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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715화 (715/803)

00715 뜻밖의 초대 =========================

초홍이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건 중국에서였다.

LPL의 결승전 날, 한국에서 지인들이 찾아왔다.

신세상의 팀원들에 타임끝까지 포함한 대인원.

결승전을 시작하기 전 한 번  얼굴을 보았다.

그때 초홍이와 강채식 코치는 사정상 빠졌다.

켕기는 일이 많은 초홍이가 도망갔기 때문이다.

물론 결승전이 끝난 후, 다시 만남을 가졌다.

고주망태 마시고 놀다 헤어졌다.

강채식 코치와 초홍이도 얼굴을 보았다.

당시 내가 기분이 하도 좋아서 그냥 윗머리를 꾹 눌러 주는 정도로 봐줬다.

어쨌든 그때 초홍이는 별 일이 없었다.

사고뭉치, 내가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 이후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똑, 똑.

이걸로 다섯 번째 노크다.

방 안에 계신 분이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벌써 30분째 실랑이가 계속되는 중이다.

"오빠가 좋은 말로 할 때 나오려무나."

이곳 빌딩의 5층에는 연습실과 응접실이 있다.

그리고 6층에는 선수들의 숙소가 배정돼 있다.

이 층에 속한 수많은 방들 중 하나.

차가운 강철문을 사이에 두고 밀당이 오간다.

<우엑! 못생긴 오빠따위 둔 적이 없셈.>

아까부터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려 한다.

초홍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를 않는다.

가능한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데 말썽을 부려 댄다.

"언제가 그 방에서 나와야 할 텐데, 지금 나오는 편이 매를 덜 벌지 않을까?"

<빼애애액! 역시 때릴 줄 알았셈!>

나도 그렇게 악마는 아니다.

적당히 울 정도만 갈구려고 했다.

그런데 자꾸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른다.

초홍이가 자꾸 내 안의 악마를 깨우려고 한다.

"마지막 경고다. 마스터키 가지고 오기 전에 열어라?"

<빼애애액! 경찰에 신고할 거셈! 빼애애애애액!>

자명종이라도 삶아 먹었는지 고막이 떨어지게 떠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둘 매값이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정말로 마스터키를 가져오는 게 나려나.

진지하게 고민이 되던 찰나에 딸칵! 문이 열렸다.

"잡았다 요놈."

"빼애액! 문 왜 열어줘!!"

당연히 초홍이 본인이 열어준 건 아니다.

6층에서 가장 큰 방을 예은과 초홍이 같이 사용한다.

여자가 둘 뿐이니 같이 있어야 여러모로 편하다는 게 이유다.

아무튼 예은이 문을 열어준 덕에 일이 편해졌다.

애시당초 이번 일을 시주한 사람이 예은이기도 하다.

"언니랑 같이 사과하자, 응?"

"그래, 자수해서 광명 찾자 초홍아."

"빼애애액! 싫! 다! 고!"

고작 초홍이 좀 갈구려고 여자방을 들쑤시고 있었을까.

밖에서는 내가, 안에서는 예은이 설득 중이었다.

최근 초홍이가 크게 말썽을 부렸다.

씩씩 대는 초홍이를 번쩍 들어서 일단 쇼파에 앉혔다.

아직도 울분이 가시지 않은 듯 얼굴이 벌겋다.

알 바 아니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피고는 어째서 학교에 안 가는지 변명을 해보시오."

"중국에서 더 못생겨진 놈하고 말 안 함."

판사에게 망치가 주어지는 이유는 이런 피고 때문일지 모른다.

개빡치면 실력 좀 행사하라고.

안타깝게도 나는 판사가 아니라 망치가 없다.

"근데 얘 왜 갑자기 이래?"

"갑자기는 아니고.. 지난 해 말부터 말썽이었어. 부모님과 트러블이 있었나 봐."

다른 하나의 말괄량이가 철이 든 듯 말하니 좀 무섭다.

하긴 원래 개구리가 올챙이 적 모르는 법이다.

둘 사이에 격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문 초홍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초홍아, 오빠가 착하니까 아까 있었던 일은 없던 걸로 해줄게. 그러니까 최소한 출석은 하자?"

"에에에~ 안~ 들~ 리~!"

양 쪽 귀를 틀어 막고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린다.

내가 저거 초등학교 때 했던 건데.

요즘 고등학생들이 부디 저러고 놀지 않기를 빈다.

후우.. 절로 내쉬어지는 한숨을 막을 수 없다.

.

.

.

* * *

사실 프로게이머들 중 상당수가 중퇴자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게이머인 테이커가 이에 해당된다.

이따금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프로게이머를 하려면 중퇴는 필수구나.

응, 너는 테이커가 아니야.

"냉수 마시고 정신 차리자 초홍아."

"빼애애액!"

예은과 초홍의 방 내 작은 거실.

일단 사정 청취는 끝났다.

그냥 중고등학교 때 흔히 있는 반항이다.

최대한 좋게 좋게 말해주자면 학업과 선수 생활의 양립 문제다.

"너 어차피 학교 가서 자잖아."

"..연습 시간을 빼앗기는 거셈."

역시 잔다는 소리는 부정하지 않는다.

한 처자의 말썽이 해결되니 이제는 다른 한 쪽이다.

나도 참 제 명에는 못살 듯싶다.

"진지하게 조언해주자면.. 두 달 정도는 결석해도 돼. 졸업일 수만 채우면 되니까."

"..팀에게 민폐가 될 수 있는 거셈."

니가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다고.

살다 살다 별 소리를 다 듣는다.

하지만 초홍이의 심정이 이해가 아예 안되는 건 아니다.

확실히 학업을 병행하면 힘들 수밖에 없다.

가서 퍼질러 잔다고 해도 스트레스가 쌓일 수 있다.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자퇴라는 선택지를 고르게 되는 이유기도 하다.

"그래도 3학년이잖아. 졸업만 해. 성적과 상관없이 안 내쫓을 테니까."

"흥, 학교 다녀도 내가 너보다 잘함."

대체 뭘 믿고 그런 말을 할까.

자꾸자꾸 인내심이라는 찻잔이 흘러 넘치려고 한다.

평소라면 진작 머리를 쥐어 박았겠지만 안된다.

이번 만큼은 상당히 진지한 이야기다.

"얘 부모님께서 뭐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

"졸업만 부탁하시겠데. 그런데 초홍이가 말을 안 들어주네 어쩌지?"

예은이 초홍이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은의 말까지 듣지 않았다면 상당히 난감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하던가.

일이 일어난 원인부터 따져보기로 했다.

"부모님이랑 어쩌다 싸웠어?"

"..너 따위한테 말해주기 싫음."

이래 봬도 초홍이는 미성년자다.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당연 부모님의 동의를 구했다.

그런데 갑자기 트러블을 만들면 당연히 차후 선수 생활에 지장이 생긴다.

부모님이 한사코 반대를 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정말로 하기 싫은 거면 붙잡지 않겠지만 경우가 다르다.

공교롭게도 예은도 이 사정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왜 말해주기 싫은 건데? 우리가 해결해줄 수도 있잖아."

"너한텐 죽어도 말 안 해주기 싫으셈."

잠깐 안 본 사이에 많이 컸다.

말끝에 다시 셈도 많이 붙이게 됐다.

일단 지금의 상황을 해결해야 정신 교육을 다시 할 수 있다.

"언니한테만 말해주라, 응? 둘만의 비밀."

"언니는.. 내 고민 따위 절대 모를 거야."

어떻게 달래고 달랜 결과 속사정을 들을 수는 있었다.

나한테는 결국 알려주지 않았다.

알게 된 건 조금 나중의 일이었다.

.

.

.

* * *

소동이 있었던 주말로부터 사흘이 흘렀다.

정말로 별 일은 아니었다.

하나 알게 된 건 초홍이도 여자였다는 사실이다.

"여름 방학에 일정 잡기로 했어."

"하.. 별 것도 아닌 일로 힘만 빠졌네."

"별 일 아니긴. 여자들한텐 중요한 문제거든?"

예은이 내 감자 튀김을 뺏어 먹으며 손가락을 흔든다.

슬슬 다시 입맛이 돌아오는 듯 시동이 걸렸다.

나와 예은은 패스트 푸드점에서 간단하게 아점을 때우고 있다.

원래는 가사 전반을 맡아주시는 아주머니가 계신다고 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휴가 상태라 한동안은 근처 밥집에서 알아서 끼니를 챙겨야 한다.

아무튼 초홍이의 사정이란 다름이 아니었다.

"성형이라, 근데 너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 아니야?"

"그렇지. 난 날 때부터 예뻤으니까."

"..그걸 본인 입으로 말하고 다니니 초홍이가 말을 못하고 있지."

초홍이와 예은은 사이가 굉장히 친하다.

팀 내 유일한 동성이라는 이유도 있다.

흔치 않은 고민을 공유한 사이라는 까닭이 크다.

게임을 잘하는 여성 유저는 흔치 않다.

아니, 흔치 않은 정도를 넘어 없다시피 하다.

웬만한 수준은 찾아보면 있지만 그랜드 마스터급은 이야기가 다르다.

나로서도 지인이 아니었다면 평생 인연이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두 사람은 더욱 돈독한 수밖에 없다.

그런 둘 사이에서도 꺼내기 힘든 비밀.

내가 말하긴 뭣하지만 예은은 타고난 자연 미인이다.

쌍커플 수술 같은 이야기를 상담하는 건 많이 걸린다.

"하긴 대학교 가면 여자애들 가장 먼저 하는 게 쌍수긴 하더라."

"너도 좀 하던가?"

"요즘 남자들은 쌍커플이 없는 게 유행이지 않아?"

"깔깔, 그건 잘생긴 애들 이야기고."

평소와 다름없이 남친 디스에 여념이 없으시다.

내 감자 튀김을 다 뺏어 먹고도 아쉬운지 손가락을 쪽쪽 빤다.

이제 밥도 다 먹었으니 일을 하러 갈 시간이다.

끼익.

연습실의 문을 활짝 열어재꼈다.

오늘부터 다시 신세상 매직의 연습이 시작된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듯하다.

'이럴 거면 간식이라도 사올 걸 그랬나.'

가사 아주머니와 마찬가지로 팀원들도 휴가 중이었다.

복귀 날은 오늘로 12시까지다.

아직 11시 반이니 도착하지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세히 보니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건 아닌 모양이다.

"오, 간만이야."

연습실 가운데 유리 칸막이가 쳐진 네모난 공간.

취식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누군가가 손을 흔든다.

이청호 코치가 아닌 다른 한 명이었다.

"강형! 오랜만이네요. 제가 진작 찾아뵀어야 했는데."

"입 바른 소리하기는. 바쁜 거 아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신세상 게임단에는 두 명의 코치가 있다.

메타 분석과 전략이 특기인 이청호 코치.

선수의 스카웃과 관리를 맡는 강채식 코치.

일단 구분상으로 강채식 코치는 2군인 신세상 베이식의 당담이다.

1군인 신세상 매직과 달리 아직 발전 도중이지 않은가.

신경을 써주며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이유다.

"청호형은 어디 갔어요? 아직 식사 하시나."

"차 가지고 애들 데리러 갔어. 아주 부처야 부처.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씨지맥이 휴가 기간 동안 고향에 갔다고 한다.

KTX를 타고 올라온 건 좋았는데 내리자마자 길을 잃었다고.

가끔씩 등칫값을 못하는 때가 있다.

그렇게 씨지맥을 챙기는 김에 나머지 애들도 모아온단다.

"계신 줄 알았으면 같이 식사할 걸 그랬어요."

"내가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아. 그보다 밀린 이야기 좀 하자."

강채식 코치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테이블 위에 있던 맥북을 클릭했다.

이청호 코치가 서류로 정리하는 아날로그 파라면, 강채식 코치는 디지털 파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조작하자 달력을 정리된 일정이 나타났다.

"베이식 애들은 시드권을 따야 돼. 2부 리그인 LML에 나갈 예정이야. 매직과는 상관 없지만 보고 차원에서 하는 이야기."

"아, 그랬지. 이번 시즌이 첫 출전이죠?"

팀 내에서 나의 포지션은 살짝 애매하다.

1군인 신세상 매직의 주장.

그러면서도 구단주의 역할을 일부 겸임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일처리는 예은이 하지만 명목 상은 그렇다.

아무래도 신세상을 만들고자 기획한 사람이 나이지 않은가.

상징적인 의미가 조금 있고 일단 에이스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선수와 코치의 관계는 아니다.

"베이식은 어때요? 제가 아직 본 적이 없어서요. 중국에서 귀국한 후로 피곤해서 쭉 쉬기만 했어요."

"그럴 만도 하지. 타지에서 고생이 많았다. 아무튼 베이식은 한참 성장 도중이야. 팀의 규합이 이루어 진지 얼마 안됐거든."

윈터 시즌까지만 해도 팀 내에 2군이 없었다.

내가 없음으로 인해 생겨버린 결원.

이를 2군의 멤버인 코코볼과 뱅크가 대신했다.

중국에서 이청호 코치를 만났을 때 들었던 이야기다.

관심이 가는 선수들을 가계약으로 묶어 두었고, 진짜 계약은 윈터 시즌 이후로 한다고 했다.

발안한 사람은 강채식 코치로 명안이다.

상당히 유능한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유능은 무슨, 아직 원석들이야. 특히 스맥 같은 경우는 IM에서 성적도 불안했고 키워보지 않으면 몰라."

"선수 관리에 해당하는 건 전적으로 맡길게요. 저보다 강형이 훨씬 잘한다고 믿으니까."

"그렇게 말해주면 부담감이 장난 아니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올마스터가 말이야."

신세상 게임단의 2군 팀인 베이식.

우리 신세상 매직과 마찬가지로 베이식 또한 선수들의 앞글자를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1군에 올라온다면 형제팀이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LML을 거쳐 시드권을 따야만 그럴 만한 자격이 생긴다.

강채식 코치의 말마따나 이제 겨우 싹을 심은 정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미래가 기대되는 팀이다.

강채식 코치를 받아들인 보람은 차고 넘쳤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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