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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심장
초창기 마진 공격대는 한 마디로 원맨팀이었다.
스타 플레이어였던 마크눔을 보조하기 위한 나머지 네 명.
공격적인 성향인 선수들만 뽑아 팀의 색깔을 맞췄다.
그런데 정작 대회에 나가 경기를 치러보니 아니올시다.
경기력이 안 나왔다는 게 아니라 개개인이 마크눔에 밀리지 않는다.
어떤 유명 선수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마크눔이 다섯 명이더라.
그 정도로 극공격적인 성향을 자랑했다.
성적 또한 연전연승.
국내에서 상위팀으로 명성을 떨침은 물론 롤드컵까지 나갔다.
본선 진출에 성공함으로서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떠오른 해는 언젠가 저무는 법.
융성했던 시즌2때와 달리 다음 해는 평범했다.
그리고 또 다음 해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평범 이하, 기대치에 한참은 못 미친다.
과거의 명성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
얼밤 정도로 구겨지진 않았지만 문제가 크다.
더 이상 현상태를 방관할 수는 없다.
서포터인 캐인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갈아엎었다.
그 결과.
"결단을 내려야 돼."
마진 공격대의 숙소 안.
최근 연승 가도에 올라 조금은 풀어졌던 공기가 다시 무겁게 젖어 든다.
그럴 만도 하다.
대규모 리빌딩이라는 건 다른 말로 하면 방출이다.
방출의 마법창.
선수라면 누구도 견디기 힘든 치욕이다.
재차 리빌딩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양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그 아픔을 겪었던 사람이 있다.
前마진 공격대의 선수이자 現마진 공격대의 코치를 맡고 있는 송이 말을 이었다.
"코치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망설여지는데.. 나도 얼마 전까지 선수였잖아. 그래서 더욱 확실히 정리하고 싶어."
둥근 탁자에 마진 공격대의 선수들이 빙 둘러 앉아있다.
서포터인 캐인을 빼면 전부 새로이 영입된 선수들이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헷갈리는 이는 없다.
프로게이머인 이상, 프로게이머를 지망한 이상.
올드팀 마진 공격대의 멤버를 모를 수가 없지 않은가?
불과 얼마 전까지 선수였기에 미숙한 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만큼 더욱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결정도 할 수 있다.
"이미 조별 리그 결과는 대부분 정해졌어. 다른 조들은 1위가 사실상 확정지어졌지. 전부 만만치 않아.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들 있지?"
일반적으로 조별 리그는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구태여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어떻게든 본선만 진출하면 끝이야!
그런 가오 떨어지는 마인드를 가진 팀은 없다.
약팀들조차 목표는 4강 이상으로 잡는다.
난적을 만났을 때 사용하기 위한 비장의 한수 정도는 숨겨둔다.
이번 시즌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온 전략.
대부분 실력 격차에 짓밟히기 때문에 의미가 없어질 뿐이다.
올드팀인 마진 공격대는 당연히 다르다.
마음만 먹으면 강팀을 상대로도 한 방 먹일 저력이 있다.
준비할 수 있는 최강의 한 방을 대체 어느 팀에게 먹일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내부 토의는 이에 관해서다.
"저희가 2위로 본선 진출을 하면 다른 조의 1위를 만나게 되니까요."
"호랑이 아니면 여우.. 그러니까 코치형 말은 어떻게든 신세상 매직을 꺾어보자는 건가요?"
조별 리그가 끝나면 조추첨식을 가진다.
현 시점에서는 당연 누가 누구를 만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각 조의 1위는 다른 조의 2위를 만난다.
반대로 2위는 다른 조의 1위를 만난다.
고생해서 조 1위를 찍은 팀들에 대한 자그마한 보상이다.
이 보상으로 인해 오히려 지뢰를 밟을 수도 있다.
해당 시즌 강팀이 운없게 2위로 진출했는데 만나버린다?
적어도 이번 섬머 시즌에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다.
조별 리그 1주차 때 행해진 경기다.
같은 조에 속해버린 두 마리의 사자.
KTX 롤러코스터 A와 SKY T1 K의 사실상 1,2위 결정전이 개막식으로 치러졌다.
SKY T1 K는 강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
2세트 연속 KTX 롤러코스터 A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마찬가지로 다른 조에서도 이미 혈투가 있었다.
자신들이 속한 C조를 제외하면 1위는 전부 정해졌다.
"2위는 아직 공석인 조도 있지만 다 해볼 만한 상대들이야. 우리가 만약 신세상 매직을 꺾고 조 1위로 진출한다면 준결승전까지는 아주 쉽게 풀려."
당연하게도 같은 조의 1와 2위는 매칭이 안된다.
만나는 경우의 수는 결승전 밖에 없다.
일례로 지난 스프링 시즌의 결승전.
삼선 레드와 신세상 매직이 재차 조우해 자웅을 가렸다.
즉, 나머지 조들의 2위만 살피면 된다.
A조의 2위는 최근 한풀 꺾였다는SKY T1 K.
B조의 2위는 가짜에어 비둘기, 혹은 불밤.
D조의 2위는 SKY T1 S 아니면 IM 1팀.
그에 반해 각 조의 1위들은 쟁쟁하다.
삼선 레드, 삼선 블루, KTX 롤러코스터 A.
최근 날고 긴다는 팀으로 깔끔하게 엄선했다.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의 얼굴이 바뀐다.
그 우스갯소리 학교 급훈이 남 말이 아니게 됐다.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를 이기냐, 지냐.
이 하나의 차이로 준결승 진출 난이도가 확 내려간다.
"그래도 SKY T1 K걸리면 말짱 도루묵 아니에요?"
"저 세 팀보다 신세상 매직이 셀 거 같은데.."
"SKY T1 K 최근 기세 꺾인 건 알지만 저도 애매하다고 생각해요."
코치인 송의 이야기에 선수들은 갸우뚱한 기색이다.
조별 리그의 가치가 높다는 것은 모를 수가 없다.
이길 수 있다면 반드시 이기는 게 좋다.
하지만 대가 없이 노력만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확실하지 않은 가능성을 위해 투자하는 것.
망설여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만약 전략을 노출했는데 패배까지 한다?
조 2위로 본선 진출을 한다고 해도 애매해진다.
상대로 올라올 강팀들을 맨몸으로 받아치는 건 지극히 부담된다.
영 뚱한 반응을 보이는 선수들에게 송 코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자. 조별 리그야. 신세상 매직이 전력을 다할 리 없잖아?"
굉장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반론이다.
눈치채지 못한 선수들도 있지만 몇몇은 이조차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찬성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회 비용.
비장의 카드를 섣불리 소비하기엔 걸린다.
그 중요도를 생각한다면 쉽게 결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젊은 피다.
"한 번 걸어보는 게 어때? 확률, 괜찮잖아."
무난하게 간다면 무난하게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공산이 크다는 사실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안다.
팬들의 앞이 아닌 자신들끼리니 할 수 있는 말이다.
"코치형은.. 승산을 어떻게 보시나요?"
송 코치를 제외한다면 가장 오래 마진 게임단에 남아있는 한 사람.
캐인이 다른 선수들을 대표해서 물었다.
솔직하게 마음이 동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움직이기에는 결정이 가지는 무게가 무겁다.
"4할."
낮다면 낮고, 높다면 높은 숫자다.
송 코치의 대답에 선수들이 반색한다.
아직 캐인의 물음은 끝나지 않았다.
"나머지 1위 팀들은요?"
".....2할 내지 3할."
아주 잠시 망설인 송 코치가 이내 입술을 떼었다.
코치로서 각 팀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선수들이라고 이를 모를 리 없다.
크게 불리하단 사실은 인정한다.
숫자를 비교했을 때 선택해야 할 건 전자가 맞다.
전력을 쏟아부어 신세상 매직을 격퇴하는 것.
이기기만 한다면 그 이후는 술술 풀린다.
만에 하나 SKY T1 K 걸려도 해볼 만하다.
최근 기세가 상당히 부진한 상태다.
하지만 단순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신세상 매직이 4할인데 다른 팀들이 2할까지 될 수 있다니..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선수들 모두가 가지는 의문이다.
설마 설득을 하기 위해 승산을 부풀린 건 아닐까.
아무리 조별 리그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해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발톱을 숨겨도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
그런데 승산이 5할에 가까운 4할.
상대적으로 약팀일 다른 팀들은 2할 내지 3할.
차이가 조금 지나치다.
설사 후자가 맞다고 해도 전자가 너무 높다.
더욱이 송 코치는 경력이 지극히 짧다.
나이 또한 별로 차이 나지 않는다.
판단을 무작정 신뢰할 수 없는 것이 선수들의 솔직한 마음이다.
이에 대해 송 코치는 대답을 미리 준비해두고 있었다.
"그건 재경기를 고려한 확률이야. 2세트 중 하나만 따내면 무조건 재경기. 과연 신세상 매직이 어떤 태도로 임할까?"
어째서 4할이라고 했던 건지.
그리고 조별 리그 쪽으로 마음이 기운 건지.
참으로 용의주도하다.
그제서야 선수들은 송 코치의 계산을 알아차렸다.
신세상 매직은 조별 리그라고 대충 하는 팀은 아니다.
첫 두 세트는 나름 진지하게 임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어지는 재경기.
과연 마지막 경기라고 전략적인 투자를 할까?
"아, 그렇구나.. 단순히 3전 2선승으로 볼 게 아니구나.."
"하기야 걔들 입장에선 1위 하면 하는 거고 안 하면 안 하는 거니 목메진 않겠네요."
"단기적으로 보기보단 멀리 보겠지. 아마 이번에도 우승이 목표일 테니까."
C조에 속한 신세상 매직과 마진 공격대.
서로가 2승을 딴 상태에서 치르는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다.
여기서 만약 서로 1승 1패씩 가져간다면?
다른 경기를 모두 치른 이상 즉석해서 1,2위 결정전이 열린다.
바로 한 세트 더 경기를 치러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평범한 3전 2선승제의 경기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송 코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르다.
신세상 매직 입장에서는 까놓고 말하자면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이다.
무엇보다 마진 공격대가 사력을 쏟아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다.
"두 세트 중 한 세트 따내는 정도야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고.. 이거 할 만하겠는데요?"
"8강에서 삼선이나 KTX 상대로 5전 3선승제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부담이 덜하네."
"우리 아직 전략 노출도 안 했잖아? 분명히 한 방 먹일 수 있을 걸? 4할이 뭐야, 아귀만 맞아 떨어지면 6할 이상이야!"
롤챔스의 진짜는 본선부터다.
그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강팀들이 본선부터 전력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 맹점을 역이용해 조별 리그에서 전력을 다한다.
8강을 훨씬 수월하게 올라가기 위함이다.
미리 땡겨서 쓴다면 승부수, 충분히 걸어볼 만하다는 계산이 섰다.
"근데 8강 쉽게 뚫은 다음 준결승 가서 못하면 욕 좀 먹겠.. 아, 아닙니다…."
마진 공격대의 새로운 원딜러 오큐.
아무런 생각없이 내뱉은 그의 발언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을 뿐 모를 수가 없다.
마진 공격대의 여론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지 않았다.
올드팀이었던 만큼 팀의 성적과 상관없이 팬층이 두터웠다.
오랫동안 몸 담아온 선수들을 전부 버리고 리빌딩.
기존의 팬층이 전부 떨어져 나가버렸다.
성적으로 증명하며 다시 일어서고 있지만 한 번 더 브레이크가 걸린다면 최악이다.
팀의 평판이 확 떨어지는 것은 필연.
어쩌면 가짜에어 독수리와 같은 선상에 설지도 모른다.
송 코치가 차가워진 공기를 깨고 입을 열었다.
"맞는 말이야. 좋게 볼 수는 없는 행위지."
선수들의 역할은 매경기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코치는 결과적으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관점의 차이.
실적을 위해서, 팀의 승리를 위함이다.
만약 선수 시절이었다면 송도 생각하지 않았을 과격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 점을 헤아리지 않고 말을 할 만큼 모나지도 않았다.
"그것도 생각을 좀 달리 해보자. 우리가 8강을 수월하게 넘기면 그만큼 여유 시간이 생겨. 준결승 때까지 충분히 다른 전략을 준비할 수 있겠지. 미리미리 걱정할 이유는 없다고 봐."
프로게이머가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성적, 다른 하나는 경기력.
어느 한 쪽도 모자라면 안된다.
가짜에어 독수리라는 선례가 있는 만큼 선수들이 탐탁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현실과의 적절한 타협도 때로는 필요하다.
구태여 어려운 길을 택할 이유가 있을까.
의견은 곧 하나로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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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별 리그가 드디어 3주차에 접어들었다.
이번 주를 끝으로 각 조의 순위가 매겨진다.
사실 모든 조들이 정해진 거나 다름이 없다.
100%는 아니지만 이견이 달릴 정도는 아니다.
─대충 사이즈 나온 것 같은데?
A조는 진작에 나왔으니 패스.
B조는 2위로 불밤이나 가짜에어 비둘기가 가겠고.
D조는 SKY T1 S로 오늘 정해졌고.
C조는 당연히 마진 공격대가 2위겠지?
└웬만하면 그렇게 가겠지. 1위는 당연히 신세상 매직.
└올마스터가 막 트롤픽 꺼내고 그러면 또 모름.
└얼음 장갑 파사딘 막 이런 거? 근데 결국 괜찮다고 밝혀지지 않았나.
└ㅇㅇAD상대로 얼음 장갑 올리면 좋더라고.
잉벤을 포함한 팬사이트에선 이미 확고해진 일반론이다.
조별 리그의 결과는 이렇게 굳어지지 않을까.
오직 마진 공격대만이 고요하게 이변을 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