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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심장
조별 리그의 의미는 강팀과 약팀에게 각각 다르다.
약팀의 경우 한 마디로 제발이다.
제발 좀 올라가자.
우리도 좀 같이 해먹자.
정말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왜냐하면 본선부터는 토너먼트다.
토너먼트 제도는 약팀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팀 하나만 상대하면 되기 때문에 승부수를 잘 띄우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조별 리그는 자신의 조에 속한 모든 팀들과 전부 겨뤄야만 한다.
안 그래도 불리한 약팀이 준비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어떻게 잘해서 한 팀 이겨도 산 넘어 산.
조별 리그가 강팀을 위한 제도라는 말은 비약이 아니다.
즉, 강팀의은어떻게든 순위권에만 들면 된다.
본선 진출권만 확보하면 순위는 딱히 알 바가 아니다.
아주 여유롭게 조별 리그를 넘긴다.
약팀의 입장에선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무튼 조별 리그의 중요도가 떨어지는 건 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냥 심심하니, 티켓값도 평소보다 싸니까 보는 거지.
반드시 봐야 할 만한 경기는 거의 없다.
시작 전부터 재미가 보증되지 않고서야.
때문에 신세상 매직의 경기는 늘 인기가 있다.
조별 리그에서조차 항상 좌석이 매진이다.
조별 리그라고 심심한 게임을 하는 팀이 아니다.
실험적인 전략도 써보고.
예상을 벗어난 픽도 꺼내고.
늘 경기를 재밌게 하니 인기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 신세상 매직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가 열린다.
<7월도 어느새 절반이 지나 한여름이 왔습니다. 바깥은 아주 해가 쏟아지고 있어요. 하지만 현장의 열기도 그에 뒤지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캐스터 전범준 인사드립니다~~!>
무대는 여느 때와 같은 상암 E-스포츠 경기장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가 분명하게 다르다.
바로 경기장에 온 관중들의 열기.
눈으로만 대충 둘러봐도 조별 리그의 분위기가 아니다.
금일 해설을 맡은 일각 김은준 해설이 입을 열었다.
<조별 리그는 중요도가 떨어진다. 어차피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 주요 과목 이외에 시간 투자 안 하는 이유랑 비슷하거든요? 그래도 저는 도덕 선생님이 재밌어서 수업은 꼬박꼬박 들었어요.>
생뚱 맞은 드립에 관중들이, 시청자들이 씁쓸하게 웃는다.
삭막하다고 할 수 있는 한국 교육의 현실.
수능에 반영되지 않는 교과목들은 철저히 외면 받는다.
이를 테면 예체능, 도덕, 기술, 가정 등 말이다.
선생님들 입장에서도 참 난감하다.
학생들이 대놓고 자도 할 말이 없다.
왜?
인문계 학생들의 경우 정말 밤낮없이 공부한다.
수능과 관련 없는 교과목에 투자할 시간 아까워 한다.
억지로 시키기라도 하면 당장 학부모한테 전화 날아온다.
수업을 듣게 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학생들 모두가 자진해서 들을 정도로 재밌게 진행하는 것 뿐이다.
현재 이루어지고 조별 리그 또한 같은 맥락이다.
<신세상 매직, 마진 공격대 두 팀 모두 이미 2승 거뒀습니다. 얼밤, 그리고 IM 2팀에게 각각 1승씩 가져갔죠. 오늘 경기의 유무랑 전혀 상관없이 본선 진출은 무조건입니다.>
조금은 맥을 빠지게 하는 말이다.
지는 게임도 희망있다는 듯 말해야 하는 중계진이 해서는 안될 말이다.
김은준 해설이라고 그것을 모를 리 있을까.
말을 꺼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 5천이 넘는 팬분들이 와주신 이유입니다. 절대 져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우리팀, 내가 응원하는 팀! 1등으로 올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팀들에게 조별 리그는 큰 의미가 없다.
그 말은 정확하게 반만 맞았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자존심 싸움이다.
아니, 가오가 있지 저팀한테 질 수는 없잖아?
단순히 이해타산적으로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왜냐면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클끼리가 해설의 바톤을 이어받았다.
<경기를 시청하시는 팬분들은 크게 세 분류로 갈라집니다. 신세상 매직의 팬들, 그리고 마진 공격대의 팬들, 또 마진 공격대의 팬이었던 분들. 왜 이렇게 정리가 되는지 아시는 분들은 아실 거에요.>
시즌2부터 롤챔스와 역사를 함께 해온 마진 공격대.
과감한 리빌딩으로 근본부터 바뀌자 팬덤이 떨어져 나갔다.
때문에 이 자리는 더욱 의미가 깊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을 뿐이다.
실력으로, 경기력으로 팬들을 돌아보게 만들겠다.
마진 공격대로서는 절실하다.
절대 대충 치를 수가 없는 경기다.
<사정 있다고 봐주는 거 없거든요? 조 1위 자리 호락호락 내줄 신세상 매직 아니거든요?! 양 팀의 선수들 준비됐습니다. 지금 바로 밴픽~~! 들어갑니다!!>
전범준 캐스터의 호쾌한 외침과 함께 시작한다.
사실 시시콜콜 따지고 보자면 그럴 듯한 포장이다.
양 팀 모두 오늘의 경기에 무언가 걸 이유가 없다.
경기의 흥을 돋구기 위한 이를 테면 조미료다.
그런데 그것이 설마 현실로 벌어질 줄이야.
그들의 속사정을 중계진들은, 팬들은 당연히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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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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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별 리그 3주차.
진출이 정해진 팀도, 탈락한 팀도 좋든 싫든 마지막 한 판을 치러야 한다.
금일 토요일에 행해지는 조별 리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두 경기다.
두 번째 경기인 불밤 대 MKZ는 나름대로 불꽃이 튄다.
불밤이 두 세트를 전부 이기면 희망이 싹 튼다.
내일 있을 가짜에어 비둘기가 1승 1패를 하면 재경기가 성립된다.
그렇게 불꽃 튀는 두 번째 경기와 달리 첫 번째 경기는 가진 자들의 여유!
신세상 매직도, 마진 공격대도 본선 진출을 확실하게 결정지었다.
그럼에도 마진 공격대의 부스 안은 바깥과는 흐르는 공기가 다르다.
"송 형, 할까..요?"
마진 공격대의 미드라이너, 쿠로이가 바싹 마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만큼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신세상 매직과의 조별 리그.
세간에서는 단순한 기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하지만 속사정은 그렇지가 않다.
"선픽 박아도 괜찮겠어?"
"자드 밴했으니 괜찮아요. 이거 라인전 세서 상성 안 타요."
오늘 마진 공격대는 작정을 하고 나왔다.
조 1위 진출을 위해 가진 바 모든 밑천을 쏟아붓는다.
전략 노출이 되더라도 상관이 없다.
팀 내에서 이미 그렇게 결론이 났다.
"파사딘 살았다는 거 생각해야 돼."
"솔킬은 봐야 알겠지만.. CS차이는 낼 수 있어요. 갱 도움 받으면 라인전 압도할 자신도 있고요."
"자신 있다면 선픽 박아. 그렇게 해주면 다른 라인들이 후픽 박기 편해지니까."
"알겠습니다!"
사실 전략이랄 것 까지는 없다.
애시당초 마진 공격대는 전략&전술과는 거리가 먼 팀이다.
높은 라인전 기량과 반비례해 운영이 다소 어설프다.
최근 대회 무대에 만연한 수비적인 운영.
가짜에어 독수리가 통달한 그것 말이다.
즉, 최근 메타에 녹아들지 못했던 것이 부진의 이유였다.
"미드는 아직 꺼낼 생각 없어 보이고.. 탑은 말카림 선픽 같은데요?"
"최근에 많이 썼으니 아마 맞겠지. 정글 스왑일 가능성은 가볍게 염두에 두자."
운영이 부족하다는 것은 프로팀으로서 심각한 결점이다.
중국 쪽으로 가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은 그러하다.
하지만 이를 타개할 방법이 없다는 건 아니다.
한 가지 전제 조건 하에 뒤집을 수 있다.
바로 공격적인 운영을 하는 것이다.
마진 공격대는 팀명에 걸맞게 공격적인 운영에는 도가 텄다.
한 번 승기를 잡으면 강팀을 상대로도 꿇리지 않는다.
이러한 팀 색깔은 리빌딩이 된 이후로도 변함없다.
물론 적잖이 어려운 일인 게 사실이다.
강팀이 괜히 강팀이겠는가?
라인전 단계에서 주도권을 뺏는 건 힘들다.
뺏긴다 하더라도 치명상까지는 입지 않는다.
차후 운영을 통해 극복할 여지를 남긴다.
높은 승률을 유지하는 팀들은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신세상 매직이 고스란히 해당한다.
그렇기에 사용하는 비장의 전략, 아니 카드다.
"거미여왕 가져간 것 보면 확실하게 탑인데요? 저 그럼.. 헤일, 아니 미달리로 갈게요."
"잘 생각했어. 디나이 위주로 성장만 억제해도 한타에서 안 밀리니 마음 편히 해."
지난 스프링 시즌 이후 쏟아진 수많은 패치들.
더욱이 스프링 시즌 때는 메타가 정체돼 있었다.
역대 롤챔스 중 전 시즌 대비 가장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 건 필연이었다.
실험이 가능한 조별 리그다 보니 정말 여러가지 픽이 나왔다.
솔로랭크에서 유행하는 픽은 물론.
선수 개인이 자신 있어 하는 챔피언.
여기서 마진 공격대가 하려는 건 둘 다다.
라인전이 강력하다는 장점을 살리겠다.
이를 운영적으로 극복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당장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역시 꿀챔.
혹은 팀의 색깔에 어울리는 픽이다.
"산다라와 미달리가 압박하면서 핑크 와드만 지워주면 호준의 이블퀸이 이득 보는 교전을 열어줄 거야. 조합 절대로 안 밀리니까 조급해 할 거 없어."
現마진 공격대의 코치인 송은 누구보다 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장점은 물론 단점까지 꿰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이 자리에 앉았으니 당연하다 마다인가.
선수들의 장점을 최대로 살리며 반대로 단점은 지워나간다.
마진 공격대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조합을 꾸린다.
미드라이너인 쿠로이가 가져간 산다라.
산다라는 비주류 챔피언이지만 라인전이 강력하다.
탑라이너인 두크가 가져간 미달리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리워크가 되어 챔피언이 상당히 변했다.
창이 워낙 안 좋아져서 너프다.
그런 이야기가 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탑 딜탱으로 쓰기에는 꽤나 좋아졌다.
시즌2부터 은근히 쓰이던 탑미달리는 애매한 면이 있다.
라인전은 세지만 한타에 가면 무력하다.
하지만 말카림을 말릴 수 있으면 봇듀오가 캐리할 환경이 만들어진다.
안티 캐리와 강력한 라인전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연구한 픽이다.
"봇은 꼬그모? 아니면 토이치?"
"상대 브루저 많아서 부담되긴 하는데.. 말카림 말릴 수 있으면 꼬그모 할게요. 단단하니까."
현재 원딜 1티어는 꼬그모, 고르키, 토이치, 테러스티나다.
고르키를 제외하면 전부 하드 캐리형 원딜러.
마진 공격대의 원딜러 오큐는 꼬그모를 가장 선호했다.
딜 나오는 타이밍이 빠르면서 몸도 나름 단단한 편에 속한다.
원딜러 치고 체력이 높은 꼬그모가 삼종신기까지 가기 때문이다.
플레이 여하에 따라 브루저를 역카운터 치는 것도 가능하다.
"설마 눈치채진 않았겠죠? 저희 전력 쏟아붓는 거."
"그럴 가능성은 낮아. 우리 전력이 노출된 적도 없거니와 얼핏 보기에는 실험픽으로 밖에 생각이 안되잖아."
바로 그 올마스터를 상대하게 되기 때문일까.
긴장한 쿠로이의 물음에 송 코치가 안심할 수 있는 대답을 들려줬다.
사실 일련의 픽과 조합 컨셉은 마진 공격대가 할 수 있는 최선 중 하나다.
정말 난적을 만났을 때.
그리고 패배한다면 뒤가 없을 때.
배수진의 각오로 사용하고자 연구한 픽과 조합이다.
이를 겨우 조별 리그에서 사용하게 됐다.
자신들이 진심이라는 걸 상대가 예상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現마진 공격대의 정보가 유출된 적이 없다는 게 결정적이다.
리빌딩이 이루어진 것이 극히 최근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지금껏 조별 리그에서 상대했던 얼밤, 그리고 IM 2팀.
두 팀 모두 강적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고생하지도 않았다.
평이한 픽으로 무난하게 잡아냈다.
오히려 그것이 진짜 실력이라 생각하고 있을 터다.
현재 밴픽에서 가져간 산다라와 미달리는 팬서비스 정도로 여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끠즈..? 재밌는 거 가져갔네요. 말카림 선픽도 그렇고 엄청 진지한 것 같지는 않죠? 코치형 생각은 어때요?"
"나도 이하동문이야. 너희들은?"
"요즘 솔랭도 스크림도 끠즈 평가 별론데. 개인기 자랑할 겸 뽑았다고 봐요. 피지컬챔이니까."
"확실히 진지 빡겜 모드는 아니네요. 저도 한 표."
여타 팀들과 달리 코치와 선수들간의 분위기가 좀 많이 자유롭다.
1세대 E스포츠 갤럭시 크래프트 때와 달리 로드 오브 로드는 원래 상하 관계가 적은 편이긴 하다.
그것을 감안해도 완전 친구 같은 분위기다.
실제로 마진 공격대는 정말 그러한 관계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선수였던 송.
나이 차이 또한 얼마 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친근한 관계가 유지된다.
이는 분명 부정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도 충분히 괜찮다.
뭉친지 얼마 되지 않은 New마진 공격대가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아무튼 자신들이 낼 수 있는 최상의 패를 내밀었다.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까지는 아니어도 풀하우스 정도는 된다.
상대가 펼친 카드는 아무리 봐도 그 이하.
포커와 다른 점이 있다면 꼭 높은 카드를 낸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팀의 사활을 건 마진 공격대 일생일대의 도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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