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769화 (769/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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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심장

성큼 다가와 버린 섬머 시즌의 첫 경기.

상대는 익히 안면이 있다.

지난 스프링 시즌 때 만나지 않았던가.

8강에서 고배를 들게 만든 얼밤이다.

'그 아저씨 아직 잘 있으려나.'

잘 있다면 오늘 경기로 인해 조금 더 흔들렸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맛밤 게임단에서 오래 생활을 했던 터라 잘 안다.

친목 중심의 게임단이라 옷 벗을 일은 없다는 것.

그래도 한 방 먹여주면 묵은 뭐시기가 쑥 내려간다.

"오늘 MVP 양보 좀 해줘. 나 팬들이 걱정하더라."

"MVP는 쟁취하는 거지. 알아서 가져가."

"하, 치사하네."

씨지맥의 물음에 딱히 진지하게 대꾸한 건 아니다.

나도 그가 가진 고민을 알고는 있다.

지난 스프링 시즌과 달리 좋은 쪽 고민이다.

'그때랑 사정이 많이 변했지.'

스프링 시즌만 해도 네네톤과 티바나.

여기에 1.5티어의 또도 박사가 추가되는 정도.

이 세 챔피언만이 대회 무대에서 설 자격을 가졌다.

틈새를 노린 잭트의 난입도 있었지만 결국 다 장기가 아니다.

티바나도 그나마 할 줄 아니까 했던 거지 주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번 섬머 시즌의 메타.

탑 라인에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이에 따라 씨지맥의 슬럼프도 자연스럽게 풀렸다.

'탑라인의 메타 고착화가 사라진 건 좋은 일이야.'

생존기 좋은 떡대만 나오면 보는 입장에서도 답답하지만 하는 입장에서도 어지간히 괴롭다.

탑라인에 갱 성공시키는 게 힘들기 때문에 게임의 구도가 단순화된다.

한 마디로 변수가 적어서 서로 사리는 것이 쉬워진다.

지난 시즌보다는 더욱 다채로운 경기가 기대되는 바다.

이렇듯 좋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근 두 달 사이에 많은 패치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애꾸사자의 리메이크.

씨지맥의 주력픽 하나가 완전히 죽어버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더 이상 의기소침했던 작년의 씨지맥이 아니다.

그럴 수 있는 기량과 노련미를 갖췄다.

뭐, 안되면 짐 싸는 거고.

"원딜 재미없음. 바꿔 주셈."

"왜, 점수 약탈자 패치돼서 치비르 할 만하잖아."

"바꿔주기로 했잖아!!"

손수 짐을 싸주고 싶은 녀석이 말을 걸었다.

작년보다 콩알 만큼은 성숙해진 초홍이.

구체적으로 ~셈의 비율이 5할에서 3할 정도로 줄었다.

괴성을 지르는 빈도도 체감상 낮아진 것 같다.

이 녀석 치고는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그렇다고 본판이 어디 가진 않았지만.'

목소리 톤은 진짜 귀 따갑게 높다.

지금 때를 쓰는 이유가 다름이 아니다.

사실 억지는 아니고 약속을 했다.

조별 리그 같은 중요도가 낮은 경기에서 포지션을 바꿔 주기로.

'근데 이렇게 떼를 쓰면 하기가 싫어지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놀려 먹기 좋은 녀석 상대로는 특히 그렇다.

고민하고 있자 보다 못한 예은이 한 마디 편을 들어준다.

"자신 없으면 니가 미드해."

"..누가 자신 없대?"

이런 뻔한 기싸움에 넘어가는 것이 참.

예은의 노림수대로 초홍이가 미드를 가져갔다.

상대팀에서는 모를 테니 나름대로 전략적인 카드가 되리라.

이윽고 첫 번째 세트의 밴픽이 시작됐다.

"쟤네 치비르랑 고르키 밴했네?"

"초홍이 저격하려고 했나 봐."

"마침 잘됐구만."

자신의 큰 그림을 봤냐면서 초홍이가 어처구니 없는 헛소리를 해온다.

결과적으로 경기의 시작은 대단히 순조롭다.

순조로운 참교육이 될 예정이다.

'순서를 바꿨어도 그렇게 됐을 테니 억울해 하지는 마.'

누구 한 명 저격하면 쪽도 못 쓰는 과거의 신세상 매직이 아니다.

초홍이의 주력 챔피언인 고르키와 치비르.

두 개를 밴하면 얘가 그냥 미드 가면 된다.

그리고 내가 원딜을 하면 그만이다.

물론 마나 너프를 먹은 이후 치비르의 평가는 낮아졌다.

하지만 현재에 한해 나쁘지 않은 픽이다.

그럴 만한 패치가 하나 있었다.

'점수 약탈자가 괜찮은 시기라 치비르도 할 만하거든.'

얼마 전 패치로 나온 점수 약탈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아이템이다.

패치된 초기엔 의외로 제법 사용할 만했다.

그런데 한 달 후쯤 가격과 공격력이 대폭 올랐다.

치명타에 비례한 쿨타임 감소 효과가 없는 현재.

마나와 약간의 흡혈을 보고 비싼 값을 지불하기엔 옵션이 애매하다.

그 이후로 점수를 약탈한다.

원딜이 저거 가면 무조건 진다.

결국 아무도 가지 않는 고인템이 돼버렸다.

아무튼 지금은 가격이 저렴해서 마나 너프를 먹은 치비르에게 상당한 꿀템이다.

"근데 난 뭘 하는 게 좋으려나."

"오랜만에 …어때요?"

고질라의 말에 나는 아주 잠깐 생각을 곱씹었다.

그도 그럴게 상대가 매일라이프.

게다가 힐 메타라서 살짝 그렇다.

가능성을 따져본다면 분명히 있기는 하다.

얼밤쪽에서 서포터를 가져가자 계산이 섰다.

"해볼 만한데?"

"오.. 쏘냐 가져갔네요. 카운터로 꼽은 거 같은데 그럼 괜찮죠."

고질라의 주력 챔피언이라 할 수 있는 한나.

전통적인 서포터인 만큼 분석 또한 많이 됐다.

실드에 의한 원딜러의 보조 능력은 좋지만 상대가 비슷한 부류의 챔피언을 꺼내면 약하더라.

대표적인 카운터로 쏘냐와 인어가 있다.

둘 모두 힐을 가지고 있으며 딜교환이 강하다.

그에 반해 한나는 딜적인 측면에서 모자란다.

그래서 한나가 선픽되면 보통 저 두 챔피언 중 하나가 나온다.

'과연 올바른 대처야.'

정석적인 대처 능력이 꼭 좋은 쪽으로만 작용할지.

지난 스프링 시즌 때 보여줄 만큼 보여준 것 같다.

나는 천천히 마우스를 움직여 챔피언을 클릭했다.

.

.

.

* * *

아기다리 고기다리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팀이 어디인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선수가 누구인가?

따질 것도 없다.

바로 신세상 매직, 그리고 올마스터 선수다.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섬머 시즌의 3일차.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설마, 설마? 픽 박는 순간 한 가지는 확실해집니다. 오늘 어느 쪽이든 일 날 수 있습니다!>

클끼리가 흥분한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 만도 하다.

일반적으로 원딜러의 픽은 주목 받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두 가지 큰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원딜러를 하는 선수가 바뀐다는 부분이다.

<도라이븐, 아이돌 선수가 특별히 연습을 한 게 아닌 이상 무조건입니다.>

<작년 섬머 시즌 화제를 몰고 왔던 올마스터의 도라이븐 아닙니까! 다시 한 번 재현될 가능성 충분하거든요!>

클끼리에 이어 전범준 캐스터도 목청껏 소리치며 한 마디 거든다.

로드 오브 로드에 존재하는 수많은 챔피언들.

그중에서도 존재감이 남다르다.

캐리력 면에서 비교를 불허한다.

도라이븐은 전장, 그리고 팬들의 환호성을 먹어 치운다.

글자 그대로 그런 패시브를 가진 챔피언이다.

나오는 순간 이기든 지든 도라이븐 하기에 달렸다.

그런데 그 도라이븐을 가져간 선수가 올마스터일지 모른다?

-롤챔스 도라이븐 실화냐?

-실화지! 이미 전적이 있는데 못할 이유가 없지!

-작년 섬머 시즌때 임팩트 개쩔었는데.. 보여주나?

-이미 픽 박았자너ㅋㅋㅋ

파프리카TV등 중계 플랫폼 채팅창에서는 난리가 났다.

만약 전례가 없었다면 이렇게 들뜨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 2013년 섬머 시즌 때 수차례 나왔었다.

올마스터의 도라이븐.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명경기를 선사했다.

다시 한 번 재현이 된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댄다.

<도라이븐을 만든 챔피언 디자이너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세계에서 딱 세 명 정도만 다룰 수 있도록 만들었다. 초기 기획 단계부터 숙련도 요구치를 높게 기획했다고 합니다. 그 세 명 중 한 명이 여기에 있죠?>

디자이너의 인터뷰가 거짓말이라 생각될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다.

안 그래도 높은 피지컬을 요하는 원딜러로 도끼를 받는 서커스까지 한다?

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챔피언을 만든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하지 말라고 만든 챔피언을 하는 인간이 있다.

그것도 바로 지금 경기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올마스터야 말로 도라이븐에게 선택 받은 선수.

그의 손에서 펼쳐지는 학살극은 이미 수많은 팬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항간에서 떠돌기를 올마스터 전용 챔피언이다. 심지어 이게 또 그냥 픽한 게 아닙니다.>

<도라이븐이 CC기에 약한데 쏘냐는 궁극기를 제외하면 CC기가 없어요!>

경기장이 떠들썩해지자 지금껏 조냐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한 사람.

금일 두 명의 해설자 중 나머지 일각인 강빈이 드디어 침묵을 깼다.

언제나 설명이 부족한 강빈을 대신해 클끼리가 추가적으로 덧붙였다.

<재밌게 된 게 얼밤도 준비를 진짜 많이 해왔습니다. 치비르랑 고르키를 밴하고 한나를 쏘냐로 카운터 친다. 봇라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판단이거든요?>

최근 얼밤은 많이 슬럼프다.

과장 조금 보태면 아이돌 사생팬 수준인 얼밤충들 사이에서도 인정이 나왔을 정도다.

그만큼 4시즌의 얼밤은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이를 어떻게든 타개하기 위해 오늘 경기에서 초강수를 두었다.

봇라인에 힘을 실어 매일라이프를 풀어주자.

그 이후부터는 장기인 로밍으로 게임을 비벼보자.

누구보다 얼밤을 잘 알 수밖에 없는 클끼리가 혀를 찼다.

<상대가 공세할 수 있는 픽을 막고, 쏘냐로 라인전을 세게 가져가면서 매일라이프가 캐리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보자. 의도는 좋았는데 너무 노골적이었어요. 신세상 매직에게 전부 들켰습니다.>

신세상 매직의 밴픽 싸움이 어떠냐?

프로팀, 혹은 관계자들에게 묻는다면 희한한 대답이 나온다.

강하다, 약하다도 아닌 골 때린다.

예측을 한다거나, 결과를 이끌어낸다 거나.

일반적인 밴픽 전략이 통하지를 않는다.

현재 흘러가 버린 밴픽 구도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가 한나 가져가면 쏘냐나 인어 하겠지. 그러면 너희 CC기가 없네?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 용의주도합니다. 강팀이 어째서 강팀인지, 언제나 완벽 이상의 밴픽 싸움을 그려냅니다.>

일반적으로 한나는 라인전이 약한 픽이 맞다.

수비적이면서 안정적으로 후반을 지향한다.

그런데 원딜러가 도라이븐이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도라이븐이 미치고 팔딱 뛰기에 가장 어울리는 서포터다.

<한나의 실드가 공격력을 올려주는지라 회전 손도끼와 궁합이 잘 맞거든요!>

<예, 그것도 있고 슈퍼 세이브에 능해서 생존기가 없는 도라이븐을 잘 지켜줍니다. 피비린내 나는 라인전은 이미 예고됐어요.>

강빈 해설과 더불어 클끼리가 멍석을 깔아준다.

지랄도 멍석 깔아주면 못한다는 소리.

분명 있지만 지금의 경기는 그렇지가 않다.

<쏘냐를 가져간 이상 라인 스왑은 말도 안되고, 신세상 매직도 라인전 무난하게 가려고 뽑은 도라이븐 아닐 겁니다. 이건 맞라인전이 될 공산이 99%에 수렴합니다.>

차마 100%라고는 말 못하겠다.

적어도 신세상 매직에 한해서는 그런 말 절대 못 쓴다.

잘못 쓰다간 흑역사만 찍찍 그어진다.

이미 웬만한 나라의 해설진들은 신고식을 치렀다.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혹시 마지막에 무언가 변화를 주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 지켜봤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예상대로 라면 예상대로.

상대의 밴픽 카운터를 허용한 시점에서 예상이란 의미가 없다.

이윽고 양 팀의 선수들이 소환자의 전장에 발을 디뎠다.

<양 팀의 봇듀오 모두 정글러 리쉬 준비하고 있습니다. 맞붙겠다! 사인 떨어졌어요!>

<마침 또 레드팀이라 도라이븐이 1레벨 쌍도끼가 가능합니다. 최근 원딜러 아이템 패치도 그렇고 이건 확실하게 준비를 해왔네요. 심리전에서 정말 도가 텄습니다.>

신세상 매직만이 가지는 독특한 매력이자 관점이다.

이따금 해버리는 독특한 시도.

절대로 우연이나 돌발적인 승부수가 아니다.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되는 밑바탕이 깔려있다.

도라이븐은 특이하게도 블루팀일 때보다 레드팀일 때 강력하다.

정글러 리쉬 후에 도끼를 두 개 유지할 수 있다는 게 크다.

게다가 최근 원딜 아이템들에 대격변이 있었다.

시즌4 패치 이후 고정된 수치의 체력을 회복시켜 주던 두란검.

이로 인해 원거리 딜러들은 첫 코어로 피흡템이 요구됐다.

이것이 얼마 전 패치를 통해 재조정되었다.

체력과 공격력을 조금 낮추는 대신 피흡이 %로 붙는다.

<한 방, 한 방이 강력한 도라이븐에게는 분명 상향입니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 어떤 꼬마 탐정의 말대로 이미 퍼즐은 완성되어 있었어요.>

<신규 아이템 점수 약탈자도 분명 갈 만 하거든요? 도라이븐이 마나가 부족하고 흡혈이 중요한데 점수 약탈자에게는 그게 둘 다 있습니다!>

클끼리에 이어 강빈 해설도 질세라 한 마디 외친다.

보면 볼수록 감탄을 자아내는 고도의 심리전.

신세상 매직의 경기에서는 당연스레 나오는 광경이다.

여러가지 조건들이 맞아 떨어지며 필연을 자아낸다.

사실 그건 그냥 그럴 듯한 포장이고 어쩌다 보니 하게 됐다.

선수 한 명이 땡깡을 부린 나머지 포지션이 변경되고 말았다.

오프더 레코드를 통해 밝혀지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과정도, 결과도 바뀌지 않는다.

신세상 매직 대 얼밤의 첫 번째 세트.

거센 바람이 피비린내를 몰고 온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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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격일로 두 편씩 연재해보려고 했는데 요즘 글이 잘 안 나오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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