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04 인천공항 상륙작전 =========================
과거 예은과 나는 서로를 이성으로 보지 않았다.
친구 사이부터 정말 느리게 연인으로 발전해갔다.
이렇게 맺어지는 커플들은 의외로 흔하다.
남녀 사이에 친구가 없다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어찌 보면 가장 이상적인 커플 관계일지도 모른다.
서로에 대해 환상이 없으니 크게 실망할 일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안 생길 리 있겠는가.
대부분 이 한 가지 문제점은 겪게 된다고 한다.
한 마디로 서로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안다.
친누나나 동생이 예뻐도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당장은 몰라도 좀 길게 봤을 때 이성으로서 느끼기 힘들어진다.
연애라는 건 환상이 있어야 유지된다.
여자 사귀었으니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그런데 그 환상이 없거나 적다.
편한 점도 있지만 그만큼 안 좋은 점도 적지 않다.
"혼자 하는 거랑 지금이랑 뭐가 더 좋아?"
"..쳐맞을래?"
예은의 성격에 조금 하자가 있는 건 사실이다.
상당히 호쾌해서 만약 인터넷 상이었다면 철썩 같이 남자라고 여겼을 것이다.
친구 사이에서는 어드밴티지지만 연인 사이에서는 문제가 생길 만하다.
내가 연인을 만나는 건지, 아니면 부랄 친구를 만나는 건지.
헷갈리다 보면 결국 사랑을 의심하게 되고 헤어지는 계기가 된다.
나와 예은의 사이에서는 딱히 상관이 없어 보인다.
'웬만큼 이뻐야지.'
깨는 소리를 하면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안 들어본 게 아니다.
그리고 공감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건 외모가 살짝 아쉬울 때의 이야기고.
예은 같은 경우 내 이상형보다도 한참은 위다.
내 눈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거니와 한 가지.
비현실적인 나머지 가끔 아리송하곤 한다.
얘가 나랑 정말 사귀는 게 맞나.
하루에도 열댓 번씩 고민한 적도 있다.
지금도 하루에 한 번은 볼을 꼬집어본다.
만약 깨는 소리를 안 한다 거나.
인형처럼 가만히 있는다 거나.
예은이 참한 여성상이었다면?
그런 예은과는 분명히 사귀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이 너무 완벽해도 호감이 가지 않는다.
그런 여성과 어울리는 스펙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여기가 좋아, 아니면 여기가 좋아?"
"..그냥 닥치고 하지?"
"오, 짐승처럼 범해줬으면 좋겠어?"
"진짜 너 나중에 죽는.. 아흑..."
한 마디 한 마디 곱게 돌아오는 법은 없지만 반응은 정말 볼 만하다.
안 쪽 깊숙이 넣으면 어떻게 안절부절 침도 삼키지 못한다.
지금도 왼 뺨에 흘러내린 무언가에 빛이 반사돼 번쩍인다.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절대 한 마디를 지지 않는다.
평소 성깔이 뚜렷하게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런 면이 사랑스럽고 귀엽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나 할 거 같은데."
"빨리, 빨리 해.."
숨이 넘어가려는 듯 위태위태하다.
먼저 들이댄 주제에 꼴이 말이 아니다.
최대한 서둘러 첫 번째 정사를 끝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천천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생겼다.
"우리 애기가 어쩌다 밝히게 됐는지 들어나 보자."
"죽어볼 텨? 까불고 있어 정말.."
험상궂은 어투와는 달리 행동은 나긋나긋하다.
두 팔로 나를 꼬옥 끌어안은 채 바라봐온다.
평소 날카롭던 눈매가 풀려있는 상태다.
드물게도 이야기를 진행하기 좋은 상황이다.
"그러니까 내가 중국에 간 이후로 맛이 들리셨다?"
"..몰라, 다 니 잘못이야."
고개를 휙 돌리더니 볼을 부풀린다.
꼭 할 말 없으면 이런 반응을 보인다.
나도 딱히 지적할 입장도 아니고, 지적할 거리도 없다.
자기 위로 행위야 남자들은 거의 무조건 한다.
'정말 상상도 못했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오른다더니.
이렇게 새침떼기 같은 얼굴을 하고서 그런 짓을 한다라.
직접 보지 않았다면 듣고서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여자친구가 밝힌다면 사양하진 않겠지만 자기 위로 행위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누구 생각하면서 했어?"
"자꾸 까불면 다리를 분질러 놓는 수가 있다? 다 들어 놓고.."
예은이 하는 협박은 결코 말 뿐인 위협이 아니다.
언제 어느 때든 현실에서 이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럴 만한 힘과 행동력을 보유하고 계신다.
다행히도 프로게이머의 생명인 팔은 봐주는 듯싶지만 여차하면 다리 쪽은 분질러질지 모른다.
'뭐, 듣기는 들었는데.'
딱히 놀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순수하게 믿기지 않아서 그렇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잘 생기고 몸 좋은 남자들이 쌔고 쌨다.
"우엑, 상상만 해도 역겨우니까 헛소리 하지 마."
거짓 하나 없는 진심인 듯 표정 연기가 생생하다.
혀를 삐죽 내밀며 토하는 시늉을 한다.
예은이 이리 일편단심일지는 생각도 못했다.
중국 생활 중 야구 동영상을 시청했던 과거의 내가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너도 몸 엄청 좋아졌는데? 운동이라도 했어?"
"사진 찍히고 난리 난 탓에 말이야. 티가 많이 나나."
"글쎄에,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예은이 두 손으로 내 몸 이곳저곳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만져지는 입장이 되니 기분이 굉장히 묘하다.
심지어 허벅지와 엉덩이까지 손이 가서 더듬거린다.
"전체적으로 단단해졌네. 그리고 너 좀 무겁다?"
"살이 찐 건 아닌데 몸무게의 총량은 늘었더라. 무거우면 내려올까?"
"괜찮아. 뜨끈해서 맥반석 마사지 하는 거 같아."
뭔 소린진 모르겠지만 본인이 됐다면 괜찮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살짝 상체를 들어 여유 공간을 만들었다.
그 탓에 예은의 젖가슴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방금 침 삼켰지?"
"어쩔 수 없잖아. 생리 반응인데."
"짜식, 대꾸도 하고 많이 컸어."
이렇게 호탕한 부분이 일반적인 여자애들과 상이하다.
깬다기 보다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나에게 있어 정말로 취향인 매력이다.
예은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슬슬 쿨타임이 돌았다.
"한 번 더 어때?"
"아까처럼 꼬치꼬치 안 물으면."
나로서는 대화를 하며 천천히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뭐, 세세한 부분이야 차차 맞춰 나가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처음 했을 때 대략 파악을 끝내 놨다.
괜히 물어보며 반응을 봤던 게 아니다.
"분하지만.. 기분 좋아."
"좋으면 좋은 거지, 왜 분한데?"
"내가 이기고 싶었단 말이야."
대체 뭘 이기겠다는 건지.
지고 서는 못 사는 성격인 거 알고 있었지만 잠자리에서조차 말썽이다.
그런 부분까지 포함해 사랑스럽다.
거부하는 것보다야 적극적인 여친이 백배 천배 낫지 않겠는가.
서로 느끼는 데만 집중했기 때문일까.
두 번째의 정사는 먼젓번보다 빨리 끝났다.
몸에서 뜨거운 액체가 빠져나가고 기분 좋은 나른함이 덮쳐온다.
이대로 예은을 끌어안고 한숨 더 자고 싶은 기분이다.
"나 샤워할 거야. 몸 끈적끈적 해."
"한숨 더 자는 건?"
"각하."
내가 예은의 고집을 꺾었던 때는 살면서 한 번밖에 없다.
그 한 번으로 인해 예은이 반년 간 힘들었다는 사실을 안다.
앞으로 웬만한 건 양보를 해줄 생각이다.
딱히 호구 잡힌다는 건 아니지만 사소한 일쯤이야 괜찮지 않겠는가.
그런데 예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가자."
"샤워하러 간다며?"
"그러니까 같이 가자고 멍충아."
순간 무슨 말을 하나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혹시나 했다.
그 혹시나가 맞아버렸다.
아주 진득한 연인 사이에서나 한다는 그것.
남자로서 판타지의 영역에 있다는 그것.
설마 예은과 이런 날이 오리라 과거의 내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만 봐라. 닳겠다."
"물 온도 잘 조절했나 확인 한 거야 그냥.."
욕조에서 예은을 뒤로 껴안은 채 샤워기의 물을 맞고 있다.
어두컴컴했던 방 안과 달리 대놓고 보인다.
정면이 아니라 애매하긴 한데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세상 살다 이렇게 행복한 날이 오다니.'
예은의 허리춤을 감고 있는 손의 감촉이 더없이 생생하다.
결코 꿈이 아니다.
만지작만지작 손끝의 감촉이 장난 아니게 부드럽다.
"옛날엔 살이 조금 더 있었던 거 같은데."
"죽을래? 여기 침대 위 아니거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예은이 뒤를 돌아섰다.
조금 멈칫했지만 망설임은 지운 모양이다.
차려 입은 예은이 아름답고, 대충 입은 예은이 멋있다면 나체가 된 예은은 요염하다.
"아니, 난 정말 살이 있는 게 더 좋더라고."
"바보, 쫄긴. 이런 거나 달고 있는 주제에."
깜짝 놀랐다.
예은의 손을 펼쳐서 내 아랫도리의 물건을 확 잡아버렸다.
어디까지 대담해질 작정인지 이쯤 되면 궁금할 지경이다.
"오오, 커진다. 두 번이나 하고도 부족해?"
"..네가 만져서 그런 거잖아."
손을 움직여 위아래로 훑고 있다.
표정에서 짐작하건데 확실하다.
성적인 의미가 아닌 흥미 본위다.
한 마디로 재미가 들렸다.
"이렇게 만져주면 수도꼭지처럼 나오나?"
"이제 나올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그리 생각은 하고 있는데 상황이 좀 여의치 않게 흘러간다.
예은이 손으로 만져준다는 게 조금 많이 흥분이 된다.
게다가 목적은 장난이어도 상당히 적극적이다.
"세우면 내가 이긴 거다?"
"이겨서 뭘 어떻게 하려고.."
어느새 한 손이 아니라 두 손으로 만지작대고 있다.
처음에는 어설퍼서 간지러운 수준이었다.
어느 순간 긴장을 풀면 안되게 됐다.
아랫도리에 점점 피가 쏠린다.
"섰다. 내가 이겼지?"
"굳이 따진다면 그 다음 과정까지 해야 이기는 게 아닐까?"
분위기가 워낙 장난스러워 별 생각없이 말을 던졌다.
예은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듯하다.
나를 끌어안더니 귀에 대고 속삭인다.
"할래?"
"여기서?"
"기껏 세웠는데 아깝잖아."
만져주지 않아도 몇 시간 쯤 지나면 알아서 다시 일어서는 굳센 녀석이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른다.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하나 없다.
"자세를 좀 잡아주지 않으면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해줄까? 말만 해."
상당히 기분이 하이하신 듯하다.
보통 민망해야 할 쪽은 내가 아니라 예은이 맞지 않을까.
차마 말로 꺼내기 힘든 자세를 설명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렇게? 원했던 자세 맞아?"
벽에 양 손을 마주대고 기대듯 선 예은이 뒤를 돌아 나를 본다.
아래서부터 위로 쭉 감상을 하니 이런 절경이 따로 없다.
굳이 방금 전과 같은 노력을 쏟지 않아도 지금의 자세를 보여준다면 알아서 어떻게든 되었을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두 손을 예은의 엉덩이에 갖다 대었다.
"아, 그거 가지고 올까?"
"됐어. 그냥 해. 할 때만 밖에다 하고."
엄청나게 쿨하시다.
분부대로 해버리니 느낌이 장난 아니게 좋다.
부끄럽게도 결판이 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침대에서보다 빠르네? 원래 할수록 빨라지는 거야?"
"…응, 원래 그래."
예은의 이쪽 지식이 넓지 않아서 살았다.
만약 알았다면 분명히 놀려 댔을 테다.
그렇게 또 한 번 해버리고 샤워기로 물을 쫘악 뿌려 흔적을 씻어냈다.
"밥 먹을까, 아니면 물에 좀 담갔다가 나갈까? 참고로 나가는 순간 국물도 없다? 야한 짓은 밤에만 이니까."
"..오랜만인데 몸 좀 불렸다 나가는 게 낫겠네."
피식 웃는 예은과 겹치듯 욕조 안에 앉았다.
욕조에는 따로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다.
샤워기까지 트니 내부가 차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가면 얄짤없지만 이 안에서는 특별히 까부는 걸 허락한다."
"아까부터 나를 자꾸 우습게 보는데.. 침대에서 누가 위였는지 떠오르게 해줘?"
사실 귀국하기 전부터 정말 고민인 부분이었다.
이전처럼 예은과 막 이런 거 저런 거 할 수 있을까.
하게 된다면 얼마나 다시 시간이 걸리게 될까.
예은 쪽에서 다가와 준 덕에 생각지도 못한 속도로 진도를 나갔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욱 대담한 관계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목욕탕 밖을 나가기 전까지 알콩달콩 하고 싶던 짓을 전부 해버렸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엉덩이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샤워기 헤드로 한 대 맞은 것만 빼면 이상적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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