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41 노잼스의 종말 =========================
챔피언의 선택부터가 에러였다.
기발하긴 하나 효율적이진 못하다.
두 세트 연속 해설진의 예상을 깨부순다.
<사신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맥락없이 읽는다면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다.
하지만 경기의 상황을 아는 이들은 침을 꼴깍 삼킨다.
미드 라인에서 3킬을 먹고 성장한 발렐리아.
무난하게 나온 삼종신기는 한 가지를 의미한다.
-발렐리아 11분 트포 실화냐..
-저건 진짜 스치면 다 죽는다.
-미드 발렐리아 개흥하네ㄷㄷ
로드 오브 로드에서 가장 비싼 아이템 삼종신기.
사실 이거 나와서 안 센 챔피언은 없다.
가격 비싼 만큼 값어치도 톡톡히 한다.
그럼에도 아이템이라는 건 원래 유난히 잘 맞는 챔피언이 존재한다.
콩머스에게는 바늘 갑옷.
베인에게는 영락한 기사의 검.
마찬가지로 발렐리아는 삼종신기를 얼마나 빠르게 뽑냐.
그 하나로 챔피언의 값어치가 결정된다고 말해질 정도다.
그런데 이번 게임.
아무리 크리스탈 유리병을 팔았다고 해도 이르다.
지나치게 빠른 타이밍에 삼종신기가 완성되고 말았다.
미드 라인에서 내려간 발렐리아가 당도했다.
위치는 볼 것도 없이 봇라인 1차 타워.
아직 팽팽한 라인전이 진행 중인 격전지다.
그 뒤를 뺑 돌아가 다이브를 실행한다.
촹!
조건부 돌진기 칼날 질주.
생존기로 쓰기 애매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삼종신기가 나왔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원거리 미니언이 단 한 방에 처리된다.
칼날 질주로 막타를 치면 쿨타임이 초기화.
예상하기 힘든 킬각을 강제로 잡아낸다.
소리커의 코앞까지 접근해 평형의 판결을 내려찍는다.
철컹!
소리커에게 스턴이 걸리자 세 가지 변화가 생겼다.
하나는 바로 탈력을 걸어 발렐리아를 약화시킨 것.
둘은 양 팀이 텔레포트를 사용해 봇라인에 합류한 것.
셋은 텔레포트의 숫자가 둘이 아닌 세 개라는 것이다.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미니언을 타고 탈출한 게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체력이 제법 깎였어요. 이건 싸우지 않는 편이 나아 보입니다.>
<가짜에어 독수리는 미드와 탑이 전부 텔레포트거든요! 여차할 때 합류하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에요!>
전범준 캐스터가 떠들썩하게 소리칠 만도 하다.
현재 텔레포트는 포탑에 사용시 재사용 대기시간이 고작 200초.
쓰는 입장에서 부담이 적다.
200초 사이에 다시 한 번 로밍각을 잡으면 되지 않겠냐.
안타깝게도 프로 레벨에선 로밍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다.
아무리 라인전을 압도하고 있다고 한들 CS는 먹어야 한다.
맞라이너도 로밍을 못 가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거지로 가면 반드시 손해 보게 만드는 구도를 그려낸다.
왔다 갔다 이동 시간 계산하면 200초 버는 건 쉬운 일이다.
김은준 해설이 복잡해진 상황을 정리한다.
<텔레포트를 두 개 뺐다는 선에서 만족하는 게 좋습니다. 이대로 귀환해서 탑 가면 1차 무조건 밀 수 있어요. 신세상 매직, 아쉽겠지만 급할수록 돌아가야 합니다.>
<포탑도 건재하고 소리커와 랄라가 있거든요! 슈퍼 세이브 하면 떠오르는 두 챔피언 아닙니까?>
운영으로 시간을 벌어 후반 도모하는 건 특기다.
탑라인 1차 정도야 기분 좋게 내줄 수 있다.
조금씩 내주면서 서로 3코어, 4코어 갖추면 된다.
랄라가 못 컸다고는 하지만 원래 서포팅 챔피언이다.
한타에서 스킬만 적재적소에 잘 써주면 핑크스가 캐리하다.
이렇게 말리고 시작한 게임을 수도 없이 역전한 가짜에어 독수리다.
때문에 신세상 매직은 과감히 결단했다.
광우스타가 점멸로 파고들어 내리친다.
<광우스타 점멸 쿵쾅! 걸었어요! 걸었습니다!>
<아니, 이걸 들어가나요? 소리커 노려봤자 연계할 챔피언이 없을 텐데요?>
상황이 돌연 급박하게 흘러간다.
물러나는 척 하던 신세상 매직.
그런데 고질라의 광우스타가 갑자기 점멸 쿵쾅으로 들이박았다.
마치 말화이트의 궁극기처럼 깔끔하게 띄워진다.
띄워진 대상은 소리커와 핑크스.
하지만 치명적이라고 보긴 힘들다.
소리커는 그렇다 치고 그 반응 속도 좋은 스마일 선수가 괜히 점멸을 안 쓴 게 아니다.
쓰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오히려 상대가 들어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쿵쾅이 내려쳐진 직후 도착했다.
─커져라♪
랄라가 소리커를 거대화시키며 살려냈다.
혹시 모를 추가 연계를 막기 위함.
만약 물린 것이 두두였다면 절대로 안 살렸다.
가짜에어 독수리는 원딜 하나만을 보는 팀이다.
<치비르가 점멸로 쳐봤는데 랄라가 살렸죠! 이건 깔끔하게 광우스타 주고 빼는 게 나아 보입니다.>
김은준 해설의 목소리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나온다
광우스타가 조금 욕심을 냈다.
연계해줄 아군 이래봤자 발렐리아와 치비르.
발렐리아가 안 쪽으로 파고들기엔 두두의 궁극기가 걸린다.
3초 동안 넓은 둔화 장판을 형성하며 데미지도 상당하다.
치비르가 점멸 평캔과 부메랑으로 순삭을 노려봤지만 그마저도 랄라에 의해 막혔다.
아무리 궁극기를 쓴 광우스타가 단단하다고 해도 무적은 아니다.
포탑의 공격과 협공에 체력바가 눈에 띄게 깎여나간다.
앞으로 남은 목숨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 가지 변수는 존재했다.
가장 먼저 이변을 알아차린 건 지금껏 조냐 상태를 유지하던 강빈 해설이었다.
<잠깐, 이거 혹시 모르나요? 애꾸사자 텔 끊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어..? 정말 그런 것 같은데요? 두두 궁극기 끊었어요. 꿈에도 모르고 광우스타 잡을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잇따라 김은준 해설도 놀라서 소리친다.
그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 일은 잦지 않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은 롤챔스에서조차 드문 일이다.
아니,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 가짜에어 독수리의 눈에는 안 보입니다. 애꾸사자가 궁극기를 쓴 채 텔레포트를 탔어요!>
텔레포트가 패치된지 2주도 채 흐르지 않았다.
아직 선수들조차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애꾸사자와 텔레포트의 시너지라니.
계산을 하지 못한 건 적어도 실수는 아니었다.
휘리릭!
광우스타의 체력바가 고작 두 칸 남은 시점이다.
애꾸사자가 뛰어들어 다시 한 번 물어 뜯는다.
강화된 목줄이 소리커를 휘감는다.
이어져서 쏘아진다.
촹!
촹!
순간 눈에 잡히지 않았다.
스치듯 지나치며 빠져나온다.
지나친 자리에 소리커는 없었다.
<소리커 삭제 당했습니다..! 발렐리아 미니언 타고, 소리커 잡고, 점멸로 빠져나오고! 0.5초만에 해냈어요!>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광우스타가 죽었고 애꾸사자가 이어서 딜 다 맞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리심이 슈퍼 세이브! 핑크스 차냈습니다!>
네네톤과 핑크스, 그리고 랄라에게 얻어맞던 애꾸사자.
주요 딜러인 핑크스를 걷어 차주면 버틸 만하다.
애꾸사자는 점멸로 빠져나갈 타이밍을 벌었다.
하지만 이는 이번 한타에 있어 지극히 사소한 부분에 불과했다.
챵!
소리커를 잡을 때 사용했던 건 오직 한 자루다.
나머지 세 자루의 검이 발렐리아 주위를 돌고 있다.
차여진 핑크스는 발렐리아를 향해 토스됐다.
서슬퍼런 서릿빛 검이 내리쳐진다.
<핑크스 아무것도 못하고 전사! 클린즈 써도 리심 궁은 못 풀거든요?!>
<평형의 판결 선마스터한 발렐리아라 순간 폭딜이 엄청납니다. 바닥에 내려앉지도 못하고 죽었어요..>
토스된 핑크스를 순식간에 녹여냈다.
삼종신기가 이르게 나온 발렐리아의 위엄이다.
만약 리심 궁이 아니었다면 살았을 것이다.
핑크스의 세컨드 스펠은 클린즈.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클리즈는 에어본을 풀 수 있다.
금은 장식 머리띠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미는 건 풀 수 없다.
그러니까 광우스타의 쿵쾅!은 풀고 점멸로 빠져나오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리심궁처럼 차내는 건 도중에 헤어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금은 장식 머리띠와 미묘한 차이점.
그 사소한 차이로 인해 핑크스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
<분명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끝날 거면 시작도 안 했을 팀이에요.>
김은준 캐스터의 놀란 목소리 톤이 유지된다.
1대2의 교환.
포탑을 끼고 있으니 버틸 만하지 않을까.
천만에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상황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신세상 매직에서 가장 잘 큰 발렐리아와 애꾸사자가 위에 있다.
체력 상태가 건재한 치비르와 리심이 밑에 있다.
흔히 말하는 싸먹는 구조.
블루팀의 미니언 웨이브가 도착하자 2라운드를 시작한다.
크허엉!
먼저 들어가는 건 역시 탱커부터.
랄라에게 목줄을 던진 애꾸사자가 포효한다.
야성의 외침은 시전자의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을 상승시킨다.
한 번에서 그치지 않는다.
크허어엉!
분노 스택을 다섯 개 모이면 스킬이 강화된다.
강화된 야성의 외침에는 체력 회복이 붙는다.
적과 포탑의 공격을 여유롭게 받아낸다.
그 사이 침투한다.
<발렐리아에게 CC기 걸어봤자 금방 풀립니다. 애꾸사자가 다 맞아주는 이상 이건 마무리가 확정이에요.>
<치비르 궁극기 때문에 도망도 못 가고.. 설마 12분에 마무리가…>
포탑 안 쪽에 있는 적을 공격하는 행위.
약칭 세 글자, 다이브라고 명명된다.
솔로랭크에서 잘못했다간 게임 제대로 말아먹는다.
호흡이 안 맞으면 100% 잡는 각도 실패하고 만다.
팀 연습을 하는 대회에서는 그런 일이 없겠지.
세상엔 100%란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이브각을 보는 범위가 넓어진다.
서로 틈을 안 주는 대회에서 이득을 내는 것은 당연 어렵다.
틈이 조금이라도 있따면 파고들어서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러다가 서로 아주 약간 호흡이 엇갈리면 갱승.
프로 무대에서도 은근히 자주 있는 일이다.
즉, 다이브의 성공률은 그 팀이 얼마나 호흡을 맞췄나.
<깔끔합니다! 애꾸사자와 리심이 정확히 안 죽을 만큼 맞았어요.>
<이럴 때 종말곡 생각 간절해지거든요! 왜 카서트를 안 했을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늦었어요.>
전범준 캐스터의 말마따나 신세상 매직의 팀원들은 체력이 간단간당하다.
그럼에도 전부 살아남았다.
우연의 일치다?
그렇지가 않다.
<탱템을 가는 애꾸사자.. 야성의 외침 너프가 워낙 치명적이라 안 쓰이는데 씨지맥 선수는 잘 쓰네요. 방금도 회복을 두 번 돌린 덕에 아군이 한 명도 안 죽을 수 있었습니다.>
올마스터의 발렐리아도 화려하게 눈에 띄었다.
소리커가 찍소리도 못하게 하며 암살.
핑크스는 반응할 틈도 없이 목을 꺾었다.
이후 나머지 3인의 처리 또한 실수가 없었다.
애꾸사자가 묵묵하게 받쳐주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로드 오브 로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게임에서 주목 받는 것은 딜러다.
뒤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포지션들은 상대적인 저평가.
하지만 이 선수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년 초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줄곧 그래왔다.
<아, 그러고 보면 처음 탱애꾸사자를 사용했던 것도 씨지맥 선수였죠!>
간간히 한 마디씩 내뱉는 강빈 해설은 오늘따라 날카롭다.
말을 아끼기 때문에 더욱 무거울 수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나이스 캐치다.
<역시 장인의 손에 들리면 다르다는 걸까요?>
<그것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네네톤 상대로 라인전을 잘 해낸 것도, 날카로운 로밍도, 이번 한타에서도 엄청난 역할을 해줬습니다. 탱애꾸사자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나…>
중계진들 사이에서 극찬이 오간다.
어쩌며 광우스타의 죽음으로 끝날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열어내고 닫은 것은 애꾸사자다.
전범준 캐스터가 장난스럽게 묻는다.
<김은준 해설, 발렐리아에 대한 재평가 계획도 잡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니, 그건 이야기가 조금 다른데.. 애꾸사자의 의외성과 신세상 매직의 어그로 핑퐁이 좋았던 거지 굳이 발렐리아 픽이 아니었어도 이길 수 있던 한타 구도라…>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김은준 해설의 모습에 관중들이 폭소한다.
마지막까지 발렐포비아의 신념을 꺾지 않는다.
아무튼 경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현장의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김은준 캐스터가 화제를 전환했다.
<발렐리아 트리플 킬 먹고 아테나의 신발 나왔습니다. 이 선수의 무서운 점은 아이템 선택 면에서도 착오가 없다는 거에요. 랄라는 이제 발렐리아 마주치면 도망도 못 갑니다.>
<그래도 결국은 발렐리아 아닙니까?>
한 마디 더 터트리는 전범준 캐스터에 의해 현장의 분위기는 더욱 들뜬다.
안 그래도 기울어졌던 승기는 봇라인 교전으로 인해 터졌다.
시작부터 의아함을 자아냈던 세 번째 세트가 마무리를 향해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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