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714화 (714/803)

00714 뜻밖의 초대 =========================

새로운 시즌에 들어 한국은 탈피를 꿈꾸었다.

과거 갤럭시 크래프트 시절의 위엄.

E-스포츠 최강국이라는 이미지를 되찾기 위함이다.

세계에서 가장 게임 잘하는 민족이란 이미지를 되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프로게임단들은 앞서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과가 꼭 좋으리란 법은 없었다.

윈터 시즌의 결론은 이미 파다한 상태다.

우승을 해버린 가짜에어 독수리가 쓴 전략.

그들이 만든 체계적인 운영에 SKY T1 K가 백기를 들었다.

그 이후로 현재의 메타는 거의 확고하게 굳어졌다.

"내가 아는 건 이 정도야. 너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뭐.. 그렇기는 하죠."

집 근처에 몇 개는 있는 흔하디 흔한 카페 안.

그간의 이야기도 나눌 겸 이청호 코치와 만나게 됐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사실은 그보다 더 잘 알고 있지.'

현재의 메타가 지금처럼 굳어져 버린 이유.

내가 알고 있는 미래와 엇나가버린 사정.

어찌 된 영문인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지만 추측은 된다.

'결과만 놓고 보면 내 탓인가..'

새로운 시즌의 첫 번째 대회라고 할 수 있던 LCL.

당연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용했던 챔피언들 중 상당수가 현 메타에 각인됐다.

여기까지는 내 나름대로 의도했던 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나는 생각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 이청호 코치에게 물었다.

최근 널널하게 휴가를 보낸 탓에 세세한 정보는 모른다.

"요즘 SKY T1 K 어때요? 아, 지난 윈터 시즌에요."

"한 마디로 물 올랐지. 코치 입장에서 이런 말하긴 뭣한데.. 메타만 조금 정상적이었으면 쉽게 우승했을 거야."

대답하는 이청호 코치의 어조는 굉장히 탐탁치 않다.

사실 유저나 선수면 몰라도 코치로서는 안되는 소리다.

누구보다 현메타에 최적화시켜 팀을 이끌어야 한다.

그런 코치의 입장에서도 속마음은 다르지 않은가 보다.

현재 메타는 지나치게 아니꼽다.

공격측에서 스노우볼을 굴리기가 정말로 어렵다.

수비측으로선 게임을 풀어나가기 너무나도 쉽다.

물이 올랐다고 말할 정도인 SKY T1 K가 져버린 까닭.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가짜에어 독수리가 우승한 원천.

극단적이라 할 수 있는 현 메타에 때문이란 사실은 나도 안다.

'원래 이 정도 까지는 아니었는데.'

본래의 미래에서도 시즌4는 수성 메타와 운영의 고착화가 이루어졌다.

선수들의 실력이 무르익으며 로드 오브 로드라는 게임이 정밀하게 분석된 결과다.

이 게임, 굳이 여러가지 힘쓸 필요가 없구나.

질질 끌면서 후반 가면 한타 한 번으로 끝낼 수 있구나.

하지만 이 변화가 한 번에 이루어진 건 아니다.

천천히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절정을 이룬 건 시즌4 중반기였다.

초기라고 할 수 있는 윈터 시즌은 극심하게 치우쳐지지 않았다.

이청호 코치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어왔다.

"요즘 코치들끼리 오가는 결론이 공격하는 쪽이 바보라는 거야. 무슨 디펜스 게임도 아니고."

"그렇네요. 디펜스 게임, 딱 맞는 비유네."

메타의 변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즉, 패치가 본래의 역사보다 빨랐다.

이렇게 된 원인은 나의 노력 때문이었다.

'게임사가 너무 융통성이 없어.'

톱니바퀴가 안 좋게 맞물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정규 시즌을 치렀던 중국의 LPL.

그곳에서 나는 여러가지 독특한 방향의 플레이를 제시했다.

다가올 4시즌의 메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자 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악수가 되었다.

로드 오브 로드 게임사 특유의 패치 방식.

유저들이 자신들의 의도를 따르지 않으면 억지 패치를 해버린다.

못을 박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멘트까지 덮고 나서 만족한다.

조금은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LCF의 이벤트전을 흔쾌히 허락한 이유이기도 했다.

찾아온 게임사 관계자에게 이야기를 건네봤다.

요즘 메타 너무 꽉 막힌 거 아니냐.

보는 입장에서 재미가 떨어지는 것 같다.

관계자는 방긋 웃으며 무적 치트키를 쳐왔다.

한국 윈터 시즌의 결승전은 봤다.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북미와 유럽 등 다른 지역을 봤을 때 전체적으로 의도했던 바와 맞아 떨어진다.

패치가 되기는 하겠지만 당장은 예정이 없다.

다인큐 등 여러가지 문제가 터질 때마다 게임사가 던지는 마스터키다.

듣는 이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반박을 하기가 상당히 난해한다.

우리 나라 말고 다른 나라는 그렇다는데 다른 나라의 사정을 우리가 어찌 알아?

한 마디로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다.

우리 멋대로 할 테니 깝ㄴㄴ라고도 해석이 된다.

"이대로라면 스프링 시즌은 각오를 해야 돼. 좋든 싫든 어쩔 수가 없는 셈이지."

"으음.. 생각을 좀 해봐야 할 문제 같네요."

내가 제시했던 것들은 결국 조기에 다 제지되고 말았다.

게임사에 의해 새싹 채로 자근자긋 짓밟혔다.

본래의 미래 이상으로 메타 변화가 급속히 이루어졌다.

가짜에어 독수리가 SKY T1 K를 이길 정도로 말이다.

"그래, 일단 재적응부터가 먼저니까. 환영해, 다시 돌아온 걸."

"제가 언제는 약속 어긴 적 있나요."

의자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하는 이청호 코치의 손을 마주 잡았다.

새로이 시작하는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

잠시 갔다온 사이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게임의 메타도, 지내게 될 장소도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

.

.

* * *

중국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하고 휴가를 보내다 잠시 미국에 갔다 왔다.

이제는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시기다.

조금 이르지만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여행에서 일찍 돌아온 탓에 여유 시간이 생겼다.

현재 나는 예은과 함께 새로운 숙소에 들어왔다.

"굉장히 좋은 곳으로 이사했네. 무리한 거 아닌가 몰라."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뭘. 식구들도 늘었잖아."

새 연습실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살짝 PC방 느낌이 났던 이전의 연습실.

이제는 세련된 사무실에 가까운 분위기다.

개개인의 공간이 널찍이 할당돼 있다.

물품에도 돈을 상당히 썼다는 게 눈에 보인다.

그러한 공간이 무려 열두 곳.

빌딩의 층 하나를 통째로 개조한 셈이다.

더욱 놀라운 건 내부 인테리어다.

유리 칸막이가 설치된 휴식 장소도 갖춰져 있다.

연습실 안에서 어지간한 건 전부 해결이 가능하다.

선수들의 숙소는 빌딩의 다른 층에 존재한다.

"CLC 느낌 나지 않아? 참고했지."

"아, CLC가 이런 느낌이었지."

예은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빙긋 미소를 지어온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정말 많은 것을 해주었다.

두 개의 층은 각각 개인실과 사무실.

이전 CLC의 숙소와 비슷한 구조다.

다시 지내게 될 장소는 불편함 따위 느낄 일이 없을 것 같다.

터벅, 터벅.

큼지막한 연습실 내부로 걸어 들어가자 눈에 띈다.

김시현이라는 이름 세 글자.

내 자리가 확실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돌아올 장소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여기가 내 자리구나. 커플석을 기대했는데."

"뭐래, 여기 PC방 아니거든?"

각 자리마다 개개인의 이름표가 붙어있다.

회사 사무실처럼 딱딱한 분위기는 아니고 표시 정도다.

칸막이도 높지 않아 의사소통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

어느 곳 하나 세심하게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다.

"인테리어도 그렇고 월세도 그렇고.. 아버님이 너무 무리하신다."

"아니라니까. 어차피 놀고 있던 건물이고 관리세만 내면 돼."

"…."

내 표정이 떨떠름하자 여러가지 설명을 덧붙여왔다.

어차피 감독실과 구단주실이 필요 없으니 합쳤다는 등.

서울 강북구가 아닌 수도권이라 비싸지 않다는 등.

결국은 예은의 아버님이 소유한 건물이란 소리다.

아버님과 나눴던 이야기에 대해 책임감이 막중해진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예은의 아버님과 직접적으로 대면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결국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고 앞으로도 쭉 신세를 져야 한다.

그래서 큰 마음 먹고 지난 목요일에 약속을 잡고 찾아뵈었다.

솔직히 뺨 한 대 맞을 각오는 하고 갔다.

막장 드라마를 너무 봐서는 아니고 원래 그런 게 좀 있지 않은가.

딸 가진 부모 마음이 어떠한지.

중국에서 츠위와 생활하며 어렴풋하게 느꼈다.

결과적으로 어처구니 없는 기우였다.

식사 자리에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오갔다.

내 직업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계셨다.

처음에는 예은이 설득을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버님이 진정 이쪽 시장에 관심이 있으셨다.

연세를 생각해본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사업가 답게 시야가 넓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정말 다행인 일이었지만 호사다마.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있다며 나를 붙들었다.

"무슨 고민 있어? 안색이 안 좋은데.

"살짝 노곤해서.."

"바보, 칠칠맞긴."

예은이 피식 웃더니 졸졸 걸어가 취식실 냉장고에서 캔커피를 가져다줬다.

고맙게 마시기는 하겠지만 내가 안색이 안 좋은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창 밖의 따뜻한 햇살과 맛있는 점심의 포만감으로도 방해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딸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둘 사이가 진지한 듯하더군. 자네도 그렇게 여기고 있는 게 맞나?>

엊그제가 아닌 어제의 일이다.

예은에게는 비밀로 아버님을 한 번 더 만나 뵈었다.

긴히 하실 말씀이 있다면 나를 따로 부르셨다.

요약을 하자면 교제를 허락하는 조건이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는 법인데..'

차라리 롤드컵 우승을 하라고 하면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다.

앞으로도 잘해나갈 자신이 있다는 포부를 비치는 건 원하는 바다.

안타깝게도 아버님이 내거신 조건은 감히 상상치도 못하던 일이었다.

"예은아.."

"응?"

"..그냥 불러봤어."

"실없게시리."

별 의미없이 불러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고민을 풀어놓고 싶은데 그게 안된다.

아버님과 단 둘이 만나 나눈 이야기는 다름이 아니었다.

<자네, 2세 계획은 짜놓았나? 어떻게 이 말괄량이와 2세를 가질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게 없네…>

화두가 심히 당황스러웠지만 말씀을 들어보니 그럴 만도 하셨다.

내심 그러지 않을까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최대한 좋게 말하자면 자유분방한 성깔인 예은.

역시나 고생이 많으셨다고 한다.

아버님과 의기투합하는 데엔 한 시간이면 족했다.

서로 피차일반 예은에게 쌓인 것이 적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들은 이야기는 부디 포기하지 말아주게나.

만약의 경우, 말리지는 않을 터이니 한 번만 더 생각을 해주게나.

예은에 대해 말 못한 걱정을 수도 없이 가지셨던 모양이다.

그 마음 백분천분 공감하는 나로서는 쉬이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너 혹시.. 어제 아빠 만나고 왔어?"

"그, 그럴 리가. 잠깐 친구 만나고 온 거야."

"흐응.. 수상한데."

아무래도 고민은 이쯤 해야 할 성싶다.

워낙 눈치가 좋은 예은이라 잘못하다간 꼬리를 잡힐 것만 같다.

뭐라 흘린 것도 없는데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일단 생각나는 데로 화두를 던졌다.

"요즘 애들은 어때? 다른 문제 없어?"

"톡으로 연락하고 있지 않아? 역시 말 돌리는…."

"아니아니.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잖아. 그래서 묻는 거지."

참 방심을 못하겠다.

그래도 어떻게 화제를 돌리는데 성공했다.

따지고 보면 이 또한 중요한 이야기다.

현재 게임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은 것이 없지는 않지만 부족하다.

기왕 숙소까지 왔으니 기억이 나는 것도 있을 테다

"애들이야 뭐 잘 지내는데. 아쉽게 준결승전에서 떨어진 것 빼고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젓는다.

별다른 문제점은 없다고 한다.

성적이 약간 아쉬운 거야 그럴 수 있는 내다.

준결승전까지 갔다면 딱히 부진한 성적도 아니다.

아무튼 화제를 돌리는데 성공했으니 만족이다.

속으로 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던 찰나.

무언가를 떠올린 듯 예은의 표정이 굳었다.

"아.. 맞다. 초홍이가 조금 문제가 있어."

"왜? 요즘 덜 맞아서 정신을 못 차리나?"

"그런 거 아니거든. 그리고 짜샤, 초홍이 괴롭히지 좀 마."

가벼운 발길질로 내 종아리를 툭 걷어 찬다.

그리고 입술을 움찔거리며 고민을 잇는다.

쉽게 말을 꺼낼 만한 사안이 아닌 듯하다.

"무슨 문제인데? 사춘기? 아니면 질풍노도의 시기?"

"초홍이 이래 봬도 고3이거든? 뭐.. 비슷하긴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까.

도저히 짐작 가는 바가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

예은이 꺼내 보여준 것은 부모님이 보낸 메세지였다.

============================ 작품 후기 ============================

화면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