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32 본선 시작 =========================
한국 롤챔스 8강에 이름을 올린 어떤 게임단의 합숙소.
현재 진행되고 있는 8강 A조의 경기를 단체로 관람하고 있다.
50인치가 조금 안되어 보이는 대형TV에서 다급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이거 잭트가 빨리 안 돌아오면 미드 다이브 당할 수 있습니다. 티바나는 그냥 합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거든요?>
5전 3선승제의 세 번째 세트다.
이번 판으로 게임의 승패가 결정지어질지 모른다.
용을 먹고 웃어주는 스타트를 끊은 얼밤이었으나 점점 밀린다.
신세상 매직의 다섯 선수들이 미드 라인에 들이닥쳤다.
<어디 나 한 번 끌어봐! 광우스타 속마음이 그럴 겁니다. 풀리츠크랭커가 그랩하는 순간 점멸로 대신 맞아줄지도 몰라요.>
<일어나면 진짜 큰일 나죠! 그런데 잭트 언제 올라오나요? 싸이 선수 안 올라오면 100% 다이브 당합니다!>
해설자가 아닌 캐스터라도 알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이다.
언제 어느 때 점멸 이니시가 걸릴지 피를 말린다.
팀원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음에도 잭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합류할 생각이 전혀 없는지 잭트는 봇라인의 미니언을 깎고 있다.
솔로랭크라면 빽핑이 백만 번쯤 울려도 이상하지 않다.
분명 팀 내 오더가 오고 갔을 부분임에도 솔직히 의아하다.
무언가 짚이는 바가 있는지 클끼리 해설의 보람차게 입을 열었다.
<미드 2차가 압박 받는 상황에서도 잭트가 봇을 쭉 밀고 있어요. 이게 선수마다 판단이 갈리는 부분인데 싸이 선수는 이럴 때 그냥 밉니다. 제가 실제로 선수 생활을 할 때 싸이 선수에게 이런 말은 들은 적이 있어요 스플릿은 우직하게 해야 돼, 형!>
클끼리 해설의 목소리가 유난히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과거에 정말 몸을 담았던 팀이다.
그러다 보니 썰을 풀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싸이 선수의 플레이 방식, 그리고 목소리 톤조차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다.
<스플릿은 원래 우직하게 해야 돼요. 너 안 오면 우리 다 죽어! 그래도 꿋꿋이 미는 것밖에 어차피 할 게 없거든요. 잭트가 대치 구도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잭트라는 챔피언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다.
잘 크면 분명히 센데 한타에서는 무력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
팀이 압박을 하고 있으면 몰라도 밀리는 상황에서는 할 게 없다.
라인클리어는 당연히 없고. 이니시도 어중간하다.
개싸움이 일어나면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런 구도를 줄 리가 있을까.
확실히 잭트의 입장에서는 스플릿을 하는 게 최선의 판단이다.
안타깝게도 신세상 매직은 언제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고질라 선수의 점멸 쿵쾅! 빵테온이 아무것도 못하고 공중에서 폭사했습니다.>
<럭키랑 핑크스도 점멸 빠졌고 풀리츠크랭커는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에요. 이거는 쭉 빼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보이네요.>
광우스타와 티바나.
두 챔피언 모두 든든하다.
다이브각만 나오면 부담없이 칠 수 있다.
게다가 워낙 잘 들어간 탓에 킬은 물론 억제탑까지 시원하게 밀었다.
<아까 대포 미니언 웨이브 때 2차를 주고 억제탑에서 농성을 이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잘못하면 이대로 바론까지 나갈 수 있어요.>
<바론은 안 나갈 것 같습니다. 싸이 선수가 봇을 워낙 신나게 밀고 있어서 이거 잘하면 억제탑 교환.. 은 무리고 억제 포탑 밀고 깔끔하게 빠졌습니다!>
잭트의 우직한 백도어 결국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미드에서 교전이 일어난 사이 봇 2차와 억제 포탑을 철거해버렸다.
다이브를 안 당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나쁘지는 않다.
잭트가 봇을 쭉쭉 밀다 보니 억제탑을 지키기 위해 신세상 매직이 빠졌다.
바론 백작이라는 추가 손해는 보지 않을 수 있었다.
얻어 걸리기인지 큰 그림인지는 몰라도 아직 경기는 이어진다.
"더 볼 것도 없겠구만. 이건 이미 끝났어."
하지만 TV너머로 경기를 보고 있던 이의 생각은 달랐다.
가짜에어 독수리의 김태호 감독.
한심스럽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아직 할 만 하지 않나요? 방금 타워 두 개 부셔서 잭트 영락검 나왔는데."
"럭키랑 핑크스가 점멸이 빠져서 그런가.."
감독과 함께 경기를 보고 있던 선수들.
분명 불리한 건 맞지만 승상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비율로 따지자면 6대4였던 경기가 7대3이 돼버린 정도다.
현재 메타가 후반 교전 한 번에 비벼질 수 있고.
얼밤의 조합은 그럴 만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럭키와 핑크스의 후반 캐리력은 알아준다.
더욱이 포탑 상황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잭트의 백도어가 수확을 거둔 결과다.
그럼에도 김태호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이런 조합은 라인 클리어도 완전하지 않아서 갉아먹혀. 게다가 한 번 뚫리면 계속 뚫려.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아, 그렇네요. 무너지는 속도가 가속되겠구나. 역시 감독님! 게임 보는 눈이 대단하십니다."
가짜에어 독수리의 탑솔러 프레이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온다
감독과 선수라는 상하 관계에 의한 속칭 사회 생활의 유도리가 아니다.
김태호 감독은 이래 봬도 선수 출신이다.
정말 드물게도 갤럭시 크래프트가 아닌 로드 오브 로드 선수 생활을 해왔다.
나이를 생각해 빠르게 은퇴하고 가짜에어 게임단의 감독이라는 자리를 잡았다.
뒤늦게 롤챔스에 합류한 가짜에어 독수리가 이만큼 성장하는데 크나큰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팀의 대외적인 일처리는 물론 여타 감독들처럼 뒷짐 지고 구경만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경기때는 코치의 역할까지 일부 분담하여 소화한다.
실제로 게임단의 선수들에게 진정 인망이 깊다.
선수의 입장에서 굽어 살피기 때문이다.
그것이 조금 과한 탓에 현재의 가짜에어 독수리가 되었다.
적어도 팀 내에서는 문제가 되는 부분이 아니지만 말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세트에서 멘탈 깨지고 비슷한 구성의 조합을 짠 듯 한데 어설퍼. 급조한 티가 너무 많이 나잖아."
김태호 감독의 입에서 신랄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쇈과 달리 생존기가 부족한 빵테온.
특별히 잘 큰 게 아니라면 스플릿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
럭키도 라인 클리어가 직트에 비해 깔끔하지 못하다
그렇다 해도 선수들의 숙련도와 한타 시너지가 잘 터지면 해볼 만했다.
초반에도 충분히 픽의 이유를 보여줬다.
이렇게 까내릴 것 까지야 있을까.
"하긴 메인 탱커도 없고 스노우볼 못 굴리면 알아서 망하는 조합이네요."
"5분 내에 3억제탑 깨지거나 넥서스 밀리겠다."
가짜에어 독수리에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맛밤 게임단에 대해 좋은 소리를 하지 마라.
대놓고 말한 건 아니지만 눈치를 챌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렇게 자신 있는 척 하더니 결국은 깨지네. 쯔쯧, 체면이 또 말이 아니게 되겠구만 박감독."
김태호 감독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듣는 사람은 선수들과 코치밖에 없기 때문에 딱히 문제가 될 일은 없다.
둘의 사이에 감정이 쌓여있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질 뿐이다.
두 감독의 사이는 썩 좋지 않다.
엄밀히 따지자면 김태호 감독이 일방적으로 싫어한다.
결코 이유 없는 미움은 아니다.
과거 맛밤 게임단이 국내 탑티어를 달리던 시절.
박성진 감독의 고개는 상당히 빳빳했다.
당시 신참이며 감독들 사이에서 가장 어렸던 김태호 감독은 종종 무시를 받았다.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때의 앙금이 김태호 감독 안에는 아직까지 남아있다.
오늘 경기에서 신세상 매직이 이기길 바라고 있을 정도였다.
"근데 이렇게 되면 저희 4강에서 쟤네 만나겠네요? 아.. 올마스터 너무 싫은데."
"하도 플레이가 변칙적이라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
김태호 감독이 말했던 대로 경기는 빠른 속도로 종결 지어지고 있다.
이대로 마무리되면 준결승전 상대는 또 신세상 매직이 된다.
가짜에어 독수리의 입장에서는 이를 부득부득 갈 일.
저 놈의 올마스터 때문에 과거 결승전 진출을 무려 두 번이나 좌절해야 했다.
아직 8강을 치르지도 않은 선수들이 넌더리가 날 만도 했다.
김태호의 감독이 쓴웃음을 지으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또 준결승전에서 만나다니.. 악연이긴 해."
만날 거면 좀 일찍 만나던가, 아예 나중에 만나던가.
하필 준결승전에서 자꾸 걸리는 탓에 결승전이란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작년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김태호 감독의 쓴웃음에는 난처함이 묻어있지 않았다.
'그때는 메타가 공격 쪽에 웃어줬어.'
시즌3은 암살자와 돌진형 챔피언들이 득세하던 시기다.
포킹 조합도 물론 강력했지만 그건 챔피언의 OP성을 믿고 구성한 것일 뿐.
기본적으로 공격 측이 가지는 어드밴티지가 높았다.
만약 스마일 선수라는 귀재가 없었다면 가짜에어 독수리도 일반적인 전략을 취했을 것이다.
선수가 가진 성향상 몰아주며 후반에 가는 것이 지극히 잘 맞았다.
메타가 어울리지 않았을 때도 롤챔스 상위권에 꾸준하게 이름을 올렸다.
선수의 성향에 걸맞게 팀 색깔을 유지하던 노고는 새로운 시즌에 들어 결실을 맺었다.
유행하는 챔피언과 메타가 가짜에어 독수리에 너무나도 웃어줬다.
마침내 윈터 시즌의 우승이라는 기적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너무 질질 끈다는 등의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사실은 김태호 감독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선수 출신인 자신이 봤을 때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음이 옳다.
여느 게임이든 체계화가 되면 게임이 길어지기 마련이다.
자신들은 그저 시대의 흐름을 앞서가고 있는 것.
1세대 E스포츠 갤럭시 크래프트가 그러지 않았던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초반 승부 전략은 빛이 바랬다.
로드 오브 로드 또한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나중 가면 시대를 앞서가는 전술로 재평가 받게 돼있어.'
당장의 평가에 목을 멜 이유가 없다.
결국 역사가 기억하는 쪽은 승자다.
김태호 감독은 늘 게임단의 성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 결과 가짜에어 독수리를 여기까지 키울 수 있었다.
이제는 단 하나의 걸림돌만 뽑으면 된다.
"감독님! 이번에야 말로 우리가 박살을 내주죠."
"야, 우리 아직 8강도 못 올라갔어."
"KTX A팀 정도야 실수만 안 하면 무조건 이기지! 스크림 성적도 우리가 앞서잖아."
무시하기 힘든 것은 감독은 물론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짜에어 독수리의 우승은 올마스터가 없는 틈새를 잘 파고 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잉벤을 포함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아직까지 가짜에어 독수리에 대한 평가가 높지 않다.
우승이라는 성적을 냈음에도 말이다.
올마스터가 돌아오면 끝나게 될 삼일천하, 아니 한 시즌 천하다.
반대로 올마스터만 잡으면 가짜에어 독수리의 평은 급부상한다.
다시 한 번 맞붙게 되는 것은 오히려 원하는 바다.
<넥서스 무너지면서 신세상 매직이 4강, 준결승전 진출을 확정~~ 짓습니다~!!>
텔레비전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전범준 캐스터의 우렁찬 외침.
이를 듣는 김태호 감독, 그리고 가짜에어 독수리의 선수들은 사뭇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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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얼밤과의 경기가 끝이 났다.
이길 걸 알고 있었음에도 속이 굉장히 후련한다.
뭐랄까, 이런 게 좀 있지 않은가?
'저 아저씨는 전혀 알 수가 없겠지만.'
현재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맞은 편의 부스 안.
얼밤의 박성진 감독이 씁쓸하게 퇴장하고 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한 가지 생각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그러게 나 있을 때 잘 좀 해주지 그랬어.'
맛밤 게임단에서 해온 연습생 생활이 무려 5년이다.
미운 정이 들기는 했지만 애착까지는 생기지 않았다.
만약 박감독과의 사이가 가까웠다면 맛밤 게임단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그러지는 않았겠지.'
중국 게임단에 추천을 왜 해주지 않았나 그것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선수들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뒷담이 좀 자주 오갔다.
대체 박감독은 하는 일이 무엇일까?
가끔 도와준답시고 참견하는데 제대로 도움된 적은 없다.
그러면서 원하는 건 쓸데없이 많아서 귀찮은 타입이다.
그런 감독과 사이가 가까워졌다고 고생을 자처하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아주 만약에.'
가끔 상상을 해볼 때가 있다.
맛밤에 재입단해 성공 가도를 밟아가는 나날.
나를 무시했던 이들의 콧대를 자근자근 눌러준다.
생각이 구체적으로 되니 어처구니가 없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구태여 그렇게까지 안 해도 지금의 나는 그 이상이다.
이러저러 잡생각을 떠올리던 사이 도착했다.
앞으로 또 지긋지긋 보게 될 얼굴이다.
============================ 작품 후기 ============================
와 2부를 드디어 수정했네요.
올리진 않았어요.
않은 게 아니라 못했어요.
삭제되는 화가 꽤 있는데 조아라 노블에서 삭제를 하는 건 규정상 안돼서 지금은 못 건드려요.(ap귤선장 화, 트롤킹 화, 루베리 롤드컵 관람간 화, 엘리베이터 사고 화,솔랭에서 치명타 개서스한 화)한두 개면 몰래 하겠는데 좀 많음..
많은 분들이 그러셨듯 확실히 말투 부분에서 문제가 많았네요.
말투는 대부분 수정을 했어요.
그리고 개연성 문제.
예은이 왜캐 빨리 실력이 느느냐.
이 부분에 미래의 지식을 가진 주인공이 가르쳐줬고, 예은도 재능이 좋다.
이런 설명을 추가했어요.
어째서 올마스터인지 못 알아봤는지도 조금은 더 괜찮게 수정했어요.
루즈해지는 파트는 묶었습니다.
예를 들어 씨지맥 파트 6화 분량을 2화에 넣음.
수정한 건 대략 이 정도..
쓰고 보니 얼마 안되는 거 같은데 비문 같은 것도 포함한 수정입니다.
근데 솔직히..
저만 그리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예은이랑 주인공 커플 괜찮은 듯.
말투 좀 고치고 몇몇 좀 오그라드는 부분 삭제하거나 수정하니까 좋아 보여요.
일단 저는 만족합니다.
연참은 제가 비축분을 거의 소모해서 당장은 못하고 비축분 좀 쌓고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