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59 봄의 제왕 =========================
솔로랭크의 승패가 정해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 마디로 어느 팀이 실수를 더 하냐.
그랜드 마스터 상위권쯤 가지 않는 한 이 공식을 따른다.
즉, 프로 리그와 최상위권의 솔로랭크는 손익을 주고 받는 방식이 다르다.
분명히 실수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필연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너희가 이런 판단했으니까 우리는 이런 판단한다.
그게 정답이든, 아니든 간에 근거가 없는 판단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게임이 확확 기울어지지 않는 이유다.
그럼에도 지금의 상황은 어쩔 수가 없다.
<나이즈가.. 진급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암묵적인 것이다.
공식적인 수치가 있진 않다.
대충 이 정도면 모두가 납득하지 않을까.
클끼리 해설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선수들 사이에서 토론이 이어진 적이 있어요. 대장군의 기준은 대체 무엇일까? 그때 결론이 20분 전후 해서 2코어였습니다.>
프로게이머가 그렇다는데 맞겠지.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수치이기도 하다.
개서스도 보통 20분 스택을 기준으로 왕귀를 말한다.
아무튼 클끼리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올마스터 선수의 나이즈가 19분대에 2코어가 나왔습니다. 명실상부 부정할 여지가 없는 대장군이에요.>
<억겁의 스태프에 꽁꽁 언 심장! 변수 안 주겠다는 소리입니다. 방어력 200 가까운 잘 큰 나이즈를 대체 무슨 수로 잡나요?>
삼선 레드의 조합은 올AD의 형태를 띄고 있다.
라인전 단계에서의 투자였으나 망했다.
신세상 매직이 걸은 탑&미드 스왑에 완전히 말렸다.
남은 것은 올AD조합의 치명적인 단점 뿐이다.
방어 아이템을 두른 적 탱커 잡는데 한 세월 걸린다.
심지어 나이즈는 탱커가 아니라 딜러다.
그냥 딜러가 겁나 단단하기까지 할 뿐이다.
김은준 해설이 박아버린 쐐기.
그래도 뭐 하나 제시를 해보겠다.
약자의 편에서는 클끼리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하나 희망을 던져보자면 꼬그모입니다. 꼬그모는 마법 데미지 비율이 높은 하이브리드 원딜러거든요? 여기에 랄라 버프까지 씌워지면 만만치 않습니다.>
<그것도 카이팅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때의 얘기죠? 꽁꽁 언 심장의 공격 속도 감소가 분명히 걸릴 테고 지금 신세상 매직이 강제로 물면 막기 굉장히 힘들어요.>
바로 찬물이 씌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가능성이 아예 없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삼선 레드의 원딜러, 데프콘의 꼬그모가 성장을 잘했다.
꼬그모는 하드캐리형 원딜로 손에 꼽히는 챔피언이다.
단점이 있다면 상대가 작정하고 물면 힘들어지는 뚜벅이란 것.
하지만 두 가지 보험 요소가 있다.
클끼리가 설명을 보충했다.
<랄라의 버프와 야흐오의 돌풍 장막. 카이팅을 잘 한다면 가능성은 있습니다. 데프콘 선수 아직 보여주지 못한, 보여줄 수 있는 기량이 분명 있는 선수에요.>
<저도 그 부분은 동의합니다. 스크림에서는 이보다 더 불리한 게임도 역전하는 모습 보여준 적 있습니다. 근데 이게 낙관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잘 컸어요. 나이즈도 나이즈지만 진짜 문제는 말카림입니다.>
자꾸 초를 치는 이유도 이해는 된다.
일리는 있고 붙어봐야 아는 일이다.
물론 프로 리그는 꽝! 맞붙기보단 서로 기싸움하면서 손익을 주고 받는 경우가 보통이다.
흔히 말하는 싸워줄 이유가 없다.
코어템 차이라는 게 2코어 대 3코어는 커도, 3코어 대 4코어는 싸울 만하다.
이기는 팀 입장에서도 무난히 체크메이트를 향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다.
적어도 신세상 매직의 경기에서는 질질 끌릴 걱정, 기우다.
<말카림이 미드 밀면서 탑 2차 눈치 주네요. 여기서 더 버티다가는 말카림 유령화 켜고 달려가서 궁극기 박을 수 있거든요?>
<들어왔을 때 4대5의 그림을 그려보는 게 최선인데.. 말카림, 광우스타 앞라인을 잡을 수가 있을까요. 만에 하나 잡는다고 해도 나이즈 넘어오면서 싹 쓸어담을 겁니다.>
상대가 무리하게 이니시를 걸었을 때의 저지력.
프로 레벨에서 서로 대화가 통하는 이유다.
너희가 이 이상 무리하면 우리가 한타 비빌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을 봤을 때 양 팀은 대화가 안된다.
<체력 손실이 거의 없어서 정비 타임 안 잡아도 됩니다. 이대로 미드 내려가서 돌려 깎을 생각이네요.>
<텔각 보면서 뚜벅뚜벅 올라오던 나이즈도 어느새 봇 2차 밀고 있습니다. 이거 한 번에 2차 타워 전부 나가면 글로벌 골드 차이가 돌이킬 수 없게 벌어집니다.>
너희 2차 타워 하나 먹었으면 만족하고 정비해라.
응, 안 해.
신세상 매직은 볼 수 있는 이득 무조건 다 가져간다.
한 끝 차이로 무리가 될 수도 있으나 아니다.
<챔피언 하나하나가 20분 타이밍에 잠재력이 폭발합니다. 지금 신세상 매직의 조합은 한 마디로 엄~청 셉니다.>
<고르키도 한 번 죽기는 했지만 CS수급 차질 없었고 삼종신기에 마법 관통력의 신발, 빌지워터의 해군칼까지 갖췄어요. 삼선 레드는 어떻게든 10분.. 아니 15분 정도는 시간 끌어야 하는데요..>
클끼리 해설마저 고개를 젓는다.
그만큼 게임의 상황이 답도 없다.
꼬그모 프리딜 무서운 것도 꽝! 맞붙는 한타가 벌어졌을 때의 이야기지.
이렇게 한타 자체가 안 일어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돌려깎기 진행되는 거야 예삿일이지만 스피드.
삼선 레드는 타워를 하나씩 내주며 성장할 시간을 벌고 싶었다.
야흐오가 약속의 2코어를 만들고.
네네톤도 기본적인 탱템이 갖춰지고.
무엇보다 꼬그모가 조금이라도 더 커야 했다.
구워어어-!
대체 숨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
고질라 선수의 광우스타가 몸을 앞세운다.
물론 1레벨 궁극기라 오래는 못 버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문제다.
김은준 해설이 현재의 답도 없는 상황을 토로한다.
<광우스타가 쿵쾅 아끼고 있는 탓에 야흐오가 돌풍 장막도 못 깔아요. 꼬그모 열심히 때려보지만 타워가 먼저 밀릴 것 같습니다.>
<배인이었으면 막 3타 터트리면서 적 오는 거 밀치고 해서 각 잡을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꼬그모는 팀원 의존도가 높아서 힘드네요. 하지만 여기서 억제탑까지 내주는 건 절대 안됩니다.>
신세상 매직이 과감한 판단을 해버렸다.
광우스타가 몸을 대고 야흐오를 견제하며 미드 억제 포탑을 밀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다간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삼선 레드 진짜로 마지막 기회입니다. 제발 무리해줘라. 우리 한 번만 싸워보자. 광우스타 궁극기 빠졌을 때 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물쭈물 귀환하게 해주면 게임 50분까지 가지 않는 한 답 없어져요.>
급박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클끼리의 말대로다.
게임이 50분까지 가지 않는 한 답이 없다.
그리고 50분까지 갈 일은 추호도 없다.
사실상 게임이 끝났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여기서 여기서 한타를 거는 게 마지막이다.
그나마 희망 있을 때 걸어서, 슈퍼 플레이 해서 한타 대박.
최소한 게임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꾸뤄러러럭!
삼선 레드도 이를 알고 있다.
앞선 두 번째 세트에서 비슷한 시도를 했었다.
기회가 있을 때 망설이는 팀이 아니다.
네네톤이 몸집을 부풀리며 진입한다.
<중반 타이밍의 네네톤 진짜 강력한데.. 녹아내립니다. 신세상 매직 화력 말도 안돼요. 악어 가죽 순식간에 찢겨 나갑니다.>
<탱커들이 가지는 애환이거든요! 어떻게든 몸 비벼서 아군이 딜할 수 있는 각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범준 캐스터의 고함대로 탱커는 불쌍한 포지션이다.
아군이 포지셔닝을 잡을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희생.
결과적으로 한타를 지면 던졌다고 욕 오지게 먹는다.
잘해서 한타 이겨도 칭찬이란 칭찬은 딜러만 받는다.
그럼에도 전진하는 것이 최선이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네네톤의 중반은 강력하다.
못 컸어도 1인분이 가능한 마지막 타이밍이다.
한 보, 두 보 전진하자 리심이 파고들 각이 나온다.
적들은 어쩔 수 없이 네네톤을 치게 된다.
아웃섹의 리심이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다.
이~쿠우!
광우스타에게 음파를 맞히고 들어갔다.
노리는 대상은 네네톤을 두들기던 나이즈.
점멸을 활용해 냅다 차버렸다.
<우리에게 돈! 나이즈 죽여야 돼요! 가진 딜 모두 퍼부어서 저 괴물! 대장군! 끌어내려야 합니다!>
<나이즈만 잡을 수 있으면 고르키 딜은 장막으로 한 타이밍 차단할 수 있습니다. 삼선 레드, 승부수 던졌습니다.>
입롤 한타를 노리기 보단 이것이 적절하다.
꽝! 맞붙는 난전 구도 제대로 그린다 해도 진다.
상대는 광우스타, 말카림 앞라인이 든든하다.
뒷라인 고르키, 나이즈도 순삭 하는 게 한없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상을 한 명으로 좁힌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세상 매직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선수이자 챔피언.
나이즈가 아무것도 못하고 죽는 그림을 그려낸다.
나머지는 꼬그모가 카이팅을 잘하면 몰아낼 수 있다.
쿠워어어어!
이를 두 눈 뜨고 기다려줄 신세상 매직이 아니다.
말카림이 바로 궁극기를 사용해 야흐오를 물었다.
공포가 걸리며 그대로 박치기.
바로 탈력을 걸었지만 쭉 밀려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랄라가 CC기 연계하면서 나이즈 순삭 노려봤는데.. 말카림이 슈퍼 세이브 해냈습니다.>
<신명 나게 두들겨도 죽을까 말까였어요. 꼬그모 혼자서는 절대 못 죽이고 아니, 이거 역으로 당해버리겠는데요?>
한타에서 나이즈가 가장 조심해야 할 대상은 CC기다.
자신을 옭아매는 것들만 없으면 미쳐 날뛴다.
올마스터의 나이즈가 앞점멸로 꼬그모를 물었다.
<고르키 앞부스터로 딜지원까지 해주면 살아 돌아갈 수 없는 그림이죠. 진영이 완전히 무너져서 카이팅이고 뭐고 안됐습니다.>
<승부수를 던졌는데 그게 실패했으니 확 무너지는 건 필연이었어요. 네네톤 이미 죽었고, 리심 빈사 상태, 이대로 쭉 밀려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천만다행 리심이 혼란의 틈을 타서 살아 돌아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뭣하는가.
가장 중요한 딜러진이 전멸 예정.
장막 빠진 야흐오가 나이즈의 손아귀에 목덜미를 잡혔다.
<장군도 대장군 앞에서는 짬밥이 밀리거든요! 야흐오 잡히면 막을 수단 있나요?>
<단언컨대 경기 끝났습니다. 신세상 매직이 세 번째 세트 잡았습니다. 확실하게 잡았어요. 팽팽했던 스코어가 기울어졌습니다.>
전범준 캐스터의 우스갯소리에 관중들의, 시청자들이 한바탕 폭소한다.
그 이전에 경기장의 분위기가 무척 좋다.
팬으로서 원하는 경기 그 자체다.
이기는 쪽은 화끈하게 몰아붙이고.
지는 쪽은 결사의 각오로 항전한다.
확실히 여기까지는 원하는 경기가 맞았다.
-재밌긴 한데 좀 아쉽다.
-불편충 보소. 윈터 시즌의 백만 배는 잼나구만.
-ㅋㅋㅋㅋㅋ ㄹㅇ 윈터 시즌 때는 토나왔음. 가짜에어 독수리 ㅅㅍ색히들!
-아니, 올마스터랑 다대기 라인전 하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랬지..
-아니시에이팅 지렸고요ㄷㄷ
파프리카TV 등 중계 플랫폼들의 채팅창.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금일 경기에서 가장 기대되던 것이 무엇인가?
바로 올마스터 대 다대기의 한 판 승부다.
한 마디로 메인 디쉬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기대하는 게 팬들의 심리다.
이윽고 마지막이 될지 모를 네 번째 세트의 밴픽이 시작되었다.
<이건 도발입니다. 너 야흐오 자신 있다고 했지? 이번에는 우리 바꿔서 해보자. 자드 선픽 박혔습니다..!>
클끼리 해설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흘러나온다.
경기를 보는 모든 이들이 눈길을 돌리지 못한다.
시작부터 선전포고가 떨어졌다.
신세상 매직에서 자드를 선픽.
어디 한 번 해볼 테면 해보라는 소리다.
<물론 삼선 레드에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부분입니다. 세트 스코어가 밀리고 있는 입장이고, 알고 보니 탑 자드, 정글 자드. 이런 거 이미 당했거든요?>
<어쩌면 그래서 자드를 선픽한 걸지도 모릅니다. 야흐오는 탑&미드 스왑이 가능하지만 자드는 그게 힘들어요. 한다고 해도 이미 분석이 다 끝난 챔프죠.>
기대치가 높은 만큼 실망감도 클 것이다.
김은준 해설이 일단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이에 클끼리가 다시 한 번 초를 친다.
-오, 자드 픽한 데에 그런 이유가?
-올마스터 자드 겁나 잘하지..
-LCL에서 게임 혼자 했잖아. 잘하는 정도가 아니야.
-이건 진짜 받아야 된다. 방송을 알면 받아야 돼!
야흐오가 아닌 자드를 선픽한 데는 그러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과연 삼선 레드가, 장군님이 도발에 응답할지.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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