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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심장
게임을 가장 간단하게 터트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솔로랭크, 대회 가리지 않고 간단하다.
혼자 2인분을 해버리는 것.
대회에서는 익숙지 않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더블 킬!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요란스러운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미드 라인에서 터져버린 솔킬.
그 사고를 커버하기 위해 리심이 들이닥쳤다.
판단은 화끈했고 승산도 높아 보였다.
그런데 막타를 치기 직전 이변이 일어났다.
<리심까지 전사! 더블 킬! 게임 터졌어요. 미드 라인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와.. 정말 간발의 차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되네요.>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 명장면이다.
경기장 중앙 모니터를 통해 다시 한 번 하이라이트가 송출된다.
먼젓번과는 사뭇 달라지는 반응.
이번에 터져나오는 건 탄성이 아니라 탄식이다.
로드 오브 로드를 하는 이라면 누구나 안다.
<레벨업 하자마자 일그러진 전진 배우고 평타 한 번 씹었어요. 침착하게 패시브까지 돌리니 한순간에 체력 확 올랐죠?>
<그 급박한 상황에서 미니언 경험치 계산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절대 터져서는 안되는 대형 사고를 목격하고 계십니다.>
아, 이거 진짜 답도 없는데!
한 번은 경험해 봤을 일이다.
라이너가 솔킬 따이고.
정글러가 커버치려다 죽고.
경험한 것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실수가 아니라 치밀한 계산 하에 이루어진 역관광이라는 것이다.
<저희야 보고 있으니 어, 저거 안 빼면 큰일나겠다! 알 수 있지만 헤일 입장에서는 모를 수밖에 없었죠.>
<게임을 하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생각할 거리가 많아요. 특히 미드나 탑 미아 찍히면 전 라인에 위험 핑이 텅! 텅! 텅! 찍히거든요? 헤일이 라인을 밀었던 건 돌이켜 봐도 최선의 판단이었습니다.>
클끼리 해설이 손짓까지 해대며 신나게 설명한다.
현장에서 경기를 뛰어본 만큼 일반인이 알 수 없는 부분까지 꿰고 있다.
프로 선수들은 필살기성 전략도 항상 생각을 해야 한다.
솔로랭크처럼 다음에는 안 당하면 되지.
그 다음이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대비책도 평소에 세워둔다.
로드 오브 로드가 E-스포츠화 된지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른 만큼 당연하다.
라인전 시작 전에 대기하고 있다가 늦인베 가는 거.
혹은 정글을 빼먹는 등 꼼수 부리는 거.
상대 라이너가 안 도착하면 라인을 밀고 보자.
만약 늦게 도착한 상대 라이너가 체력이나 마나가 적다.
아, 정글몹을 빼먹고 왔거나 리쉬를 해주고 왔겠구나.
나무카이의 경우 그런 징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나는 조금 빠졌지만 체력은 풀피였으니까요.>
<멀리서 인삼만 던져서 깔끔하게 작은 유령 빼먹었습니다. 장담하건데 따라하는 사람 나옵니다. 솔로랭크 주의보가 역시나 울리네요.>
<올마스터 선수 경기 한 번 했다 하면 솔로랭크 터지는 건 일상이거든요!>
중계진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사이에도 경기는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다.
모니터를 통해 하이라이트가 이루어지는 시간도 포함해서 말이다.
방금 같은 참사가 생길 때 솔로랭크에서는 게임이 이어질 수 있는 이유.
바로 추가적으로 손해 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대회는, 그리고 이 무서운 선수는 봐줄 리가 만무하다.
레드팀 블루 지역에서 또 한 차례 사달이 생긴다.
잠복하고 있던 뮴뮴 선수의 애꾸사자가 리심을 급습한다.
<점멸도, 방로도 없어서 100% 죽었네요.>
<그래도 이건 의아한데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텐데.. 멘탈이 상했나 봅니다.>
근거 없는 플레이 안 좋아하는 김은준 해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피지컬류 정글러들이 흔히 하는 실수다.
적 정글 동선 생각 안 하고 함부로 움직이는 것.
한 번 탄력 받으면 정상급 정글 부럽지 않다.
반대로 말려버리면 게임 내내 아무것도 못한다.
안타깝게도 호롱 선수가 딱 그 타입이다.
<미드갱 실패한 이상 블루 뺏기는 건 당연한 거였거든요. 여기서 또 죽으면 게임 끝날 때까지 복구 되나요? 안될 것 같은데요?>
<저는 정글러로서 호롱 선수 이해합니다. 혹시 모르니까, 그리고 잔반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한 번 가서 음파라도 던져보려고 한 건데 또 죽었네요.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왔습니다.>
클끼리가 변호를 해주지만 솔직하게 의아하다.
그리고 답도 없다.
정글러 간의 레벨 격차가 3까지 벌어졌다.
미드 라인은 자력으로 풀기 불가능해 보인다.
<3분대에 더블 킬 먹은 나무카이. 수호자의 유리수정 사왔습니다. 싱나드와 비슷한 템트리를 가겠죠?>
<파사딘처럼 AP극딜! 당연히 가능성 희박하고 적당한 딜탱이 예상됩니다. 유지력 싸움에서 헤일이 지인짜 많이 힘들겠네요.>
그에 반해 헤일은 포션 몇 개 더 사온 게 끝이다.
시작부터 들고 있는 수저가 다르다.
안 그래도 날 수밖에 없는 실력 격차.
이번 세트에서 SKY T1 S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글러보인다.
.
.
.
* * *
슈루룩-!
지극히 간단한 콤보다.
나무카이가 일그러진 전진으로 들어온다.
뒤로 돌아가 불가사의한 파동으로 밀어낸다.
이 두 가지 동작만으로 헤일은 도주로를 잃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신세상 올마스터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벌써 세 번째 죽음이다.
미치고 팔딱 뛸 상황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사리는 것조차 불가능.
나무카이의 스킬은 피하고 나발이고가 없다.
"아.. 궁있는데 생 다이브를 쳐버리네.."
어처구니가 없는 나머지 이지범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절망감이 배어있는 목소리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무시를 했다기 보단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다.
같은 시각에 탑라인에선 다이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유일하게 믿을 것은 과학 뿐이다.
라인 스왑을 걸었기 때문에 SKY T1 S의 봇듀오는 탑에 있다.
정글러가 빙 돌아가 3인 다이브를 쳤다.
제법 버티기는 했으나 역부족.
야흐오는 다이브에 무척 약한 챔피언이다.
"따기는 했는데 진짜 위험했다. 점멸로 회오리 잘 피했어."
"뒷골이 싸~하더라고. 피해야겠다 싶었지."
킬을 땄음에도 성장 차이가 난다.
게임 시간 7분대.
아직 4레벨에 불과한 리심이다.
초반에 심각하게 말려버린 여파다.
테러스티나도, 브라운도 초반에는 딜이 잘 나오지 않는다.
세 명이서 점사를 했음에도 불구 정말 힘겹게 잡아냈다.
SKY T1 S가 만들어낸 첫 번째 킬.
하지만 아직이다.
기뻐하기엔 한참은 이르다.
싸~했던 직감은 어떤 의미에선 틀리지 않았다.
─적팀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적팀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탑라인에 다이브 사인이 떨어진 시점에서 랄라는 뒤로 쭉 뺐다.
불행 중 다행이지만 대신 빅 웨이브를 잃었다.
게다가 아래쪽에서 두 개의 오브젝트가 한 번에 나갔다.
탑 1차를 미는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안 찬다.
그만큼 격차가 너무할 정도로 난다.
미드 1차 포탑도 슬슬 무너지기 직전이다.
─적팀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용을 먹은 적이 몰려가서 미드 1차를 마무리했다.
이미 절반이 훌쩍 넘게 무너져있었다.
미드가 벌써 세 번이나 죽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도 쟤네 조합 애매한데 후반 가면 괜찮지 않을까?"
"미드 1차 깨진 게 오히려 전화위복일 수도 있어. 라인전 끝났으니 잘리는 것만 조심해보자."
불리한 상황일수록 집중해야 한다.
또한 사고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치우쳐지면 안된다.
안된다고 단정지어서야 될 것도 안되는 법.
근데 사실 안되는 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은 별로 없다.
─SKY T1 EASYBEOM님이 적이 사라졌다고 알림!
대체 몇 번째인지.
차마 입으로 말하기가 민망하다.
이지범이 미아핑을 찍자 팀원들이 알아서 수긍한다.
아, 또 나무카이가 사라졌구나.
어쩔 수 없이 손해가 생기고 만다.
아군 정글은 이미 적들에게 장악 당했다.
정말 안타깝게도 내주는 것만이 최선이다.
현재 헤일은 기본적인 역할 수행을 할 수가 없다.
괜히 적 위치 파악한다고 앞으로 나가거나.
맞로밍한다고 따라갔다가는 잘리기 딱 좋다.
미아핑이 찍힌 이상 각 라인이 알아서 잘 사리는 수밖에.
사리고, 버텨서 후반을 보는 것만이 방법이다.
포탑을 끼고 농성하며 싸워주지만 않으면 된다.
SKY T1 S의 조합은 버티는데 최적화돼 있다.
─SKY T1 HORONG이 나무카이를 지목!
나무카이가 봇 2차 포탑 앞에 당도했다.
블루 지역은 적들의 손에 넘어간지 오래다.
와드에 비쳤을 때는 근처까지 다가온 후였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1차도 아니고 2차 포탑이다.
게다가 랄라가 텔을 갖고있다.
"야흐오 텔없지? 탑 밀고 있네. 만약에 쟤네 들어오면 역관광 노려보자."
"오케이! 지범형, 교전 일어나면 늦더라도 백업 와줘야 돼?"
"..아아."
4대5의 한타, 그것도 포탑을 끼고 있는 상황이다.
만에 하나 상대가 무리를 해준다면?
이보다 좋은 역전의 찬스가 없다.
부디 제발 들어 와주길.
그 소망은 일단 이루어졌다.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말이다.
구룽!
정말로 작정한 모양이다.
나무카이가 궁극기를 발동했다.
얼마 전 이루어졌던 리메이크.
하지만 기본적인 스킬 구조가 이전과 비슷하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그게 그거.
적어도 헷갈릴 일은 없다.
SKY T1 S의 선수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슈루룩-!
나무카이를 필두로 상대가 진입해온다.
그 타이밍에 발맞춰 랄라가 텔을 탄다.
야흐오가 끊지 못하도록 널찍이 떨어져서 말이다.
상대는 이미 안쪽으로 파고든 상황.
걸려버린 한타는 양 팀 모두 피할 수 없다.
명백히 이득을 볼 수밖에 없는 구도다.
<내 방패만 믿으라고!>
팀의 서포터 폭스의 브라운이 믿음직하게 소리친다.
브라운의 방패는 전방의 모든 공격을 대신 맞아준다.
서포터 주제에 탑탱커 못지 않게 단단하다.
콰과광!
궁극기인 얼음 계곡이 내려쳐졌다.
땅에 균열이 생기며 스친 상대는 에어본된다.
데미지는 적지만 둔화 장판 효과가 적의 추가 진입을 막는다.
상대가 다이브를 친 건 악수 중의 악수.
헤일이 오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낼 생각을 한 듯하지만 어림없다.
브라운이 있는 이상, 랄라가 텔로 오는 이상 무조건 버틴다.
SKY T1 S가 그려낸 구도가 일그러진 건 한순간이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사지로 기어 들어온 나무카이.
발화를 걸고 점사하면 자랑하는 회복도 무용지물이다.
그래야만 했을 텐데 이상하다.
탱킹은 그렇다치고 데미지가 정상이 아니다.
"죽었어?"
"아니 이게 무슨 한 방에 죽네."
물려도 설마 죽기야 하겠어.
브라운이 막아주는 이상 그럴 일은 없겠지.
테러스티나는 일부러 나무카이에게 각을 줬다.
그리고 뒷점프를 해서 타워 안으로 유도했다.
일그러진 전진의 우월한 판정.
이를 역이용하기 위함이었다.
만에 하나 적들이 몰려와도 랄라가 있다.
그런데 아예 터져버리니 커버가 불가능하다.
"왜 이렇게 세나 했는데 억겁의 스태프가 벌써 나왔구나.."
아니, 나왔다 쳐도 말이 안된다.
탱커 챔피언이 뿜어낼 수 있는 순간 딜이 아니다.
적어도 자신들이 아는 나무카이는 이런 챔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
이전까지 사용돼오던 나무카이는 당연히 정글.
정글러와 라이너의 성장 격차는 명확하다.
스킬 구성이 비슷함에도 뿜어내는 데미지의 격이 다르다.
원딜러를 글자 그대로 터트릴 정도로 말이다.
후회를 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걸려버린 한타는 돌이킬 수 없다.
크허어엉!
궁극기를 켠 애꾸사자가 한 박자 늦게 진입한다.
나무카이와 교대해 포탑의 딜을 받아준다.
강화된 목줄이 텔을 타고 온 랄라를 묶어버렸다.
아무리 리메이크가 되었다고는 하나 애꾸사자.
울부짖으니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이 몹시 상승한다.
도저히 금세 떨쳐낼 수 있는 맹수가 아니다.
─아군이 적에게 당했습니다!
더블 킬!
팀이 CS를 몰아준 원딜러가 죽고 시작했다.
원딜이 없는 이상 랄라 혼자 뭘 할 수 있겠는가.
든든했던 브라운은 방패가 되어주지 못한다.
믿고 있던 타워는 오히려 가두리 양식장이 되었다.
물밀듯 쳐들어오는 상대를 잡아낼 딜이 없다.
쫓기고 쫓겨 제대로 CS도 못 먹은 랄라.
초반부터 2킬을 내주며 망해버린 리심.
둘이 두들겨봤자 나무카이는 기스도 안 난다.
애처롭게도 가장 강력한 딜러가 타워다.
정상적인 한타가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몇 걸음은 늦게 헤일이 당도하지만 대세를 역전시킬 수는 없다.
그래도 어쩌면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슈루룩-!
키잉-!
나무카이가 일그러진 전진으로 헤일을 속박한다.
그대로 밀어버리자 쓰렉귀가 잽싸게 낚아챈다.
확정 속박부터 이어지는 연계 CC기는 사람 한 명 바보 만들기에 충분했다.
<불멸의 존재다!>
궁극기를 쓰고 반항하는 헤일은 생명 연장의 꿈이다.
망할대로 망해 오히려 나무카이의 회복력이 데미지를 웃돈다.
무적 시간이 끝나자마자 사이좋게 마무리 당하고 만다.
─트리플 킬!
신세상 올마스터님은 전장의 화신입니다!
역전의 찬스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아니, 시작부터 그려져 있었을지 모른다.
예정된 밑그림은 빠른 속도로 칠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