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770화 (77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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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심장

파앙!

손도끼가 튕겨 오른다.

쏘냐의 체력바가 묵직하게 깎인다.

이 두 가지가 의미하는 것은 명료하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적 서포터 쏘냐를 따내고 장렬히 전사.

명백히 손해 보는 구도다.

그도 그럴게 당연하다.

나는 죽었지만 상대 원딜러는 살아 남았다.

똑같이 킬을 먹었다 해도 경험치 차이가 난다.

상대는 라인을 밀고 유유히 귀환할 수 있다.

맞는 말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법이다.

"프리징 해뒀어요. 세 마리 흘리긴 했는데."

"잘했어. 이러면 이득이지."

프리징에 성공하면 손해를 약간 만회하는 게 가능하다.

그래도 결국 손해는 손해다.

상대가 가져간 원딜러는 테러스티나.

안 그래도 성장 기대치 높은 원딜러가 킬을 먹어버렸다.

'옛날에는 킬을 먹어도 애매했지만.'

테러스티나는 대표적인 왕귀형 챔피언이다.

정말 극후반 풀템전에 가야만 빛을 본다.

그런데 얼마 전 소소한 버프를 먹은 이후 평가가 달라졌다.

라인전 의외로 할 만하더라?

2코어만 갖추면 딜로스도 적더라.

아이템과 스킬트리, 운용법 등이 재발견된 결과다.

'그래도 단점은 여전히 있지.'

어디까지나 칼을 숨긴다는 개념이다.

나 왕귀 챔피언이라고 너무 무시하지 마라?

시간을 끌어서 후반에 갈 밑바탕을 마련했다.

왕귀 챔피언으로서의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파앙!

펑!

다시 라인에 복귀하고 딜교환을 시작한다.

내가 손도끼를 내려찍자 상대도 대응해온다.

테러스티나가 E스킬 폭렬 탄환을 발사했다.

폭렬 탄환은 마법 피해인 대신 기본 데미지가 엄청나다.

게다가 타겟팅 스킬이라 딜교환이 무척 편하다.

테러스티나가 왕귀 챔피언임에도 라인전이 밀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대신 쿨타임이 길어.'

딜교환에서 폭렬 탄환의 의존도가 높다.

폭렬 탄환이 빠지면 정말 평타밖에 남지 않는다.

쿨타임이 긴 탓에 상당히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

그 정도야 감수할 만한 리스크다.

상대도 스킬 쿨타임이 있을 테고.

딜교환을 걸어오면 안 받아주면 그만이다.

시간 좀 끌어서 폭렬 탄환 쿨타임을 기다리면 된다.

그렇게 라인전 버텨나가기만 해도 개이득.

현재 테러스티나는 그 어떤 원딜러보다 성장 기대치가 좋다.

일반적인 봇조합을 상대로라면 웬만하면 버틸 수 있다.

그런데 도라이븐은 일반적인 원딜러와 거리가 멀다.

파앙!

미니언에게 도끼를 내려 찍는다.

손도끼 하나가 공중으로 튄다.

내가 들고 있는 아이템은 두 자루의 두란검.

덕분에 라인 유지력이 꽤나 쏠쏠하다.

짤짤이 위주의 조합에게 효율적인 세팅이다.

나는 공중에 튄 도끼를 받으며 달려나갔다.

카라락!

파앙!

밀치고 때려 팬다.

일련의 딜교환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가 사려도 강제로 걸 수 있는 힘이 있다.

도라이븐의 W스킬 광란의 피바다.

짧은 시간 이동 속도를 대폭 상승시킨다.

도끼를 받으면 쿨타임이 리셋된다.

한 마디로 어거지로 달려가서 패버렸다.

파앙!

파앙!

교전이 일어나면 이득을 볼 수밖에 없는 구도다.

상대는 내 도끼를 방해할 수 있는 스킬이 없다.

아까 선취점이 나왔을 때 쏘냐의 탈력이 빠졌다.

폭렬 탄환도 쿨타임이라 딜교환이 성립되지 않는다.

무자비하게 내려찍어 테러스티나의 점프까지 빼버렸다.

"형 이블퀸 슬슬 쌍둥이 골렘 쪽일 거에요. 생각해야 돼요."

"오케이, 근데 점프 빼서 백업만 잘 봐주면 괜찮아. 백업만 잘 봐주면 괜찮아."

"두 번 안 말해도 간다 이 화상아!"

도라이븐으로 딜교환을 할 때 중요한 건 크게 두 가지다.

혹시 모를 정글러의 동선 체크.

그리고 실드를 늦게 걸어줘야 된다.

그래야만 실드에 붙은 공격력 증가 효과를 최대로 볼 수 있다.

방금도 실드를 안 걸어서 상대를 설레게 만들었다.

이거 혹시 딜교환 이기는 거 아니야?

응, 아니야.

한 타이밍 늦게 실드를 받고 따라가서 겁나 패버린다.

도끼만 받을 수 있으면 이동 속도가 늘 폭주 상태다.

뚜벅이인 적은 그냥 우주 끝까지 쫓아간다.

두란검이 두 자루라 체력도 높아 역공 당할 위험도 없다.

파앙!

빠듯한 딜교환을 마치고 미니언을 후려패 회복한다.

얼마 전 원딜 아이템 개편으로 달라진 두란검.

도라이븐과 정말 잘 맞아 떨어진다.

'그래도 언제 어느 때 훅 갈지 또 모르거든.'

흔히 착각하기 쉽다.

아, 도라이븐은 킬따는 게 중요한 챔피언이구나.

그렇지가 않다는 소리다.

가장 중요한 건 죽지 않는 거다.

안 죽으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패시브 스택을 차곡차곡 쌓여나가고 있다.

언젠가 터질 날만을 기다리며 말이다.

만약 스택을 터트리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겨우겨우 쌓아온 스택이 반토막으로 뚝 떨어진다.

게임 이어나가기 싫을 정도로 힘이 쭉 빠진다.

어처구니가 없는 숙련도 요구치.

게다가 게임 내에서도 안정성을 요구한다.

안 쓰이는 챔피언이 괜히 안 쓰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악조건을 이겨낼 수 있다면.

수확의 결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다.

초하이리스크, 초하이리턴.

도라이븐을 표현하는 두 마디다.

쿠확!

레드를 먹고 6레벨을 찍은 이블퀸이 갱킹을 왔다.

상대 입장에서는 지금이 호기.

내 점멸이 돌아오기 전에 승부를 보겠다는 이야기다.

촬! 콱!

궁극기로 나에게 둔화를 건 이블퀸이 점멸 평타를 때려박았다.

둔화를 중첩시켜 내 발목을 잡는다.

점사해서 나를 녹여버릴 속셈.

도라이븐을 잡고 시작하면 이길 수 있다.

일련의 계획은 완벽해 보이지만 빈틈이 보인다.

쿠!

창!

다른 건 몰라도 사람 갈구는 소질은 타고난 예은이다.

상대 노림수의 허점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아군 정글러 탈리반 3세가 깃창을 꽂으며 돌격했다.

투웅!

단순한 깃창이 아닌 깃창-점멸이다.

이 응용 콤보는 상황을 진짜 잘 봐서 써야 한다.

폼생폼사 있어 보이려고 썼다간 쪽박 차기 딱 좋다.

구리가스의 배치기-점멸, 쇈의 도발-점멸과 달리 데미지가 안 들어간다.

순수하게 에어본만 딱 들어가고 끝이다.

그럼에도 사용했다는 건 판단을 내렸다는 의미다.

<버거킹!>

테러스티나를 띄우고 쏘냐를 가둔다.

언뜻 의아할 수 있는 판단이지만 지극히 옳다.

이 정도로 해줬다면 나머지는 나에게 달렸다.

콰라락!

앞점프를 하는 테러스티나를 향해 대형 도끼를 던진다.

도끼를 맞은 테러스티나가 추락하는 것으로 게임 오버.

나는 뒷무빙을 밟으며 이블퀸을 점사했다.

파앙!

파앙!

상대가 나를 죽이려면 화력을 집중해야만 했다.

그런데 탈리반이 테러스티나를 한 번 띄우고 쏘냐를 가둬버렸다.

강제적으로 딜로스를 유발시켰다.

제아무리 레벨 차이가 난다고 해도 이블퀸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카이팅을 하며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테러스티나의 평타는 나에게 닿지 않는다.

이블퀸의 체력은 눈에 띄게 깎여나간다.

점멸로 진입한 이상 살아 돌아갈 길은 없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294G를 추가로 획득했습니다!

도라이븐은 도끼를 받거나, 미니언을 처치할 때마다 스택이 쌓인다.

이 스택은 킬을 먹는 순간 터지며 골드로 환원된다.

어째서 도라이븐이 초하이리스크, 초하이리턴인지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광경이다.

파앙!

하나를 터트렸으면 그 다음이다.

탈리반 3세에 의해 갇혀버린 쏘냐.

장벽은 방금 허물어졌지만 거리는 좁혀졌다.

도끼를 되받으며 이동 속도를 폭주시킨 결과다.

─더블 킬!

56G를 추가로 획득했습니다!

언뜻 의아할 수 있는 포커싱이다.

어째서 원딜러가 아닌 서포터부터?

테러스티나는 폭렬 탄환이 빠지면 딜이 없다.

라인전 단계에선 쏘냐가 훨씬 강하다.

물론 놓치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한나에게 다시 실드를 받으며 달려나간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

"멍충이."

뻘쭘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기세가 앞서 달려나간 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모니터가 환해진다.

한 줄기 섬광이 내가 있던 자리를 통째로 꿰뚫었다.

적 미드라이너 럭키가 궁극기로 나를 저격했다.

기껏 살려줬는데 허무하게 죽다니.

툭 쏘아붙인 예은의 한 마디가 가슴을 찌른다.

하지만 나라고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적 미드는 봇에서 사는데!"

"닥치셈."

한 마디 지껄인 초홍이의 아링이 질주한다.

궁저격을 위해 내려간 럭키에게 스킬을 쏟아붓는다.

아무리 발악을 해도 평지에서 마주친 이상 승산은 희박하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만에 하나 속박이라도 맞혔다면 모를까.

점멸로 뛰어넘은 이상 선택지는 하나로 좁혀진다.

미드 솔킬까지 나오며 경기는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테러스티나는 0데스인데 도라이븐은 2데스. 원딜 차이 10오지는 부분이고요~"

"이건 설계한 거지 겜알못아."

"네 다음 럭키 궁 맞은 개허접 깔깔!"

퍼즈를 걸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이 빚은 경기가 끝난 이후로 미뤄둬야 할 듯싶다.

아무튼 봇라인에서의 교전은 대승으로 끝이 났다.

─아군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세 명이 살아남고, 적 정글을 따낸 이상 용은 서비스다.

실드가 두터운 한나라 체력 관리가 손쉽다.

방금 교전의 결과로 글로벌 골드 차이는 급격히 벌어졌다.

찰칵!

이로써 목표하던 아이템을 살 돈도 나왔다.

도라이븐에게 귀중하디 귀중한 VF소드.

현재 가격이 1550골드라 한 번에 못 뽑으면 골 때린다.

나와버린 이상 게임은 굉장히 간단해진다.

'이 정도면 난이도 적절하지.'

사실 더블 킬 먹은 순간 게임은 이미 끝났다.

럭키 궁극기 그까이꺼 그냥 피할 수 있는데 밸런스 조절 좀 하려고 일부러 맞아준 거다.

아무튼 그렇다.

VF소드가 나온 나와 테러스티나는 이제 대화가 안 통한다.

파앙!

광란의 피바다로 따라가서 도끼 한 방.

이전에는 그래도 딜교환이 됐다.

테러스티나가 폭렬 탄환을 쏘면 제법 아팠다.

하지만 더 이상 씨알도 안 먹힌다.

한나의 실드를 받자 공격력이 200에 육박한다.

방어력을 감안 해도 평타 한 방이 300 가까이 단다.

쏘냐와 테러스티나가 발버둥을 쳐도 내 DPS가 배는 높다.

"하, 킬각이었는데 까비."

"쏘냐 탈력 빠졌어요. 탈리반 기다렸다가 다이브각 보죠."

"기다려 봐. 레드 먹고 내려가는 중이니까."

스펠이 전부 돌아온 이상 기다리고 나발이고 그런 거 없다.

경기 끝나고 잔소리를 듣더라도 하고야 만다.

두 번 죽은 쏘냐는 아직 5레벨.

이블퀸도 궁극기가 돌아왔을 타이밍이 아니다.

몰아넣은 먹잇감을 놓아줄 자비는 가지고 있지 않다.

.

.

.

* * *

밴픽에서부터 이미 파란을 예고했다.

어느 쪽으로 어떻게 되든 이건 분명히 터진다.

패기 넘치는 도라이븐 픽이 말리며 시청자들의 웃음보가 터지든.

아니면 지금 흘러가는 게임처럼 쏘냐의 마빡이 터지든 간에 말이다.

파앙!

도끼를 내리치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쏘냐의 체력바가 삭제된다.

테러스티나가 힐을 써서 살리려고 했지만 무의미.

이어지는 거대한 톱날이 두 번 연달아 갈아버린다.

그 흉흉한 광경에 강빈 해설의 조냐가 절로 깨졌다.

<쏘냐의 약점은 약하다는 거거거든요! 살짝 스치기만 했는데 그냥 죽었죠!>

언제나 이어지는 설명이 부족한 게 강소리의 특징이다.

쏘냐는 견제형 서포터답게 기본 체력이 허약하다.

탱킹 관련 스킬도 없어 물렁한 편에 속한다.

방금처럼 공격에 노출되면 찍소리도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

<테러스티나가 뒤늦게 밀어보지만 첫 번째 도끼 맞은 시점에서 가망 사라졌습니다. 도라이븐의 회전하는 톱날은 이즈레알의 정조준 사격과 비슷하게 글로벌 궁극기에요.>

해설을 하는 입장에서 당연 중립을 고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목소리에서 안타까움을 지울 수가 없다.

과거 얼밤의 상징이었던 클끼리.

속수무책 무너져 내리는 얼밤을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다.

<일단 싸움이 일어났으니 싸이가 텔을 타긴 탔어요. 탔는데 할게.. 없죠? 삼종신기 하위템도 안 나온 잭트가 여기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스프링 시즌 때는 애매했던 텔메타.

이제는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솔로랭크에서도 상위권은 어지간하면 텔을 드는 추세다.

귀환텔을 적절히 쓰면 라인전을 안정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

이렇듯 봇라인에서 교전이 일어났을 때 변수를 만들기도 참 좋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 나름.

얼밤의 탑솔러 싸이의 잭트가 도착했을 때는 상황이 종료돼 있었다.

<쏘냐 죽었고, 탈리반 슬슬 도착했고, 이블퀸 궁극기 돌아왔지만 박아도 도라이븐 절대 못 잡아요.>

탑에서는 말카림이 라인을 쭉쭉 푸쉬하고 있다.

봇라인이 흘러가는 상황을 보고 텔을 끊었다.

게임의 향방은 안드로메다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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