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30 본선 시작 =========================
─신세상 올마스터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경기장이 크게 포효한다.
한 쪽에서는 안타깝다는 탄식.
다른 한 쪽에서는 놀라움의 탄성.
그럴 만도 하다.
판단에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전범준 캐스터가 힘차게 소리친다.
<핑크스 삭제! 데미지가 워낙 세서 알고도 당해요! 매일라이프가 랜턴을 던져주면 뭐합니까? 못 타는데!>
<침묵 때문에 랜턴을 탈 수가 없었죠. 기껏해야 1초인데 탤런이 너무 잘 커서 순간딜이 장난이 아닙니다.>
게임 전문가인 해설자 김은준이 설명을 보충한다.
얼밤의 봇듀오는 완벽하게 대비를 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랜턴으로 살아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탤런이 이를 허용치 않았다.
점멸과 목베기를 사용해 순식간에 접근.
궁극기를 비롯한 모든 딜을 터트렸다.
치비르가 대형 부메랑을 던져 지원을 해주니 깔끔하게 목이 잘린다.
아무리 대비를 했다고 한들 이렇게 파고들면 방도가 없다.
그냥 눈 뜨고 코 베인다.
현재 진행되는 게임에서 얼밤의 심정은 착잡할 거다.
<봇라인만 벌써 세 번째에요. 당한 게 잘못이라기 보단 당할 수밖에 없게 갔죠? 첫 로밍 성공 이후 스노우볼 치명적으로 굴러갑니다.>
<탤런도 큰 마음 먹고 간 거거든요. 미드 라인 웨이브 버리고, 민병대 사서 거의 올인! 만약 실패했다면 게임은 반대로 되었을 거에요.>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는 클끼리 해설이 한 마디 거들었다.
이 모든 사달의 시작은 쓰렉귀의 죽음이었다.
과연 쓰렉귀의 실수였을까.
그렇지가 않다.
매일라이프는 핑크스를 보조하며 갱킹에 대한 대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없어야 할 킬각이 강제로 만들어졌을 뿐이다.
처음에는 해설자들도 어버버 당황했었다.
<첫 갱킹이 신의 한 수 였어요. 목베기를 진입기가 아닌 CC기 용도로 활용했습니다. 진짜는 모르피나의 속박! 침묵으로 못 도망가게 해놓고 빼도 박도 못하게 맞혔어요.>
<속박이 맞히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맞히기만 하면 저레벨 구간부터 지속 시간이 상당해요. 일련의 연계는 분명 준비해왔을 겁니다.>
얼밤에서도 역전의 찬스가 없었던 게 아니다.
첫 번째 교전 때는 쇈이 5레벨이었다.
한창 6레벨을 바라보며 정글링을 하던 도중 사고가 터졌다.
하지만 이어진 두 번째 봇라인 교전.
확실히 해 볼만 했고 이기는 듯도 하였다.
하나의 변수에 의해 패배하고 말았을 뿐이다.
<신세상 매직이 무리하는 것도 같았는데 리심의 칼같은 백업 덕에 전세를 굳힐 수 있었습니다. 2킬 챙겨가면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어요.>
<사실 리심의 백업까지는 예상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진짜 변수는 탤런의 궁극기 쿨타임. 이건 탤런이 큰 그림을 매섭게 그렸습니다.>
여타 미드라이너에 비해 궁극기 쿨타임이 엄청나게 짧은 탤런.
쿨타임 감소 아이템까지 더해지니 예측이 안됐다.
지금 타이밍에 당연히 궁이 없어야 하는데 있다.
하필이면 얼밤 입장에서도 충분히 싸워 볼 만한 구도였다.
어떻게 몰아붙이는 듯도 보였지만 기사회생.
모르피나가 제 타이밍에 안 죽은 탓에 봇라인 교전에서 연이어 패배하고 말았다.
<신세상 매직은 시야 장악만 꾸준하게 잘해도 여기서 게임 굳힐 수 있습니다. 모르피나의 블랙실드 덕에 탤런이 안정적인 끊어먹기가 가능해요.>
게임의 상황은 상당히 기울어졌다.
쿨타임이 긴 쇈의 궁극기로는 전부 대처할 수 없다.
탤런의 궁쿨이 워낙 짧다 보니 교전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다.
얼밤이 그렸던 게임 구도와는 정반대.
첫 번째 세트는 후반에 가서 지기라도 했지만 이번 게임은 후반도 못 갈 지경이다.
그렇다고 아예 승산이 없냐 하면 그건 아니다.
과거 얼밤의 정글러였던 클끼리가 역전의 가능성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역전할 방법은 있습니다. 속칭 탤통기한이라고 하죠. 랭크 게임에서 흔히 보이는 광경인데 탤런은 잘 나가다도 언제 어느 때 고꾸라질지 모릅니다.>
탤런은 유통기한이 있는 챔피언이다.
잘 큰 탤런이 한두 번 끊기더니 비벼지는 그림.
혹은 한타에서 탈력 맞고 아무것도 못하고 죽는 그림.
솔로랭크에서 보면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다.
대회 게임이라고, 아니 대회 게임이기 때문에 더욱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게 또 탤런이 아무리 잘 커도 탱커는 못 잡거든요? 스플릿 구도 이어지고, 직트가 수성하고 그러면 충분히 한타 각이 나와요.>
올마스터가 비장의 카드로 준비해왔을 탤런.
챔피언의 특색을 살려 초반 이득을 보고 스노우볼을 굴렸다.
게다가 모르피나 덕분에 암살 리스크가 한층 덜어진다.
탤런이 이 정도로 흥하면 눈에 뵈는 게 없긴 하다.
들어가서 그냥 풀콤보 날리고 본다.
못 잡아도 궁쿨이 짧아서 괜찮다.
하지만 결국 탤런은 탤런이다.
후반 가면 원딜 끊고 산화하는 자살 특공대.
탱커인 네네톤을 상대로는 스플릿에서 큰 이득을 볼 수 없다.
클끼리의 해설의 말은 틀린 부분이 없었지만 시청자들에게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클끼리 얼밤 편들어주는 거 보소!
-한솥밥 먹었다 이거지ㅋㅋ
-또 후반 가서 노잼스 하자는 거잖아. 클끼리 마음에 안 드네.
-그랜드 마스터 2티어인 내가 보기엔 이거 이미 게임 끝났어.
-ㄹㅇ 탤런 하드캐리각 아님? 스치는 순간 다 죽어.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곳은 대회.
특히 얼밤은 다른 건 몰라도 운영 하나는 높은 평가를 받는 팀이다.
압박을 하면 할수록 수비쪽 동선이 짧아지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까지 파고 들 수는 있겠지만 결정타가 힘들다.
억제 포탑 앞에서 수성하는 직트는 무적에 가깝다.
유통기한이라는 숙명을 벗어던지려면 무언가 큰 거 한 방이 필요하다.
<직트가 무난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게 얼밤 입장에서는 든든한 보험이죠. 불리하나 진 건 아니다. 클끼리 해설의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역전의 명가 얼밤의 진가가 나올 수도 있는 거에요! 어지간한 초반의 불리함은 한타로 만회할 저력이 있는 팀 아니겠습니까?!>
전범준 캐스터의 우렁찬 외침에 일부 관중들이 환호한다.
얼밤은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희망을 전해준 것만으로도 팬들은 들뜨는 법이다.
과연 전前 얼밤의 정글러 클끼리가 희망 전도사가 될 수 있을지.
진행되는 게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경기는 바야흐로 한타 페이스에 접어들었다.
.
.
.
* * *
20분이 되기 전에 라인전이 끝났다.
정확히는 라인전을 못하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돌아다니며 소규모 교전을 유도한다.
싸우고 싶지 않아 해도 강제로 걸어버린다.
그럴 수 있는 조합을 보유하고 있다.
'꼬그모를 밴한 탓에 치비르가 살았지.'
이전의 신세상 매직과 확실하게 구분되는 부분이다.
나를 저격하면 아군의 주요픽들이 살아난다.
원딜러까지 이니시 스킬을 보유한 덕에 스노우볼이 팍팍 굴러간다.
용은 물론 포탑들도 대부분 성치 못하다.
2차 포탑은 미드만이 살아있다.
그리고 이 미드를 미는 것도 어렵지 않다.
치링~!
유령의 영혼검을 발동한다.
안 그래도 빠른 이동 속도에 날개가 달린다.
미드 2차 후방으로 돌아가 한 명만 노린다.
써컹!
촤락!
목베기로 들어가 스킬을 흩뿌린다.
부메랑 표창과 그림자 수리검이 넓게 퍼진다.
주요 대상은 당연 직트지만 덜 맞아도 상관은 없다.
중요한 건 내가 들어갔다 나왔다는 사실이다.
촤라라라락-!
수많은 표창들이 탤런의 뒤로 딸려 들어온다.
무사히 생존해 돌아왔다는 증거다.
아무리 속도가 빠르다고 해도 힘든 일이다.
모르피나의 블랙실드가 이를 가능케 만들었다.
'물론 잘 컸으니 가능한 거지만.'
못 큰 탤런으로 흉내내다간 게임 던지기 딱 좋다.
나름대로 계산해서 들어간 무리수 아닌 무리수였다.
아무튼 표창을 한 번 긁고 나온 탓에 적들의 체력바는 절반 가까이 훌쩍 까였다.
특히 직트는 보호막을 썼음에도 피가 간당간당하다.
"방관셋에 VF소드 갖춰지니까 장난 아니게 세네요. 평타 한 대만 더 쳤으면 직트 죽었겠다."
"이거 티바나 앞세워서 그냥 밀자. 상대 어차피 절대 못 걸어."
탤런으로 후반 가면 답이 없다.
생존기 없는 반쪽 짜리 암살자.
핑크 와드 하나만 박혀도 무력화되는 싸구려 궁극기.
자드처럼 멋지게 빠져나오는 그림 못 그린다.
유통기한이라는 숙명이 언제나 따라다닌다.
지금 시점의 탤런은 그러한 평가를 받고 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야.'
차후에는 은신을 쓰면 안 보이게 패치가 된다.
생존률이 대폭 올라가지만 현재는 아니다.
궁극기의 쿨이 짧다는 장점도 꽝! 맞붙는 후반 한타에서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럼에도 탤런은 시즌4 중반기에 OP챔피언으로 대두된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목베기에 붙은 침묵.
직트가 침묵에 걸린 탓에 블랙실드를 못 깎았다.
그리고 광역딜이 기가 막히다.
딜스킬이 세 개 있는데 그 중 두 개가 판정 좋은 광역기다.
방금도 적들에게 양념을 제대로 친 덕에 타워를 밀 수 있었다.
"근데 직트 이제 조냐 나오면 아까 방법은 힘들 것 같은데요?"
"톨라리도 완성됐겠네. 작정하고 수성 모드 들어가려는 모양이야."
하지만 언제까지 일련의 방법이 먹힐 리가 없다.
확실히 탤런의 원콤은 딜러 한 명 순삭내기 아슬아슬한 수준이다.
광역딜이 괜찮기는 해도 청동의 톨라리 펜던트에 반쯤 흡수된다.
결정적으로 억제 포탑.
수성하는 쪽에 지극히 유리한 지형이다.
2차 포탑처럼 뒤를 뺑 돌아 거는 일은 하기가 힘들다.
그러다 시간 끌리고 끌리면 결국 적팀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
시즌4 특유의 극후반 메타.
초반에 아무리 스노우볼을 굴려도 끝낼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이를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하나다.
찰칵!
상점으로 귀환한 나는 목표했던 아이템을 구입했다.
그리고 봇라인을 향해 빠르게 달려나갔다.
어차피 합류를 한다고 답이 나오는 게임은 아니다.
내가 스플릿을 하게 되면 나머지 네 명은 위로 간다.
어떻게 상황을 잘 만들어서 바론을 잡는 게 목표.
여기서 하나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네네톤이 아주 머리가 좋아.'
상대 얼밤은 창단의 역사가 한국에서 가장 길다.
초기 멤버 중 절반 정도가 아직 팀에 남아있다.
탑라이너인 싸이 선수가 대표적이다.
스플릿을 우직하게 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스플릿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아이템트리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불타는 망토와 정령힘의 향상. 딜템을 가면 안되는 걸 알고 있는 거지.'
네네톤은 티바나를 상대로 보통 배고픈 하이드라를 간다.
초반 우세를 바탕으로 딜템을 올려 강력하게 압박하기 위함이다.
그걸 모를 리 없음에도 깔끔하게 방템부터 갖췄다.
내가 스플릿을 하게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는 거다.
나만 1대1로 막을 수 있으면 스노우볼이 안 굴러간다.
스스로 파악한 건지, 팀 내에서 오더가 오간 건지는 몰라도 정확하다.
하지만 한 가지 모르는 게 있다.
써컹!
네네톤을 만나자마자 인사를 나눈다.
목베기로 들어가서 평Q.
침묵이 풀리기 전에 부메랑 표창을 날리며 뒤로 빠진다.
느려진 네네톤은 쫓아오지 못한다.
'조금 많이 아플 걸?'
딱히 궁극기를 맞은 것도 아닌데 네네톤의 체력이 묵직하게 깎였다.
두 번의 평타 중 한 방이 치명타로 터진 결과다.
그렇다.
상점에서 구입한 아이템은 다름 아닌 무극의 대검.
초반에 더블 킬을 먹고 VF소드를 괜히 산 게 아니다.
슬슬 탤통기한이 올 때쯤 치명타 템트리로 선회한다.
당연하게도 체력 좀 깎은 정도로 끝내줄 생각은 없다.
꾸뤄러럭-!
내가 무엇을 노리는지 눈치챈 모양이다.
네네톤이 궁극기를 사용한 후 나를 향해 다가온다.
한 번의 딜교환 이후 나는 쭉 네네톤의 뒤를 잡고 있었다.
'할퀴고 채썰기를 연달아 사용해 내빼려는 속셈인가 본데.'
이미 딜계산은 마쳤다.
도망갈 각만 주지 않으면 된다.
네네톤의 옆으로 빠지며 일단 한 방.
푸슉!
꾸드득!
Q스킬 무자비한 참살로 강화된 평타를 쑤셔 넣었다.
그러자 네네톤도 참혹한 난도질로 응수한다.
딜템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스턴을 거는 게 고작.
나를 기절시키고 생존기인 할퀴고 채썰기로 도망간다.
'3초 2초 1초..'
그런다고 운명이 변하진 않는다.
영혼검의 액티브를 발동한다.
빨라진 이동 속도로 한 걸음 따라가 목베기.
네네톤의 뒤를 잡고 부메랑 표창으로 둔화시킨다.
챠락! 챠르륵!
느려진 네네톤은 발걸음을 떼는 게 고작이다.
딜템을 안 갔기 때문에 나를 죽일 딜이 안 나온다.
그리고 영혼검은 이동 속도 뿐만 아니라 공격 속도도 상승시킨다.
'갖추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나오기만 하면 탱커고 나발이고 없거든.'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원딜러의 기분이다.
빨라진 공격 속도로 박아 넣는 치명타 딜링.
두터운 악어 가죽이 찌개용 두부처럼 찰지게 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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