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4====================
뒤바뀐 심장
<경기 시작됐습니다. 마진 공격대가 블루 진영, 신세상 매직이 레드 진영에서 경기를 펼칩니다.>
전범준 캐스터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옵저버가 양 팀의 선수들을 골고루 비친다.
언제 어느 때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인베.
하지만 오늘의 경기는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도 그럴게 승패랑 전혀 상관없이 사이좋게 본선 진출이다.
구태여 목을 멜 이유가 없음에도 왜일까.
마진 공격대의 조합은 상당히 특이하다.
짚이는 바가 있는지 클끼리 해설의 입이 가벼워진다.
<미드 산다라에 탑미달리, 이거 솔랭에서는 은근히 자주 나오거든요? 특히 미달리는 탑라인의 지배자, 현재 천상계에서 필밴에 올랐습니다.>
나름 前프로게이머인 만큼 천상계 사정도 빠삭하다.
산다라는 이전부터 라인전 하나는 알아줬다.
미달리는 리메이크 이후 잠잠하다가 뜨는 추세다.
AP로 쓰기에는 별로지만 탑딜탱으로는 상당하더라?
라인전이 거의 패황급으로 상성 또한 타지 않는다.
솔킬 따는 능력도 좋은데 갱회피도 엄청 쉬운 편이다.
<이전에는 멀리서 창 한 대 맞으면 댓 데미지! 체력바가 쭉 깎였는데 리메이크 과정에서 너프를 먹었어요. 대신 퓨마폼이 강력해지면서 탑딜탱으로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에서는 이미 8할 이상의 밴픽률을 자랑한다.
이러한 사실을 모를 수 없는 한 사람.
김은준 해설도 슬슬 입이 근지러워질 때가 됐다.
<솔로랭크 데이터를 봤을 때 탑미달리의 승률이 굉장히 높아요. 선수들이라고 모를 수가 없죠? 쓰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한타, 아무리 라인전 세고 뭐 해도 대회는 결국 한타잖아요? 그래서 안 쓰이던 건데 마진 공격대는 충분히 써봄직 하다 결론을 내린 걸로 보이네요.>
어디까지나 실험적인 픽이다.
해설진의 반응은 하나로 좁혀졌다.
그도 그럴게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
본선 무대에는 전혀 예상을 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카드를 굳이 쓴 이유.
앞으로 대회에서 쓸 만한 카드인지 실험해보겠다.
혹은 팬서비스 차원에서 꺼냈을 것이다.
후자는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미달리가 한타에서 역할이 애매해요. 솔로랭크처럼 잘 커서 힘으로 찍어누른다. 그런 상황을 연출하기가 쉽지 않아요. 조금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존재감이 삭제됩니다.>
<확실히 대회픽으로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긴 하죠. 그래도 마진 공격대잖아요? 제가 현역일 때부터 이 팀은 시종일관 몰아치는데 특화돼 있었습니다. 팀의 색깔과 궁합이 맞아요.>
사실 픽의 의의를 부여하는 거야 어렵지 않다.
어느 팀이든 간에 기존에 안 쓰이던 픽.
갑자기 뽑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문제는 그 픽의 의의를 살리는 것이다.
라인전 센 거 가져갔으면 라인전에서 이득 보고.
글로벌 궁극기 있으면 합류 싸움으로 재미 보고.
막상 경기에 들어가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반대로 살릴 수만 있다면 비주류 픽이라도 가치가 상승한다.
공격적인 운영이 장기인 마진 공격대에게 필요한 것이다.
팀의 색깔에 정확하게 맞는 픽을 하였다.
어쩌면 작정을 하고 준비해온 걸지도 모른다.
<일단 라인 주도권을 잡기는 잡았습니다. 탑 보시면 미달리가 깔짝깔짝 부쉬 드나들면서 평타 한 방씩 넣는 저거. 당하는 입장에서 되게 짜증나거든요?>
<미드 라인도 산다라가 주도권 꽉 틀어 잡았습니다. 그 와중에 CS 따라가는 올마스터 선수의 대응력, 훌륭합니다만 분명 소규모 교전 등에서 산다라가 한 발 백업이 빠를 겁니다. 마진 공격대는 이를 이용해야 돼요.>
이용하기 위해 준비해온 픽이다.
마진 공격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호준의 이블퀸이 슬그머니 봇라인을 향한다.
<여차하면 다이브 실행할 분위기죠? 일단 눈치는 못 챘습니다.>
<지금 타이밍에 이블퀸이 봇에 있는 것, 예측하기 쉽지 않아요. 허를 한 번 찔러보겠다는 속셈입니다. 승부수 던질 가능성 농후합니다.>
승부수라는 건 기본적으로 투자다.
아무런 대가 없이 할 수는 없다.
마진 공격대가 한 행위는 훼이크다.
탑&미드가 유리하니까 여기서 한 번 갱각을 잡겠지.
특히 탑라인의 경우는 위험하다.
미달리가 라인전이 세도 보통 센 게 아니다.
게다가 말카림은 6레벨 전 갱회피 능력이 단점이다.
신세상 매직으로서는 미드와 탑을 시팅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꼬아서 봇을 찌른다?
성공한다면 대박.
실패한다면 탑&미드가 풀려버린다.
<이블퀸이 뒤에 와드 깔았고 미달리 조용히 텔 탑니다. 신세상 매직 봇듀오 꿈에도 모르고 있어요.>
<이런 걸 탑이 봐주면 좋은데 말카림이 지금 완전히 움츠러든 상태에요. 자칫 잘못하면 킬각이라 타워 밖으로 못 나간다는 맹점을 제대로 활용했습니다!>
첫 귀환 전 이블퀸의 갱킹 능력은 매섭다.
은신 챔피언이라 장신구 와드로는 볼 수가 없다.
물론 프로 무대에서는 어느 정도 추측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훼이크를 넣은 이상, 그리고 다이브 각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는 이상 통한다.
미달리와 함께 하는 4인 다이브.
성공 확률은 지극히 높다.
<어떻게든 원딜러는 살려보고자 쓰렉귀가 발악을 했는데 안됩니다. 이블퀸이 점멸로 고르키 마무리..! 이렇게 되면 추가 이득 봐야 합니다.>
<최소 오브젝트 하나, 잘하면 1차랑 용 둘 다! 아, 안전하게 라인 손해만 입히고 산다라 불러서 용 먹겠다. 마진 공격대 판단 좋습니다!>
살벌하게 휘몰아친 4인 다이브.
두 개의 시체를 남기고 용까지 가져간다.
조금 무리했다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거미여왕의 동선이 모호하다.
만약 타워를 깨버리면 라인전이 끝난다.
마진 공격대로선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라인전 단계에서 스노우볼 더 굴리겠다, 그리고 탑 웨이브 손실도 생각했습니다. 미달리가 탑에서 빅 웨이브 다 놓치면 말카림 압박 힘들어지거든요? 마진 공격대, 오늘 아주 날이 날카롭게 섰습니다.>
라인전 스노우볼을 위한 산다라와 미달리의 픽이다.
즉, 마진 공격대는 라인전을 길게 가야만 한다.
가능하다면 방금과 같은 그림을 한 번 더.
운영으로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격차를 벌려보겠다는 속셈이다.
<신세상 매직도 그 상황에서 최선의 판단은 내렸습니다. 말카림이 웨이브 쭉 몰아서 타워에 박고, 거미여왕은 윗 정글 다 털었어요,>
<하지만 턱없이 부족해요. 여기서 더 최악인 경우의 수를 찾는다면 그나마 풀린 말카림이나 끠즈가 뭐라도 하려다가 죽는 것. 이러면 진짜 게임 산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나마도 미달리가 빠르게 귀환을 탄 탓에 미니언 웨이브를 다 손실시키지도 못했다.
신세상 매직으로선 근래에 보기 드문 기분 나쁜 스타트를 끊었다.
이 정도의 손해를 만회하는 것은 제아무리 신세상 매직이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로드 오브 로드는 RPG가 아닌 AOS게임.
서로가 동등한 조건으로 매판 다시 시작한다.
스타트를 안 좋게 끊으면 강팀이라도 무너질 수 있다.
<마진 공격대의 팬이라면, E-스포츠의 역사를 함께 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사실 아닙니까!? 전설의 6송! 비록 코치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주사위는 굴릴 수 있거든요! 지금도 부스에서 노심초사 선수 시절보다 5년은 늙은 얼굴로 지켜보고 있어요!>
전범준 캐스터의 개드립에 관중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다.
전설의 6송.
한 마디로 주사위 로또다.
1송이 노답이고, 3송이 평소라면, 6송은 엑조디아다.
숫자가 높을수록 경기력이 급상승.
마진 공격대의 코치로서 충분히 굴려볼 만하다.
아무리 신세상 매직, 올마스터라 한들 무적까진 아니다.
분명히 사람이고, 약점이 있고, 끌어내릴 수 있다.
마진 공격대의 팬, 팬이었던 이들, 관중석이 술렁인다.
신세상 매직을 응원하기 위해 온 팬들도 마찬가지다.
설마 이 자존심 매치에서 패배하고 마는 것인가.
아무리 중요도가 높지 않더라도 패배는 패배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 현장에 온 관중들.
목이 바싹바싹 타들어간다.
위기를 모면하려면 두 가지 중 하나가 필요하다.
하나는 침착함이 돋보이는 운영.
다른 하나는 이를 상회하는 슈퍼 플레이.
첫 번째도, 두 번째도 가능한 팀이다.
경기의 향방은 두 선수의 어깨에 걸렸다.
.
.
.
* * *
조금, 아니 상당히 불리하게 끊은 스타트.
킬과 용을 내준 것도 걸리지만 진짜는 다른데 있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지.'
밴픽 단계에서부터 눈치는 채고 있었다.
마진 공격대의 미드라이너, 쿠로이가 가져간 산다라.
내가 알던 미래에서 그의 주력이라 꼽혔던 챔피언이다.
'아이디 덕에 생각났네.'
쿠로이는 일본어로 검다라는 뜻이다.
산다라의 외관도 온통 칠흑빛.
연관된 탓에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탑 버틸 만해?"
"솔킬은 내주지 않을 정도. 하이브리드라서 좀 짜증난다."
예은의 물음에 답하는 씨지맥의 어조는 밝지 않다.
그만큼 현재 탑라인의 상황은 어렵다.
얼마 전 리메이크가 된 미달리.
리메이크 초기에는 탑솔러로 연구됐다.
기본 공격력과 공격 속도.
Q스킬의 AD계수가 상당히 높았다.
이후 너프를 먹어 AP로 사용되지만 그건 미래의 일이다.
현 시점의 미달리는 강력한 탑솔러다.
솔로랭크에서는 대부분 필밴.
나오기만 하면 탑라인이 터지기 일쑤다.
대놓고 솔킬을 노리기 힘든 대회라서.
그리고 상대가 봇라인에 투자를 해서.
말카림이 버텨주고는 있지만 힘들다.
주도권을 상대에게 내줄 수밖에 없다.
'이러다 시간 끌리면 또 손해가 생겨.'
한 번 금이 가버린 균열이다.
방관한다면 더욱 더 쩍쩍 갈라져 간다.
어디선가 역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상대라고 이를 대비하지 않을 리가 없다.
탑라인의 미달리는 갱 회피력이 좋다.
성장 기대치를 포기한 대신 다른 능력이 탁월하다.
봇라인은 상대가 확실하게 유리한 상태.
역갱 생각도 해야 돼서 가기가 애매하다.
한 번 킬을 먹은 이블퀸은 무서워진다.
동선을 예측하기 힘들 뿐더러, 궁극기 때문에 다 대 다 전투 능력이 탁월하다.
소거법으로 따졌을 때 남게 되는 라인은 미드.
'미드는 산다라라서 더 힘들어.'
일반적으로 끠즈로 산다라는 밥이다.
하지만 그건 난잡한 솔로랭크에서의 이야기.
서로가 파밍 구도인 대회는 양상이 다르다.
꽈득!
포옹!
산다라가 나와 미니언을 향해 스킬을 던진다.
라인만 깔끔하게 클리어하고 미련없이 빠진다.
견제를 하되 중앙 라인을 넘는 일이 없다.
라인 관리를 통해 최소한의 이득만 보며 성장.
첫 귀환 이후 라인전은 계속 이런 식이다.
끠즈를 상대할 줄 아는 산다라다.
'당연히 모르지는 않겠지.'
이러면 끠즈도 성장이 편해지지만 썩 기분이 좋진 않다.
끠즈는 킬로 크는 챔피언이지 CS로 크는 챔피언이 아니다.
게다가 상대의 견제때문에 CS차이가 조금씩 벌어진다.
욕심을 내다 체력이 깎이면 갱이나 원콤에 죽을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대회와 솔로랭크의 차이점이다.
소규모 교전이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상대하는 유저의 숙련도가 장난 아니게 높다.
안타깝게도 중반 한타의 영향력은 산다라가 우위.
여러모로 답답할 수밖에 없는 그림이다.
타개할 수 잇는 방법은 한 가지다.
<악어다~!>
어째서 산다라를 상대로 끠즈를 뽑았을까.
솔로랭크와 대회의 차이는 당연히 안다.
알고 있음에도 뽑은 데는 이유가 있다.
끠즈는 대 뚜벅이 챔피언의 하드 카운터다.
'알고도 당하는 갱호응이거든.'
끠즈의 궁극기, 악어밥 던지기.
만약 던져온다면 칼같이 피해야지.
궁극기 없는 끠즈 압박해서 이득봐야지.
마음 먹고 있었을 산다라가 된통 당한다.
'대놓고 던졌다면 피했겠지. 그런데 이렇게 던지면 어떨까?'
Q스킬 죽창 찌르기로 미니언을 타며 궁극기를 던졌다.
거의 지근거리에서 나가기 때문에 조금만 반응이 늦어도 못 피한다.
차후 끠즈가 거듭해서 너프에 너프를 먹음에도 불구.
미드 대세픽으로 재차 발돋움 하게 되는 단 한 가지의 이유다.
아드득!
탑라인이 버텨준다면 미드를 봐도 되겠다.
예은의 거미여왕이 갱킹을 왔다.
점멸 고치를 날리자 산다라가 맞점멸로 피해냈다.
피하면 뭣하는가.
악어밥을 맞은 시점에서 운명은 결정됐다.
자신의 죽음을 예상한 산다라는 발악을 한다.
파아앙!
산다라가 거미여왕을 향해 검은 파동을 뿜었다.
한 명이라도 데리고 가겠다는 속셈.
스친다면 1.5초의 스턴이다.
이어지는 연계기에 순삭될 위험이 크다.
예은이 이를 거미줄로 여유롭게 피하자 선택지는 하나로 좁혀졌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타워를 허그하고 있어 죽여버리는 강제 갱호응.
악어밥 던지기는 CC기로서 효과 좋기로 손가락에 꼽힌다.
1.5초의 둔화, 그리고 에어본, 한 번 더 1.5초의 둔화다.
적중한 이상 도망을 갈래야 갈 수가 없다.
"나이스 짜샤! 이제 주구장창 미드만 판다?"
"다 좋은데 때리지는 마.."
굉장히 흥분했는지 발로 내 허벅지를 퍽퍽 때린다.
예은이 과민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알고 있다.
정글러로서 게임이 답도 없을 때.
어느 라인을 가도 갱각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방금 산다라를 따낸 고작 하나의 킬.
그로 인해 답답했던 숨통이 확 풀렸다.
이제 곧 미드 라인은 맛집이 된다.
즉, 상대 정글이 미드를 봐줘야 한다는 소리다.
'본다고 해도 힘들 걸?'
이블퀸은 하드 CC기가 없는 정글러다.
방금처럼 누구 한 명 순식간에 쓱싹!
선빵 싸움으로 귀결된다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역전의 신호탄은 이미 쏘아 올렸다.
============================ 작품 후기 ============================
화면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