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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심장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스프링.
돌이켜 보면 사건이 유난히 많았던 시즌이다.
노잼 메타가 종식되고.
다채로운 뉴메타가 나타나고.
잠룡들이 깨어나 자신의 실력을 과시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한 명의 선수가 있었다.
올마스터를 가리키는 말임은 설명해서야 입만 아프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로드 오브 로드 팬사이트 잉벤.
뿐만 아니라 서양권을 대표하는 래딧에서도 이야기가 분주하다.
─한국 선수들 실력 상상 이상이던데?
스무스한 양학 기대하고 들어갔다가 져버려서 깜짝 놀랐어.
아무리 검증이 안된 카드를 꺼냈다고 해도 그렇지.
처음에는 긴장 유발 시키려고 설렁설렁한 줄 알았다니까.
└에러갓 말고 다른 선수들도 수준이 높아.
└한국은 맛밤 기세 꺾이고 한물간 줄 알았는데 다시 봤어.
└잘하는 선수가 있어서 그런가? 다른 선수들도 영향을 받는 거겠지?
└아무래도 그런 게 좀 있긴 하지. 북미와 유럽에도 에러 영향 받은 선수들 많잖아.
사실 실력이라는 건 의외로 점차 늘어나지 않는다.
한 단계, 한 단계 밟아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세 단계쯤 껑충 뛰어버린다.
무언가 계기가 있을 때 이러한 현상을 두드러진다
실제 E-스포츠의 역사에서 빈도수가 잦았던 일이다.
혜성과도 같이 등장한 인류 종족의 선두주자 임요한.
그 이후 인류 종족 유저들이 몰라보게 잘해졌다.
그런 변환점들이 찾아보면 적지 않게 있다.
올마스터 선수 또한 이 변환점에 해당하는 선수다.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아깝지 않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보통 시대를 앞서간 선수들은 쉽게 뒤쳐진다.
짧고 굵직하게 가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재능에는 당연히 바닥이 있고.
너무 빨리 써버리면 더 이상 남아나지 않는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선수에 한해서는 그럴 걱정이 없다.
─괜히 올마스터겠어?
우리야 Unknown Error라 부르지만 정식 선수명은 AllMaster잖아.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고.
챔피언 폭이 말도 안되게 넓은데 어떻게 메타를 타?
이 선수는 롤 망할 때까지 잘할 수밖에 없어.
게임사가 미쳐서 리메이크를 수십 개씩 진행하지 않는 한!
└그렇지. 얼음 장갑 파사딘 같은 쇼맨십 빼면 오히려 더 괴물이야.
└그러면서 진짜 통하는 조커 카드 몇 장 섞으면.. 끝장 나지.
└자드도 여전히 잘하더라. 너프되고 못 쓰는 챔프인 줄 알았는데.
└에러갓의 자드는.. 그냥 필승 카드야 패배한 적이 없어.
챔프폭만 넓어도 상대하는 입장에서 어지간히 까다롭다.
그런데 올마스터는 정말 뭘, 어떻게 해도 이상하지 않은 선수다.
이번 KR롤챔스 스프링 시즌의 결승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세상에 누가 말카림이 미드고, 나이즈가 탑일거라 상상이나 했겠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버렸지.
정말 무서운 건 상대의 픽을 유도했다는 거야.
대응책까지 예상해서 큰 그림을 그리니 눈 뜨고 당하잖아.
└생각해보면 진짜 그래. 말카림 나왔으니 당연히 네네톤으로 카운터 칠 줄 알았는데 탑나이즈라니!
└근데 미드는 그렇다 치고 나이즈가 네네톤을 이길 줄은 정말 몰랐어.
└그러게. 탑패왕 네네톤이 힘을 못 쓸 거라고 누가 알았겠어?
프로 무대에서 진귀한 픽을 쓰는 선수가 올마스터만이 아니다.
다른 게임단들도, 선수들도 때때로 기용한다.
하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왜냐면 대세 픽이 아닐수록 카운터 맞기 쉽다.
라인전이든, 한타든, 게임 구도든 어느 부분 한 부분이 어긋난다.
이를 테면 미역슨의 미드 가르마.
잠깐 떴지만 사장된 데는 이유가 있다.
서로 무난하게 한타 가면 존재감이 그다지.
특히 상대의 앞라인 싸움으로 가버리면 할 게 없어진다.
암살자든, 광역딜이든 있어야 적 딜러진의 프리딜을 막을 수가 있는데 그게 안된다.
스킬 구조가 정직해서 한계가 명확하다.
탑 나이즈 또한 분명 대놓고 픽했으면 애매했을지 모른다.
전체적인 밴픽 싸움에서의 승리.
판 자체를 운이 아닌 실력으로 그려냈기에 가능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픽도 있었다.
─구리가스 벌써 대회에 등장하기 시작하네LOL
에러갓이 쓰니까 선수들이 따라서 연구한 건가?
완전 쓰레기 챔프 됐다고 울고 불고 난리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얼음 장갑 파사딘도 사실 가능성 있던 거 아닐까?
└에이, 그건 오바지LUUUUL
└파사딘은 몰라도 구리가스는 진짜 좋은 거 같아.
└리메이크 구리가스는 탑솔러지. 스킬 메커니즘이 정말 탑에 최적화돼 있어.
└지금 그래서 프로들 난리났잖아. 솔랭에서 죄다 구리가스 연습해.
새로운 챔피언, 색다른 시도가 나온다고 바로 퍼지는 게 아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
기존에 쓰던 안정적인 카드들이 있는데 왜 굳이?
아무리 챔피언이 좋아도 숙련도가 받쳐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검증이 안된 카드를 연습하는 시간도 생각을 해야 한다.
대회에서 쓸 정도만 어지간히 연습해서는 안되니 말이다.
그런데 올마스터가 썼다.
게다가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 자체만으로도 사용할 건덕지가 충분하다.
망설임을 줄이는데 더할 나위 없는 이유다.
때문에 선수들은 연습했고, 현재 각 지역의 롤챔스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결승전이 끝난 한국과 달리 다른 지역은 진행 중이다.
과거 사용된 이력이 많은 나이즈는 물론.
구리가스도 서서히 픽률이 올라가며 밴까지 되는 추세다.
당연히 솔로랭크, 그리고 전체적인 메타에도 영향을 미친다.
바다 건너 저 멀리 한국에서 이곳 북미와 유럽에 메타를 전파한다.
과연 올마스터, 에러갓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건 아니었다.
─한국 선수들 수준 이래봐야 결국 고만고만하지.
KR롤챔스 결승전?
잘 쳐줘야 EU의 8강쯤 되겠네.
올마스터? Unknown Error?
유럽에 오면 절대 우승 힘들 거야.
왜냐고?
내가 있거든.
└어떤 빌어먹을 놈팽이가 이딴 개소리를 지껄이나 했더니 역시LOL
└한 마디 할 줄 알았다. 물론 개미 눈곱만큼도 신뢰하진 않지만.
└HEY 젠슨? 프로 준비는 잘 돼가?
글쓴이-기대하고 있어. 섬머 시즌부터는 새바람이 불 테니까.
과거 한국에서 가장 망나니로 손 꼽히던 유저.
뒤가 구린 인간들이 한두세네 명이겠냐만은 그 중에서도 정점이 있는 법이다.
다름 아닌 도차를 일컫는 말임은 구태여 부연 설명이 필요할까.
마찬가지로 유럽에도 한 명 있었다.
솔로랭크에서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며 자신을 과시.
랭킹 1등을 찍음으로서 앞으로의 활약을 예고했다.
비매너 유저 주제 어떻게 프로 욕심을?
도차와 달리 격하게 문제가 될 행위는 하지 않았다.
랭크 게임 중 입을 털고 싸우고 딱 그 정도.
물론 그것만으로도 비판 받아 마땅하다.
당시 래딧에서는 젠슨에 대한 찬반 토론이 과격했다.
실력이 있으면 입 좀 털 수 있지.
한국과 정서가 다르기도 하거니와 팬층도 두터웠다.
지랄 맞은 성격은 프로돼서 고치면 된다.
그런 여론에 힘입어 포나틱에 스카웃됐다.
결과적으로 데뷔하는 일은 없었다.
어떤 문제와 평소 행실이 관련되어 영구 정지 처분.
그랬던 젠슨이 얼마 전 정지 처분이 풀리고 말았다.
─젠슨 저 자식 얼마나 잘하나 기대하는 중이야.
작년 LCF에 지가 출전했으면 우승했을 거라는 등.
아주 기가 살았는데 니가 잘하는 건 솔로랭크고.
아무튼 어떤 꼴이 나나 두고 보겠어.
└에이, 설마 농담으로 하는 소리지? LCF우승이라니.
글쓴이-저 자식은 시즌2부터 쭉 자신감 하나는 넘쳤어.
└입으로 가한 피해량 1등 같은 녀석이지. 어딜 은근슬쩍 에러갓이랑 비비려고 해.
└용기는 가상하네. 현실은 냉정하겠지만 말이야.
과거에는 정말로 먹혔던 적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수준이 높다는 유럽 솔로랭크에서 1등.
그 직후 바로 프로 데뷔를 해버렸으니 기대치가 얼마나 높았겠는가?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거의 이야기다.
젠슨이 솔로랭크를 하는지 여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알려지면 다시 영구 정지 처분을 받을 테니 당연하다.
정지가 철회된 후로도 잠잠하다.
분명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강자.
1년이 훌쩍 지나자 관심은 사그라들었다.
그저 젠슨 본인이 다시 프로게이머를 할 것이다.
래딧에 자신의 근황과 목표를 밝혔다.
과거를 기억하는 몇몇 팬들만 관심을 줄 뿐.
래딧은 올마스터에 대한 이야기로 오늘도 떠들썩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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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부 리그 롤챔스에서의 우승.
어떤 이들에게는 꿈에서도 잡을 수 없는 목표다.
다른 사람 따질 것도 없이 나만 해도 분명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선 목표라기 보단 과정이 됐다.
자만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러한 입장이 돼버렸다.
인생사 새옹지마.
이제 와서 회상하기도 뭣한 일이다.
'한가~하네.'
결승전이 끝나고 2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다음 섬머 시즌까지 남은 날짜가 길다.
LCF 초청 같은 빅이벤트도 없다.
행사라던지 이러저러 섭외는 들어오지만 대부분 거절.
반드시 가야 할 만큼 중요도가 높은 것은 없었다.
집에서 한가한 일상을 만끽하는 중이다.
"심심하지 않아?"
"딱히?"
나의 물음에 예은이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한다.
쇼파 팔걸이에 기댄 채 TV를 감상.
시간을 죽이는 것에 여념이 없으신 모양이다.
일상이라는 게 꼭 특별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정말로 별거 없는, 흔해 빠진 나날이다.
쉰다는 개념이 으레 그러하다.
마음 편하게 정줄 놓고 시간 보내면 됐지.
굳이 힘들게 막 싸돌아다니고 할 필요가 없다.
예은도 나도 기본적으로 방콕파라서 쓸데없이 일 벌리진 않는다.
그렇다고 외출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심심하면 사과라도 깎아줘?"
"어.... 그래!"
사실 딱히 사과가 먹고 싶은 건 아니다.
그리고 솔직히 심심하지도 않았다.
치열했던 대회 이후의 피로는 고작 1~2주의 일탈로 달랠 수 없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얼마나 재밌고 고마운 건지.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다.
즉, 내가 원했던 건 사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다.
'어우야..'
예은이 부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선에 그 광경이 적나라하게 담긴다.
내가 말꼬리를 흐렸던 이유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꼭 보고 싶었다.
같이 사는 입장이지만 대놓고 보기는 뭣하다.
체면을 깎으면서 부탁하고 싶지는 않다.
남자로서의 자존심, 연애 관계에서 서열 다툼이라는 게 은근히 있다.
'요즘 너무 얇게 입는 거 아닌가 몰라..'
늘상 보던 광경임에도 다르다.
나날이 따듯해지는 날씨.
예은의 옷가지도 점점 얇아진다.
아니, 날씨하고는 상관이 없다.
따듯한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예은은 살갗은 드러내는데 저항감이 있었다.
한국에서 나와 시간을 보내며 서서히 완화되었다.
그 결과, 돌핀팬츠라는 남자의 이성을 흐트러트리는 복장으로까지 치닫고 말았다.
말하기가 참 뭣한 부분인데 한 마디로 엉벅지가 끝내준다.
어쩌면 여자 입장에서는 별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남자들도 여름에 사각 팬티 입고 집에 있지 않은가.
예은도 혼자 있을 때는 편의상 입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각! 사각!
부엌에서 돌아온 예은의 손에는 사과가 잡혀있다.
빙그르르 돌리자 얇은 껍질이 이어진 채 쟁반에 떨어진다.
껍질을 최대한 얇게 깎는 것이 포인트.
그래야 영양소가 빠져나가지 않는다.
'누가 보면 요조숙녀인지 알겠네.'
처음 깎았을 때는 신경질을 부리면서 토막을 냈었다.
어느새 익숙해져서 가르쳐준 나 이상으로 잘 깎게 됐다.
정말 어떤 일이든 요령 있게 잘한다.
"왜? 안 먹어?"
"아니, 먹지. 땡큐 잘 먹을게."
이 녀석 원래 성격이면 뽀득뽀득 닦아 던져주기라도 하면 성은이 망극하시다.
그랬었는데 조금씩 둥글둥글 해져서 여성스러운 면도 생겼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사에 한해서다.
본판은 절대 어디 가지 않았다.
"맞다, 나 할 말 있어."
"할 말?"
우물우물 자기 피부처럼 뽀얀 사과를 베어 물던 예은이 두서없이 이야기를 꺼내왔다.
뭐, 상관없지만 의아한 일이다.
포크를 내려놓더니 나를 향해 핸드폰을 내밀어온다.
"이런 거.. 받았는데..?"
굉장히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핸드폰을 멋대로 뺏어본 적은 있어도.
내가 자기 핸드폰을 보는 일은 용납하지 않던 예은이다.
그런 녀석이 나에게 선뜻 핸드폰을 맡겼다.
대체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살펴보니 금세 이해가 되었다.
얼마 전 나에게도 있었던 일.
예은에게 오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