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02 인천공항 상륙작전 =========================
사람이 기계가 아닌데 어찌 바르게만 살 수 있겠는가.
살다 보면 누구나 탈선을 할 수 있다.
카트라이더 초고수도 가끔 키보드를 잘못 누를 때가 있는 법이다.
역주행만 아니라면 조금 돌아가도 괜찮은 게 인생이리라.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조금 해보았다.
"그래도 뽀뽀할 때 담배향이 나면 좀 그런데."
"..그럴까봐 안 한다고 했지."
모르고 있었다면 분명 깜짝 놀랐을 거다.
알게 된 이상, 이해해줄 생각이 있는 이상 괜찮다.
조금 치근덕거리니 자연스럽게 허락한다.
오래간만의 예은의 입술은 정말 달콤했다.
"딱히 티 안 나는데?"
"그야.. 껌 씹었으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예은의 표정이 영 불편하다.
말 안 했으면 분명 절대 눈치 못 챘을 텐데.
설사 알았다고 해도 내가 따질 입장은 아니다.
"털어 놔줘서 고마워."
"지금까지 안 말한 건 화 안 내?"
"선의의 거짓말은 괜찮아."
정신적으로 힘든 나머지 담배를 입에 댔다.
만약 알았다면 내가 어떤 반응을 했을까.
나를 걱정해서 꾹 참고 있었을 것이다.
조금 탈선 비스무리하게 했다곤 하지만 바로 잡을 수 있다.
꼭 피고 싶다면 이해해줄 요량도 있다.
본인이 많이 신경 쓰고 있는 걸 보아하니 그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정말 냄새 안 났지?"
"안 났대두. 혀 넣어보면 또 모르지만."
오랜만의 대면, 연인으로서의 스킨십.
부끄러운지 예은이 팔꿈치로 나를 쿡쿡 찔러온다.
아까부터 파열될 것 같던 위장이 위태위태하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은 잠시 멈춰야 할 때다.
의자에 앉은지 30분 가량 지났을까.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했다.
내가 이래서 줄기차게 스킨십을 주장했었다.
잘못하면 오늘 밤까지 내내 참아야 될지 모른다.
"뭐야, 이 애는?"
첫 대면부터 역시 말썽이 생겼다.
예은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흘겨본다.
나와 함께 중국에서 건너온 한 사람.
조금 뒤늦게 입국 심사를 마친 츠위가 찾아왔다.
외국인의 경우 내국인보다 심사 과정이 길다.
대기열도 길어서 몇 시간씩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대를 고른 덕에 30분으로 끝났다.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행이 아니지만 말이다.
"애라는 게 젊다는 걸 의미하는 건가요? 제가 한국어가 조금 미숙해서요."
"아~ 한국어가 미숙하구나. 애라는 건 아이의 준말로 꼬맹이라고도 하는데 찾아보면 부족한 어휘 향상에 도움이 될 거야."
"그런가요? 호의에 감사드려요. 기왕 감사드리는 김에 하나 더 여쭙겠는데 한국에선 연상인 여성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거 맞죠?"
"그렇단다. 그런데 한국어를 아주 잘~ 아는 것 같네?"
두 처자가 나긋나긋한 얼굴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아, 한국어가 미숙해서 배려를 해주는구나.
츠위는 어지간한 한국 사람보다 한국말을 잘한다.
만나자마자 이렇게 될 거란 사실 조금 예상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츠위가 워낙 완강히 주장을 해왔다.
가는 길을 꼭 배웅하고 싶다며 막무가내였다.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츠위는 처음 봤다.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했고 예은에게도 당연히 말을 하고 왔다.
"오는 길에 말 했던 거.. 기억 나지?"
"..몰라."
내 물음에 예은이 앙칼지게 답해 온다.
절대로 알고 있다는 대답이다.
내가 난데없이 둘을 대면 시킨 게 아니다.
츠위에 대해서는 숨김없이 털어 놓은지 오래다.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어 같이 살고는 있다.
같이 살고 있을 뿐 만에 하나도 그럴 일은 없다.
나를 믿는다고 해주었던 예은이다.
하지만 나를 믿는 거지 츠위를 신뢰하는 건 아닌 듯싶다.
"와아, 이렇게 이쁜 언니가 여자친구 분이셨구나. 우리나라에 있을 때 일들이 조금 있었는데. 끝까지 한 눈 안 팔 만도 하네요."
"당연하지. 나와 시현이 어떤 사이인데. 아니면 그쪽 여자가 매력이 하나도 없던 것일 수도 있고."
"언니 박력 있으시다. 오빠가 언니한테 아주 꽉 잡혀 사나 봐요."
얼핏 보면 츠위는 굉장히 예의를 지키는 것 같지만 또 그렇지가 않다.
여자들의 싸움에서 언니라는 말은 존칭이 아니라는 사실이 기억난다.
의도적으로 연상이라는 걸, 나이가 많다는 걸 늘고 물어진다고 하던가.
대놓고 비꼬는 예은보다는 낫지만 둘 사이의 기류가 찌릿찌릿하다.
'계속 이러고 있으면 아무래도 눈에 띄겠지.'
예은도 츠위도 인터넷 짤방으로도 찾기 힘든 미인이다.
내가 츠위를 애라고 놀리는 건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아서 그런 거다.
앞으로 몇 년만 지나도 대단한 미인이 될 상이라는 건 인정한다.
가만히만 있어도 사람들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싸우고 있으면 발걸음이 멈추고 만다.
예은은 모자를 쓰고 왔지만 츠위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모자를 썼다고 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생길지 모른다.
"일단.. 두 사람 다 자리 좀 옮기자."
"나 아직 할 말 안 끝났는데?"
"저도 언니와 조금 더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한 건 나의 큰 실수인 듯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다음 날 신문이든 인터넷이든 기사가 실리는 건 사양이다.
간신히 설득해서 발걸음을 떼게 만들 수 있었다.
언뜻 봐도 미인인 예은과 츠위를 데리고 다니니 뒤통수에 시선이 뜨겁다.
생각해 볼 것도 없는 일이다.
저 새끼는 뭐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위대한 일은 하지도 않았고, 할 예정도 없다.
부디 관심 꺼주길 바라며 공항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 * *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금방 구전이 된다.
대충 그런 의미를 가진 속담이다.
편지 하나 보내기 힘들었던 과거에도 그러했다.
하물며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지구 건너편까지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한 번 이슈가 되니 퍼지는 건 순식간이다.
세계 각지의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난리가 났다
─올마스터 귀국한 거 실화냐?
카더라 통신이긴 한데 신빙성 있다고 카더라.
어쨌든 맞아, 안 맞아?
나도 내가 뭔 말하는지 모르겠다.
└술 챘냐? 뭔 소리 하는 겨ㅋㅋ
└그거 출처가 그냥 추측일 걸? 올마가 요즘 중국에서 활동 뜸해서 나올 말일 텐데.
글쓴이-나도 그건 아는데 반년인가 있다가 온다고도 했잖아?
└뭐, 공식적으로 표명을 한 것도 아니고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
어디까지나 카더라 통신이긴 하다.
하지만 원래 소문이라는 게 그러한 과정으로 굳어지는 법이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겠는가?
연기 안 나면 불쏘시개 좀 넣으면 된다.
화제가 불거지다 보니 사실상 확정이 난 분위기다.
그만큼 사람들은 올마스터가 와주기를 바라고 있다.
현재 로드 오브 로드 팬들의 마음은 더없이 절실하다.
─요즘 천상계 메타 보면 답도 없던데.
망한 팀도 랄라나 직트 있으면 어떻게든 버텨서 후반 봄ㅋㅋ
수성 능력이 하도 좋아서 실수 아닌 이상 안 뚫려.
특히 암살자 챔피언들이 탈력에 마크 당하는 게 크더라.
└가짜에어 독수리가 써먹었던 거네. 미드랑 서포터가 탈력 드는 거.
└탈력 데미지 감소가 50%라 걸리면 그냥 바보 됨.
└개인의 하드 캐리를 극한으로 막는 패치지. 롤은 그 재미에 보는 건데 게임사가 멍청이들이야.
└지금 메타는 올마스터가 와도 캐리 안됨ㅈㅈ
지난 롤챔스 윈터 시즌의 결승전은 엄청난 지탄을 받았다.
게임 이기는데 무슨 목숨을 걸었나.
맞다, 프로게이머는 목숨 걸고 경기에 임해야 함이 옳다.
게임에 미치지 않는 자는 프로게이머를 목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팬이 있기에 프로게이머도 있을 수 있다.
가짜에어 독수리는 갤럭시 크래프트로 따지면 3연벙 같은 플레이를 해버린 셈이다.
─3연벙은 빨리 끝나기라도 했지.
매 세트를 1시간 동안 작정하고 질질 끌면 어떡하냐..
캐스터랑 해설자가 불쌍할 지경이더라.
우리는 재미없으면 안 보면 그만인데 중계진은 붙잡고 해설해야 되잖아.
└극한 직업이지. 이건 해설자 고문 메타임.
└ㅋㅋㅋㅋㅋ근데 이건 ㄹㅇ 패치가 답이 맞아.
└게임사 놈들 해명글 못 봄? 아직 정착이 안돼서 그렇다네ㅋㅋ
팬들의 절실함.
꼬라지를 보건데 스프링 시즌도 빼박이다.
만약 가짜에어 독수리만의 문제였다면 욕 먹는 정도로 넘어갔을 것이다.
현재 천상계 메타도 점점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몇몇 프로들은 SNS 등을 통해 답답함을 토로하기까지 했다.
재밌는 게임 하고 싶어도 메타가 마땅치 않다.
이대로 흘러 간다면 스프링 시즌은 필히 그렇게 될 것이다.
흔히 말하는 보험이다.
만약 그런 게임을 해도 이건 메타의 잘못이니 이해를 해달라.
안타깝게도 좋게좋게 넘어갈 수 있는 부류의 일이 아니다.
─이게 다 갱붐이 벽을 못 넘어서 그래.
갱붐이 벽을 넘었으면 올마스터도 한국에 있었겠고.
현재 노잼 메타도 어떻게든 해결을 해줬겠지.
아니, 이건 설마 큰 그림 그린 건가?
└가짜에어 독수리의 우승을 위한 큰 그림?
└그래도 갱붐이 벽을 못 넘어서 LPL우승했다며 거기서 잘 나간다던데.
└갱붐 효과의 끝은 어디인가..
└어쨌든 올마스터 한국 다시 돌아온다며? 그럼 되는 거 아니야?
아직 확실하지 않음에도 기대는 부풀어간다.
설령 당장이 아니어도 좋다.
스프링 시즌에는 분명 돌아온다고 확언했다.
단 한 번도 팬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약속을 지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를 바라는 건 비단 한국 팬들만이 아니다.
서양권 최대 규모의 로드 오브 로드 팬사이트.
래딧에서도 그에게 크게 하나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곧 LCF시즌인데 에러갓 돌아와 주려나?
듣기로 중국 계약도 끝나간다더라.
한국 스프링 시즌도 아직 한참 남았고.
아니, 이 참에 다시 CLC로 복귀했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되면 더 바랄 게 없지!
└에러갓이 온다면 나는 바로 비행기표 끊을 거야.
└um.. 계약도 계약이지만 시간상 무리라고 보이는데.
글쓴이-그런 시시콜콜한 건 몰라. 그냥 질러보는 거지.
올마스터, 그의 팬은 한국과 중국에만 있지 않다.
서양권에는 Unknown Error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과거 그가 데뷔를 했던 지역이 북미권이다.
또한 LCF에서 전설적인 명경기를 선보였다.
끈임없이 회자가 되며 오늘날에도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미역슨과 행했던 자드 대 자드의 명승부.
LCF 결승전 마지막 세트에서의 일이었다.
이미 유튜브를 통해 수천만 번 살해 당했다.
─미역슨 입장에선 정말 피가 끓겠다.
마지막 세트까지 가서 진 것도 억울한데.
어떻게 그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언급이 되냐.
모르긴 몰라도 향후 몇 년 간은 우려먹을 듯.
└로드 오브 로드가 사라질 때까지 잊혀질 일은 없다고 봐.
└와, 그게 벌써 1년 전 일이네. 세월 빠르게 간다.
└당시면 많이 부족했을 때인데 지금 봐도 잘함.
└이번 LCF에서 리벤지 안되나? 자드 너프 돼서 좀 그러려나kk
최근 자드는 솔랭에서도 잘 안 쓰인다.
대회에서 몇 번 픽이 되긴 했으나 성과가 좋지 않다.
메타가 워낙 수비 쪽에 좋은 데다 너프.
너프를 심하게 먹은 탓에 주류픽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지난날의 뽕은 아직 빠지지 않았다.
설사 너프가 됐다고 해도, 이전처럼 날아다니지는 않는다 해도 보고 싶은 마음은 한결 같다.
두 사람의 리벤지 매치를 기대하는 팬들은 정말 많다.
팬들의 성원에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LCF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
카더라가 아닌 공식적인 확답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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