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767화 (767/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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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심장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

과거, 아니 내가 알던 미래에서의 한국.

E-스포츠의 정상으로 당당히 우뚝 섰다.

그게 꼭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건 안다.

다른 나라들은 아예 숨도 쉴 수 없었다.

그나마 중국이 돈의 힘으로 따라붙은 정도.

북미와 유럽은 사실상 멸망에 가까운 수준까지 갔다.

'게임사에 의해 가까스로 유지되었지.'

그러니까 더욱 신기한 일이다.

한국이나 중국에 비하면 초라하다.

그럼에도 성적이, 실력이 나오고 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재능이라….'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서 유명했던 사실이다.

중국은 인구와 자금력이 밑바탕된다.

북미는 종주국으로서 맥을 잇는다.

유럽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입지도 겁나게 안 좋다.

한국과 중국은 단일 나라다.

북미는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가 좋을 뿐더러 언어도 통일돼 있다.

하지만 유럽은 정말 수없이 많은 나라로 쪼개져 있는 데다 언어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그럼에도다.

'정말 이 단어가 아니면 설명이 안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재능이다.

유럽 롤챔스는 선수들의 재능으로 유지가 된다.

일련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온갖 악조건 속에서 타 지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심지어 어느 때에는 가장 왕성했던 적도 있었다.

재능 있는 선수들에게 최상의 환경이 제공된다.

그 만약이라는 이야기가 현실화 됐다.

'그렇게나 잘 나간다지.'

현재 E-스포츠의 중심은 다름 아닌 유럽이다.

수많은 나라, 재능 넘치는 선수들.

한 가지 어긋났던 사슬이 이어지자 물고가 터진다.

사슬이 이어지게 된 이유는 짐작할 것도 없다.

'..다 내가 했네.'

서양권 E-스포츠의 흥행.

SKY T1 K라는 다크호스의 저격.

시즌3 롤드컵의 우승팀이 바뀌게 된 건 필연이었다.

물론 저격이란 말은 비약이 있다.

해당 팀이 뜨는 시간이 늦어졌을 뿐이다.

언제고 치고 올라갈 저력은 충분하다.

'그래도 아쉬운 건 매한가지긴 해.'

한국만 깽판 치는 E-스포츠는 재미도, 흥행도 떨어진다.

그렇다고 한국이 주목 받지 못하면 그것도 좀 아니올시다.

대표적인 예로 올림픽 태권도가 있지 않은가.

과거 올림픽 종목으로서 존폐 위기가 불거졌을 때가 있었다.

한국이 너무 메달을 독식하는 거 아니냐?

결국 룰 개편과 기타 등등으로 인해 해결이 됐다.

그런데 해결이 되고 다른 나라가 우승하니 정색한다.

아니, 한국이 태권도 종주국인데 지면 안되지!

정말 치졸하고 뻔뻔하지만 원래 사람이 그렇다.

국뽕이란 한국인의 피를 끓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꼭 하고 싶어?"

"강요는 안 할게. 정 반대하면 마음 접고."

주위에는 카메라가 번쩍인다.

지난번에 말이 오갔던 CF촬영 중이다.

국내 유명 통신사의 홍보 모델을 맡게 됐다.

"남성분, 고개 조금만.. 예, 그런 느낌으로 갈게요."

촬영을 주관하는 감독의 지시대로 움직인다.

처음이었다면 당황했겠지만 이래 봬도 한두 번이 아니다.

중국에 있었을 적 정말 질리도록 해봤다.

전문적인 모델과는 비교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는 한다.

"그래서 하고 싶단겨, 안 하고 싶단겨?"

"너 은근히 사투리 쓴다.."

"남성분, 촬영 중에 말하시면 안돼요!"

"…."

나와 달리 예은은 오늘이 첫 촬영이다.

그럴 텐데 이상하게 나보다 더 익숙하다.

옆에서 조잘대는데 혼나는 건 나 뿐이다.

학창 시절 많이 겪어본 억울함이다.

찰칵! 찰칵!

이미 대략적인 영상 촬영은 끝났다.

남은 건 사이트 등에 올라갈 이미지샷.

사실 텃세 좀 부리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다.

"언니, 혹시 모델일 했어?"

"처음인데요?"

"설마,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는 거 딱 보면 알아. 학창 시절에…"

"안 했습니다."

예은이 딱 잘라 말하자 감독 아저씨도 말을 잇지 못한다.

근데 다른 말도 아니고 언니라니.

덥수룩한 얼굴과 오지게 안 어울리는 단어 선택이다.

"박동훈 감독 알지? 내 후배인데 요즘 차기작 주연을 알아보고 있거든. 언니만 괜찮다면.. 어때? 캐스팅에 한 번…"

"됐습니다."

얼어붙은 얼굴로 단칼에 자른다.

정색한 예은의 얼굴은 나도 겪어봐서 알지만 장난 아니게 무섭다.

분명 경력이 한두 해가 아닐 감독일 텐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몇 마디 하다 연거푸 헛기침만 해댄다.

"아니, 저 여자 누군데? 내가 누군지 알고 저러는 거야?"

"자, 자. 감독님 진정하시고. 저희 쪽에서 어렵게 섭외한 분들이라…"

이윽고 촬영이 완전히 끝났다.

감독이 뒤에서 궁시렁궁시렁 하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발걸음을 떼려는 예은을 가까스로 잡았다.

별말 하는 거 같지도 않은데 웬만하면 좀 봐줘라.

"나도 별말 좀 하고 오면 안돼?"

"우리 착한 예은이가 한 번만 참아주자.."

차마 말하기는 뭣한 부분이지만 예은의 잘못도 적지 않다.

저 감독 입장에서는 나름 선의로 말한 것일 테다.

섭외라는 목적이 있든 없든 간에 예의는 차렸다.

예은이 한 마디로 딱 잘라 무시했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는가.

"잘 참았어. 뒤풀이 회식은 스케줄 문제로 거절했는데 괜찮지?"

"흐응.., 니가 웬일이래? 그런 눈치 있는 짓도 다하고."

이 녀석처럼 별의별 일에 다 재주가 있지는 않지만 짬을 헛먹지는 않았다.

이런 촬영장에서의 짬이든, 사고 치는 예은 수습하는 짬이든 말이다.

저쪽 스태프도 방금 일을 알고 있어서 말이 잘 통했다.

"뭐 먹고 갈까?"

"너 너무 자연스럽게 메뉴 물어보는 거 아니야? 가끔은 니가 좀 알아서 고르지?"

"고르면 또 고르는 데로 뭐라 할 거면서. 안 따질 거면 골라주고."

이유가 어떻던 간에 밖에 나왔으면 외식으로 연결된다.

둘이 살다 보니 밥 차리는 것도 적지 않게 일이다.

나갈 일이 생기면 밥 정도는 먹고 오는 게 좋겠지.

나와 예은 사이에 있는 암묵적인 약속이 오갔다.

평소 같았으면 예은이 먹고 싶은 집으로 돌격한다.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영 뚱하다.

그래서인지 차에 탈 때까지 뭐 먹으러 가자는 말을 안 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역시나.

메뉴 결정권을 받아낸 이상 내가 선택할 곳은 하나다.

"꼬옴장어..! 너 오늘 따라 좀 이쁘다?"

"하루 이틀이냐. 척하면 척하지. 오빠만 믿고 따라와."

"짜식, 기분이다. 오늘 하루만 오빠 해라."

이전부터 정말 잘 먹던 꼼장어다.

특히 기분 꿀꿀할 때 이거 만한 게 없다.

한 잔 걸치자 자연스럽게 입이 풀린다.

아까 촬영장에서 잇지 못했던 대화.

이전에 채 끝맺음 내지 못한 그것이다.

예은은 조금 더 생각을 해보겠다 하였다.

나도 당일에 대답 들을 생각은 접었다.

하지만 사흘이나 시간이 흐른 이상 슬슬 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의 대회 예정과 연습에도 차질이 없다.

술자리로 인도한 데는 그러한 사정도 있었다.

"내가 하지 말라면.. 안 할 거야?"

"오빠한테 존댓말 안 해?"

"오빠님~ 뒤질래요? 대답이나 하시지."

"..안 할 거야. 이번에는 네 결정을 무조건적으로 존중할게."

"으엑.. 오빠 대접해주니까 느끼한 말 하기는."

"그런 거 아니거든."

어디까지나 내 욕심이다.

변화해버린 한국의 위상.

약간이나마 책임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만류하는 일은 하고 싶지는 않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중국에 갔다 오면서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윽고 떨어진 예은의 입술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흐응.., 롤드컵 끝나고 가는 거면 됐어. 하지만 이야기는 확실히 해야 해?"

지난번에는 다급했던 감이 컸다.

어찌저찌 잘 풀려서 망정이지.

만에 하나 꼬였다면 골치 아픈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정말 다행이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어렵지 않을 거야.'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믿는 바가 있다.

이길 수 있다, 없다 이전의 이야기다.

2015년부터 윈터 시즌이라는 개념이 사라진다.

즉, 게임단의 운영에 큰 차질이 빚어질 일은 없다.

원래의 역사대로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

아예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높은 확률로 그리 될 것이다.

로드 오브 로드 게임사가 원체 독단적이다.

유저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그것이 꼭 좋은 쪽으로 작용하는 건 물론 아니다.

적어도 이번 유럽행에 있어서는 괜찮을 듯하다.

지난 중국행에서 후회가 많았던 만큼 되풀이하지 않는다.

"바보, 그때는 너 혼자 갔잖아. 가서 막 바람도 피고."

"바람은 무슨. 꼬맹이한테 질투하지 말랬지?"

"하? 질투 아니거든? 나 아니면 누가 너랑 사겨 주냐?"

"오빠는?"

"피~ 바보, 똥멍충이 오빠. 걔가 오빠라고 불러주니까 아주 좋아 죽더라."

영 앞뒤가 안 맞는 소리 같은데.

아무튼 대박 삐졌다는 건 알겠다.

어지간하면 쌓아두지 않는 녀석이 그때 이야기만 나오면 입이 대빨 나온다.

'츠위 녀석이 헛짓거리만 안 했어도..'

흉흉했던 두 처자의 쌈박질.

귀국 날의 사건을 나는 잊지 못한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처절했다.

사실 츠위를 데려온 목적 중 하나가 혹시 모를 오해를 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역효과만 제대로 나서 예은의 심기만 잔뜩 건드렸다.

정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츠위가 그럴 줄이야.

"그러고 보니 너 로리콘이었지?"

"그건 초홍이 때 써먹은 드립이잖아. 츠위는 나름 성인이야."

"아까는 꼬맹이라면서."

"자꾸 말꼬리 잡을래?"

그렇게 꼼장어를 먹으며 예은의 불만을 들어주었다.

아주 많이 쌓인 것은 아닌 듯 마지막 쯤 가서는 헬렐레해졌다.

결과적으로 허락은 받을 수 있었다.

'..기지배, 쓸데없는 조건이나 붙이고.'

자신을 데리고 가는 조건, 그리고 또 다른 여자한테 한눈 안 팔겠다는 억울한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정말 결백하다.

그리고 불안을 해도 내가 하지, 왜 네가 하냐.

사랑이 섞인 질투라고 생각한다면 기분 나쁠 일은 아니다.

'형편 좋게 흘러가서 다행이야.'

만약 CLC의 일이 아니었다면 허락을 안 해줬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게 계약 조건이 내 입맛대로다.

중국 때와 달리 계약 기간이 자유롭다.

예은과 함께 가게 되는 것도 문제가 없다.

꼼장어 집에서 한 잔 거하게 걸친 후.

완전히 취한 예은과 밖으로 나왔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듯 때와 장소를 못 가린다.

"오빠, 뽀뽀~."

"꼼장어맛 뽀뽀는 좀 그런데."

"어쭈구리, 싫다 이거지?"

청개구리 같은 녀석이라 하지 말라면 더 해댄다.

나도 딱히 하기 싫은 건 아니지만 차 안이다.

게다가 대리 기사님이 운전하고 계신다.

오는 길에 당연하 차를 타고 왔다.

차를 두고 가기도 뭣하니 대리 기사를 부르게 됐다.

시선이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오늘 따라 더욱 유난스럽다.

'사실 이게 당연한 건데.'

육체적인 나이를 따져도 한 살 차이다.

빠른인지 뭔지 군대에서는 씨알도 안 먹히는 그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을 놨다.

언젠가 이 잘못된 균형을 바로 맞추고 마리라.

그날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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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스프링 시즌.

각 해에 한 번씩은 무조건 있다.

봄이 없는 사계절이 있을 리 없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이 의미는 단순히 대회 한 번으로 생각할 게 아니다.

지난 해에도 사달이 나지 않았던가?

최강팀으로 손 꼽히던 삼선 블루.

그야말로 공중 분해가 돼버렸다.

팀 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팀원들이 꼭 뿔뿔이 흩어져야 했는지.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다른 시즌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약을 파기하는 건 적잖이 복잡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

흔히 말하는 재계약 시즌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현재 스프링 시즌을 전후로 계약 기간을 조정한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암묵적인 룰이다.

기준점이 있어야 선수 쪽에서도, 선수를 잡으려는 쪽에서도 편하다.

지난해 삼선 블루의 경우 재계약을 포기한 채 모두 흩어졌다.

작년이 그러했듯 이번 해에도 여러가지 터졌다.

그 중에서도 하나 큰 건 가짜에어 독수리의 휴식.

휴식의 이유에 재계약 문제가 얽혀 있다는 건 두말해서야 입만 아프다.

─스마일 중국 간 거 실화냐?

엄청 돈 많은 게임단에서 데려갔다던데..

하긴 걔는 한국보다 중국이 잘 맞겠다.

피지컬에 반비례해 운영 능력이 딸려서.

└중국이 그런 게 좀 있긴 하더라. 수입푸드도 그렇고.

글쓴이-아, 그러고 보니 선례가 있었네.

└수입푸드 잘된 것 보면 스마일도 엄청 클지 몰라.

└아무튼 데려가서 다행이다. 한국에 계속 있었으면 진짜.. 끔찍해.

선수들의 재계약, 이적 등은 팬들에게도 당연 관심이 지대하다.

현재 잉벤의 화제글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 가지,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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