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45 노잼스의 종말 =========================
전 세계 로드 오브 로드 팬들 중 모르는 이가 없다.
과장 없이 정말로 북미, 유럽, 중국, 한국.
로드 오브 로드의 중심이라 말할 수 있는 지역을 한 번씩은 거쳤다.
올마스터는 내로라 하는 프로팀들을 재치고 각 지역의 우승을 차지했다.
이 선수가 인기가 많은 데는 확연한 이유가 있다.
실력적인 부분은 물론, 유쾌한 스타성까지 띄었다.
하지만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챔피언이다.
아니, 챔피언이 대체 어때서?
챔피언 폭 넓은 선수는 찾아보면 의외로 많다.
넓으면서 잘하는 선수도 없지는 않다.
올마스터는 기존에 안 쓰이던 챔피언을 발굴한다.
발상의 전환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선수다.
아무리 그런 선수라도 이건 심했다.
미드 소리커가 롤챔스 준결승전을 지배하고 있다.
<발렐리아 서폿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미드 소리커도 이게 참.. 뭐라 할 수도 없는 게 좋아요. 발렐리아가 서포터로 가는 게 그나마 괜찮다면, 미드 소리커는 명백히 좋은 픽입니다.>
김은준 해설의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묻어나온다.
난처하기 그지없는 상황임에도 꿋꿋이 해설을 이어나간다.
당황스럽고 난처하지만 게임의 상황이 너무 재밌다.
재미가 있으면서도 어이가 없다.
발렐리아가 서포터, 소리커가 미드라면 누가 믿겠는가?
솔로랭크도 아니고 대회 무대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심지어 캐리를 하고 계신다.
발렐리아 서포터가 이니시를 걸었다.
촹!
촹!
촹!
미니언 사이를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서포터가 설마 삼종신기라도 올린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구입한 아이템은 산악 방패와 와드돌 뿐.
고대의 방패가 최종 업그레이드된 모습이 산악 방패다.
미니언 막타를 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 효과가 칼날 질주와 제대로 맞아 떨어진다.
<리심에게 스턴 걸렸습니다. 이거 설마 이대로 다이브 가나요?>
<꼬그모가 거리 안 줘서 못 물긴 했는데 상관없습니다. 진짜는 따로 있어요!>
미니언을 타고 들어간 대쉬로 문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발렐리아가 가진 CC기는 결국 조건부 스턴 뿐이다.
설사 스턴이 들어간다고 해도 딜러를 문 게 아닌 이상 이니시가 안된다.
즉, 신세상 매직의 진짜 이니시에이터는 다른데 있었다.
어흥!
발렐리아가 미드 2차 포탑에게 맞아주고 있다.
어그로가 쏠린 사이 애꾸사자가 진입할 시간을 벌었다.
은신 상태에서 측면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꼬그모가 프리딜 넣어도 맞으면서 앞라인 싸움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조합을 갖췄거든요!>
여타 원딜러들처럼 3코어씩 안 나와도 강력하다.
17분에 영락검과 각궁을 들고 있는 꼬그모.
공격 속도만 올려도 엄청나게 세다.
하이브리드 %뎀이 묻은 평타는 탱커, 딜러 가리지 않고 녹여버린다.
그럼에도 무시하고 앞라인부터 잡는 다이브를 시행한다.
심해에서나 나올 법한 한타를 대체 왜?
강빈 해설의 말대로 그럴 수 있는 조합을 갖췄다.
저마다 괴물 같은 회복력을 자랑하며 터프하게 맞는다.
<역시 보증된 카드, 보증된 선수! 방어력, 마법 저항력 고루 높은 애꾸사자라 꼬그모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합니다.>
<발렐리아도 이기어검을 3인, 4인씩 맞히면 회복량 엄청나죠! >
맞은 만큼 체력을 회복한다.
애꾸사자, 발렐리아 두 챔피언 모두 자체 회복력이 엄청나다.
물론 그것만이었다면 할 만했다.
원래 탱커 챔피언들은 저마다 거지 같은 스킬 하나 씩은 있다.
저 둘에게는 그것이 회복이라 보면 된다.
계속해서 때리면 못 잡을 것도 없다.
당연하게도 진짜는 따로 있었다.
─별들이여, 은총을 내리소서.
구리가스의 술통 폭탄이 터져버린 직후.
소리커의 궁극기 별의 은총이 은혜로운 광역 힐을 선사한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발렐리아의 체력이 풀피에 가깝게 채워진다.
<3단, 아니 4단 힐이 들어갔습니다. 소리커, 헤일, 치비르의 회복 스펠까지! 딜 열심히 넣은 꼬그모 힘 쭉 빠지겠는데요?>
<지금까지 넣은 딜링이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렸어요. 근데 중요한 건 이게 전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꼬그모의 딜이 언제까지 지속되는 게 아니다.
침 마구마구 뱉기의 지속 시간이 끝나자 미드 2차를 내주는 수밖에 없다.
걸음을 뺀 이유는 김은준 해설의 말대로다.
<헤일 궁극기 아직 각보고 있고, 소리커 안 죽는 한 힐 계속해서 쿨타임 돌아옵니다. 치유 감소라도 하지 않으면 막을 방도가.. 없어요.>
가짜에어 독수리는 발화를 잘 안 드는 팀이다.
텔레포트 상향 전에도 선호도가 높지 않았다.
오늘 경기에서는 네 세트 연속 단 한 번도 안 들었다.
물론 안 든다고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발화는 기본적으로 라인전 스펠이다.
후반 지향인 가짜에어 독수리는 안 들어도 된다.
30분 쯤 되면 원딜러가 혼자 다 때려잡을 딜이 나오지 않는가?
지금 흘러가는 게임의 구도로 보면 그게 안될 것 같다.
신세상 매직의 조합 컨셉이 대놓고 노렸다.
<설상가상 구리가스도 아테나의 부패한 술잔이에요. 마나 회복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이러면.. 치유 감소를 보충할 데가 있나요?>
<하나 있기는 한데 안 그래도 코어템 뽑는데 급급한 꼬그모가 구입할 수는 없습니다!>
솔로랭크에선 흔하디 흔한, 킬딸을 위해 중첩도 되는 발화가 그리울 지경이다.
탈력이 그리 좋고, 텔레포트가 상향되면 뭣하는가?
아무리 합류를 잘하고, 원딜러가 프리딜을 넣어도 못 죽인다.
괴물 같은 회복력을 감당할 수가 없다.
차후에는 바늘 갑옷의 하위템과 처형자의 검 등.
치유 감소 옵션이 붙은 가성비 좋은 아이템들이 추가된다.
현재 시점에서는 변변찮은 아이템이 없다.
시간을 끄는 것조차 방법이 될 수 없는 상황.
애시당초 스노우볼 잘 굴리기로 유명한 신세상 매직이다.
<리심 부활 한참 남았고, 힐 때문에 체력 관리되고. 바론 가지 않을 이유가 없죠?>
구태여 앞라인을 자른 것도 이유가 있다.
유리할 때 바론 가지 마라.
이 유명한 명언은 적 정글러의 스틸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그런데 정글러인 리심, 그리고 탑솔러까지 이미 잘랐다.
그 과정에서 체력도 궁극기도 대부분 빠졌지만 괜찮다.
소리커와 헤일이 힐을 팍팍 줘서 아군을 회복시킨다.
<헤일이 위글의 랜턴이라 오브젝트 정말 잘 잡습니다. 든든한 탱커 라인은 뭐 말할 필요가 있나요?>
<게임 정말 답도 없이 굳어졌습니다. 바론 먹으면 섬광 스택 네 개 남아요. 우여곡절 끝에 꼬그모 왕귀해도 앞라인 싸움 성립 안됩니다.>
이기는 팀이 게임을 굳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김은준의 해설 성향이다.
그런 그가 오늘의 경기에서는 그다지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될 정도로 게임이 시원시원하다.
결코 의미없이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다.
헤일을 픽한 이유를 조합에서 보여주고, 왕귀에서 한 번 더 보여준다.
꼬그모, 분명히 후반 캐리력 괴랄하다.
하지만 섬광 헤일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초반 갱킹을 포기한 대신 정글링만 주구장창 돌았거든요? 빛나는 섬광 뜨면 딜링이 라이너 못지 않습니다.>
<라이너 이상일 겁니다. 미드 소리커가 지속딜은 강력한데 누킹은 아쉬운 감이 있어요. 그 점을 헤일이 완벽하게 보충합니다. 조합의 완성도조차 신세상 매직이 웃어주네요.>
게임 시간이 흐를수록 원딜러의 비중은 높아진다.
아니, 후반이 되면 원딜러가 사냐, 못 사냐로 게임의 승패가 갈린다.
원딜러 하나에 울고 웃는 게임.
맞는 말이지만 이 헤일이라는 챔피언은 다르다.
성장하기가 까다로워서 그렇지 잘만 크면 원딜러 저리 가라다.
특히 섬광 헤일이 캐리력이 어떠한지.
최근 솔로랭크를 통해 여실히 나타났다.
이미 말할 것도 없이 증명된 앞라인.
이제는 뒷라인 싸움마저 밀릴 수가 없다.
바론을 먹은 신세상 매직이 천천히 들이닥친다.
헤일이 빛나는 섬광을 띄우고.
소리커가 원하는 템을 완성시키고.
하나 더 파수병의 외투까지 둘렀다.
<소리커 방어력까지 둘렀습니다. 보통 AP챔피언이 가는 방템은 추격자의 손목 보호대인데 독특합니다?>
<챔피언 컨셉을 확실하게 잡아온 걸로 보입니다. 일반적인 AP챔피언이라기 보단 딜탱 느낌. 나일아이의 수정창도 아마 그래서 간 아이템일 겁니다.>
전범준 캐스터의 물음에 아주 잠깐 생각을 곱씹은 김은준 해설이 대답했다.
나일아이의 수정창은 스킬에 둔화가 묻게 해준다.
일반적으로 선수들이 선호하는 아이템은 아니다.
이런 거 올릴 바에야 코어템을 뽑는다.
체력이 부족할 때는 괴이한 가면이 훨씬 낫다.
구태여 나일아이의 수정창을 선택한 이유는 아직까지 보여주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일반적인 AP마법사가 아니다.
딜탱을 추구한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과연 미드 소리커가 중후반에 어떠한 역할을 할지.
확인할 수 있는 대치 구도가 이루어졌다.
<애꾸사자 탑 밀고, 나머지 인원 미드 압박합니다. 그런데 이게 뚫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에요.>
<2차 포탑과 달리 억제 포탑은 깨는 게 힘들거든요. 이미 바론 버프도 반쯤 돌은 상태라 가짜에어 독수리도 시간 끌만합니다.>
현재 바론 버프는 미니언 강화라는 옵션이 없다.
그러다 보니 수비 측이 작정하고 막으면 힘들 때가 많다.
가짜에어 독수리는 억제탑 앞에서의 수비가 장기인 팀이다.
그럼에도 조금씩 갉아먹힌다.
이유는 다름 아닌 소리커.
소리커가 미니언에게 힐을 줘서 몇 초 더 생존하게 만든다.
<미니언 힐! 치비르 스킬 실드 믿고 과감하게 툭툭 치고 빠져나올 수 있죠!>
<맞아도 다시 체력을 채워줍니다. 웨이브마다 두 대씩만 쳐도 압박이 꽤나 돼요. 미니언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입니다.>
미니언이 없을 때 포탑은 방어력이 200 올라간다.
데미지가 거의 1/3 이하로 단다.
억제 포탑은 자체 회복력도 상당해서 짤짤이로 부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소리커가 미니언을 어거지로 살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이템이 나올 만큼 나온 치비르.
한 방, 한 방에 포탑의 체력이 눈에 띄게 깎여나간다.
<아, 결국 구리가스가 궁극기로 대포 웨이브 처리하네요. 아깝지만 쓰는 판단이 옳았습니다. 이번 웨이브만 먹으면 바론 버프 꺼지거든요.>
<여기서 탑 올라가서 2차만 마저 밀고, 용이랑 오브젝트 챙긴 후에 한 번 정비하는 게 좋아 보이는데…>
좋아 보인다.
김은준 해설의 말미가 떨어진 순간이다.
소리커가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해버렸다.
앞점멸로 외곽 벽을 뛰어 넘었다.
.
.
.
* * *
소리커는 가진 바 CC기가 오직 침묵 뿐이다.
그 흔한 둔화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아무리 지속딜이 좋다고 한들 CC기가 없으면 때리기가 힘들다.
이 점을 보완시켜 주는 아이템이 바로 나일아이의 수정창.
뾰롱~촹!
쿨타임이 40%에 도달하면 별똥별은 1.5초마다 떨어진다.
그리고 현재 나일아이의 수정창 둔화 시간은 1.5초다.
한 번 붙잡히면 도망갈 수 없다.
상대에게 허락된 유일한 반항은 점사 뿐이다.
챠압!
챠압!
꼬그모가 침을 뱉고.
구리가스가 술통을 굴리고.
적팀의 모든 딜이 나에게 쏟아진다.
뾰롱~촹!
전부 몸으로 받아가며 꿋꿋하게 전진.
소리커의 사전에 후퇴 따윈 없다.
체력이 달면 단 만큼 체력을 채운다.
<어둠이 널 보호하리!>
심지어 끝이 아니다.
헤일이 궁극기를 걸어준다.
별똥별이 적 진영을 사정없이 수놓는다.
무적 효과가 끝나는 순간.
<생명을 내리소서!>
궁극기로 시작하는 3단 힐!
열심히 깎은 체력이 원상복구된다.
시간을 끈 사이 목표했던 작업이 마쳐졌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대치 구도에서 자잘하게 깎아 놨던 보람이 드디어 터진다.
포탑이 터진 이상 진격을 방해할 건 아무것도 없다.
상대는 빠지고 싶지만 그러질 못한다.
'이건 진짜로 막을 수 없거든.'
하늘에서 별똥별이 수도 없이 떨어졌다.
점점 깎이고 깎여가는 마법 저항력.
상대의 앞라인은 걸레짝이 된 상태다.
섬광이 나온 헤일의 불꽃 싸대기가 더욱 강렬하게 박힌다.
─더블 킬!
트리플 킬!
둔화가 묻은 상태에서 이동 속도마저 차이가 난다.
주위 아군에게 광역 버프를 걸어주는 치비르의 궁극기.
모든 딜을 얻어 맞으면서도 억척 같다.
한타에서의 소리커는 좀비 같은 끈질김을 보여준다.
─적팀의 억제탑을 파괴했습니다!
아군도, 적군도 만신창이다.
그럼에도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이미 두 번 바닥 났던 체력이 또다시 차오른다.
불사의 군단이 끊임없이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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