친 격 학업과 일도 산처럼 쌓여 압박해온다.
예은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건 어떻게 보면 최선이라 생각된다.
어린 나이도 아니고 성인이다.
따지고 보면 못할 것도 없다.
담배도 엄연한 기호 식품의 한 갈래니까.
"그래도 나로서는 끊었으면 하는데."
"나도 딱히 피고 싶어서 핀 게 아니다 뭐.."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맞다.
만약 나를 만나기 전부터 쭉 펴왔다면 이해를 해줬을 것이다.
그 정도로 시시콜콜하게 따질 만큼 내가 쫀쫀하지는 않다.
하지만 예은이 원해서 핀 건 아니다.
더욱이 담배를 피게 된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
예쁜 연인의 입에 어울리지 않는 게 물려있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면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릴 것 같다.
"알고 있어. 금방 끊을 테니까."
"담배 끊는다는 사람들 다 그 말해놓고 못 지키더라."
"윽.. 사람들 듣잖아."
본인도 많이 찔리긴 하는지 내 허벅지를 꼬집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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