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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736화 (736/803)

00736 노잼스의 종말 =========================

성황리에 막을 올린 롤챔스 스프링 시즌 준결승전 A조.

이미 첫 번째 세트가 끝나고 선수들은 다음 경기를 준비 중이다.

조금은 싸해진 현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전범준 캐스터가 입을 열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거든요. 초반 실수가 너무 컸습니다. 그 후반 좋은 꼬그모가 2킬을 먹고 시작했으니 신세상 매직에서도 곤란할 만했어요!>

첫 번째 세트의 패인은 초반 다이브였다.

한 명 정도면 몰라도 세 명이 떼몰살.

이후의 게임을 풀기가 가짜에어 독수리 측에서 너무 쉬웠다.

전범준 캐스터에 이어 김은준 해설위원이 설명을 보충했다.

<신세상에서 다이브 각을 본 것 자체는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노려볼 만했어요. 그런데 꼬그모의 무빙, 슈퍼 플레이가 완벽할 설계를 뒤집었습니다.>

꼬그모의 점멸과 클린즈를 빼놓고 속박을 날렸다.

모르피나가 점멸 속박을 날린 건 결코 무리수가 아니었다.

당연히 맞아야 할 속박.

그런데 그것이 빗나가버렸다.

그 순간 속된 말로 게임이 비벼졌다.

무난하게 성장하는 꼬그모를 막을 수가 없게 됐다.

첫 번째 세트의 패인은 그렇게 정리된다.

몇 마디 더 할 말이 있는지 강빈 해설이 바톤을 이어받았다.

<얼마 전 패치로 인해 주목 받고 있는 텔레포트 메타도 한몫 했죠. 최근 잘 픽이 되지 않는 쇈과 텔레포트의 궁합이 기가 막혔어요!>

오랜만에 강소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캐치를 보여줬다.

8강 중반을 넘어간 후에야 되었던 하나의 패치.

챔피언들의 자잘한 상하향도 두고 볼 만하다.

하지만 가장 주목 받은 것은 따로 있다.

가끔 전략적인 요소로나 쓰이던 텔레포트가 큰 버프를 받았다.

타워에 쓰면 쿨타임이 200초밖에 돌지 않는다.

아직 버프가 된지 얼마 안된 초기.

대회에서 몇 번 사용되긴 했으나 대세까지는 아니다.

더군다나 8강 C조의 경기에서는 티바나가 텔레포트를 들었다가 발화 네네톤에게 솔킬을 당했다.

텔레포트를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프로 탑라이너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가짜에어 독수리는 과감하게 택했고 그 결실을 가져갔다.

언제나 설명이 부족한 강빈의 보충도 김은준이 맡았다.

<쇈이 티바나 상대로 안 좋다고 평되는 이유가 타워가 밀려서 입니다. 궁극기를 쓰면 타워가 나갈 각오를 해야 돼요. 그런데 이렇게 텔레포트가 있으면 궁 쓰고 다시 복귀하고 간단해집니다.>

관중석이 술렁인다.

메타에 이어 패치까지 가짜에어 독수리에게 웃어줬구나.

단순히 실수라고 생각할 내용이 아닌 것인가.

특히 객석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들.

그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중국 LPL을 박살낸 올마스터가 고전을 하다니.

얼굴을 펼래야 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제 고작 첫 번째 세트입니다. 경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신세상 매직, 올마스터! 이제 슬슬 발동을 걸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 세트 밴픽~~ 보시죠!!>

이렇게 분위기가 다운될 때야 말로 전범준 캐스터의 진가가 발휘된다.

에너지를 담은 목소리를 우렁차게 터트린다.

두 번째 세트, 새로운 시작의 막을 알린다.

.

.

.

* * *

침체된 경기장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가짜에어 독수리의 부스 안.

선수들도, 코치도 흥분했다는 게 눈에 보인다.

"무빙 쩔었다. 거기서 속박 못 피했으면 역으로 게임 터졌을 거야."

"모르피나 앞점멸 생각도 못했는데 그걸 어떻게 반응했지?"

"같은 팀이지만 가끔 보면 사람이 맞나 신기해.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스마일 하드캐리였다."

대화의 내용은 스마일 선수에 대한 극찬.

그럴 만도 하다.

본래 가짜에어 독수리가 원딜 캐리 지향이긴 하나 다른 선수들도 할 말이 있다.

우리가 키워주니까 원딜러도 딜을 할 수 있는 거지.

특히 초중반에 희생을 많이 하는 정글러와 탑솔러는 섭섭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첫 번째 세트는 그런 말이 쏙 들어갔다.

적의 날카로운 다이브를 원딜러의 무빙 하나로 비벼버렸다.

99.9% 죽을 상황에서 0.1% 신들린 컨트롤로 살아 나왔다.

이후 게임은 푸는 과정이 너무나도 쉬웠다.

정글러는 킬을 먹고 빠르게 나온 와드돌로 시야를 장악했다.

쇈은 파밍하면서 궁극기로 꼬그모만 봐주면 됐다.

텔레포트 패치 덕에 고민 안 하고 쓸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들에게 웃어주고 있다.

제아무리 신세상 매직, 올마스터라고 하나 이것을 뚫어내기는 힘들다.

선수들의 이야기를 흡족하게 듣고 있던 한 사람.

가짜에어 독수리의 감독 김태호가 상황을 정리했다.

"잘했어, 애들아. 특히 스마일 슈퍼 플레이 좋았고. 하지만 꼭 그것 때문에 이긴 건 아니야."

단 한순간의 요행이 아니다.

착실한 준비, 선수들의 근본적인 기량 상승.

지금껏 전패를 해왔던 천적 신세상 매직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다.

"다이브 때 비빈 것은 분명히 컸어.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렇게 안됐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어."

응원하는 건 좋지만 너무 관대한 시선 아닌가.

꼭 그렇게만 볼 이야기도 아니었다.

무언가 하나 짚이는 게 있는지 팀의 탑솔러 프레이스가 손뼉을 쳤다.

"아! 라인 스왑이 실패해서 그렇지 제대로 됐으면 반반 가면서 꼬그모 키우는 거 가능했겠네."

"그렇구나. 감독님 말씀이 정확하네요. 우리 조합 초반만 무난하게 넘기면 상대가 절대 못 막아."

"오늘 이변 한 번 제대로 일으켜보자. 그리고 이대로 우승 한 번 다시 해보자!"

김태호 감독의 명확한 정리로 인해 안 그래도 높았던 사기가 무르익는다.

가짜에어 독수리의 부스 안의 뜨거웠던 흥분은 높은 집중도로 바뀐다.

여기서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면 된다.

오늘이야 말로 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사기 만전의 선수들을 보며 김태호 감독이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 첫 번째 세트처럼 안정적으로만 가면 돼. 너희들이라면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맡겨 만주세요. 진짜 빡집중해서 제대로 원딜 캐리 그림 그려보겠습니다."

"아.. 이거 내 어깨가 무겁네."

"부담 가지지 말고 평소처럼만 해. 첫 세트 같은 상황은 아예 안 나오도록 만들게."

팀의 사기는 경기력에 분명 영향을 미친다.

참으로 좋은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이윽고 시작된 두 번째 세트의 밴픽.

선수들은 두근대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착석해서 코치와 감독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조금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게임단들과 달리 가짜에어 독수리는 감독이 게임 지식이 깊다.

그러다 보니 코치와 선수들이 상의해서 밴픽을 하지 않아도 된다.

결정적으로 지금의 원딜 캐리 컨셉의 아이디어를 낸 이가 김태호 감독이었다.

밴픽은 전적으로 코치와 감독에게 맡기고 선수들은 전적으로 게임에만 올인한다.

가짜에어 독수리가 날고 기는 타 게임단들을 제치고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던 이유였다.

"어..? 쟤네 광우스타 밴했는데요?"

"괜찮아. 우리 조합을 상대하기 힘들다는 반증이니까."

"그렇겠네요. 하긴 우리가 준비한 게 한두 가지도 아니고."

신세상 매직에서 저격밴을 했다.

결코 곤란해야 할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웠으면 저격을 해서 조합 무너뜨릴 궁리를 할까.

그만큼 신세상 매직이 수세에 몰렸다는 걸 의미한다.

밴 단계가 끝나고 이어진 픽에서 상대의 생각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

"쇈도 가져갔는데? 이건 진짜 생각도 못했다."

"씨지맥이 쇈을 할 줄 아나? 나 그 사람 쇈하는 거 한 판도 못 봤어."

"급한 김에 뺏어온 거겠지. 혹시 정글쇈일 수도 있고."

"에이, 정글은 더더욱 아닐 걸? 저쪽 정글러.. 솔랭에서 만나본 적 있는데 육식만 무섭게 해."

신세상 매직의 탑솔러 씨지맥은 절대 쇈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쇈이 OP였던 시절에도 대회는 물론 솔로랭크에서조차 안 했다.

가짜에어 독수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게임단이 다 아는 이야기다.

신세상 매직을 상대로 쇈을 밴할 이유가 없다.

덕분에 작년에는 밴픽 단계에서 꿀을 상당히 빨았다.

원래라면 필히 밴해야 할 OP챔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여유가 생긴 밴카드로 올마스터를 집중 견제, 혹은 나머지 선수들의 주력 챔피언을 자를 수 있었다.

어쩌다 OP가 살면 자신들이 고스란히 가져오면 그만.

상대가 안 가져갈 걸 아니 픽의 순서도 나중으로 미룬다.

밴픽을 진행하기 이렇게 편할 수가 있을까.

'그러고도 졌었지….'

김태호 감독은 과거 삼선 블루, 신세상 매직과의 경기를 회상했다.

밴픽 단계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뒀다고 확신했음에도 불구.

결과적으로 단 한 판도 이기지 못했다.

상대 전적이 무려 0승 6패.

저 가증스러운 올마스터 때문이다.

도대체 정상적인 픽을 하는 일이 없다.

그때는 정말 자신이 하는 일이 맞는 일인지.

장기간의 슬럼프에 빠졌을 정도였다.

하지만 더 이상 과거의 자신, 그리고 가짜에어 독수리가 아니다.

"감독님 저희 아까 조합은 못 쓸 것 같은데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다른 조합을 하면 되지. 플랜B, 주유 조합으로 가자."

"어, 그걸요? 랄라 밴됐는데 힘들지 않을까요?"

"대타가 있잖아. 가르마를 하면 돼."

주유 조합은 김태호 감독이 임시로 정한 가칭이다.

제법 그럴 듯하여 선수들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힐 하면 생각나는 서포터 소리커.

그리고 미드도 비슷한 챔피언을 한다.

원딜러를 지켜주기에 최적화된 조합.

굉장히 우스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작년과는 입장이 반대로 됐다.

상대가 자신들의 주력픽을 저격하고.

자신들은 새로운 조합을 꺼내 카운터 친다.

주도권을 잡았다는 생각에 김태호 감독의 입가가 피식 벌어졌다.

"그러면 라인 클리어가 조금 부족할 거 같은데요.."

"아니지. 상대 픽 봐바. 노텀이랑 쇈이잖아. 쟤네도 후반 갈 생각이야."

그 날고 기는 올마스터라 한들 어쩔 수가 없다는 거다.

자신들의 조합을 초중반에 파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충분히 성장했을 때 물어 죽일 수 있는 조합을 하겠다.

노텀에게 쇈이 궁극기를 씌워 원딜러를 물려는 장면은 쉽게 상상이 간다.

이를 선수들에게 설명한 김태호 감독은 자신의 구상을 덧붙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유 조합을 한다면?"

"아, 그럼 후반 가도 원딜 절대 못 죽이겠구나!"

"감독님 최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지."

감탄사를 내뱉는 선수들을 보며 김태호 감독은 흡족하게 웃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상대의 조합을 카운터쳤다고 말할 수 있다.

저 가증스러운 올마스터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줬다.

고작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가르마 가져간 이유가 뭔지 알지? 라인 스왑은 무조건 성공시켜야 해."

"우와, 거기까지 보시고 주유 조합에 가르마를.."

"멍청아! 감독님이 저번에 말씀하신 거 기억 안 나냐?"

"멍청한 건 너고. 이럴 때 점수 따는 거잖아."

가르마는 얼마 전 북미 롤챔스에서 사용된 이후 주목 받고 있는 챔피언이다.

TSL의 미드라이너 미역슨.

그가 미드 가르마로 무려 펜타 킬이라는 임팩트를 선보였다.

한동안 북미 솔로랭크에 가르마충 열풍이 불었다.

김태호 감독이 봤을 때 미드 가르마는 솔직히 별로였다.

그저 북미 최고의 미드 미역슨의 피지컬이 만들어낸 성과다.

하지만 두 가지, 대회 게임에서 상당히 유용한 부분이 있었다.

하나는 미드 랄라의 대신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베 단계에서 엄청 세다는 것이다.

인베가 세면 라인 스왑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자신들 가짜에어 독수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픽이었다.

"그리고 탑은 또도 박사로 가자."

"또도 박사요? 쇈 상대로 좋긴 한데 궁 쓰는 거 끊기는 힘들어요."

"안정적으로 파밍만 할 수 있으면 돼. 가르마도 텔 드니까 부담이 덜할 거야."

상대의 노림수는 뻔하다.

6레벨까지 무난하게 간다.

그러다 노텀과 쇈이 6레벨을 찍었을 때 다이브.

한 번 원딜러를 말려주겠다는 속셈일 터다.

눈치 챈 이상 대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리커의 힐로 한 번 버티고 아군의 지원을 기다린다.

노텀이 궁을 써도 포탑에는 텔레포트를 탈 수 있다.

'자, 어쩔 거냐 올마스터. 이번에는 조합조차 우리가 우위다.'

지금까지 당한 모든 것을 되돌려준다.

경험해보지 못한 상쾌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것을 마시는 것은 경기를 이긴 이후.

점차 완성돼가는 적팀의 조합은 답이 없다.

밴픽이 꼬였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꼬인 정도가 아니라 갈수록 가관이다.

밴픽 단계에서 이미 이겼다.

상대는 고민이 많은지 마지막 픽을 망설인다.

'어지간히 당황했나 본데.. 어?'

무엇을 가져가도 애매하기 짝이 없던 상대 조합이다.

설사 픽을 꼰다고 해도 100% 받아칠 수 있다.

신세상 매직의 마지막 픽이 완료된 순간.

모든 경우의 수를 가정했다고 생각한 김태호 감독의 사고가 굳어버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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