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28 본선 시작 =========================
이니시를 건 시점부터 이미 무너져버렸다.
꾸렸던 조합의 특색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얼밤의 부스 안은 상당히 심각한 분위기다.
"상대가 꼬그모를 했잖아! 그럼 당연히 중반 승부를 봤어야지! 대체 정신머리가 있어, 없어?"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가 흥분해서 소리친다.
얼밤의 감독을 맡고 있는 박성진이다.
뒤에서 코치가 말리려 하고 있음에도 막무가내다.
누가 봐도 애가 탄 상태라는 게 빤히 보인다.
"매일라이프 너 왜 그래? 평소 같았으면 진작 미드 찔러서 초토화시켜 놨잖아!"
"토의 때 말씀 드렸던 거 같은데.. 핑크스라서 제가 두고 갈 수가 없어요."
"아니, 사람이! 유도리라는 게 있어야지. 유도리 몰라, 유도리?"
첫 번째 세트에서 얼밤은 패배를 맞이했다.
그것이 감독의 눈에는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어떻게 했어야 했다는 등 열변을 토해내고 있다.
쳇바퀴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다.
사실 이는 지나친 간섭이다.
감독이 아닌 코치가 해야 할 역할이다.
대부분의 감독은 게임에 대해 잘 모른다.
맡고 있는 업무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하다.
마음만 급해서 소린치다고 안되는 일이 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으레 그러하듯 계급장이 짱이다.
쓸데없는 열변을 선수들과 코치는 잠자코 듣고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쳇바퀴가 굴러갔다.
보다 못한 코치가 틈을 봐서 감독을 말렸다.
"선수들도 반성하는 것 같은데 이쯤 하는 게 어떨까요? 시간이 촉박합니다. 나중에, 나중에 하시죠."
"크흠.. 애들도 알아들은 것 같으니 그만하겠네. 아무튼.. 다음 세트를 준비해야겠지."
그 준비 시간을 빼앗은 장본인이 할 소리는 아니다.
아무튼 첫 번째 세트의 패배는 정말 상정 외였다.
게임을 패배할지 몰랐다는 게 아니라 전략.
불이 마그마를 이길 수 없듯 맞물려서 돌아갔다.
꼬그모의 성장을 제지할 수단이 없었다.
쇈은 갱킹이 좋지 않고, 네네톤도 로밍하고는 거리가 멀다.
애시당초 운영과 라인전을 염두에 두고 꼽은 픽이었다.
봇라인도 안정적인 파밍이 고작이었다.
핑크스라는 챔피언 특성상 혼자 남겨두면 잘리기 딱 좋다.
그 와중에 몇 번 미드 동선을 밟아보긴 했으나 실패.
올라가는 동선에 시야 작업이 이미 되어있다.
리심의 특성상 와드돌을 상당히 빨리 구입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양 팀 딜러진의 기량 차이가 난다는 게 컸다.
팀의 미드라이너인 빠른달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물거렸다.
"매라야.. 나 미드에서 꼬그모 나오면 혼자 못 말려."
"알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 밴픽을 짜보고 있는 거잖아."
얼밤의 미드와 원딜은 둘 다 한타 위주다.
한타 기량은 괜찮지만 라인전은 글쎄올시다.
더욱이 상대는 신세상 매직이다.
라인전에 힘을 확 주기로 소문난 게임단이다.
미드라이너인 올마스터는 물론.
포지션을 바꾼 아이돌도 피지컬이 좋다.
조별 리그에서 분석이 완료되었다.
만약 빠른달이 미드를 압박할 수 있었다면.
팀이 다이브각을 만들어볼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상황은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기대하는 것은 조금 많이 부담스럽다.
올마스터를 상대로 너무 많은 걸 바란다.
원래 작전에서도 최대한 밀리지 않는 선에서 맞파밍을 부탁한다.
빠른달에게 요구되었던 사항은 딱 그 정도였다.
선수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감독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는 말이야 준비해온 전략을 백지화할 필요가 전혀 없어. 꼬그모만 밴하면 충분히 사용 가능해! 아니면 방금 같은 플레이가 가능한 다른 챔피언이 있나?"
"글쎄요.. 적어도 꼬그모 같은 포킹 챔피언은 더 없을 겁니다."
"그럴 줄 알았지! 원래 가위바위보도 두 번 연속으로 내면 보통 예상 못해. 내가 가만히 봤는데 올마스터 상대로 지는 팀은 꼭 딴 거 하다 지더라고!"
"…."
로드 오브 로드에 챔피언이 세 개밖에 없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당연하게도 챔피언의 수는 백 개가 넘고 꾸릴 수 있는 조합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감독의 단순무식한 의견도 아예 도움이 안된 건 아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찍어야 되면 감으로 찍는 게 낫다.
그리고 그 찍는 사람이 총대를 메준다면 더욱 좋다.
감독이 의견을 꺼냈으니 나중에 딴 소리도 못할 테다.
이윽고 경기 사이에 있는 휴식 시간 15분이 지나갔다.
5분 이상이 헛소리하다 낭비가 되어 연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감독이 저지른 짓은 감독이 마무리하였다.
두 번째 세트를 위해 선수들이 자리에 착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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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기대를 한 보람이 언제나 되돌아온다.
롤챔스 스프링 시즌 8강 A조의 경기.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했다.
지극히 수비적인 조합을 택한 얼밤을 강제로 분쇄해 버렸다.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하늘에서 포격 세례가 떨어졌다.
아직 채 흥분을 떨쳐내지 못한 클끼리 해설이 말을 이었다.
<잘 큰 꼬그모의 위엄입니다. 이론적으로 후반이 가장 좋은 챔피언이에요. AD꼬그모도 물론 왕귀력 장난 아닙니다. 하지만 그 어떤 챔피언도 AP꼬그모에게는 못 비벼요.>
로드 오브 로드에는 정말 수많은 챔피언들이 있다.
왕귀형 챔피언들도 수십은 존재한다.
그들 중에서도 당연코 원탑.
AP꼬그모는 그 어떤 챔피언보다도 위에 선다.
<궁극기 사거리가 과장 조금 보태면 준 글로벌에 속합니다. 한 방, 한 방의 데미지도 절대 약하지 않은데 쿨타임이 1초, 쿨감 아이템을 맞추면 0.6초까지 내려가요? 정말로 혼자서 한타를 전부 할 수 있습니다.>
현재 AP꼬그모는 입롤 그 자체인 챔피언이다.
하도 포킹 사거리가 길어서 영문도 모르고 두들겨 맞아야 한다.
탱커를 못 잡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뎀이라 잘 잡는다.
라인 클리어도 타액 꾸웩-! 굴리면 깔끔하게 정리된다.
비교를 불허하는 성장 기대치.
클끼리 해설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 들떠버린 것도 사실이다.
김은준 해설위원이 빼먹은 설명을 보충한다.
<실제로 고라파덕이라고 천상계 장인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솔로랭크에선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주진 못해요. 초반이 약한 데다 후반에 물리면 반항도 못하고 죽거든요.>
<확실히 AP꼬그모가 안 쓰이는 이유가 그것이죠. 오늘의 경기는 조합에 따라서는 충분히 쓸 수 있다. 그리고 키울 만한 가치가 있다. 이 두 가지를 증명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안 쓰이던 챔피언들에게 활로가 열린다.
그런 일이 잦아질수록 현재의 메타도 파훼된다.
방금의 경기는 한 가지 열쇠를 제시해준 셈이다.
마스터키는 아니어도 여러가지 키가 있다면 마스터키에 준할 수 있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과정이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한타가 너무 재밌었다.
일방적으로 퍼버벅! 때린다는 게 게임 유저들의 로망이다.
FPS에서 저격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런 거 참 좋아한다.
하지만 얼밤의 팬들로서는 불만이다.
어느 정도 접전을 가지기는 했으나 패배.
경기의 내용이 아무리 재밌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 패배하면 기분이 언짢다.
아직 경기가 남아있으니 괜찮다.
두 번째 세트의 밴픽이 막을 올렸다.
<첫 번째 세트에서 조합의 카운터 역할을 했던 꼬그모를 밴하고, 기존의 전략을 고수한다. 얼밤의 이번 밴픽 전략을 정리하자면 그렇게 되겠네요..>
<사실 조합 자체는 조별 리그에서 검증도 되었듯 충분히 괜찮습니다. 꼬그모의 픽이 워낙 의외였어요.>
얼밤은 이전 세트에서 선보인 전략을 고수했다.
대신 눈엣가시 같은 꼬그모를 밴해버렸다.
확실히 나쁜 선택은 아니다.
꼬그모가 원체 기상천외했던 거다.
직트의 수성을 강제로 뚫어내다니.
정말 꼬그모가 아니면 불가능할 플레이다.
미달리도 비슷하게 되지만 막을 만하다.
일단 사거리가 꼬그모보다 짧다.
게다가 무효화의 장막에 막힌다.
아무리 이빨이 빠졌다지만 얼밤이다.
그 정도도 산정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신세상 매직도 꼬그모를 밴한 시점에서 눈치를 챘죠. 아까와 비슷한 조합을 가져갈 이유가 전혀 없거든요?>
<예, 그 점을 착안해서 공격적인 조합을 가져가야 할 텐데 모르피나..? 이건 조금 의아한데요. 올마스터 선수 같은 하드캐리형 미드라이너가 굳이 그런 수비적인 선택을 할 이유가 있나요. 모르피나는 꼬그모와 달리 후반이 엄청 좋거나 하진 않습니다.>
모르피나는 무난함이라는 세 글자로 설명이 가능한 챔피언이다.
가끔 속박이 맞으면 킬각을 잡을 수 있는 정도.
대회에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맞라이너가 기본적으로 클린즈를 들 테고, 논타겟을 맞아줄 일도 적다.
당연하게도 올마스터의 선택은 모르피나가 아니었다.
<탤런 가져가네요! 이러면 모르피나는 자동으로 서폿이 되죠?>
<최근 모르피나 서폿이 루나와 쓰렉귀의 카운터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드 탤런이라.. 이건 정말 모 아니면 도에요. 이번에야 말로 올마스터 다운 한 판!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실실내체육관을 가득 채운 1만 2천의 관중들.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신세상 매직의 팬들이 넘실거린다.
하얀색 막대 풍선을 좌우로 흔들며 탤런의 픽을 환호환다.
이전 세트도 물론 재밌었지만 또 꼬그모의 16레벨을 기다리는 건 사양이다.
경기장 한 켠, 중국어로 된 플랜 카드와 현수막들도 바람을 탄 듯 흔들린다.
한국어 해설은 이해가 안되지만 올마스터의 팬들이 환호하니 한 마음이 된다.
신세상 매직 대 얼밤의 두 번째 세트.
팬들의 기대대로 과연 화끈하게 가게 될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막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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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첫 번째 세트부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거 꼬그모를 괜히 픽한 게 아닐까.
카드를 노출한 게 아깝다는 소린 아니다.
그저 상대가 생각보다 못하는구나.
'빠른달의 라인전 능력이 부실하긴 해.'
원래 사람마다 장단점 특기 분야가 있는 법이다.
빠른달의 경우 한타와 이니시, 그리고 로밍.
대신 순수 라인전 기량이 떨어진다.
발화 같은 공격 스펠도 들지 않는다.
덕분에 이전 세트에서 정말 편하게 파밍했다.
그리고 이번 세트는 그 약점을 찌를 생각이다.
라인전이 약한 축에 속하는 탤런.
그런 탤런으로 성장 쿨감룬을 들었다.
얼마 전 룬 쪽에 큰 패치가 있었다.
피흡룬의 하향, 공속룬의 상향.
이것 말고도 체력룬과 쿨감룬이 패치됐다.
성장 체력룬과 성장 쿨감룬 박고 라인전을 진행한다.
미친 짓에 가깝긴 하다만 원래 탤런은 그런 챔프다.
쿨감룬의 효율이 조금 다른 의미로 좋다.
챠락! 챠르륵!
탤런의 W스킬, 부메랑 표창.
나는 힘든 라인전을 이어가고 있다.
스킬로 파밍을 하며 포션을 빤다.
현재 시즌4에는 크리스탈 유리병이라는 게 있다.
최대 7포션 스타트가 가능해서 버티기가 수월하다.
직트의 스킬을 최대한 피하며 라인전을 이어나간다.
티링!
포션이 다 달고 체력은 절반까지 떨어졌다.
어떻게든 목표하던 6레벨에 도달했으니 만족이다.
궁극기를 활용해 강제로 귀환 타이밍을 잡는다.
챠락! 챠르륵!
촤락! 촤라라락!
부메랑 표창에 더해 궁극기.
두 가지 광역기를 흩뿌리니 라인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이제 편한 마음으로 포탑 뒤에서 귀환하면 된다.
찰칵!
얼마 전 패치로 기동력의 신발이 싸졌다.
나머지 돈으로는 롱스워드 두 자루를 구입했다.
라인에 복귀하자 몰려오는 미니언들이 환영해준다.
챠락! 챠르륵!
기동신 덕에 미니언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다.
천천히 파밍하며 탑과 봇의 상황을 주시한다.
봇라인은 내가 사라지자마자 무빙이 수비적으로 변했다.
위쪽의 탑라인은 네네톤이라 따는 게 어렵다.
'조급해 할 필요가 없지.'
현재 탤런은 한 가지 슬픈 오해를 받고 있다.
데미지가 2% 아쉬운 유통기한 암살자.
적팀은 안정적으로 라인전을 꾸려나가려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들이 훨씬 유리하다는 자신감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탤런이란 챔피언의 가치.
그 진정한 활용 방식.
아직 채 알려지지 않은 시점이다.
전 판에는 그래도 16레벨까지 기다려줬다.
하지만 이번 판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슬슬 시동이 걸릴 타이밍이다.
챠락! 챠르륵!
정글러가 리시해준 블루를 먹었다.
그리고 쿨하게 귀환 타이밍을 잡는다.
미개한 방망이가 갖춰지자 쿨타임이 30%.
그리고 기동신에 의병대를 업그레이드했다.
잇츠 쇼 타임!
봇라인을 향해 질주한다.
이제 아무도 탤런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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