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42 노잼스의 종말 =========================
예로부터 잘 큰 팀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오늘은 해설로 나오지 않은 前얼밤의 정글러 클끼리.
약칭 131운영은 그가 정말로 좋아하던 전략 중 하나다.
애꾸사자가 봇을 밀고.
발렐리아는 탑을 밀고.
나머지 팀원들은 미드를 압박한다.
일련의 운영은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하는 입장에서도, 받아치는 입장에서도 분석이 끝났다.
가짜에어 독수리는 당연 받아치는 법을 알고 있다.
"탑은 버틸 만해. 쟤네 올AD라 다행이다."
팀의 탑라이너 프레이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올AD, 참 마법 같은 단어다.
솔로랭크에서 아군 사기 북돋아줄 때 이만한 게 없다.
적 올AD임! 후반 가면 무조건 이김!
가짜에어 독수리는 버티는데 이골이 나있다.
아무리 상대가 신세상 매직이라 한들 괜찮다.
상당히 잘 큰 발렐리아지만 네네톤을 상대로 다이브를 칠 수는 없다.
불타는 망토에 어쌔신의 신발.
심지어 사슬 갑옷까지 더해졌다.
저 사슬 갑옷은 돈이 모이면 바늘 갑옷으로 바뀐다.
'원거리 미니언을 못 먹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렇게 방템을 둘둘 둘렀지만 방심하다간 큰일난다.
발렐리아의 성장 정도가 지나치다.
20분 타이밍에 삼종신기와 영락검이 나와버렸다.
방어력이 높아도 발렐리아 특유의 고정 데미지는 인정사정이 없다.
잘못 딜교환을 하다간 살점이 묵직하게 뜯겨나간다.
근거리 미니언만 먹고 원거리 미니언은 상황 봐서.
CS손실이 다소 있지만 그래도 다이브는 저지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오랜 시간을 끌 수 있다.
적팀의 에이스를 저지했으니 당연하다 마다인가.
안타깝게도 문제가 터진 방향은 아래쪽이었다.
"나 애꾸사자 못 막을 것 같아."
"왜? 거리 안 주고 라인만 밀면 되잖아?"
"아니, 얘가 나 무시하고 타워 치면 답이 없어."
애걸하는 갱붐의 어툰에서 진심 어린 불쌍함이 묻어난다.
그 정도로 현재 봇라인의 상황은 처절하다.
꾸역꾸역 평타로 애꾸사자를 두들기는 랄라.
체력이 정말 개미 눈곱 만큼 단다.
스킬을 쓸 땐 조금 더 달지만 그 뿐이다.
애꾸사자의 회복력이 피해량을 상회한다.
크허엉!
강화된 야성의 외침이 터지며 애꾸사자의 체력을 회복시킨다.
지금껏 열심히 욱여넣었던 딜링이 도로아미타불.
매 미니언 웨이브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챠라랑!
미니언 웨이브가 도착하자 랄라가 보라색 창으로 긁는다.
잘 성장하지 못한 탓에 깔끔한 마무리가 안된다.
그 잠깐의 공백에 애꾸사자가 봇라인 억제 포탑을 두들긴다.
콰직!
현재 애꾸사자의 Q스킬 사자발톱은 포탑에 박힌다.
덕분에 타워링이 제법 쏠쏠하지만 진짜는 스택.
다섯 스택이 모인 애꾸사자는 다음 스킬이 강화된다.
크허엉!
랄라는 때리고, 애꾸사자는 회복하고.
한 웨이브마다 포탑 체력이 일정량 깎여나간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포탑은 반드시 허물어진다.
"정령힘의 향상 나와서 그런지 회복량 장난 아니네.. 어떡하지? 저거 핑크스 아니면 절대 못 잡는데."
"핑크스가 봇 막고 랄라가 미드로?"
"핑크스 없으면 광우스타가 몸 대고 밀 거야. 우리 그냥 저거 한 번 끊자. 어차피 텔 있잖아."
2차 포탑이면 모를까 억제 포탑.
봇 1차 다이브 한타 때 2차까지 쭉 밀린 결과다.
저렇게 대놓고 억제 포탑 앞에서 시위하는 애꾸사자를 봐줄 수는 없다.
억제 포탑은 맞아도 시간이 지나면 수복된다.
시즌4에 들어 수복 속도가 빨라지는 패치도 있었다.
이 앞에서 수성을 하면 어지간하면 뚫릴 일이 없다.
가짜에어 독수리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운영 방식.
이를 해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판단을 내린 네네톤은 뒤로 빠져 텔레포트를 탔다.
콰직!
애꾸사자는 꿈에도 모르고 타워를 치고 있다.
이미 포탑의 체력바를 절반 이상 깎았다.
맞아봤자 달지도 않으니 욕심이 날 법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 욕심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챠라랑!
랄라가 보라색 창을 그어 애꾸사자를 둔화시켰다.
열심히 때려봤자 어차피 다시 피수급할 텐데.
믿음직한 동료 한 명이 방금 전 도착했다.
꾸드득!
네네톤의 거대한 칼이 좌우로 그어진다.
채 야성이 모이지 않아 0.75초의 스턴.
하지만 포탑을 때리고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포탑의 공격 방향은 애꾸사자를 향하고 있다.
<커져라~♪>
<변해라~♪>
랄라가 가진 모든 CC기들이 애꾸사자에게 쏟아졌다.
포탑에게 맞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함이다.
제아무리 단단하다고 한들 별 수가 없다.
아무리 때려도 변함이 없던 애꾸사자의 체력바가 눈에 띄게 깎여나간다.
크허엉!
조금만 더 때리면 죽을 것 같은데.
체력을 회복한 애꾸사자가 궁극기를 사용했다.
발화가 없는 탓에 마무리가 조금 늦었다.
조금 늦었을 뿐 충분히 죽일 수 있다.
랄라가 요정을 붙이면 대상의 시야가 보인다.
은신 상태인 애꾸사자가가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네네톤과 함께 두들기니 슬슬 마무리가 되려 한다.
크허엉!
그런데 또다시 애꾸사자가 체력을 회복했다.
대체 어떻게?
궁극기를 사용하면 수 초에 걸쳐 스택이 모인다.
모인 스택으로 체력을 회복한 애꾸사자가 꾸역꾸역 도망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잡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배의 배는 오래 걸리고 말았다.
심지어 점멸과 궁극기가 모두 빠졌다.
그 사이에 위쪽 동네에서는 당연 난리가 났다.
─적팀이 억제탑을 파괴했습니다!
2차 포탑 정도는 흔쾌히 내줄 생각이었다.
한 번의 위기는 두두가 궁극기로 막을 수 있겠지.
그런데 지나치게 시간이 끌린 탓에 탑라인이 완전히 밀렸다.
"애꾸사자 잡는데 무슨 한 세월이 걸리냐?"
"포탑에 네 다섯 대 맞게 했는데 죽지를 않아.."
"아, 발화 들걸. 어떻게 치유 감소가 없어서 못 잡냐."
귀신에 홀린 듯 갱붐과 프레이스의 표정이 멍하다.
자신들이라고 결코 계산을 안 하고 간 게 아니다.
어지간한 탱커라도 두 번은 죽었어야 할 상황이다.
포탑에게 맞으면서 꾸역꾸역 버텨내다니.
그게 가능할 거라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냉혹한 현실은 꿈처럼 깨는 일이 없었다.
.
.
.
* * *
저 챔피언 왜 하는지 모르겠다.
김은준 해설의 혹평을 들으며 픽이 되었던 발렐리아.
왜 하는지, 그거 하나는 오늘 경기로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쿵! 콰앙!
쌍둥이 포탑을 낀 마지막 한타다.
이미 3억제탑이 완성돼 사실상 게임이 끝난 상태다.
각 라인 마다 두 마리씩 튀어나오는 거대 미니언.
그들이 당도하기 전에 광우스타가 뛰어들었다.
─커져라~♪
핑크스를 살리면 막을 수 있을까.
온갖 보조 스킬들이 핑크스에게 둘러진다.
아무리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나 3코어가 나온 핑크스다.
어떻게 프리딜 구도만 잡을 수 있다면 또 모른다.
그 희망을 잘근잘근 짓밟아 뭉갠다.
촹!
철컹!
발렐리아가 미니언을 타고 순식간에 접근한다.
점멸로 내려찍히는 평형의 판결.
핑크스는 0.1초의 지체도 없이 클린즈를 사용해 풀었다.
하지만 진짜는 CC기가 아니라 데미지다.
<아니, 발렐리아 혼자서 핑크스를 잡아버리면 소리커와 랄라의 고생은 대체 어떡합니까?>
전범준 캐스터가 혀를 내두를 만도 하다.
랄라의 궁극기와 실드, 소리커와 2단 힐.
두두가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를 올려주는 넘쳐흐르는 힘까지 걸어줬다.
그럼에도 제대로 카이팅조차 하지 못한 채 끽하고 죽어버렸다.
<삼종신기에 영락검이 나오니 데미지가 상상 초월인데요? 무지막지하게 따라가서 결국 잡아버렸습니다.>
<발렐리아가 정말 안 좋은데.. 탑 발렐리아는 삼종신기 후에 방템을 두르거든요. 미드 발렐리아는 미드라서 딜템을 올려도 되니까 확실히 탑보다는 좋네요.>
횡설수설 평소와는 입장이 반대로 됐다.
정상적인 해설을 하는 강빈 해설과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김은준 해설.
그토록 깍아내렸던 발렐리아가 게임에 종지부를 찍어냈다.
일반적인 암살자들과 달리 스킬샷에 부담이 없다.
자드나 르풀랑, 아링 같은 거면 핑크스가 귀신 같은 카이팅으로 어떻게 비벼볼 각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발렐리아의 딜 메커니즘은 타겟팅.
궁극기마저 코앞에서 쏘면 타겟팅에 가깝다.
<랄라의 변해라, 소리커의 침묵 등 CC기도 금방 풀린다는 게 큽니다. 발렐리아 패시브 최대치에 아테나의 신발이 더해지니 강인함이 60%가 넘어요. 아까도 안 걸린 듯 자연스럽게 풀렸죠?>
<이게 원래 강인함이 있어도 발렐리아가 물몸이라 점사 맞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그런데 가짜에어 독수리가 하필 CC기 위주 조합이라 쉽게 뚫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은준 해설이 자꾸 다급하게 변명을 쏟아낸다.
뭐, 일리가 아주 없는 말은 아니다.
랄라도, 소리커도, 두두도 딜이 센 챔피언은 아니다.
그나마 한 명 듬직한 탱커인 네네톤은 탱템만 둘둘 둘렀다.
올AD임을 인지하고 그렇게 올린 것이겠지만 무시하면 그만.
스턴 걸어봤지 0.5초만에 풀어내고 닥돌한다.
한 번 이니시가 걸리면 발렐리아의 진입을 막을 수 없다.
<네네톤이 정말 고기 방패의 역할조차 수행을 못했어요. 그에 반해 애꾸사자는 봇라인에서 어그로 끌어서 억제탑 나가게 하고, 한타에서도 진입해서 CC기 걸고 딜 다 받아줬어요.>
<양 팀 탑의 존재감 차이가 극명했습니다. MVP에 선정될 선수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하네요.>
<혹시 발렐리아가 받으면 곤란한 일이라도 있으신지?>
<아, 안 싫어한다고요 진짜..>
얄밉게 이죽대는 전범준 캐스터에 다시 한 번 현장의 관중들이 폭소한다.
김은준 해설도 슬슬 화가 나는지 목소리에서 살짝 짜증이 묻어난다.
이윽고 세 번재 세트의 MVP가 결정 났다.
<씨지맥 선수. 조별 리그 이후 굉장히 오랜만에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텔레포트와 은신을 응용한 슈퍼 플레이, 두 명을 마지막까지 붙잡아 억제탑을 깬 공로. MVP에 선정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김은준 해설이 애꾸사자의 공로를 짚어준다.
MVP라는 게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리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드 1차를 터트린 것도 애꾸사자의 로밍 덕이었고 충분히 받을 만하다.
현장과 중계 플랫폼 등의 채팅창에서도 큰 이견 없이 넘어가기는 했다.
-김은준이 롤챔스 비선 실세야? 발렐리아 했다고 MVP 안 주는 거 보소ㄷㄷ
-올마스터가 챔피언에게 가한 피해량 1등 아님?
-그렇게 따지면 애꾸사자는 받은 피해량 1등, 회복량 1등임 ㅇㄱㄹㅇ
-크~ 이걸 회복량에서 져버렸네.
소소한 불만이 나오는 거야 예삿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납득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플레이를 보여줬다.
애꾸사자라는 픽 자체도 관심이 간다.
네네톤과 티바나, 가끔 가다 쇈이랑 또도 박사 정도일까.
밋밋하기 그지없는 대회의 탑라인에 새바람이 불 수 있을 것인가.
조커 카드로 끝나는 픽인지 궁금증이 가득하다.
가짜에어 독수리가 요청한 15분의 추가 작전 타임.
위기에 몰린 그들로서는 타개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기다림이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이윽고 학수고대하던 그 순간이 다가왔다.
<가짜에어 독수리가 첫 세트 가져가며 유리하게 스타트를 끊는 듯싶더니 어느새 1대2! 세트 스코어가 역전됐어요.>
<오늘의 경기는 프로 무대에서 밴픽 싸움이 얼마나 중요한가. 여러모로 교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뭐.. 저 자신에게도 말이지요>
밴픽 마스터 김은준.
안타깝게도 오늘은 영 컨디션이 받쳐주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한 경기들이 쏟아졌다.
신세상 매직, 밴픽 가지고 장난치기 정말 좋아하는 팀이다.
한 번 더 체면이 상했다가는 자기 자신을 용납할 수 없다.
김은준 캐스터는 남다른 각오, 더욱 예리해진 눈동자로 밴픽창을 꿰뚫어봤다.
<가짜에어 독수리 랄라 살았는데 못 가져가죠. 이미 한 번 크게 데었거든요?>
<초반 갱킹 좋은 정글은 전부 죽이면서 리심 가져가는 선택. 이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거미여왕, 이블퀸, 빵테온.
현 메타에서 초반 갱킹이 좋은 정글러를 전부 죽였다.
빵테온은 뮴뮴 선수가 꺼낸 적이 없지만 혹시 모른다.
더 이상 뒤가 없는 만큼 삭초제근이다.
선픽의 이점을 발휘해 리심까지 가져왔다.
초반에 변수를 만들지 않겠다.
각오가 가시적으로 느껴진다.
<이에 맞서는 신세상 매직은 과연 어떤 픽을 가져갈지.. 잠깐, 이거 실화인가요?>
전범준 캐스터가 깜짝, 반색하며 놀란다.
그도 그럴게 이전 세트에서 겁나게 해먹었다.
한 번 더 해먹을 수 있을까.
얼핏 바라본 김은준 해설의 표정이 썩어있다.
<아니, 미드 발렐리아는 어디까지나 조커 카드 개념이라 두 번은…>
<픽 박았습니다! 발렐리아! 김은준 해설이 싫어하는 건 어떻게 알고 기가 막히게 가져가네요!>
싱글벙글 전범준 캐스터가 진심으로 재밌어한다.
하지만 기뻐하기엔 아직 이르다.
레드팀이 한 번에 가져갈 수 있는 챔피언은 두 개.
두 번째 카드야 말로 신세상 매직의 진정한 노림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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