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19 뜻밖의 초대 =========================
세계 각 지역에서 한 번씩은 화제를 몰고 왔다.
북미, 유럽, 한국, 이번에는 중국까지 터트렸다.
명실상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슈퍼 스타.
올마스터가 다시 한국 롤챔스에 돌아오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이곳저곳에서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잉벤 등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난리가 났다.
각 프로게임단들 또한 비상이 걸렸다.
-올마스터가 신세상에 복귀한다는 소식 다들 알고 있나?
흔하디 흔한 까톡방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한다는 그것이다.
날고 기는 프로게임단들의 감독들 사이에 연락망 하나 쯤은 있다.
운을 뗀 건 얼밤과 불밤을 이끄는 맛밤 게임단의 감독이었다.
-이 친구 잠이 덜 깼구만?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다고 쯔쯧.
-LML 우승으로 신나서 방금 일어난 걸 수도 있겠지. 이틀 정도 쩔어서 지냈다면 이해는 해.
어떻게 보면 조금 나이든 아재들의 친목방 같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할 만은 일은 아니다.
속한 하나하나가 롤챔스에 시드권이 있는 게임단의 감독들.
언중유골, 말에 뼈가 있다.
대놓고는 말하지는 않는다.
아주 약간 빈정을 바른 정도다.
그렇게나 으스대더니 꼴 좋다.
1년 전 이맘때 쯤만 해도 맛밤 게임단의 감독은 굉장한 유세를 자랑했다.
한국의 롤챔스는, 아니 프로판은 맛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잘 나갔다.
시즌2 롤챔스의 준우승.
아쉽게 우승을 놓쳤지만 그게 어디인가.
다음 시즌의 우승팀은 기필코 맛밤이 되리라.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이 있었다.
팬들은 물론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점점 추락하더니 이제는 LML까지 가버렸다.
LML 우승으로 신이 났다.
우승을 축하한다는 의미가 아닌 돌려 말하는 조롱이었다.
얼밤의 감독은 그런 말을 듣고도 참는 수밖에 없었다.
-..설마 모르기야 했겠는가. 이야기가 안 나오길래 화두를 던져본 거지. 지난해에는 이러저러 일이 있지 않았나.
작년 2013년도의 스프링 시즌.
올마스터는 삼선 블루의 소속으로 우승을 해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주도 하에 새로운 게임단을 창단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고 한다.
감독들은 단합 하에 선수를 유출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미드라이너인 올마스터가 원딜로 가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코웃음을 칠 일이다.
기껏 창단을 했는데 선수가 없다니?
방해 공작이 제대로 들어먹혔다.
거기서 더욱 웃긴 사실이 한 가지.
미드라이너가 원딜로 우승을 해버렸다.
어떻게 찍소리도 못할 완벽한 압승이었다.
-그 이야기는 순재가 잘 알 걸?
-마진 감독이 무언가 했었던 같기도 해.
-나는.. 손 뗐네. 일을 벌리고 싶지도 않고 이제는 더 할 것도 없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대들었다.
선수들을 유출하지 않겠다는 단합.
이를 주도한 건 마진 게임단의 감독 최순재였다.
실패하게 된 이후로 그는 쥐 죽은 듯 살고 있다.
또다시 흑역사가 될 만한 일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눈곱 만큼도 없었다.
-허허, 누가 보면 내가 뭐라도 꾸미는 줄 알겠어. 그냥 걱정 좀 한 거네.
어떻게 화두를 던지기는 했으나 소득은 당연히 없다.
과거처럼 단합을 통해 선수 영입을 방해하기도 힘들다.
신세상 게임단은 이미 1군도, 2군도 선수진이 갖춰졌다.
물론 아무런 견제도 없었던 건 아니다.
2군의 스카웃 과정에서 손을 쓴 이들은 여럿 있다.
잘 나가는 선수의 영입을 의도적으로 거절했다.
IM의 경우 부진한 선수 한 명을 비싸게 넘겼다.
최근 LML에서 활약을 하는 것보다 후회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올마스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선수 정말 대단하긴 해. 처음 데뷔한 게 LCL이었지 아마?
-아, 기억나는군. 블라인드 픽까지 가서 결국 패배한 그 접전.
-난 그때부터 알았어. 이 선수는 되겠다 하고. 침을 잔뜩 발라 놨는데 하필 CLC에서 빼갈 줄 누가 알았겠나.
-허세부리기는. 아웃섹 영입에 실패해서 징징거릴 때는 언제고ㅋㅋ
지금에 와서는 정말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어째서 그때 이 선수의 가능성을 몰라봤을까.
왜 하필 우승을 못해서, 그것도 마지막 세트에 져버려서 자신들의 눈에 안 들어왔을까.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데려오고 싶다.
이 선수 만큼 천군만마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올마스터 영입이라, 정말 구미가 당기긴 하지.
-현실적으로 힘들어. 우리도 한 번 찔러봤다가 손 뗐어.
-듣기로 쿡야에서 올마스터를 영입하는데 든 비용이 수십억은 거뜬히 넘는다고 하더군.
-십억 단위라.. 진위 여부는 둘째 치고 한국 시장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구만.
한 번 화두가 터지자 둑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올마스터가 중심이 된 이야기가 끝도 없이 쏟아진다.
그도 그럴 게 당연하다.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선수.
앞으로도 분명 잘 나갈 선수.
커질 대로 커져 버린 E-스포츠의 판.
그가 가진 가치는 산정할 수 없을 지경이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인재.
북미, 유럽, 중국 가리지 않고 제발 좀 와달라고 성화다.
듣기로는 중국의 초거대 기업에서 1천억도 상관없는 백지 수표를 내밀었다고 한다.
아직 아마추어일 때 진작 잡아 놓을 걸.
이미 저 멀리 떠나버린 버스다.
아쉬움을 꼴깍꼴깍 삼키는 것까지는 어떻게 참을 만하다.
진짜는 올마스터가 한국 프로판에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한 시즌 쉬었다고 하니 재적응이 완벽하지는 않을 거라 보고 있네.
-현재 메타가 하드 캐리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크고 말이야.
-그렇다면 한시름 놓겠지만.. 영 불안하긴 하네.
아니, 그렇게나 잘 나가는 선수가 왜 하필 한국에 온단 말인가.
팬들 입장에서는 국뽕 터지는 국위선양이다.
안타깝게도 감독들에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부디 올마스터가 이번 시즌 메타에 속 좀 썩길.
다행스럽게도 현재 메타는 선수 한 명의 캐리를 거부한다.
어떻게 잘 좀 비빈다면 불가능한 소리도 아니다.
지난 윈터 시즌의 결승전이 정말로 그러했다.
두 팀의 수준 실력 격차만 놓고 본다면 SKY T1 K가 당연코 우위.
그럼에도 메타 덕분에 가짜에어 독수리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씁쓸하다면 씁쓸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로 인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감독들 사이에서 은근한 신경전이 오간 끝에 점점 잦아든다.
한 번 이야기를 섞고 나니 떠오른다.
아, 잡담이나 떠들고 있을 시간이 없구나.
조금이라도 더 완벽한 밴픽 전략을 짜야 한다.
자신들도 가짜에어 독수리처럼 못할 게 없다.
팀의 기량을 따지자면 훨씬 낫지 않은가.
올마스터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그라고 한들 현재의 메타는 녹록지 않다.
오히려 캐리 욕심을 내다 판을 그르칠지 모른다.
이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어수룩한 감독은 없었다.
올마스터 때문에 우승이 물 건너 간 게 아니다.
이번 시즌 만큼 천재일우가 없는 것이었다.
현재 E스포츠 판은 얼마나 더 커질지 짐작도 안되는 상태다.
우승을 해낸다면 장기적으로 어마어마한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다.
얼굴에 조금 철판만 깔면 될 일이다.
작정하고 한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딸칵.
맛밤 게임단의 감독 박성진은 업무용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다른 게임단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슬슬 선수들을 닦달하러 가지 않으면 안된다.
감독실을 나가기 전 마지막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후우.."
창문을 열고 하나 남은 담배를 피워 올렸다.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3월의 말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랑비였던 빗방울이 그새 굵어졌다.
열어 놓은 창문 안 쪽으로 빗물이 튀기며 옷깃을 적셨다.
박성진은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어째서 올마스터의 영입을 더 밀어붙이지 않았을까.
후회하는 감정과 하나 더 태우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제길, 하필 이 타이밍에.'
담뱃갑을 열어보니 마지막 한 개피였다.
혹시 몰라 책상 서랍을 열어봤지만 동이 났다.
비가 하도 세차게 오는 탓에 직접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선수들은 한창 바쁠 때라 부려 먹기 애매하다.
창 밖으로 이를 갈고 있는 편의점이 보인다.
금세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지만 디스가 없다.
'편돌이 새끼.. 디스플러스가 아니고 디스라니까 말 겁나게 안 듣네.'
그게 그거 아니냐는 대답에 그만 꼭지가 돌 뻔했다.
여러 번 실랑이를 했음에도 결국 들여놓지 않았다.
이럴 때 부리기 쉬운 심부름꾼 하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 번 피지도 않은 것 같은데 뿌리 끝까지 타들어갔다.
아쉬운 마음에 쪼옥 빨아봤지만 남은 건 필터 뿐이다.
재떨이에 담배 끝을 꾸기듯 비빈 박성진은 감독실을 나섰다.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다.
.
.
.
* * *
지난주 막을 내린 로드 오브 로드 마스터즈 리그.
LML의 결과는 흡족스러우면서 씁쓸함을 가져왔다.
일단 준우승을 한 것만으로도 시드권이 확보된다.
LML에서 셋, LCL에서 하나다.
만약 결승전을 오르지 못했다면 3,4위전을 치러야 했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다고는 하지만 상대가 상대다.
로드 오브 로드 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얼밤.
패배라는 값진 경험은 차후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다.
졌다고 우울해 할만한 일이 결코 아니라는 소리다.
"베이식이 활약을 한 만큼 우리도 뒤쳐지지 않아야겠지. 이제 다음 주면 개막이야."
이제는 진지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사방에 유리벽이 쳐진 취식실의 안.
씨지맥이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어조로 운을 띄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LML의 결승전은 여러모로 자극이 되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중요한 건 앞으로의 격전이다.
롤챔스의 개막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눈치 챈 사람도 있을 거야.. 사실 내가 요즘 힘들어. 가오 때문에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메타가 나랑 정말 안 맞는다."
씨지맥의 메인 챔피언은 누가 뭐래도 말카림이다.
그런데 그 말카림의 하드 카운터가 네네톤이다.
1킬을 따이고 시작해도 숨도 못 쉬게 압박이 가능하다.
결정타는 라인 스왑 메타.
말카림에게 정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스크림에서의 성적이 나빴다.
상성과 성장을 못하는 건 어떻게 커버할 수 있다.
말카림의 장인인 만큼 그 점은 자신이 있단다.
문제는 라인 스왑 과정에서 잘릴 일이 워낙 많다.
점멸을 들지 않는 말카림은 툭하면 잘리고 만다.
자존심이 강한 씨지맥은 처음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나와도 이러저러 상담을 나눴다.
시간을 들여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어떻게 메타가 지나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극복하기 힘든 이상 팀원들은 아는 편이 좋겠다.
그래서 지금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팀의 실질적 막내인 고질라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인다.
"어쩔 수 없죠. 네네톤과 티바나밖에 못하는 메타잖아요."
"지난 시즌에 나 없을 때 하드 캐리 했다며? 이번엔 쉬엄쉬엄 해."
"그래, 내가 윈터 때 좀 잘하긴 했지. 솔직히 네 덕을 봤지만."
내가 빠진 자리에 코코볼과 뱅크가 들어갔다.
둘 다 실력적인 면에서 모자라지 않다.
하지만 나라는 중심축이 빠져 나갔다.
새로이 팀워크도 맞춰야 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코코볼도 뱅크도 아직 제 기량을 뽐낼 때가 아니니까.'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서 둘은 톱 클래스의 프로였다.
현재는 아직 그만한 반열에 이르지 못했다.
자칫 팀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씨지맥이 맏형으로서 지탱해냈다.
LCL 결승전의 마지막 세트를 장식했던 티바나.
그 누구보다 먼저 티바나를 연습해 숙련도를 끌어올렸다.
신세상 매직이 준결승이란 준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씨지맥의 공로가 컸다.
"당연히 노력은 하고 있지만 여러모로 막힌 거 같아. 회의감도 들고 참.. 네네톤이 진짜 싫다."
결국 마지막은 탑신병자의 본심으로 끝났다.
네네톤이 많이 문제기는 하다.
씨지맥의 주챔피언을 꼽자면 세 가지다.
말카림, 콜라곰, 새로이 추가된 야흐오.
세 챔피언 모두 네네톤이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상대들이다.
아무리 장인의 뚝심이 있다고 한들 상성이란 건 힘들다.
이를 극복해도 라인 스왑이라는 벽이 하나 더 남아있다.
씨지맥으로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메타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점에 대해서는 마음을 먹어두었다.
해법 또한 강구를 하는 중이다.
나를 씁쓸하게 만드는 일은 다른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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