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13 뜻밖의 초대 =========================
중국에서 돌아온 건지, 안 돌아온 건지.
최근 행방이 묘연했던 올마스터다.
그런 올마스터의 종적이 미국에서 잡혔다.
북미와 유럽을 아우르는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파이널.
LCF의 개막식에 올마스터가 초청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에도 알려졌다.
외국 이야기다 보니 전판되는 속도가 늦기야 했지만 결국 본다.
참가 지역이 한정적이긴 해도 LCF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다.
중계 플랫폼을 무조건 통해야 하는 등 살짝 복잡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게 뭐 별 거인가.
특히 이번 LCF의 개막식은 꼭 봐야 하는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올마스터가 LCF 때문에 요즘 소식이 뜸했구나.
중국에서 돌아왔으면 째깍째깍 신고해야지 뭐하나 했는데.
LCF 가서 또 하나 크게 터트렸네.
역시 자랑스러운 의지의 한국인이야.
└이럴 때만 한국인 소리 나오죠ㅋㅋ
└자드는 여전히 잘하더라. 너프됐다는 거 커뮤니티 보다 기억남.
└1대1이면 변수도 많을 텐데 잘도 우승했다.
└고전하긴 하더라. 결국 이기긴 했지만.
또다시 행해진 미역슨과의 자드 미러전.
결과를 놓고 보자면 올마스터의 승리였다.
3전 2선승제의 접전은 2승 1패로 막이 내려졌다.
매 경기 승패는 간발의 차이였다.
반대쪽이 이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같은 챔피언으로 순수하게 라인전만 진행했으니 당연하다.
그저 조금, 한 발자국 앞섰을 뿐이다.
뒤쳐진 이에게 이 한 발자국이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졌는지.
그것을 알 수 있는 이는 오직 당사자 하나다.
그렇게 LCF는 막을 내렸지만 아직 화두가 끝난 건 아니다.
─진짜 올마스터는 늘 대단하다고 느끼는 게.
이벤트전인 1대1 토너먼트에서도 재밌는 걸 준비해옴.
그냥 적당한 거 해도 됐을텐데 팬서비스가 장난 아니야.
이러니까 인기도 많고 무슨 학위도 받고 그러지.
└LOL학 박사 받았다며? 개쩜ㄷㄷ
글쓴이-LOL학이 아니라 E-스포츠 학과...
└아무튼 뭐했는데? 결승전 밖에 안 봄.
└빅토리랑 말차차했을 걸. 그 구데기 챔피언들을 잘도 소화함.
이벤트전에서 프로들이 요상한 챔피언을 꺼내는 경우는 간혹 있다.
한 번 웃고 즐기기에 딱 알맞은 정도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숙련도일까.
올마스터는 절대 대충 하는 법이 없다.
비주류 챔피언도 그의 손애 들리면 그럴 듯하다.
그가 경기를 치를 때마다 솔로랭크가 야단법석 난리가 나는 건 필연이다.
─아군 말차차 AD템트리 실화냐ㅋㅋㅋㅋ
아군 미드가 말차차였거든?
내가 탈리반이라 적 미드 한 번만 띄우면 무조건 킬각인데 못 죽여.
말차차가 딜이 하나도 안 나와.
어이가 없어서 탭키 누르니까 마나소드 올렸더라?
실화냐 이거.
└응, 실화야. 올마스터가 LCF에서 씀.
글쓴이-아.. 내가 그 새끼일 줄 알았다.
└ㅋㅋㅋㅋㅋ척하면 척이지. 근데ㄹㅇ 좋아 보이긴 하던데?
└혼돈충으로 딜링하는 건데 쓰는 애가 못 써먹은 듯.
└그냥 1대1 전용챔으로 꺼낸 거 아니었나?ㅋㅋ
무려 공격력 아이템을 올리는 말차차.
아니, 말차차에게 AD계수가 어딨다고?
잘 찾아보니 하나 있기는 하다.
공격력을 올리니 혼돈충이 강해지더라.
1대1 토너먼트 리그에서 강력한 1대1 능력과 타워링을 과시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소환자의 전장에서는 검증이 안됐다.
무단으로 사용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충들이 속출.
마찬가지로 올마스터가 사용한 빅토리도 픽률이 조금 올랐다.
빅토리로는 장난을 치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의 소동으로 끝난 정도다.
─짚신도 짝이 있다고 참.
하잘데기 없는 챔피언도 나름대로 쓰임새가 있구나 싶음.
그걸 올마스터가 좀 유난히 잘 찾는 것 같고.
그래서 작정하고 한 번 찾아봤는데 없더라.
이렇게 없는 거 같아도 스프링 시즌에 또 무언가 꺼내겠지?
└근데 올마스터 스프링 시즌 나오는 거 맞음?
글쓴이-인터뷰 내용 봤는데 그러더라. 다들 본 거 아니야?
└볼 수는 있지만 듣는 건 별개지. 이 기만자야.
└그냥 이 참에 번역해서 올려라 추천 준다.
이벤트전이라고는 해도 우승자는 당연히 인터뷰를 한다.
오랜만에 북미에 와서 반가웠고 응원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 자리에 돌아오겠다.
하지만 당분간은 한국에서 활동을 이어갈 생각이다.
인터뷰의 내용을 짤막하게 정리하자면 대략 이렇게 끝맺어졌다.
.
.
.
* * *
개막식이 끝난지 이틀이 지났을까.
이제 더 볼 일은 없지만 아직 체류하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용무.
흔히 말하는 관광이다.
"슬슬 돌아갈 시간이네."
"..그래."
새하얀 모래사장과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
아주 뜨겁지도 않고 쌀쌀하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다.
정말로 알맞은 시기에 여행을 왔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 가지 상정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바다에 와서 수영을 못하다니.."
"..미안."
"됐어. 신경 쓰지 마. 생각 못한 내 잘못도 크지."
드물게도 예은이 솔직하게 사과한다.
딱히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다.
그저 까먹고 있었을 뿐이다.
나도 예은도 들뜬 나머지 잊고 말았다.
'피부 드러내는 걸 안 좋아했지.'
예은네 별장에서 지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유지다 보니 예은도 비키니 차림으로 잘 지냈다.
하지만 이곳 캘리포니아 해변은 사람이 북적인다.
최근 들어 많이 변하긴 했지만 수영복까지는 내키지 않는 모양이다.
원래 며칠 더 느긋하게 휴식을 취할 계획이었다.
해변가에서 몸도 마음도 편히 쉬며 맛있는 음식들도 먹자.
안타깝게도 모든 계획이 빗나가 버렸다.
"하긴 미국 음식이 다 그렇지."
"질려버렸어.. 느끼해."
그러고 보면 한창 미국에 살 때도 한국 가게들만 다녔던 것 같다.
음식이 맛없다는 소린 아니다.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큼지막한 스테이크.
해안가다 보니 신선한 해산물도 마음껏 맛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한 듯 싶지만 실상은 별 게 없다.
고기 덩어리도 한두 번 먹는 거지 계속 먹으면 질린다.
해산물도 조리 방법이 입맛에 맞지 않다.
생으로 먹는다는 개념도 없고, 어떻게 찾아도 어설픈 가게다.
결국 어젯밤,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앞당기자고 이야기가 오갔다.
"아직 한 시간 여유 있는데 산책이라도 하고 갈까?"
"그러지 뭐, 달리 할 것도 없고."
손을 잡고 모래사장을 걷는다.
슬리퍼 사이로 모래가 엉겨온다.
모래사장의 흙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새햐얗게 곱다.
거슬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후.. 미안. 역시 안될 것 같아."
"뭐가?"
"속에 수영복 입고 왔는데.. 못 벗겠어."
살짝 한숨을 쉬더니 입고 있는 상의를 꾹 움켜쥔다.
어제 한 차례 이야기 했음에도 마음 속에서 걸린 듯하다.
"괜찮아. 사실 나도 보여주기 싫었거든."
"뭔 소리야?"
"그러니까 나만 보고 싶다고."
내 대답을 듣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얼굴이 붉어진다.
그리고 허벅지를 들어 내 엉덩이를 퍽! 차버렸다.
아프진 않았지만 해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말았다.
"야.. 때와 장소는 가려라."
"맞을 짓을 하지 말던가."
뾰로통하게 쏘아붙이더니 고개를 휙 돌린다.
표정을 봤을 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다행인 일이지만 한 가지.
방금의 소란으로 우리를 알아본 사람들이 생겼다.
"실례지만 에러 선수 맞죠?"
"저희 사인 괜찮을까요..?"
세 명의 남성과 두 명의 여성.
유추하건데 관광을 온 학생들 같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LCF도 관람을 했다고 한다.
흔쾌히 사인을 해서 돌려보냈다.
"여성팬도 있고 좋으시겠어?"
"너도 남성팬들이 좋아 죽던데?"
팬들이 떠나가자 공기가 어색하게 흐른다.
그렇게 말이 끊기기도 수 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밥이나 먹으러 갈까?"
"곧 가야 하는데?"
"간단하게 길거리 음식이라도 먹자."
최근 들어 입이 조금 짧아지긴 했어도 원체 길었던 예은이다.
점점 다시 이전의 식사량을 회복하는 추세다.
해변가에서 위로 조금 올라가니 상가가 가득하다.
대부분 햄버거나 샌드위치 종류를 판다.
현지인들 눈으로는 다르겠지만 나나 예은에게는 그냥 똑같이 빵 사이에 고기 낀 거다.
베이컨말이라던가 손바닥 만한 피자, 정체를 모르겠는 튀김.
독특한 것도 있기는 한데 결국은 다 느끼하다.
나와 예은이 괜히 귀국 날짜를 앞당긴 게 아니다.
이것저것 둘러봐도 얼추 비슷하다.
걸음이 멈춰선 건 여러가지 종류가 많은 소시지 가게 앞이었다.
"소시지 먹고 후식으로 크레페 콜?"
"상관은 없지만 왜 굳이 소시지?"
"히히, 재밌는 게 생각났거덩."
멋대로 소시지 몇 개를 골라 담더니 포장을 부탁했다.
주인장 아저씨가 서비스라며 두어개 얹어주셨다.
아까처럼 불편한 일도 있는 반면 득될 일도 많다.
미인이랑 다니다 보면 세상이 참 딴 세계다.
두 개의 종이 박스에 소시지가 한가득.
속살이 꽉꽉 찼다는 걸 감안했을 때 양이 많기는 하다.
그래도 색을 보아하니 각각 맛이 달라 보인다.
먹으면서 물릴 일은 없을 거라 생각된다.
"여기서 먹으면 되겠는데?"
"그러네. 해변도 잘 보이고."
앉아서 먹을만한 자리는 워낙 시끄럽다.
때문에 조금 수고를 해서 걸음을 옮겼다.
바람에 깎인 바위 의자에 앉자 열대 나무가 그늘이 되어준다.
글자 그대로 자연이 만들어준 쉼터다.
종이 박스를 개봉하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한 입 베어 물면 육즙이 가득 새어 나올 느낌이다.
먼저 선수를 친 건 예은이었다.
"야, 이거 봐라 앙~"
나무 막대기가 꽂혀 있는 가장 큰 소시지.
그걸 입안 가득 넣는다.
뜨거워 하면서도 호호 불며 빨아댄다.
아는 사람은 알 만한 가히 선정적인 장면이다.
악질인 건 본인도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거 니 거랑 닮았다. 크기는 조금 작지만."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봐바. 내가 이걸 지금부터 씹어 먹을 거야."
장난치듯 배시시 웃더니 입을 쩌억 벌린다.
투명한 침이 소시지에 달라붙으며 천천히 떨어진다.
더럽다고도 생각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새하얀 이와 넘실거리는 붉은 혀.
아름답다는 표현밖에 덧붙일 수 없다.
내가 콩깍지가 쓰인 게 아니라 정말이다.
아그작!
큰 소시지를 앞니로 베어 문다.
입이 오므라지는 게 뜨거운가 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김이 나고 있었으니 당연하다.
겉을 아무리 불어 식혀도 속은 맹렬히 타오른다.
"읍..! 읍!"
"아, 그러고 보니 물 안 사왔다."
정말 쌤통인 관경이다.
나를 놀려 먹으려 하더니 제 꾀에 제가 당했다.
어지간히 뜨거운 듯 어쩔 줄을 몰라한다.
결국 예은이 취한 방법은 뱉어내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뱉으면 어떡하냐."
"버리긴 아깝잖아. 따로 접시도 없고."
요란을 떨던 예은은 나에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입에서 입으로 소시지를 넘겼다.
건네 받은 소시지는 한 번 식어서 그런지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다.
'기분이 상당히 묘하긴 하지만.'
내 물건으로 비유됐던 소시지를 먹고 있는 셈이다.
보는 입장에서도 살짝 아팠던 것 같은데 먹기까지 하니 아랫도리가 근지럽다.
정말 애인만 아니었으면 성추행으로 고소했을 거다.
"풋! 나를 상대로 법?"
"하나뿐인 남친 좀 그만 놀려 먹어."
"뭐래, 싫지 않은 거 다 알거든?"
싫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방금의 이벤트를 싫어할 수 있는 남성이 어디 있겠는가.
예은과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금세 시간이 지나갔다.
크레페까지 먹자 제법 급박해졌다.
헐레벌떡 택시를 잡아 L.A공항으로 돌아갔다.
숨을 돌렸을 때는 이미 비행기에 탑승해 작아진 L.A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이 있겠지.'
오랜만에 돌아온 제2의 고향.
캘리포니아에서의 시간은 다소 아쉽기도 하였다.
우승을 했다고는 하지만 고작 이벤트전이다.
LCF의 본선은 치를 수가 없는 처지다.
후회하는 건 아니고 그저 사소한 안타까움이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 LCF는 뜻 깊었던 무대다.
게임이 이루어지고 있을 경기장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비행기가 올라갈수록 점점 더 작아진다.
이윽고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게 됐다.
"졸려? 이불 꺼내줄까?"
"응, 부탁할게."
간만의 여행에 들떠서 그런지 사사건건 나를 놀리려고 들었다.
덕분에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르게 피로도가 쌓인 기분이다.
이를 행해 장본인이 이래저래 신경을 많이 써준다.
예은이 덮어준 이불의 따스함에 잠이 솔솔 온다.
피곤하긴 했어도 나름 의미도, 재미도 찾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참으로 반가웠다.
다시 한국에 돌아가 새 걸음을 내디딜 재충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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