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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심장
SKY T1 S의 부스 안.
선수들은 이미 진지한 얼굴로 착석을 마쳤다.
김다균 코치는 자신도 모르게 구두 앞굽을 톡톡 두들기고 있다.
그만큼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애꾸사자라.. 정글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해."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하나 이것 만큼은 말할 수 있다.
저 애꾸사자 탑에 안 갈지도 모른다.
"씨지맥이면 아마 탑하지 않을까요? 솔랭서 보니까 하던데."
"그럴 수도 있겠지. 단정 짓지는 말라는 소리야. 충분히 정글로 빠질 수 있는 픽이니까."
지난 스프링 시즌 한참 대세픽이 되어버린 애꾸사자.
결국 리메이크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받고 말았다.
궁극기의 메커니즘이 살짝 바뀌고.
E스킬 목줄이 논타겟 스킬이 돼버렸다.
탑으로 쓰기 애매해졌더라.
그런 평이 지배적이나 또 모를 일이다.
스프링 시즌 당시에도 완전히 저평가를 받고 있었다.
즉, 탑이니 정글이니 따지기 보단 전체적인 조합을 봐야 한다.
블루 팀인 신세상 매직은 이번 턴에 모든 픽이 완료된다.
애꾸사자와 함께 가져간 챔피언.
작년까지만 해도 간간히 등장하던 나무카이였다.
"나무카이 저것도 리메이크 됐는데.. 아, 진짜 밴픽 골 때리게 하네."
"그래도 결국 쟤네 둘 중 하나가 탑이나 정글 가는 거 아니에요?"
"그래, 탑이 룬 좀 감안해서 들어줘."
김다균 코치가 뒷목을 잡는 것도 과장된 반응이 아니다.
신경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닌 신세상 매직이지만 가장 골 때리는 건 밴픽이다.
어느 라인에 갈지 예상도 안될 뿐더러 무슨 챔피언인지도 모르겠다.
나무카이 또한 얼마 전 리메이크가 된 챔피언이다.
OP라서 리메이크된 애꾸사자와 달리 안 쓰여서 리메이크가 결정됐다.
이유야 어찌 됐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다.
지금 당장 경기에서 저놈들이 어떤 라인에 가서 어떤 행패를 부릴지.
적어도 탑이나 정글에 가긴 할 테니 그것 하나는 다행이다.
아니다.
그렇게 단정 짓다가 지난 스프링 시즌 결승전에서 삼선 레드가 된통 당했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 쟤네 들어와서 휘젓는 조합이야. 봇 안정적인 거 할 수 있지?"
"안정적인 거요? 이미 원딜러는 테러스티나 뽑았으니 괜찮고 서포터는.."
"저 쓰렉귀랑 브라운 가능해요."
"오케이, 그걸로 가자. 브라운!"
팀의 서포터 폭스에 대답에 김다균 코치는 칼같이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현 메타에서 가장 듬직한 서포터.
한 가지 전제 조건만 깔린다면 써봄직하다.
"어차피 테러스티나 뽑은 시점에서 라인 스왑은 예정된 거였으니 가능한 해봐. 안되면 할 수 없는 거고."
"실패하면 저희 CS 차이 좀 나더라도 초반 다이브각만 안 주도록 할게요."
"그래, 우리 랄라니까 조급하게 안 해도 돼. 믿는다."
근접 서포터인 브라운은 맞라인전이 취약하다.
하지만 한타에 가서는 정말로 든든하다.
돌진 조합을 상대로 이만큼 효과적인 픽이 없다.
폭스가 마지막으로 브라운을 가져갔다.
이로써 양 팀의 조합 구성이 완료됐다.
남은 것은 과연 어느 챔피언이 어디로 갈지.
30초라는 시간이 카운트되기 전에 팀의 미드라이너 이지범이 입을 열었다.
"코치님 저.."
"알고 있어. 그 이야기지."
휴게실에서 김다균와 이지범이 나눴던 대화.
지난번에 나눴던 이야기라 함은 다름이 아니다.
미드 라인을 한 번 밀어줬으면 좋겠다.
SKY T1 S는 기본적으로 탑과 봇에 힘을 싣는다.
이는 결코 이지범의 캐리력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워낙 잘 버티고, 안정적으로 파밍을 하니 봐줄 이유가 없다.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상대할 때도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SKY T1 S를 지탱하는 대들보.
하지만 그도 사람이다.
선수로서 캐리가 욕심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지범이가 오늘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 모양인데..'
김다균 코치라고 이를 모를 리 없다.
아니, 팀의 코치로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테이커와 이지범 사이에 흐르고 있는 어색한 공기.
이를 표현할 단어가 마땅치 않다.
구태여 하나 꼽자면 열등감.
이 세 글자 외에는 달리 설명이 안된다.
'확실히 지범이가 기량은 되는데 팀이 좀 안 맞긴 하지.'
나쁜 의미의 열등감이 아니다.
테이커에 절대 꿇리지 않는다.
그런데 팀이 조금 안 받쳐준다.
이지범은 그런 말을 할 발언권이 있는 선수다.
그만큼 SKY T1 S에서 숨은 에이스 역할을 해주고 있다.
숨은 에이스.
밖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주된 불만이다.
"호롱이 미드 위주로 좀 봐줘. 헤일 후반 캐리력 좋으니 무난하게만 가도 되고. 만약 야흐오 한두 번 딸 수 있으면 지범이가 캐리할 거야."
"체력을 좀 깎아놔야 갱각이 나올 텐데.. 코치님도 아시다시피 지범형이 안정적인 스타일이라…."
SKY T1 S가 미드 위주로 게임을 보지 않는 이유다.
어떤 선수든 두 마리의 토끼를 전부 잡을 수는 없다.
공격적인 것과 수비적인 것.
균형을 잡되 주라는 게 있다.
이지범의 경우 주가 수비.
그러면서도 제 할 일은 다한다.
가히 수비적인 미드라이너의 모범과도 같은 선수다.
덕분에 정글러의 활동 반경이 비약적으로 넓어진다.
미드와 정글은 한 몸.
하지만 그 미드를 봐달라고 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김다균 코치가 이지범을 넌지시 바라보며 묻는다.
"지범이도 공격적으로 할 줄 알잖아?"
"야흐오가 파고들 각 주면서 딜교환 유도해놓을게요. 그럼.. 되지?"
이지범의 눈초리가 평소와 달리 곱지 않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모를 수가 없다.
작정을 했구나.
이견은 허용하지 않겠구나.
'지범형이 이렇게 미드갱 요구하는 건 첨이네. 뭔 일있었나.'
호롱은 다소 일었던 의문을 접어두었다.
프로게임단도 기본적으로 사회 생활이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의견.
특히 한국 사회는 나이 많은 게 짱이다.
팀내에서 이지범의 서열이 높은 건 필연이다.
실력 또한 에이스급이니 이견이 갈리지 않는다.
김다균 코치도 해달라는 눈치.
군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보인다.
다른 라인의 선수들도 반발하지 않자 의견은 빠르게 좁혀졌다.
이전에 이야기가 나왔기도 하거니와 분위기.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건 지뢰다.
이윽고 스왑 단계 또한 끝났다.
진정으로 밴픽이 완료됐다는 뜻이다.
과연 애꾸사자와 나무카이는 어느 라인에 갔을지.
역시나 골 때리지 않으면 섭한 팀이었다.
"저거 미드.. 나무카이인가?"
"후우.. 게임 들어가서 스왑할 수 있으니 일단 대비만 해둬."
분명 밴픽 싸움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조합 또한 밀린다거나 그런 구석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변수.
신세상 매직의 미드라이너 올마스터가 또다시 기괴한 픽을 해버렸다.
하다하다 나무카이로 미드를 간다라.
정직하게 그리 생각할 일은 아니다.
'복잡하게 생각해서 좋을 거 없어.'
김다균 코치는 스프링 시즌의 결승전을 떠올렸다.
정작 게임에 들어가서 서로 라인을 바꿀지 모른다.
그러니까 당장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어느 쪽으로 어떻게 흘러가든 선수들의 임기응변.
그리고 자신들이 목적했던 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들에게도 그렇게 일러뒀지만 왜일까.
떠오르는 예감은 밝지 않았다.
.
.
.
* * *
─소환자의 전장에 온 것을 환영해요!
롤챔스 본선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된다.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다.
비록 세간에서 평은 높지 않으나 나는 알고 있다.
'황제라.'
SKY T1 S의 미드라이너 이지범.
현재 시점에서는 저평가를 받고 있다.
딱히 별다른 특색 없이 무난무난하다.
선수의 색이 진하지 않으니 가려져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차후 5시즌부터 주가가 급상승한다.
이 선수, 테이커 이상으로 잘하는 거 아니냐?
실제 대회에서의 성적이, 폼이 상회했다.
솔로랭크에서도 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성향상 팀빨을 탈 뿐 기량은 현재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챔피언이 아직이야.'
어째서 이지범에게 황제란 별명이 붙었는가.
그의 인생 챔피언인 아자르 때문이다.
그 아자르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즉, 그라는 선수가 완성되지 않은 시점이다.
안타깝게도 나에게 맞서기엔 역부족이다.
'성향이 조금 까다롭긴 해.'
안전에 안전을 추구한다.
단순 라인전은 물론 갱킹에도 유비무환.
그러면서 백업 같은 기타 판단력도 뛰어나다.
프로 레벨에서 가장 이상적인 미드라이너.
테이커보다 고평가를 받았던 부분이 바로 그거다.
물론 그 대신에 슈퍼 플레이라던가 인연이 없긴 하다.
'그만큼 안정적이니까.'
맞라인 상대로서는 굉장히 까다롭다.
서로 라인전 반반 가져가면서 한타.
우리팀이 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야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뀨웅!
벽 너머로 인삼을 던진다.
나무카이의 E스킬 인삼 던지기.
여러가지 응용 가치가 높은 스킬이다.
오랫동안 한 자리 남는 탓에 와드 역할도 한다.
터지면 데미지와 함께 1초간 둔화.
이 데미지가 은근히 세서 도움이 된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퍼엉!
인삼이 터진다.
터진 자리에 또 하나 인삼이 깔린다.
연달아 폭발.
두 개만 던져도 작은 유령 세 마리가 깔끔하게 죽는다.
경험치가 올라간 걸 확인하고 미드로 올라간다.
파앙!
파앙!
헤일이 불빠따로 라인을 밀고 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게 늦자 고민했던 것도 잠시.
라인을 밀어 주도권을 잡자고 판단한 모양이다.
확실히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옳다.
만에 하나 적 미드가 몰래 카정을 갔다거나.
또는 탑과 미드 라인이 스왑을 한다거나.
어느 쪽이든 상대의 노림수를 정확히 모른다면 라인을 미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야만 뒤늦게 도착한 상대가 라인 손해를 보게 된다.
혹은 선 2레벨을 찍어서 무언가를 만들어볼 수 있다.
지금 내가 노리려고 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파앙!
파앙!
근거리 미니언을 먹으려는 나를 향해 헤일이 불빠따를 휘두른다.
그 데미지는 쌓일수록 강렬해진다.
헤일의 패시브는 상대의 저항력을 깎는 것.
계속해서 맞아준다면 딜교환 손해가 장난이 아니다.
물론 미니언의 반격이 있다.
상대도 대놓고 때릴 수는 없다.
막타 치는 순간을 노려 한 대씩 툭툭!
그것만으로도 체력이 제법 깎인다.
'이제부터는 못 때리겠지만.'
헤일의 불빠따는 항시 지속이 아니다.
스킬 지속 시간이 꺼지면 단순한 근접 챔피언이 된다.
이제부터는 잠시 맞파밍 모드.
그렇게 오해해준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티링!
원거리 미니언을 두 마리 잡은 순간이다.
작은 유령의 경험치가 더해지자 2레벨.
당연하게도 상대의 2레벨은 아득하다.
반응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휘몰아친다.
푸룽!
딱히 대단한 응용기는 아니다.
꽤 상당수의 챔피언들이 가지고 있는 점멸 콤보.
Q스킬 불가사의한 파동을 점멸로 뿜는다.
헤일의 등 뒤로 넘어가서 말이다.
퍼억!
치지직..!
불가사의한 파동에 의해 헤일은 뒤로 넉백됐다.
깜짝 놀라 점멸로 도망가지만 느리다.
넉백과 함께 1.5초의 둔화.
발화를 걸고 툭툭 두들긴다.
두들겨 맞았던 원한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그래도 어떻게 살 수는 있겠지.
안타깝게도 놓아줄 생각이 없다.
퍼엉!
헤일의 퇴로에 던진 인삼이 폭발한다.
리메이크 이전에는 단순한 딜링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둔화 효과도 달려있다.
따라가서 불가사의한 파동을 울려 마무리한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상대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다.
혹시 정글몹을 빼먹고 온 건가?
그렇다고 보기엔 딱히 체력이 달아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냥 라인을 밀었더니 갑자기 2레벨이 찍혔다.
어떻게 대응을 하려고 했을 때는 뒤로 밀려난 후다.
반항을 해도 죽음이란 미래를 피할 수 없었다.
'모르면 당해야지. 별 수 있나.'
아무튼 선취점을 가져갔다.
프로 레벨에서의 2레벨 솔킬.
선취점을 가져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빠르게 구멍을 막지 못하면 심각해진다.
하아!
레드를 먹고 유령을 잡고 있었을 리심이 부랴부랴 뛰어왔다.
채 마무리하지 못한 작은 유령을 덕지덕지 달고 말이다.
일단 내 체력은 상당히 낮은 상태다.
나를 마무리하면 손해를 메꿀 수 있다는 판단일 거다.
이쿠, 이쿠!
리심의 판단은 빠르면서 정확했다.
음파로 날아와 점멸 땅치기.
레드 평타로 둔화를 중첩시킨다.
상대 정글 백업이 오기 전에 나를 마무리하자.
킬 경험치로 3레벨을 찍은 후 방로로 빠져나가자.
한 마디로 속전속결이다.
그런데 마침 나도 비슷한 걸 생각하고 있었다.
티링!
근거리 미니언이 쓰러지자 3레벨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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