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38 노잼스의 종말 =========================
─레드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탑라인의 포탑이 허물어졌다.
예정된 결과보다 조금 많이 늦다.
신세상 매직에서 난생 처음 보는 기상천외한 대처를 선보였다.
중계진들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모른다.
<타워를 정말 겨우 깼습니다. 티바나가 복귀 텔을 사용하면서 버틴 탓에 하마터면 못 깰 뻔했어요.>
<8분이 지나면 포탑에 붙은 데미지 20 감소가 사라지거든요. 천만다행 커버가 오기 전에 포탑을 밀 수 있었습니다..!>
강빈 해설의 목소리에 안도감이 묻어나온다.
편을 들어준다기 보단 그만큼 상황이 불리하다.
정상적인 게임이 성립되지 않는 수준이다.
가짜에어 독수리는 10분도 되지 않아 벼랑 끝에 몰렸다.
어느 정도냐면 김은준 해설이 별 다른 말을 못하고 있다.
이기는 팀이 이렇게 하면 게임을 굳힐 수 있을 것이다.
강팀이 스노우볼을 굴리는 방법을 제시하는 그의 해설 성향.
그런데 신세상 매직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잔인한 방법으로 승산을 확실하게 꺾어 놓았다.
<포탑을 민 건 다행인데 설마 이거 티바나 라인 안 미나요..? 이렇게 되면 또 봇라인 악몽의 연속입니다.>
김은준 해설의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느껴진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방법.
봐주는 것 하나 없이 잔인하게 말려 죽인다.
봇라인에서 고통 받던 또도 박사가 탑에서 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또도 박사가 어디 파밍할 곳이 없습니다. 티바나 탑에서 프리징 풀지 않는 한 미니언 못 먹어요.>
<힘겹게 정글몹 잡고 있긴 하지만 저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6레벨 찍나요! 이거 정말 큰일났습니다!>
신세상 매직이 유리하게 흘러가니 전범준 캐스터가 신이 나서 환호한다.
하지만 상황은 한 쪽을 응원하기 민망할 정도로 지나치게 불리하다.
티바나와 또도 사이에 레벨 격차가 무려 네 단계다.
상황의 심각함을 김은준 해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리했다.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또도 박사는 게임을 5분 가량 나갔다 온 겁니다. 그런데 또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죠. 또도 박사는 또 한 번 게임을 탈주했습니다.>
망한다 해도 로드 오브 로드의 시스템상 어느 정도까지는 금방 좁혀진다.
낮은 레벨에서는 필요 경험치가 적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글몹의 경우 레벨이 낮으면 추가 경험치를 준다.
그런데 정글몹은 유한하다.
라인을 정말 최소한은 먹어야 한다.
설사 디나이를 당하더라도 경험치만 먹을 수 있다면 숨은 쉴 수 있다.
지금 또도 박사는 숨을 쉬는 것조차 허락 받지 못했다.
<가짜에어 독수리의 봇듀오가 포탑을 급하게 밀었어요. 미니언 손실을 안 시키고 그냥 쭉 미니까 웨이브 관리가 안돼서 프리징이 돼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어요. 상황이 정말 너무 안타깝네요.>
탑 1차와 2차 사이에 미니언이 예쁘게 프리징된 상태다.
티바나가 장인의 손길로 한 땀, 한 땀 수확한다.
또도는 그 근처에 접근할 엄두도 낼 수 없다.
정글러가 한 번 쭉 밀어주면 그래도 다행인데 그것조차 힘들다.
이미 봇라인에서 한 번 당하지 않았던가.
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더 열악하다.
적 진영에 가까운 라인이라 가면 무조건 몰살이다.
<하다 못해 네네톤처럼 최소한의 CC기가 있는 챔피언이면 미드나 봇을 압박해서 티바나가 라인을 밀도록 유도할 텐데 또도 박사라 식칼 던지는 게 끝입니다. 도움이 눈곱 만큼도 안돼요.>
김은준 해설이 평소처럼 스노우볼 굴리는 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거 안 해도 이대로 라인전만 해도 끝난다.
상황은 갈수록 풀리기는 커녕 막장을 향해 치닫는다.
<또도 박사가 할 수 있는 게 정글몹 빼먹는 게 끝인데, 그러면 리심도 자연스레 레벨링이 말립니다. 아무리 원딜 캐리 조합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성장은 받쳐줘야 하거든요? 이러면 CC기 부실한 서포터 두 명 추가된 꼴밖에 안됩니다.>
악순환이 계속된다.
글로벌 골드 격차가 밑도 끝도 없이 벌어진다.
라인이 세 개 중 하나를 입도 대지 못하고 있으니 설명이 필요없다.
아무리 원딜러만 잘 키우면 된다는 가짜에어 독수리지만 이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티바나는 괴물처럼 성장하고.
또도 박사는 아군 정글몹 젠되는 것만 기다리는 처지다.
더 답도 없는 건 이 격차는 강제적으로 더 벌어질 예정이다.
쿠구구궁!
소환자의 전장에 갑작스레 어둠이 들이닥친다.
노텀의 궁극기 밤의 심판자가 발동했다는 신호다.
노려지는 대상은 안 그래도 말린 또도 박사.
가짜에어 독수리의 정글은 쇈에 의해 와드밭이 깔려있다.
<탑이 정글러한테 솔킬 당했습니다! 궁극기도 없어서 반항도 못하고 그대로 죽었죠!>
<점멸도 없었고 식칼도 스킬 실드에 상쇄돼서 살아 돌아갈 가능성이 제로였습니다. 또도 박사의 존재감은 이제 서포터 이하입니다.>
더 첨가하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나열하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김은준 해설의 말미 하나하나가 사형 선고처럼 들린다.
그만큼 상황이 눈 뜨고 보기 애처로울 지경이다.
-내가 또도 박사였으면 진작 탈주했다.
-이건 ㄹㅇ 착한 탈주 인정해야 됨.
-진짜 잔인하다.. 난 절대 프로 같은 거 안 해야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겠지ㅋㅋㅋㅋ
특히 탑솔러들 입장에서는 감정 이입이 제대로다.
솔로랭크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심각하게 망했다.
희망이라는 가능성을 잘근잘근 밟아 부수고 있다.
약자를 변호해주는 클끼리 해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무언가 활로를 제시했을까.
안타깝게도 옆자리에선 강빈 해설이 떨떠름하게 조냐 상태를 유지 중이다.
그래도 하나 가능성을 부르짖자면 원딜러가 말리지 않았다는 것.
전범준 캐스터가 김은준 해설을 향해 아픈 부분을 묻는다.
<김은준 해설이 말했듯 조합은 좋지 않습니까? 꼬그모만 지킬 수 있으면 어떻게 희망이 있을 수 있어요!>
<그때는 제가 좀.. 성급하게 단정 지은 감이 있었습니다. 포지션이 제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르게 가다 보니 라인전 단계에서 게임 풀기가 훨씬 더 쉬워진 것 같네요.>
밴픽 단계에서 신세상 매직이 완벽히 패배했다.
몇 번이나 짚었던 김은준 해설로서는 굉장히 난처한 상황이다.
챔피언들이 의도했던 라인과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심지어 라인 스왑에 대한 독특한 대처법까지 가미됐다.
게임의 구도도 의심할 여지없는 신세상 매직의 압승.
하지만 할 말이 없는 건 아닌지 김은준 해설위원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한타 조합만 본다면 가짜에어 독수리가 나은 감이 있습니다. 노텀이 들어와도 지켜줄 게 많아서 꼬그모를 순삭하기 힘들어요. 물론 라인전 단계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버리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보면 치졸한 자존심 지키기.
그리 생각될 수도 있으나 틀린 말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은준 해설의 말마따나 올마스터가 가져간 게 암살자였다면?
노텀과 같이 꼬그모를 확 물어서 순삭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필리언이 노텀에게 폭탄을 달아주긴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조금 아쉽거든요. 지키는 사람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니 당연합니다.>
만약 성장의 정도가 비슷했다면 승리를 가늠할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가르마와 소리커가 보조하는 꼬그모를 잡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타를 했을 때의 이야기.
신세상 입장에서는 한타를 할 이유가 없다.
<티바나가 스플릿 시작하면 운영적 이득을 챙겨가기 괴장히 쉽습니다. 또도 박사랑 사이드 라인에서 마주치면 부담없이 다이브를 칠 수 있는 성장 격차에요.>
<영락검이 %뎀 아니겠습니까? 물렁살 살살 녹거든요! >
입장이 난처하게 된 김은준 해설이 어떻게 상황을 수습하기는 했다.
그 과정에서 가짜에어 독수리의 마지막 활로를 제시하기도 했다.
전범준 캐스터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드립을 덧붙인다.
게임은 사실상 카운트 다운만을 남겨두고 있다.
승패 자체는 진작 정해진 게 맞다.
안정적으로 스플릿을 돌리면 이대로 게임이 끝난다.
그런데 그런 재미없는 게임.
신세상 매직이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김은준 해설이 고개를 저었던 지금의 게임도 예외가 아니었다.
.
.
.
* * *
미드 노텀이라는 이미 한 번 노출된 카드.
그리고 쇈이라는 당연히 탑이나 정글로 가는 카드.
이를 활용해 상대가 밴픽을 예측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드를 가져갔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 게 아니다.
'조금 당황하는 정도겠지.'
미드 노텀이나 탑쇈이었다면 힘들었을 라인전이 풀린 정도.
심리전을 걸어 놓고 실질적인 이득을 챙기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아직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라인 스왑 단계에서 보았던 재미는 어디까지나 경고다.
앞으로 우리 상대로 라인 스왑을 걸면 이렇게 된다?
라인전 무난하게 넘길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그리고 진짜는 지금부터 진행될 한타에서 보여줄 한 방이다.
현재 구성한 조합은 이래 봬도 상당히 고심해서 짜냈다.
가짜에어 독수리에게 큰 거 한 방 제대로 먹여준다.
쿠구구궁!
미드 억제 포탑 앞에서의 대치 상황.
천둥이 치는 효과음과 함께 소환자의 전장이 어두워진다.
단순한 시각적 효과만이 아니라 실제 적팀의 시야가 좁아진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속담이 여기에 걸맞다.
하지만 대회 게임에서는 보이스 채팅으로 오더가 칼같이 오간다.
봇라인을 밀던 티바나와 힘겹게 식칼 파밍을 하고 있는 또도 박사.
둘은 미드 라인을 향해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다.
아니, 그냥 티바나가 스플릿하게 냅두면 안정적으로 돌려 깎을 수 있었을 텐데.
맞는 말이지만 그러면 게임이 너무 밋밋하다.
또 상대에게 여지가 남게 된다.
라인 스왑만 하지 않았다면 해볼 만했을 것 같은데.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사실을 한타를 통해 보여준다.
굳이 앞라인 싸움 따위 할 필요도 없다.
꾸드득!
대포알처럼 쏘아진 노텀이 꼬그모를 물어뜯는다.
연이어 노텀의 등 뒤에서 쇈이 튀어나오며 도발을 긋는다.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 온갖 스킬을 쏟아부어 대응했다.
노텀에게 탈력을 걸어 데미지를 감소시키고.
가르마와 소리커의 힐과 실드로 슈퍼 세이브를 노린다.
게다가 리심은 노텀의 스킬 실드가 빠지자마자 멀리 차버렸다.
상대가 그려왔을 이상적인 한타 구도다.
그럼에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신세상 올마스터님이 학살 중입니다!
준수하게 성장한 풀피 꼬그모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대처는 완벽했을 텐데 어째서?
그 의문을 해소할 틈도 없이 몰아닥친다.
쿠와앙-!
하아아아-!
라인을 밀고 올라온 티바나가 용으로 화해 뛰어든다.
치비르도 당차게 외치며 궁극기를 발동했다.
꼬그모가 죽은 이상 상대는 다이브를 버텨낼 수 없다.
온갖 도주기를 사용해 내빼는 적팀을 추격한다.
구심점을 잃은 잔당의 처리는 손 쉬운 일이다.
"와, 대박이다. 입롤 한타 제대로 했네요."
"입롤은 무슨. 다 연습한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이건 진짜 상대 입장에서 너무 어이 없겠는데요."
호들갑스러운 고질라의 반응도 그럴 만하다.
노텀과 쇈의 조합은 익히 유명하다.
노텀과 필리언의 조합도 알 사람은 안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전부 섞는다면 어떨까.
'이름하야 쿠팡 조합.'
노텀과 쇈에게 폭탄을 하나씩 설치한다.
그리고 노텀이 궁극기를 사용해 들이박는다.
쇈이 등 뒤에서 튀어나오며 시한 폭탄이 펑! 펑!
막대한 순간 누킹에 버틸 수 있다면 박수를 쳐주고 싶다.
더욱이 쿠팡 조합의 장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온갖 스킬에 얻어터져 죽었던 노텀이 포탑을 파괴했다.
쏘아지기 직전 필리언의 궁극기 시간 회귀를 걸었다.
적 딜러 한 명은 확실하게 죽이고 아군은 살려낸다.
입롤이라는 단어가 더없이 어울리는 조합임이 맞다.
─적팀의 억제탑을 파괴했습니다!
경기 시간은 채 20분밖에 흐르지 않았다.
상대의 부활 시간이 빠른 탓에 마무리는 짓지 못했다.
이렇게 압도적인 게임.
구태여 돌려깎기 씩이나 진행할 이유가 무엇 있을까.
'한 번 더 박으면 확실하게 끝날 텐데.'
운영도 참 좋아하는 편이지만 상황 나름이다.
빨리 끝낼 수 있는데 보험 덕지덕지 드는 거 싫어한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다.
달갑지 않은 게임이 일상인 가짜에어 독수리에게 심판을 내린다.
============================ 작품 후기 ============================
화면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다음 화는 연속으로 봐야 할 것 같아서 오늘은 한 화만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