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05 인천공항 상륙작전 =========================
최근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행복함이다.
중국에서의 생활 물론 풍족했다.
몸이 편한 대신 정신이 피폐했단 소린 아니고 재밌었다.
츠위와의 생활은 지금도 종종 추억하곤 한다.
하지만 현재의 생활은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든 충족감이 있다.
"왜 이렇게 안절부절을 못해?"
"..니 때문이잖아."
나도 한가하지만 예은도 마찬가지다.
윈터 시즌이 끝난지 한 달이 되지 않았다.
미뤘던 공부도 지난 학기에 끝을 맺었다.
'그렇다고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당장 조급할 이유가 무엇 있을까.
안락한 거실 쇼파에 기대듯 앉아 TV를 보고 있다.
어떻게 일어나려는 예은의 손을 꼭 붙들었다.
본인은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피고 싶어?"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니라고는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를 못 있는다.
한국에 돌아온지 나흘이 지났다.
그 나흘 간 담배 한 입 물지 못했다.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금연.
여자가 담배를 핀다니 조금 깬다.
근데 사실 여자들이 담배 많이 핀다.
남자들 앞에서 조신한 척 피지 않으니 눈에 띄지 않을 뿐.
그도 그럴게 여성에게 담배의 중독성이 더 강하다고 한다.
다행히 오랫동안 피지 않았다.
더 이상 그런 기호 식품이 필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금연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엄청 힘들다.
개인의 의지로 자르는 건 적잖이 어려운 일이다.
"어디 가려고?"
"화장실도 허락 맡고 가야 해?"
"갔다온지 얼마 안됐잖아."
"니가 내 스토커냐?"
"애인인데?"
"으.."
어제 한 번 몰래 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하도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예은이다 보니 상정을 해두고 있었다.
그 이후로 경계 레벨이 강화.
하루종일 꼭 붙들고 있다.
미연에 저지당한 예은이 우물쭈물 말을 잇는다.
"한 개피, 아니 반 개피만 피면 다시는 안 필 자신 있는데.."
"그래? 펴 그럼."
"어, 진짜?"
쿨하게 허락해주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다.
그랬던 것도 잠시 헛기침을 해댄다.
딱히 관심 없다는 듯 뻔한 연기다.
"나중에 딴 말 안 할 거지?"
"그런 거 아니니까 마음 편히 펴."
입을 오므린 채 표정을 죽이고 있다.
웬만하면 표정 연기에 능숙한 예은인데 상당히 힘든 모양이다.
원래 이런 중독성 있는 것들은 단숨에 끊으라고 하는 게 무리다.
주위의 협조도 협조지만 계기가 있어야 한다.
부모님들이 자식들 게임 하는 거 못 보겠다면서 컴퓨터 선을 자르고.
TV를 보면 그런 이야기가 종종 방영되는데 이는 반항심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담배 하나 때문에 예은과 골이 생기거나 하는 것은 싫다.
원한다면 도움은 주겠지만 강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해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군대에 있을 때 담배를 폈었다.
개인적으로 담배가 잘 안 맞았고, 돈 문제도 있어서 전역한 이후로는 피지 않았지만 군대는 어쩔 수 없는 장소다.
피지 않으면 여러모로 불편해진다.
휴식 시간과 별개로 담배 타임이라는 게 있다.
이때 비흡연자 중 속된 말로 짬이 안되는 이들.
계급이 낮으면 일을 하거나, 눈치를 봐야 한다.
웃기게도 군대가 그런 장소다.
압수했던 담배와 라이터를 예은에게 돌려주었다.
베란다에서 내 눈치를 살금살금 보며 입에 물었다.
이윽고 체념했는지 담배 끝에 불을 붙인다.
'엄청 맛있게 잘 피네.'
여자친구가 담배 피는 모습을 보고 깬다.
딱히 그런 생각은 안 들었다.
그냥 순수하게 멋있다.
눈이 내린 바깥 풍경에 녹아드니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인다.
여자들이 담배 피는 남자에 반한다는 말.
어떤 느낌인지 알 것만 같다.
담배 연기와 함께 입김이 뿌옇게 퍼진다.
한겨울이라 바깥 온도도 당연히 내려가 있다.
얇은 옷차림은 아니지만 꽤 추울 텐데.
본인은 개의치 않는지 아껴서 살살 피고 계신다.
타악.
앞서 선언했던 대로 정확히 반 개피만 폈다.
눈치를 주진 않았음에도 알아서 자제한 모양이다.
베란다의 문을 닦고 서둘러 걸어 나온다.
아무래도 하나 신경 쓰이는 게 있는 듯하다.
"잠깐 와 봐."
"..왜, 정말 반 만 폈거든."
예은이 주머니에서 담배곽을 꺼내 나에게 보여준다.
대충 반 정도 태워진 담배가 안에 하나 들어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일단 쇼파에 앉아."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이야기하고 싶은데.."
투덜투덜거리며 일단 앉는다.
나와의 거리가 평소보다 조금 띄어졌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예은도 짚이는 바가 있는지 쭈뼛쭈뼛 먼저 화두를 던졌다.
"담배 폈다고.. 혼내게?"
"아니, 딴 말 안 하기로 했잖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머지 피기는 폈지만 내심 조마조마하긴 한 가보다.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한 주제에 나흘 만에 깨트려버린 셈이다.
다 예상을 하고 있었다.
쉽게쉽게 되리라고는 애시당초 생각한 적이 없다.
만에 하나 폈을 때의 대처도 생각을 해두었다.
"자, 잠깐. 왜 뜬금없이 뽀뽀야."
"우리 사이에 이유가 필요해?"
"그건 아니지만.. 할 거면 조금 이따가. 화장실 갔다 와서."
정확히는 화장실이 아니라 이를 닦고 싶은 거겠지.
공항에서 가볍게 입 맞추는 것만으로도 호들갑을 떨었던 예은이다.
심지어 담배를 핀 직후다.
완강히 거부할 거란 건 당연히 예상을 하고 있었다.
"일부러 이러는 거지..?"
"맞아."
"....앞으로 안 필 테니까 가글 하고 하자, 응?"
"싫은데."
두 손으로 예은의 얼굴을 잡은 채 강제로 입술을 맞췄다.
지은 죄가 있어서 반항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허락하려 하지 않는다.
눈을 꼭 감은 채 치아를 굳게 닫고 있다.
억지로 혀를 비집어 넣으려고 하니 힘을 줘서 나를 밀어낸다.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 여기서 한 판 뜰까 앙?"
눈에 힘을 확 주고 협박을 해온다.
솔직히 엄청나게 쫄았다.
그래도 여기서 물러나면 죽도 밥도 안된다.
될 대로 되라는 기세로 밀어붙였다.
입 안쪽으로 어떻게 혀를 넣는데 성공했다.
당연하게도 담배 맛이 날 수밖에 없다.
혀로 구석구석 문질러서 닦듯이 맛봤다.
얘가 갑자기 회까닥 돌아서 내 혀를 물어버리면 어떡하지.
무서운 상상이 들기는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반항하길 포기한 듯 몸에 힘을 쫙 빼고 눈을 감은 채 인상만 써댄다.
"인상 펴. 나랑 하는 게 싫어?"
"..그런 게 아니잖아. 이 나쁜 놈아."
입맞춤을 마치고 나니 고분고분해졌다.
방금 전 험악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사라졌다.
대신 손가락으로 내 몸을 구석구석 꼬집는다.
"앞으로도 담배 피는 건 자유야. 피고 싶으면 마음대로 펴도 돼."
"..차라리 날 죽여."
이 사건이 계기가 되었는지 이후로 예은은 담배를 질색하게 되었다.
그리고 항상 자일리톨을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어떻게 보면 계기가 아니라 트라우마일지도 모르겠지만 결과가 좋으니 괜찮지 않을까.
.
.
.
* * *
세계에서 가장 성격 급한 나라인 한국.
그 뒤를 이어 북미와 유럽도 윈터 시즌이 끝났다.
중국은 아직 치러지는 중이라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작년에도 윈터 시즌이 끝나고 나서 일이 있었다.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는 북미와 유럽의 자존심 매치.
마찬가지로 올해 또한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큰 기대를 몰고 올 수밖에 없는 구도다.
─와~ LCF시즌이 와버렸네.
세월 진짜 빨리 간다.
에러갓 우승했을 때가 진짜 엊그제 같은데.
그때는 롤판이 살짝 위태했다면 요즘은 엄청 흥해서 제대로 재밌을 듯.
└지난 LCF 뽕을 어떻게 잊어. 근데 이번에도 진출팀 다 받나?
글쓴이-NONO 프로팀이 두 배가 넘게 생겼는데 당연히 가려서 받겠지.
└하긴 그때처럼 다 받으면 선수들 숙소 문제만 해도 장난 아니겠다.
└요즘 롤판 커져서 숙소 문제야 상관없어 보이지만LOL
로드 오브 로드의 역사는 Unknown Error 전과 후로 나뉜다.
그런 이야기가 이미 정설로 통용되고 있는 서양권이다.
LCF가 분기점이 되었던 만큼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이번에도 에러갓이 한바탕 소란을 일으켜줄까.
물론 이제는 활동지를 옮긴 선수다.
언젠가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아쉬운 팬들의 마음을 조금은 달래주는 희소식이 전해져 내려왔다.
─LCF 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가야겠다!
캘리포니아면 비행기 타야 돼서 애매했는데..
관광할 겸 가도 나쁘지 않겠지.
개막식 쯤이면 일광욕도 할 만하려나?
└나 캘리포니아 사는데 날씨 상당히 풀렸어. 앞으로 일이주 지나면 따듯해질 거야.
글쓴이-와우, 비키니 차림으로 구경 오는 멋진 누님들 있을 거라 믿는다.
└비키니일지는 몰라도 엄청 무서운 누님이 온다는 소문은 들은 적 있어.
글쓴이-캬캬! 여왕님 올 수 있다는 소식은 이미 체크했지.
당연하게도 LCF는 북미와 유럽 지역의 이벤트 매치다.
비슷한 이벤트 매치인 롤드컵 보다는 색깔이 진지하다.
참가 팀도 북미와 유럽 지역의 팀으로 한정이 된다.
치사하다기 보단 지역별 이벤트가 으레 그렇다.
그렇게 따지면 아시안 게임도 겁나 치사하지 않은가.
어쨌든 그런 특성을 지녔기에 한국팀은 당연히 참전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벤트전만은 어떻게 예외로 처리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LCF개막식 날 이벤트전을 한다는 거야?
통상처럼 바로 경기 진행 안 하고 하루를 통째로?
그럼 그날 경기장 오는 사람들은 경기 못 보고 가겠네?
그러고서 하는 게 고작 1대1 토너먼트 전이고?
당장 표 끊어야지~
└LUUUL 쩌리들 거르고 에이스들만 나오잖아.
└에이스들도 에이스들인데 초청 선수들이 쩔지.
글쓴이-에러갓이랑 뮴뮴 누님 게스트로 온다며? 사실 그거 때문에 가는 거야.
└예매 장난 아니게 치열할 거다. 1년만에 에러갓을 영접할 기회인데.
정규 루트가 안된다면 이벤트로 하면 된다.
방법이 없으면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다.
대충 그런 느낌으로 성사된 1대1 토너먼트.
뭐, 거창한 건 아니고 열여섯 명이 뽑혔다.
북미에서 일곱 명, 유럽에서 일곱 명.
그리고 게스트로 올마스터와 뮴뮴.
단 하루 가볍게 치러지는 단판 매치다.
인기 투표로 뽑혔기 때문에 어중이떠중이는 없다.
선수들 하나하나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기가 높다.
단순한 이벤트전임에도 불구 세간의 관심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가 오간다.
─만약에 미역슨이랑 에러갓이 만나게 되면.
암묵적으로 자드 가져가겠지?
그리고 또 지난번처럼 피 튀기게 치고 박겠지?
이걸 보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번 이벤트전 의도 자체가 그거일 걸? 이루어질지 말지는 해봐야 알겠지만.
글쓴이-둘 다 피지컬 하나는 탑을 달리는데 설마 떨어지겠어.
└1대1이라는 게 순수한 실력 승부의 장이 아니잖아.
└변수가 많은 건 사실이지. 그래도 웬만하면 올라가지 않을까?
로드 오브 로드는 팀 게임이다.
탑과 미드 등 솔로 라인이 있지만 순수하게 1대1은 아니다.
때문에 게임의 실력과 반드시 정비례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도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LCF 결승전의 마지막 세트.
대체 얼마나 잘해야 프로게이머를 할 수 있나.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명경기였다.
이를 보고 체념을 하거나.
반대로 심장이 두근대거나.
수많은 지망생들에게 꿈을 뺏거니 주거니 하였다.
그때의 감동이 다시 한 번 재현이 된다.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분위기 정도는 띄울 수 있다.
이번 LCF의 흥행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가졌다.
─최근 메타가 하도 거지 같아서 LCF 불안했는데.
에러갓이 스타트 끊어주면 선수들도 자극 좀 받겠다.
게스트로 에러갓 부른 건 신의 한 수.
그런데 요즘 중국에서 뛴다는 소리 들리던데 퇴물된 거 아니지?
└듣기로 쩌리팀 데리고 중국 리그 정복했다더라. 심지어 무패.
글쓴이-오.. 여전히 잘 나가나 보네. 대단하다 탑급 기량을 꾸준히 유지하는 거 보면.
└너무 쉬운 곳에서 꿀 빤 감이 있어. 슬슬 돌아와서 빡겜 좀 해야 할 때인데.
└그래만 주면 더 바랄 게 없지. 에러갓의 복귀라니 상상만 해도 떨린다.
어떻게 보면 자극성이 떨어지는 이벤트전이다.
승패가 LCF의 진행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Unknown Error를 잊지 못한 팬들에게 있어 결코 가볍지 않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하던가.
LCF가 아닌 에러갓을 보기 위해 온다.
그런 우스갯소리가 생길 정도로 화제가 됐다.
유럽보다는 미국에 더 두터운 팬층을 소유한 그이니 그럴 만도 하다.
3월 초, 훈훈해지는 캘리포니아의 해변가에서 LCF의 개막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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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