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49 봄의 제왕 =========================
지난 화요일로서 준결승전의 모든 경기가 끝났다.
결승전은 그 다음 주의 일요일에 열린다.
즉, 날짜 공백이 상당히 길다는 소리다.
이번 결승전의 기대치가 크다.
개최측에서 준비할 게 많다.
기다리는 중간에 조금 한가해졌다.
"초홍아, 오빠가 까까 사먹을 돈 줄 테니 나갔다 오지 않으련?"
"빼애애애액! 안 가!"
결승전까지 준비 기간이 열흘이 넘는다.
그러다 보니 빠듯하게 달리진 않는다.
여느 때와 같은 화창한 오후.
식사 해결의 문제로 조금 일이 생겼다.
평소에는 가사 전반을 돌봐주는 아주머니가 한 분 계신다.
아무래도 오늘은 일요일인 만큼 근무를 쉬신다.
이 날에는 각자 알아서 식사를 해결한다.
예은과 초홍이의 공동 방에서 나는 점심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가장 넓은 방이라 나름대로 거실도 있다.
TV도 큰 게 달려있는 등 시설이 괜찮다.
에어컨도 빵빵해서 배달 음식 먹기 참 좋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다른데 있다.
"그냥 같이 세트로 시켜 먹자. 그래야 서비스도 많이 주는데."
"둘이 시킬 때도 많이 주문하는 편이라 서비스 잘 주셨을 걸..?"
쇼파 위에 앉은 예은이 나를 째릿 쳐다본다.
순수하게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눈치를 봐야 한다.
나도 초홍이를 따시키자고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다.
'점심 시간에 꼭 점심만 먹으라는 법은 없잖아..'
맛난 후식도 먹을 수 있고.
좀 더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눌렀다.
중국집에 전화를 걸자 정말 기쁘게 반겨주신다.
"..서비스 꾹꾹 담아 눌러주신덴다."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가 얼마나 많이 팔아주는데."
단골인 데다 한 번 시킬 때 무척 많이 시킨다.
누구누구가 많이 드시기 때문이다.
바로 앞 반점이라 그런지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20분.
서비스로 군만두와 쫄면까지 풍족하게 넣어주셨다.
"마시쪙."
초홍이가 두 볼 가득히 넣고 꿀떡꿀떡 잘도 삼킨다.
예은의 주도로 소스에 푹 담가져버린 탕수육.
부어 먹고 싶으면 반반씩 하자고 해도 말을 안 듣는다.
처음에 먹는 건 바삭하고, 나중에 먹으면 폭신해서 식감이 다르다나.
그걸 보통 눅눅하다고 하지 폭신하다고 하진 않는다.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이해시킬 자신이 없다.
심지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유감스럽게도 두 처자가 모두 탕수육을 부어 먹는 파다.
진짜 유감스러운 건 다른데 있지만.
'저놈의 방해꾼 때문에 오늘도 물 건너갔네.'
보통 여친집에 오면 라면 같은 걸 먹고 가지 않던가.
메뉴가 짜장면으로 바뀐 것 자체는 불만 있지 않다.
중요한 건 메인 이벤트가 빠졌다는 부분이다.
눈치가 없어서 있는 건지.
아니면 알아서 있는 건지.
어느 쪽이든 민폐인 녀석이 아닐 수 없다.
"맞다. 다음 주 패치 내역 봤어?"
내 몫의 짜장면을 다 먹고 탕수육을 씹던 도중
요즘은 짬짜면이 대세라며 짜장면 짬뽕을 각각 한 그릇씩 먹고 있는 예은이 말을 건네왔다.
당연 모를 수가 없는 내용이다.
여러가지 밸런스 패치 조정이 예정돼있다.
PBE에서 패치된 게 본서버에 무조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대략적으로는 맞는다.
그러다 보니 현재 말이 많다.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너무 급한 게 아니냐.
이거 까놓고 다대기를 밀어주는 패치 아니냐.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내용은 아니다.
"뭐가 안 그래. 대놓고 저격이구만."
"롤챔스가 우리나라만 하는 건 아니잖냐."
예은으로서는 다소 불만이 있는 모양이다.
잘 써 먹었던 빛나는 섬광이 조정되고 말았다.
주 챔피언인 리심도 방로가 조금 애매해졌다.
둘 모두 밸런스가 조절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섬광의 경우 해외 리그에서는 선호도가 높다.
리심은 정글러들 모스트에 꼭 있는 챔피언이다.
"아무튼 소리커도 너프되고 나이즈는 상향되고. 마음에 안 들어."
"소리커가 조금 좋긴 했지."
요 근래 랭크 게임을 주름 잡던 소리커.
탑과 미드를 가리지 않고 날뛰더니 너프가 예정됐다.
낮은 구간에서는 안 쓰이지만 천상계는 필밴이다.
그 사기성을 생각한다면 너프를 하는 건 타당하다.
물론 예은이 뿔난 이유도 이해는 된다.
나는 자칭 폭신한 튀김옷을 질겅질겅 씹으며 생각했다.
'커뮤니티에서도 말이 많았던가.'
나이즈는 기본 체력이 오르고 Q스킬 뇌구의 사거리가 조금 올랐다.
어, 다대기를 밀어주는 패치 같은데?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괜찮아. 원래 그런 게임사잖아."
"그래도.. 빡쳐!"
정말 화가 났는지 눅눅한 탕수육에 짜장면을 스파게티처럼 말아서 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는다.
원래 그런 게임사.
로드 오브 로드 유저라면 백분 이해가 되는 설명이다.
아니, 왜 소리커로 미드랑 탑을 가?
자신들이 만든 대로 쓰지 않으면 칼같이 너프 먹인다.
비슷한 예가 한두세네 개가 아니며 앞으로는 더더욱 많아진다.
내가 미래에서 보고 왔다.
'리얼루다가.'
그 외에도 조정 사항이 여러가지 있다.
빵테온 정글의 너프.
파사딘과 구리가스의 리메이크.
대격변까진 아니지만 다대기에게 웃어주는 건 사실이다.
파사딘도 다대기의 챔피언폭 중 하나였으나 사용이 제한적이다.
대회에서 파사딘 픽률이 괜히 낮은 게 아니다.
그에 반해 나이즈는 선픽이 무난하다.
카운터가 원거리 계열인데 대부분 너프를 먹었다.
고통 받는다 해도 어떻게 라인전만 버티면 대장군.
다대기가 장군이란 별명을 얻은데 크게 일조했다.
인생 챔피언인 자드가 나오기도 전부터 쭉 사용해왔던 나이즈다.
지난 인터뷰에 힘입어 잉벤 등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다대기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다대기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나도 보기는 했지만 확실히 다대기 다운 자신감이었다.
'장군, 아니 봄의 제왕이라 불릴 만해.'
스프링 시즌만 되면 막을 수가 없다.
사실 이미 한 번 막기는 했다.
당시와는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다.
인터뷰의 자신감은 그렇다 치고 실질적인 플레이.
절도 있는 움직임과 정밀한 딜계산은 정평이 나있다.
최전성기인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날이 서있다.
나보다 야흐오를 잘할 자신이 있다고 했던가.
도발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내 생각엔 그렇지 않다.
정말로 그렇게 확신을 하고 말한 것 뿐이다.
어쩌면 나는 괴물을 깨워버린 걸지도 모른다.
'괴물 사냥이라..'
한국에 돌아오면 과연 내 경쟁자가 있을까.
최근 흥하고 있다는 북미나 유럽을 한 번 더 평정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로드 오브 로드의 진짜는 시즌4 이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도 조금 녹이 슬어버렸다.
전성기, 가장 강력한 상대를 격파한다.
보람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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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익숙하다면 익숙한 장소다.
대구에 위치한 삼선 라이온즈 파크.
지난 2013년도 스프링 시즌의 결승전이 열린 장소다.
이번 2014년도 스프링 시즌 결승전 또한 이곳에서 열린다.
어째서 또 같은 경기장에 자리를 잡았냐.
신선함이 조금 떨어지는 거 아니냐.
오프게임넷 측에서는 심사숙고를 거듭했다.
최종 결정이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삼선 측이 E-스포츠에 꽤나 관대하다.
자사가 후원하는 게임단이 선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E-스포츠의 성장 가능성은 이미 보증된 수표다.
원래부터 투자 관심이 상당히 많았던 삼선이다.
공식적으로 하나의 스포츠다, 인정을 받자 무르익는다.
오픈마인드 수준으로 살가워졌다.
역시 큰 건 두 번째 이유다.
세계에서는 그런 추세라고는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시험이 되지 않았다.
롤드컵에 이어 LPL.
360°도 관람이 가능한 스크린은 대형 경기장에서 필수적이다.
E-스포츠 경기장이 영화관이랑 뭐가 다르냐.
이전의 경기장은 사실 그런 말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매 경기 평균 관중 수가 늘어나는 지금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이걸 무턱대고 하기에는 부담된다.
시험 설치할 경기장도 없을 뿐더러 비용, 기술.
이 모든 것을 삼선이 해준다는데 해야지.
대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다고 이러저러한 사정이 섞였다.
최근 E-스포츠의 성세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비슷한 조건을 제시한 곳 여럿 있었다.
최종적으로 선택된 곳이 삼선이었을 뿐이다.
그러한 이유가 있어 결승전은 삼선 라이온즈 파크에서 개최된다.
<작년에 왔던 캐스터, 바뀌지 않고 또 왔습니다! E-스포츠의 열기 만큼 후끈하게 달아오른 대구에서 전범준 캐스터 인사드립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1년 전과 같은 장소.
경기장 꽉 채운 수만 관중들.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작년만 해도 로드 오브 로드가 E-스포츠로서 확실하게 자리 잡지 못했다.
관중들이 많기는 했으나 대다수는 허수였다.
시민들에게 개방을 해서 가족들도 놀 수 있는 분위기.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불러 모아 좀 있어 보이게끔 한다.
가장 유명했던 예가 광안리 10만 대첩.
갤럭시 크래프트 시절에는 유명한 이야기다.
사실 10만 명이 순수하게 관중은 아니고 거품이 보글보글 했다.
지난 2013년 스프링 시즌의 결승전도 그런 느낌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명백하게 다르다.
세계가 그러하듯 한국 또한 로드 오브 로드의 열풍이 뜨겁다.
오늘 경기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팬들이 정말로 많다.
<경기장 주변이 인산인해, 저희 오프게임넷 스태프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음에도 혼잡해요.>
<각지에서 수많은 팬분들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아니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정말…>
오늘 경기를 진행하는 두 해설자는 클끼리와 김은준이 됐다.
그들의 말대로 현재 삼선 라이온즈 파크는 주변, 내부 가리지 않고 난리가 났다.
작년과 마찬가지, 그 이상으로 행사 또한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다.
한 가지 상이한 점이 있다면 손님들의 색깔일까.
일부 E-스포츠 팬, 대구 시민들에 끝나지 않고 북적인다.
이번 결승전을 기대하고 찾아온 전국의 팬들.
더욱이 해외에서도 온 사람들이 적지가 않다.
이유라면 따질 것도 없이 올마스터.
맞는 말이지만 그 상대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토이치TV 등 해외 중계 플랫폼에서도 이야기가 오간다.
-올마스터랑 코리안 제너럴이 붙는다던데?
-코리안 제너럴이 누구야?
-삼선 레드의 다대기. 지난 롤드컵에서 나왔던 선수!
-아, 그 팀? 갬빗 상대로 지긴 했지만 꽤 잘했지LOL
삼선 레드는 이래 봬도 인지도가 제법 있다.
엄청 유명하냐면 그건 아니지만 커리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극명하다.
작년 롤드컵에서 거둔 4강이라는 준수한 성적.
해당팀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화제가 달아오르지 않았던가.
내가 바로 한국의 장군님이다.
해외에서는 코리안 제너럴로 불리며 일약 스타 선수 반열에 올랐다.
한순간의 일장춘몽일지.
아니면 꾸준하게 이어갈 전설의 첫 페이지인지.
그것이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결정이 된다.
전범준 캐스터가 떠들썩하게 소리친다.
<전 세계적으로 E-스포츠 열풍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각 나라에서 E-스포츠를 정식으로 인정하고 있듯, 얼마 전 한국에서도 드디어 확정이 되었거든요.>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가 주류이냐, 그렇지 않냐.
공동체 사회인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유난히 신경 쓴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E-스포츠는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 밀리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갤럭시 크래프트 때는 세계 최고였는데! 혹시 로드 오브 로드는 한국이 밀리면 어떡하지? 걱정할 것 없습니다. 지금 보시면 현장에 해외 관중 분들이 무척 많습니다. 영원한 E-스포츠의 심장. 앞으로도 쭈욱 변할 리
없을 거라 확언합니다.>
김은준 캐스터의 말미가 떨어짐을 신호로 카메라가 회전하며 광중석을 비친다.
영어, 혹은 중국어로 된 응원 팻말.
크게는 현수막도 널찍하게 걸려있다.
개인이 아닌 단체로 온 해외 팬들도 상당하다.
그만큼 한국의 롤챔스를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일련의 현상이 일어난 이유의 지분률 절반 이상은 한 선수 덕분이다.
단상에 오르자 모두가 그 이름을 외친다.
결승전 첫 번째 진출팀.
신세상 매직이 무대 우측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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