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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심장
신세상 매직 쪽으로 승기가 기울어간다.
분기점이 되었던 건 당연하게도 용한타.
그렇게만 생각하기엔 의아한 것도 사실이다.
<말카림의 의병대 이니시 정말 깔끔했고, 한타의 대승을 이끈 일등공신입니다. 하지만 게임의 승기가 왔다갔다 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클끼리 해설이 상황을 정리한다.
현재 흘러가고 있는 게임의 상황.
용한타에서 분명 마진 공격대가 대패했다.
다섯 팀원이 전멸하고, 미드 1차까지 추가로 나갔다.
하지만 결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건 아니다.
글로벌 골드를 따지자면 아주 큰 차이가 안 난다.
<한타 이외의 구도는 마진 공격대가 좋았습니다. 탑1차 깼고, 용까지 먹었어요. 신세상 매직에서도 이니시 타이밍을 잡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죠.>
한타도 물리고 시작한 것 치고는 선방했다.
끠즈의 학살을 종결시키고, 말카림을 잡았다.
가져간 글로벌 골드만 따져보자면 거의 동등.
그럼에도 게임의 향방은 자꾸 기울어져 간다.
타악!
미드 라인에서의 대치 상황.
미달리가 던진 핵창이 쓰렉귀의 마빡에 맞았다.
이전이었다면 관중석이 오~! 술렁였을 것이다.
<보기에는 진~짜 아프게 맞았는데 실질적으로 별로 깎이지는 않았습니다.>
<탑AD미달리니까요.>
삼종신기를 올린 탑미달리다.
게다가 리메이크 과정에서 딜적인 너프도 있었다.
유효 범위가 좁아졌을 뿐더러 실질적인 데미지가 2/3.
이전처럼 한 방에 집 보내는 핵창 같은 건 안된다.
즉, 대치 상황에서 아무리 창 날려봤자 효과적인 견제가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할 게 없어서 미드 모였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나 탑미달리인데, 중후반 접어들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하는데. 탑 웨이브 밀고 뭐할지 판단이 안 서고 있거든요?>
단순히 힘의 크기만 놓고 봤을 때 마진 공격대는 지금도 신세상 매직에게 크게 밀리지 않는다.
중반 타이밍의 탑미달리.
삼종신기가 완성된 직후에는 나름 강력하다.
한타에서도 충분히 제 역할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한타는 당연히 안 열리고.
다른 방식으로 이득을 가져가는 법도 모르겠다.
<합류 속도 차이로 1차 타워 정도는 밀 수 있지 않을까? 턱도 없어요.>
끠즈가 죽창을 땅에 꽂고 튀어 오른다.
내려앉으면 주위의 적에게 광역 피해를 가한다.
몸으로 미니언을 처리하다 보니 위험해질 수 있다.
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해당하지 않는다.
촤아앗!
내려앉은 끠즈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간다.
실피가 남은 근거리 미니언.
죽창 찌르기를 타고 안전하게 도주가 가능하다.
<끠즈도 올마스터가 하면 다르거든요! 진짜 얄밉게 눈 앞에서 라인 먹고 사라져도 뭐 어쩌겠습니까?!>
<올마스터의 끠즈! 사실 큰 차이점이 있진 않은데.. 아이템트리 부분에서는 확실히 특색이 있네요.>
전범준 캐스터의 호들갑에 클끼리가 절반쯤 호응한다.
초중반 라인클리어가 애매한 끠즈.
주문력이 갖춰지기 전에는 깔끔하지 못하다.
수성에 있어 결코 적을 수가 없는 차이다.
적이 타워를 압박할 여지를 주게 된다.
그 점을 아이템트리로 크게 보완했다.
첫 코어로 뽑은 심홍의 완드.
마법 저항력을 깎는 디버프가 2%부족한 라인 클리어를 보충해준다.
<이러면 미달리는 탑 다시 가서 밀린 웨이브 받아 먹어야 합니다. 슬슬 픽의 의미가 퇴색될 시점이 왔죠?>
<말카림 독두꺼비 먹고 집 가면 삼종신기 완성되겠네요. 이제부터는 존재감이 극명하게 나뉩니다.>
라인전 단계가 지나가버린 시점이다.
짤짤이로 디나이를 하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로밍과 합류전으로 변수를 노려보려 했으나 실패.
김은준 해설이 마진 공격대의 고질적인 단점을 지적한다.
<한 마디로 캐치볼입니다. 마진 공격대가 던지는 건 나름 잘해요. 근데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되면 자꾸 공을 흘립니다.>
주도권이 있을 때는 던지기만 해도 된다.
공격적으로 휘몰아치며 상대에게 선택지를 강요한다.
마진 공격대가 경기를 이길 때 구도가 늘 그러하다.
하지만 용한타 이후 경기의 구도는 반반이 되었다.
힘의 균형이 엇비슷하니 공격적으로 나서기 힘들다.
넓었던 행동의 폭이 좁아지자 갈피를 못 잡는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 손해가 누적된다.
<이대로 끠즈, 말카림 무럭무럭 성장하면 먼젓번 용한타에서의 그림, 더욱 처참하게 반복됩니다. 마진 공격대도 그걸 아니까 뭔가를 하려는 건데.. 답답하죠.>
<한타도, 운영도 차이가 납니다. 라인전 단계에서의 승기를 굳히지 못하게 더욱 아쉽게 작용하네요.>
강팀은 어째서 강팀일까?
이유야 당연히 여러가지 있다.
어떤 팀은 특정 선수가 엄청 잘할 수도 있고.
어떤 팀은 한타 시너지가 엄청날 수도 있다.
공통된 특징을 한 가지 찾자면 바로 실수다.
어이 없는 실수로 게임을 그르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마진 공격대와 신세상 매직이 비교되는 가장 큰 차이다.
올마스터라는 슈퍼 에이스의 유무.
적어도 이번 게임에서는 패배의 요인이라 볼 수 없다.
미달리가 돌아다니는 사이 말카림이 무럭무럭 성장했다.
쿠워어어어!
유령화를 켠 말카림이 질주한다.
부대끼며 싸우다 궁극기를 끼얹는다.
빠른 속도로 따라가 미달리의 뺨을 후려친다.
<솔키이일! 대. 형. 사. 고. 대형 사고 터졌습니다.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니에요!>
클끼리가 요란법석을 떠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탑 라인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미달리.
한 번 솔킬을 당했다는 건 그 다음도 당할 수 있다는 소리다.
<조급하니까, 뭐라도 해야 하니까! 말카림 체력 좀 깎아보려다 역관광 제대로 당했어요,>
<라인전에서 고통 받던 그 말카림이 아니거든요. 방금은 스펠 차이도 났기 때문에 까불면 안됐는데 마음이 너무 앞섰습니다.>
용한타 이후 말카림은 유령화가 돌아왔다.
미달리는 점멸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각 스펠이 가지는 기본적인 쿨타임 차이.
그래도 설마 킬각까지 연결이 될까.
그 설마가 제대로 터졌다.
공격적인 성향의 씨지맥 선수다.
라인전에서 받았던 설움을 그대로 되돌려줬다.
<방금의 솔킬은 안 그래도 답답했던 마진 공격대에게 기름을 퍼부었습니다. 그 기름에 불이 붙든, 알아서 고꾸라지든 좋은 미래가 그려지지는 않아요.>
그나마 한 가지 웃어주는 게 있었다면 탑라인의 주도권이었다.
미달리가 탑 먼저 밀고 내려와서 뭐라도 하는 것.
그것 하나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빌 수가 없다.
마진 공격대는 조금 더 버텨보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
.
.
* * *
어느 정도 받아들일 준비는 돼있었다.
신세상 매직이라는 거목.
한 번 찍어 넘어갈 나무가 아니라는 건 안다.
알고 있음에도 마진 공격대의 부스 안은 초조하다.
"용한타에서 너무 비벼졌다. 그림은 좋았는데."
"말카림 텔병대랑 끠즈 점멸로 물어버려서 제가 어떻게 살 수가 없었어요."
"그건 심했지. 적어도 네 잘못은 절대 아니야."
용한타의 구도는 결코 불리하지 않았다.
탑에서 1차 타워를 깼으며, 상대가 진입 각을 보느라 용까지 내줬다.
굳이 이기지 않더라도 반반.
동수의 교환을 했다면 이후 게임 풀이가 해볼 만했다.
그런데 아예 전멸을 해버렸다.
꼬그모가 죽어버리고 시작한 한타.
딜 밸런스가 무너지자 속수무책이다.
이후에는 오직 상대가 실수해주길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당연히 안 해줬고 별다른 돌파구는 찾지 못했다.
첫 세트는 장기전 끝에 확정된 패배를 하고 말았다.
"아쉬웠어. 하지만 나는 용한타가 패배의 요인은 아니었다고 생각해."
마진 공격대의 코치 송이 선수들의 피드백을 정리한다.
용한타에서의 패배.
분명 게임의 승패를 가른 분기점이다.
하지만 결정타로 작용했을 뿐 이전부터 금은 가고 있었다.
"봇 다이브로 스타트는 좋게 끊었는데 이후에 딱히 뭘 못했죠."
"그래, 내가 범인이다."
"여기 범인 자수했습니다 코치님!"
미드가 두 번 죽은 탓에 게임이 단단히 꼬였다.
로드 오브 로드에서 미드는 게임의 중심.
말리게 되면 다른 라인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가장 처음 영향을 받는 라인은 정글이다.
동선이 지극히 제한되며 공격적인 시도도 힘들어진다.
탑도, 봇도 유리함을 살려 다이브각을 만들기 어렵다.
약팀이 강팀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초중반 단계에서 확실한 이득을 가져가야 한다.
그러지 못했으니 패배하게 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것도 있었지. 근데 전체적으로 라인 압박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어. 분발해야 돼."
송답지 않은 뼈아픈 일침이다.
하지만 분명 필요했던 말이다.
탑으로 미달리를 가져갔다.
미드로 산다라를 가져갔다.
라인전에서 생각보다 이득을 보지 못했다.
다소 CS를 디나이시킨 정도.
고작 그 정도로는 픽의 의미가 무색하다.
결국 성장 기대치에서 따라잡히고 만다.
미달리가 그러하지 않았던가.
1코어, 2코어 갖춰질수록 존재감 차이가 극명하다.
1대1에서조차 어느 순간 밀리게 된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게임이 완전히 터진다.
"근데 탑은 봇 봐주다가 유리한 타이밍 놓친 거라 어쩔 수 없었는데.."
"그냥 봇도 라인전을 세게 가는 게 어때? 고르키나 파루스, 헤이클린 걸로."
"하라면 할 수는 있지만 딱히.."
"오큐 성향에 맞는 원딜들은 아니야."
라인전 단계에서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한다.
만들지 못한다면 패배 뿐.
빠듯하게 피드백을 주고 받은 결과 한 가지 답이 도출됐다.
"내가 르풀랑을 할까? 르풀랑 하면 라인전이랑 갱회피 둘 다 잡을 수 있어."
"그거 너프 먹고 애매해지지 않았어?"
"마나 버프 먹었잖아. 충분히 쓸 만해. 적어도 라인전은 안 밀려."
침묵이 사라진 후 픽률과 승률이 급격하게 떨어진 르풀랑.
게임사에서 소소한 버프를 해주자 다시 사용을 해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챔피언의 스킬 메커니즘이 확실히 장점이 많다.
이 또한 산다라와 함께 쿠로이가 비밀리에 연습하고 있던 카드다.
어차피 하나 꺼낸 이상 모 아니면 도.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라도 한 세트를 따내야만 한다.
"그래, 해봐서 알겠지만 신세상 매직도 절대 무적이 아니야. 우리가 이득 봤을 때 역공만 침착하게 잘 대비하면 승기 굳힐 수 있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송의 말대로 이전 세트도 분명 승산이 있었다.
그 단점을 밴픽을 통해 보완하겠다.
마진 공격대의 결정은 옳았다.
하지만 한 가지 만큼은 결코 예상할 수 없었다.
같은 시각 신세상 매직 쪽의 부스 안.
두 명의 선수가 자리를 비웠다.
.
.
.
* * *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선수들도 생리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
기타 등등 불가피한 용건이 있을 때는 부스 안에서 나갈 수 있다.
'시~원하구만.'
꽃에 물을 주고 나왔다
경기 중 화장실에는 잘 가지 않는 편이지만 궁금했다.
확장 공사를 겸한 리모델링을 마친 상암 E-스포츠 경기장.
화장실도 변해있을지 별 이유 없이 가보고 싶었다.
이전부터 가려고 했는데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까먹더라.
그래서 생각난 김에, 말 나온 김에 가봤다.
실망스럽게도 내부 구조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남자 화장실은 문제가 없었으니 됐지만.'
문제가 있었던 쪽은 여자 화장실이다.
예은이 종종 불만을 터트렸다.
왜 여성 선수 전용 화장실은 없냐.
그 답은 간단하다.
여성 선수가 없으니까.
예은과 초홍이의 경우가 특수한 거다.
때문에 그동안은 위층에 있는 사원용 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 리모델링 때 의견 수렴이 받아졌다.
들어보니 여성 스태프들도 불만이 있었던 모양이다.
확장 공사와 더불어 겸사겸사 이루어졌다.
참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지만 한 가지.
경기가 끝나고 뺀질나게 드나든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근데 얘는 언제 나오냐..'
여자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뻘쭘하다.
주위를 지나가는 스태프들과 인사를 주고 받는 것도 한두 번이다.
궁금하면 같이 가보자고 해서 왔는데.
정작 본인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여자들 화장실 오래 걸리는 거.
알고는 있지만 벌써 휴식 시간이 절반 가까이 지나갔다.
20분으로 늘어났다고 해도 슬슬 가지 않으면 안된다.
언제나 그러하듯 준비는 완벽하게 갖추는 것이 옳다.
끼익.
정말로 드디어다.
여자 화장실의 철문이 열린다.
한 마디 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순간.
불쑥 나온 손 하나가 나를 힘껏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