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22 개벽 =========================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마검사를 처음 상대해본다면 무조건 한 번은 당한다.
2레벨을 찍고 무작정 달려들어 평타로 두들겨 팬다.
특히 야흐오가 적일 땐 직빵으로 잘 먹힌다.
'에어본 3타만 피하면 낙승이지.'
맞는다면 역으로 당하거나 딜교환에서 손해를 본다.
즉, 안 맞으면 그만인 이야기라는 소리다.
믿었던 탈력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알파 슬래쉬.
따라가서 써는 순간 죽음은 확정이다.
야흐오를 가볍게 솔킬 내는 공식이다.
'문제는 지금부터지만.'
조금 늦은 2레벨 타이밍의 솔킬이다.
적 포탑까지 따라갔기 때문에 한 대 맞았다.
체력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태다.
"걍 죽어."
"매정하네 진짜.."
언제 어느 때 싸움이 일어날지 모를 미드 라인이다.
다른 챔피언이면 몰라도 서로가 근접AD.
양 팀의 정글러가 주시하고 있음은 당연했다.
동선상, 그리고 챔피언의 특성상 먼저 닿는다.
쿠화악!
레드를 먹고 올라온 아웃섹의 카지트가 뛰어올랐다.
한 번의 도약 이후 점멸로 접근해 갈고리.
어떻게 살아날 방도가 없다.
'무조건 죽는 각이니 어쩔 수 없나.'
매정하다기 보단 이성적인 판단이다.
정글러가 얼굴을 비추면 이러저러 손해가 생긴다.
너무 쿨해서 살짝 상처 받긴 했지만 괜찮다.
찰칵!
롱스워드를 흡수의 칼로 업그레이드시킨다.
마검사의 시작템은 두란검이 아닌 롱스워드다.
원거리가 상대였다면 두란 방패겠지만 야흐오는 근접이다.
이렇게 롱스워드를 먼저 가면 코어템 나오는 속도가 빨라진다.
마검사는 코어템 빨을 많이 받는 챔피언이다.
와드 하나 깔아 놓고 안정적인 파밍을 지향한다.
사샤샤샥-!
어차피 스펠이 없으면 솔킬각 보는 건 글렀다.
괜히 공격적으로 하다 갱이라도 당하면 인생 종 친다.
야흐오와의 라인전은 파밍만 할 수 있어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킬각이 나오니까.'
애시당초 파밍만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상대가 솔킬각을 주었고, 덕분에 게임이 괜찮게 풀린다.
적팀의 정글러도 점멸이 없어 동선이 제한된다.
안 그래도 갱킹력이 좋지 않은 카지트다.
찰칵!
한 번 라인을 쭉 밀고 상점에 귀환한다.
구입하는 아이템은 빌지워터의 해군칼과 신발.
이 두 가지만 나와도 킬각이 야무지게 잡힌다.
다시 라인에 복귀하자 웨이브는 당겨진 상태다.
천천히 막타만 수거하며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야흐오는 욕망의 칼과 단도를 구입해왔다.
그 순간 야흐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잘 보고 배우게!>
다짜고짜 풀피 야흐오에게 달려든다.
야흐오는 칼을 내지르며 뒤로 뺀다.
안타깝게도 반항은 무의미하다.
치잉-!
빌지워터 해군칼의 액티브.
2초 동안의 25% 둔화 효과를 건다.
별 것 아니지만 마검사와 시너지가 대단하다.
야흐오는 느려진데 반해 난 빨라졌다.
신발을 올린 덕분에 차이가 더욱 벌어진다.
탈력을 걸어봤자 끌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둔화 면역인 마검사에게 탈력의 효과는 반감된다.
사샤샤샥-!
한 번 더 알파 슬래쉬가 돌아간다.
무적 판정이 끝나 다시 나타났을 때 야흐오는 사라졌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체력이 있든 없든 그냥 보이면 썰어버린다.
마검사와 야흐오의 상성 관계에 유감을 표한다.
'장막을 활용할 구석이 쥐뿔도 없지.'
평타나 알파 슬래쉬는 물론.
빌지워터의 해군칼도 장막에 안 막힌다.
에어본 3타는 거슬리지만 괜찮다.
일단 붙으면 3타 모으기 전에 결판이 난다.
방금처럼 그냥 무작정 달려들어 킬각을 잡는다.
처음부터 안전하게 어쌔신의 신발을 띄웠으면 모를까.
한 번 굴러가버린 스노우볼은 멈출 수 없다.
경사진 비탈길을 굴러가듯 어마어마한 속도로 커져간다.
─신세상 올마스터님이 토이치를 지목!
이미 라인 스왑을 마치고 아군과 적군은 2차 포탑까지 쭉 밀었다.
그 과정에서 딱히 손해도, 이득도 없었지만 한 가지.
미드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레벨이 낮다.
그나마 높은 게 혼자 CS를 먹을 일이 많은 원딜러.
지금 메타에서 원딜은 그냥 당하는 역할이다.
마검사가 궁극기를 켜고 빠르게 달려나간다.
목표는 봇라인의 강제 다이브다.
터억!
예은의 거미여왕이 실뭉치를 쏘아냈다.
맞은 적은 하트브레이커의 쓰렉귀.
그리고 내가 노리는 대상은 데프콘의 토이치다.
사샤샤샥-!
토이치는 은신을 사용했지만 핑크 와드가 박힌다.
마검사의 빠른 칼질로 쓱싹쓱싹! 베어낸다.
당연히 상대도 반항을 한다.
쓰렉귀가 나에게 탈력을 걸었다.
적 카지트가 뛰어올라 나를 덮친다.
지원이 오는 건 아군도 마찬가지다.
아군 하나가 나에게 실드를 씌워졌다.
카지트는 탈력에 걸려 데미지가 반토막 났다.
똑같이 탈력이 걸린다면 마검사가 우위.
점멸로 쓰렉귀의 선고를 피하며 결정타를 넣는다.
사샤샤샥-!
레벨 차에 의한 압도적인 유린이다.
한 명 썰어낸 순간 나머지는 도미노다.
주르륵-! 카지트부터 떨어진다.
─더블 킬!
타워의 어그로는 아군이 교대로 받고 있다.
어그로 핑퐁에 능한 거미여왕이다.
그 사이 나와 초홍이의 크레이브즈가 프리딜을 넣는다.
─트리플 킬!
신세상 올마스터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깔끔하게 전부 쓸어 담았다.
봇라인에서 난리가 난 사이, 야흐오는 쓸쓸히 포탑을 때리고 있다.
그것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따라오지 않는 판단은 현명했어.'
그럴 기미를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죽었다.
다짜고짜 달려가서 써컹! 써컹!
보호해줄 포탑도, 에어본도 없다면 그냥 죽어야 한다.
봇라인이 사려줬으면 좋았겠지만 안된다.
일반적으로 카지트는 1대1이 강력하다.
고독이라는 독특한 스킬 메커니즘 덕분이다.
하지만 거미여왕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새끼 거미가 고독 상태를 방지해준다.
심지어 카지트는 점멸이 빠진 상태였다.
거미여왕이 적 정글을 들쑤시고 다니는데 부담이 없다.
봇라인을 미리 포위해 판을 짜놓았다.
적당히 숟가락을 올리니 트리플 킬이다.
"빼애애액! 왜 니 혼자 다 쳐먹어!"
"원래 먼저 먹는 게 임자야."
아무튼 선픽을 박아준 덕분에 게임이 수월하다.
야흐오는 한 번 말려버리면 파밍밖에 할 게 없다.
미니언이 없으면 뚜벅이인 챔프라 맞로밍도 안된다.
그런데 이제는 그 파밍도 할 수 없을 예정이다.
찰칵!
마검사의 첫 번째 코어아이템이 완성되었다.
영락한 기사의 검을 일컬음은 두말해서야 입만 아프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건 일방적인 학살이다.
보이는 순간 써컹! 써컹!
정글러가 있던 없던 상관없다.
시동이 걸려버린 마검사는 막을 수 없다.
'이 정도면 만족하려나.'
중국에서 온 팬들도 더 이상 난리를 일으킬 일은 없을 테다.
신고식치고는 조금 과한 감도 있지만 뭐 어떠한가.
근 4개월 만에 치르는 정식 경기다.
녹이 슬지 않았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
.
.
* * *
기대가 되는 매치업이라고는 하나 조별 리그다.
강팀들은 조별 리그에서 힘을 쏟지 않는다.
어차피 진짜는 본선부터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
그 루즈함을 달래기 위함일까.
이번 스프링 시즌의 조별 리그는 빡세졌다.
생존률이 고작 50%.
각각 네 팀이 속한 조에서 상위 두 팀만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래도 비장의 수는 아껴 놓는 게 보통이다.
굳이 처음부터 애가 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신세상 매직도 삼선 레드도 보통이 아니다.
첫 세트부터 양 팀의 대결은 불이 붙었다.
<미드 야흐오.. 다대기 선수가 공인한 조커 카드입니다.>
<지난 윈터 시즌에서도 꺼낸 전력이 있었죠. 그때는 테이커의 카서트에게 참패를 당했습니다,>
카서트의 딱콩은 장막으로 막을 수 없다.
그리고 탈력은 명실상부 야흐오의 하드 카운터다.
라인전에서도, 한타에서도 삼선 레드는 SKY T1 K에게 밀렸다.
이미 수 차례 상대 전적이 있는 라이벌 관계가 무색하게도 완패를 당했다.
3대0이라는 치욕스런 준결승 탈락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 이후 다대기는 야흐오를 더욱 갈고 닦았다고 한다.
SNS등을 통해 더 이상 카서트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딱콩따위 만에 하나도 맞을 일이 없다.
완벽한 자신감의 회복을 내비쳤다.
말만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스프링 시즌의 개막식부터 꺼내 들었다.
<하지만 마검사는 이야기가 다르죠.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평타는 못 피합니다.>
<다대기 선수도 분명 계산 하에 꺼냈을 텐데 너무 완벽하게 파훼를 당했어요. 이건 처음부터 올마스터 선수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겁니다. 야흐오를 꺼낼 거란 걸 진작에 간파 하고 카운터 픽을 준비해왔습니다!>
다대기는 분명 한국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미드라이너다.
적어도 손가락 세 개 안에는 무조건 들어간다.
하지만 결정적인 단점인 한 가지.
챔프폭이 너무 뻔하다.
코리아나, 르풀랑 할 줄 알아?
너 어차피 구리가스 못하잖아?
상대하는 입장에서 예상하는 게 어렵지 않다.
한 차례 비평을 쏟아낸 클끼리가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어쌔신의 신발 맞추고 해봤자 버스 떠났어요. 말렸으면 사이드 라인 가서 파밍이라도 해야 되는데 그러면 마검사가 신나서 달려오거든요?>
<야흐오가 야필패인 이유를 롤챔스 스프링 시즌의 개막식 첫 세트에서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동안 솔로랭크에서 야흐오의 픽률이 줄어들 전망입니다.>
대신에 미드 마검사 충이 늘어날 예정 같다.
어느 쪽으로 가든 지옥이다.
이미 게임의 상황도 그리 흘러가고 있다.
시즌4가 질질 끄는 메타가 된 이유는 결국 미드의 라인 클리어 때문이다.
포탑 끼고 포킹 스킬 뻥뻥! 쏴재끼면 바론 먹어도 못 뚫는다.
그런데 삼선 레드는 미드가 야흐오다.
신세상 매직의 진격을 막을 수단이 없다.
<바론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어요. 설마 탑이랑 원딜이 각각 사이드로 빠졌는데 바론을 치기야 하겠어? 설마가 사람을 잡았습니다.>
<마검사가 엄청나게 잘 큰 데다 정글러는 거미여왕이에요. 15분 햇바론따위 게눈 감추듯 먹어버립니다!>
15분이 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잡는다.
서포터가 시야 장악을 하고 거미여왕과 마검사가 친다.
두 챔피언 모두 바론 어지간히 잘 잡는다.
한나가 간간히 실드를 걸어주자 체력 관리도 된다.
이윽고 바론 백작의 목이 떨어졌다.
소환자의 전장에 바론 백작의 단말마가 울려 퍼진다.
─레드 팀이 바론 백작을 처치하였습니다!
삼선 레드의 입장에서는 뒤통수가 얼얼하다.
이러면 대신 용이라도 얼른 챙겨야 하는데 없다.
신세상 매직이 진작에 먹고 뼈다귀도 안 남겼다.
글로벌 골드의 차이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이걸 이기려면 쓰렉귀가 5인 채찍 쓸기하고, 야흐오가 5인궁 연계하고, 토이치가 5인궁 관통시키고, 카지트가 쓸어 담는 그림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카지트가 아직 9레벨이에요.>
<신세상 매직, 바론 버프 두르고 진격합니다. 삼선 레드는 1차부터 억제탑까지 버려요, 버려요! 다 버려야 돼요. 하나라도 지킬 생각하다간 여기서 게임 끝납니다!>
해설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해설이다.
이 이상 어떻게 던져줄 덕담이 존재하지 않는다.
봇라인에서 한 번 터진 이후 카지트는 성장할 기반을 잃었다.
망해버린 야흐오가 유령을 빼먹는다.
봇듀오도 할 거 없으니 쌍둥이 골렘이라도 먹는다.
카지트가 먹을 수 있는 정글의 양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런 상황에서 위쪽은 적들이 완벽하게 장악했다.
바론 트라이를 할 생각으로 접근도 못하게 막아 놨다.
필연적으로 카지트의 레벨링과 CS는 처참할 수준이다.
사실상 더 볼 것도 없는 게임이다.
그럼에도 클끼리는 얼굴이 굉장히 흡족해 보인다.
마이크를 들어 해설을 이어나갔다.
<스노우볼을 굴려야 하는 조합이 역으로 말려버리면 이런 상황이 나옵니다. 너무 오랫동안 못 봐서 잊고 살았어요. 이런 재밌는 게임을 해설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맞습니다! 최근 메타가 워낙 늘어지는 흐름이 많았는데 화끈합니다. 경기가 아주 흥미진진해요! 이래서 신세상 매직, 올마스터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전범준 캐스터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관중들이 포효한다.
지금껏 마음 속에 답답하게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다.
보조 경기장에 있는 중국인 관광객들도 올마스터란 소리가 나오니 일단 소리친다.
상암 E-스포츠 경기장이 떠나갈 듯 요동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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