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720화 (720/803)

00720 개벽 =========================

별 문제 없던 LML이 씁쓸하게 느껴진 이유.

메타 탓도, 슬럼프인 씨지맥을 탓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말못할 고민이다.

심적으로 살짝 묘한 기분이 일었다.

'그쪽은 나를 모르겠지만.'

줄곧 롤챔스에 상주 하던 얼밤이 2부 리그로 강등됐다.

LML에서 우승을 했다곤 하지만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팀의 코치와 감독이 나와 이러저러 이야기를 하였다.

지난 시즌에 실망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등.

다시는 실수를 번복하지 않겠다는 등.

감독까지 나와서 언사를 한 것 보면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 바람에 한동안 잊고 살았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박성진 감독.'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나날이다.

맛밤 게임단에서 지긋지긋하게 얼굴을 맞대었다.

그 자식에게 사다준 디스만 해도 트럭 단위일 거다.

'미운 정은 제법 들었어.'

이제 와서 뭐 어떻게 해볼 마음은 없다.

그쪽이 나를 안다면 한 방 제대로 먹여주고 싶겠지만 아니다.

영문도 모르는 상대에게 찌질한 복수를 하고 싶지는 않다.

이전의 일이 떠오르다 보니 마음속에서 살짝 동요가 일었다.

다시 얼굴을 보게 된다고 해도 시큰둥할 거라 생각했다.

의외로 제법 놀랐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미운 정이라는 소리가 괜히 생긴 게 아니구나.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사람이지만 그냥 조금 씁쓸했다.

'만난다면 베이식의 복수에 덤을 얹어 돌려줄까.'

별 건 아니고 딱 그 정도다.

마음 같아선 죽빵 한 대만 더 얹고 싶은데 안된다.

범죄자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씁쓸한 과거 회상을 마치며 팀의 내부 토의를 이어나갔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그 안에 해법을 찾아보자. 탑 이야기는 일단 그쯤 해두고 원딜, 어떠니 초홍아?"

신세상 매직의 팀 구성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MAGIC이다.

당연하게도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원딜러를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

코치와도 당연히 이야기를 나눴다.

뱅크를 매직으로 당겨올 것인가.

별로 내키지 않는다.

'매직에 모든 전력을 싣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프로의 세계에서는 실제로 잦은 일이다.

한 쪽에 모든 전력을 몰아준다.

당연하게도 선수들 입장에서는 기분 좋을 수 없는 이야기다.

다른 곳도 아니고 씨지맥이 있던 삼선 게임단이 그러했다.

팀의 주전력을 삼선 레드에 몰아주었다.

그랬는데 오히려 블루가 승승장구.

결과적으로 잘 풀렸다고는 하지만 썩 좋은 추억은 아니다.

좋지 않은 추억을 누군가에게 남겨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선택한 차선책은 초홍을 원딜로 돌리는 것.

사실 이 이야기는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중국에 가기 전에 귀띔을 했다.

"나는 뭘 해도 너보다 잘함."

"뭘 해도 주먹을 부르는구나.."

초홍이는 이래 봬도 올라운더다.

모든 라인을 준수하게 소화한다.

솔로랭크만 줄기차게 하는 아마추어들 중 그러한 타입이 많다.

차후에는 원하는 라인에 갈 수 있게 패치가 된다.

하지만 현재는 채팅창에서 라인을 맞춰야만 한다.

5픽은 무조건 서폿 가고 그런 시대다.

천상계에선 대부분 양보를 하지만 한 가지.

만약 팀에 탑솔러가 두 명 있고 그런다면?

포지션이 꼬인 팀은 전력이 약화되고 만다.

때문에 서로 최대한 라인을 맞춰 승률을 끌어올린다.

이 과정에서 올라운더가 가지는 이점은 무궁무진한다.

그래서 많은 솔랭 유저들이 올라운더를 지향한다.

지향할 뿐, 기껏해야 메인 포지션 하나에 서브 포지션 한두 개 정도가 한계다.

자신의 본티어대에서 서브 포지션을 한다는 건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초홍이는 다 할 줄 안다.

겁나게 밉살 맞은 꼬맹이지만 반비례하게 재능은 있다.

괜히 도씨 가문 삼남매가 아닌 것이다.

'인성과 실력이 반비례한다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지.'

팀의 두 처자가 전부 반비례하시는 탓에 골치가 좀 아프다.

그래도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내가 중국에 가있던 사이, 초홍이가 원딜러를 진지하게 연습했다.

그 결과물은 나름대로 흡족하다.

부족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괜찮다.

내가 지향하려던 팀의 컨셉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슬슬 막바지야.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자."

지난 한 달간 해왔던 연습은 글자 그대로 기본기였다.

서로에 대한 재적응.

팀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언제나 그러했듯 세부적인 전략은 내가 짠다.

이청호 코치의 도움을 받아 이것저것 구성해 놓았다.

이를 해내려면 반드시 하나 거쳐야 한다.

내가 생각해둔 팀의 컨셉을 확고히 해야만 한다.

"내전이라.. 그런데 베이식이 버틸 수 있을까?"

"가장 마지막으로 했던 때는 무참했지."

"LML동안 경험치가 쌓였다고 봐. 그리고 목적이 단순한 연습은 아니잖아."

팀의 컨셉을 굳힐 수 있다면 달라진다.

이전의 신세상 매직에서는 못했던 전략을 쓸 수 있다.

상대로 하여금 갈피를 아예 못 잡게 만든다.

때문에 일반적인 스크림에서 연습하기 곤란하다.

전략 노출의 문제.

하지만 이제는 가능하다.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런 스크림, 내전이라는 것이 말이다.

.

.

.

* * *

신세상 게임단의 새로운 보금자리.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드넓은 연습실이다.

취식실을 사이에 두고 두 개로 나뉜다.

한 쪽은 신세상 매직.

다른 한 쪽은 신세상 베이식.

취식실이 유리벽으로 되어 있기에 건너편이 훤히 보인다.

구태여 분리를 해둔 이유는 최소한의 방음 때문이다.

애초부터 내전이 이루어질 걸 전제로 설계되었다.

"쟤네 준비됐나 봐. 손 흔든다."

손을 흔들어오는 코코볼을 향해 예은이 마주 흔든다.

투명한 유리벽 건너라 소통하기가 편하다.

사실 소리만 쳐도 들리고, 채팅으로도 할 수 있다.

어쩌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자주 손을 흔들게 됐다.

어쨌든 OK사인이 내려졌다.

대기실에 있던 열 명의 선수들이 이동한다.

밴픽창에 들어가자마자 지정했던 챔피언을 고른다.

스크림의 경우 말을 맞추고 조합을 선택하는 경우도 잦다.

서로 원하던 조합을 가져가서 연습을 하기 위함이다.

밴픽 싸움은 말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패스했다.

블라인드 픽인지라 대기 시간이 전혀 없다.

지체없이 내전이 시작되었다.

─소환자의 전장에 온 것을 환영해요.

정말 오랜만에 듣는 듯한 알림음이다.

나는 미드 라인에 섰고 구리가스를 플레이한다.

욕심없이 무난하게 파밍을 할 작정이다.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니까.'

내전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각 팀원들의 기량 확인.

그리고 다른 하나는 팀의 컨셉이다.

신세상 매직의 까다로운 특색은 무엇인가.

다른 데서 찾을 것 없다.

내가 즐겨 써먹었던 전략 중 하나다.

바로 어느 챔피언이 어느 라인에 갈지 모른다는 거다.

맞라이너로 AP가 올지, AD가 올지 모르니 공용룬을 들어야 한다.

자칫 거꾸로 들기라도 하면 솔킬로 연결돼도 이상하지 않다.

내 독특한 챔피언 픽을 제외했을 때 가장 성가신 요소다.

지금껏 정말 요긴하게 써먹어 왔다.

하지만 언제까지 먹히리란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더욱 강화하면 될 일이다.

'초홍이가 원딜을 할 수 있게 된 덕분이지.'

이제 상대는 어느 선수가 어느 라인에 가는지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의 폭이 곱절 이상으로 늘어난다.

내가 가진 장점을 더욱 마음껏 구사할 수 있다.

아무튼 일련의 눈속임은 구두로 마쳤다.

구태여 속인 후까지 진행할 필요는 없다.

때문에 이 내전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건 실력.

또 새로운 챔피언 폭을 늘리기 위한 연습이다.

어흥!

탑라인의 부쉬에서 씨지맥의 애꾸사자가 뛰어올랐다.

미니언을 잡으며 네네톤에게 목줄을 던진다.

다가와서 칼을 휘두려는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한 순간 눈에 읽힌다.

목줄과 평타로 교대로 먹는다 한들 경우의 수가 좁혀진다.

애꾸사자가 점프하는 타이밍에 발맞춰 네네톤이 물어뜯었다.

꾸드득!

쿠러렁!

스턴을 걸고 칼을 휘둘러 긁는다.

이 일방적인 딜교환이 네네톤을 탑라인의 패자로 만들어줬다.

안타깝게도 애꾸사자에게는 효율적으로 먹히지 않는 듯싶다.

크허어엉!

한 번의 외침으로 방어력 마법 저항력을 상승시킨다.

또 한 번의 외침으로 체력을 회복해 공격을 상쇄한다.

두 번의 외침 모두 네네톤에게 마법 피해를 가했다.

그럼에도 살짝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거 괜찮은 거 같아서 연습 중인데.. 불타는 망토 띄울 때까지 조금 에러네."

"천천히 해봐. 조급해 하지 말고."

씨지맥이 새로이 연습하고 있는 챔피언.

출시 때부터 종종 애용했던 애꾸사자다.

연달아 너프를 먹게 된 이후로 급격히 픽률이 줄었다.

강화W가 체력을 15%회복시킬 때는 정말 괴물이었다.

현재는 고정된 수치만 회복되어 정글로나 가끔 쓰인다.

그런 애꾸사자가 다시 마음에 들었나 보다.

'순항이네.'

네네톤과 티바나로 대표되던 시즌4의 탑메타.

시간이 조금 지난 후 한 마리 더 합류하게 된다.

다름 아닌 탱템을 가는 애꾸사자다.

실제 역사에서 이를 발굴했던 이가 씨지맥이었다.

발굴만 했을 뿐 쓰지는 못했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라는 한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게임하지 않으면 난리가 나는 게임사가 너프를 시켰다.

다시 한 번 관짝을 박찬 탱애꾸사자의 역사는 오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적어도 제 역할은 하고 사라질 듯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

아직 연습 도중이지만 대회 전까지 숙련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 본다.

'그리고 봇라인은.'

초홍이가 선택한 챔피언은 치비르다.

아무리 올라운더라고 하나 원딜러가 메인은 아니다.

유틸성 위주의 챔피언을 골라주는 것이 타당하다.

타당함에도 곱게 말을 듣지 않았다.

한 가지 구체적인 조건을 붙여왔다.

부모님께 쌍커플 수술을 설득시켜 달란다.

폭력으로 해결할까, 내 안의 악마가 속삭였지만 참았다.

가끔은 채찍이 아닌 당근도 필요한 법이다.

어떻게 이야기는 잘 넘길 수 있었다.

공중파를 통해 이름이 알려진 것이 크게 도움이 됐다.

타랑!

탕! 탕! 탕!

작은 부메랑이 미니언 사이를 튕겨댄다.

그렇게 세 번 긁고 큰 부메랑 쭈욱!

스킬을 두 번 사용하기만 해도 라인이 밀린다.

현재 치비르는 OP의 반열에 든다.

필밴까진 아니지만 1티어급 원딜이다.

마나 소모가 적은 덕에 부담이 적다.

밴이 될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괜찮다.

과거 신세상 매직은 한 가지 큰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OP챔피언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정말.. 문제가 많기는 했어.'

탑은 설명이 필요 없는 비주류 장인.

미드는 당시 꼭 가져와야 할 OP가 없었다.

정글은 서로 1티어를 사이좋게 가져갔다.

서포터는 챔피언 폭이 넓지 않았다.

상대 입장에선 내 주력 챔피언들을 잘라도 부담이 없다.

어차피 아군이 가져갈 수 있는 픽들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일은 사라졌다.

이제는 최소한 한 가지씩은 OP를 다룰 줄 안다.

써먹을 수 있는 카드는 모조리 사용한다.

이상적인 신세상 매직을 만들어내기 위한 첫 걸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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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올마스터가 가는 곳엔 항상 화제가 뒤따른다.

북미, 유럽, 한국, 중국.

이번에는 돌고 돌아 다시 한국이다.

"#$%#^##."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한국 로드 오브 로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시 마포구 일대.

상암 E-스포츠 경기장이 있는 이곳 근처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득실대고 있다.

그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고막을 찔러올 지경이다.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시끄럽다는 중국인!

솔직히 한국인들도 만만치 않지만 중국인들보다는 두 수 가량 아래다.

어째서 수백은 가뿐히 넘어 보이는 중국 관광객들이 마포구에 찾아왔을까?

그 이유는 굳이 따질 것도 없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게이머를 보기 위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지금 한국에 있다.

그를 보기 위해서는 한국에 와야만 했다.

"오랜만에 현장에 나온 이지혜 기자입니다. 작년부터 뜨겁게 달아오르던 E-스포츠! 더 이상 컴퓨터 오락이 아니라는 사실은 매일 뉴스를 챙겨보는 시청자분들은 기억에 남아 있으시죠?"

이렇듯 진귀한 기현상을 놓쳐서야 쓰겠는가.

롤챔스 취재의 단골이 되어버린 CBS의 이지혜 기자.

북적거리는 현장의 열기를 전파하기 위해 오늘도 행차했다.

뉴스에, 공중파에 아무렇지 않게 E-스포츠가 송출된다.

더 이상 로드 오브 로드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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