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785화 (78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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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최강

이제 와서 말하기도 새삼스럽다.

지난 조별 리그 1주차의 개막전.

사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선 엄청난 화제였다.

KTX 롤러코스터 A 대 SKY T1 K의 경기.

조별 리그라고 하나 상대가 상대다.

SKY T1 K는 3회의 우승을 거머쥔 초강팀이었다.

'현재는 아니지만.'

롤챔스에서만 두 번 정상에 올라섰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롤드컵 우승팀이다.

인지도가 어떠했는지 말해서야 입만 아프다.

하지만 현재 세간에서 평하는 SKY T1 K는 다르다.

그럭저럭 저력을 가지고 있는 상위권의 강팀.

평가가 변한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준우승에 그쳤을 뿐더러 롤드컵도 못 나갔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여기서 야기되는 하나의 필연.

개막전의 결과는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무적 함대가 완파됐다느니 난리도 아니었는데.'

원래의 역사처럼 호들갑은 없었다.

KTX 롤러코스터 A가 지난 시즌보다 강해졌구나.

딱 그 이상도 이하의 반응도 아니게 됐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결과가 뒤바뀐 것은 아니다.

"너, 은근히 SKY T1 K 좋아하더라?"

옆 좌석에 앉아있는 예은이 물어온다.

너무 뜬금없어 순간 벙쪘다.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절반쯤은 사실이지만 명백한 오해다.

"휴일이라 온 거잖아?"

"알긴 아는데 그냥.. 그런 거 같다고."

주위가 떠들썩함에도 예은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린다.

상암 E-스포츠 경기장의 안.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오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예은이 의문을 표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조금 티가 났나?'

본래 맞붙기로 결정된 상대가 아니면 직관까지는 안 온다.

하지만 휴일이고 시간도 넉넉했다.

데이트 겸해서 예은과는 자주 온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했는데 무언가 이상했던 걸까.

"T1 K 경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잖아?"

"과장하긴."

"뭐 과장? 내기 뜨까?!"

아, 안 사요. 안 사.

요즘 자꾸 이러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개기다 한 대 맞으면 보험 처리도 안되니까!

'틀린 말도 아니고.'

사실 예은의 말은 틀린 거 하나 없다.

의외의 부분에서 가끔 허를 찌른다.

내가 SKY T1 K를 신경 쓰는 게 맞다.

아니,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무리다.

"너도 옛날에 CLC에 환장했었지?"

"뭔 환장. 그냥 쪼오금~ 챙겨본 거지."

"그거랑 비슷한 거야."

알아들을 만한 비유가 되었을까.

표정은 뚱하지만 납득은 한 모양이다.

조금 치사하긴 해도 달리 말할 방도가 없었다.

"이렇게 화창한 여름에 게임 보러 가면 좋냐?"

"일단은 일이잖냐."

"피~ 게임밖에 모르는 바보."

프로게이머니 당연히 게임밖에 모르지.

대체 뭐가 그리 불만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입술을 대빨 나오지 않은 것 보면 아주 삐진 건 아닌 듯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오늘 경기는 꼭 봐야 돼.'

딱 하루 쉬고 다시 일을 하는 셈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어제 기운이 없었다 보니 걱정이 되나 보다.

어디까지나 보고, 확인하는 수준이라 괜찮다.

특별하게 머리를 쓰거나 하지는 않아도 된다.

'현장까지 온 건 좀 오바였나.'

뒤늦게 그런 생각도 들지만 가능하다면 역시 현장이 좋다.

느껴지는 열기가, 감정의 공유가, TV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중요도가 낮은 경기면 모를까 오늘은 날이 제대로 잡혔다.

삼선 블루, 그리고 SKY T1 K.

둘이 맞붙는 것은 정말로 상정 외다.

어느 쪽이 이기게 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앞으로는 이런 것도 늘 생각을 해야 돼.'

예상 외의 사태에 일일이 당황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역사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이제부터는 더욱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아예 없었던 강팀이 태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에이, 설마."

"뭐가?"

"설마 이걸 혼자 다 먹겠냐고."

"너 하나도 안 주고 내가 다 무글 건데~."

내가 알고 있던 미래는 진작에 뛰어넘었다.

E-스포츠의 발전도만 보자면 그러하다.

경기장에 찾아오는 평균 관중의 숫자.

단위 수부터 달라져 비교를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에 따라 주변 상권도 당연히 발전한다.

경기장 내부의 군것질 거리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게임 보는 거 싫어하지 않는 예은이다.

먹을 것도 풍족하니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삼선 블루! SKY T1 K! 두 팀 모두 작정을 하고 나왔을 거에요. 들어가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라요! 첫 세트! 경기~~~~! 시작합니다~!!>

전범준 캐스터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막을 올린다.

과연 승리의 여신은 어느 쪽에 미소를 지을지.

결과를 보기 전까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

.

.

* * *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섬머 시즌.

6월 말 개막식으로부터 벌써 날짜가 훌쩍 지났다.

조별 리그에서 3주, 8강에서 또 2주가 흘렀다.

즉, 7월이 넘어 8월이 다가왔다.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누구나가 방학인 시즌이다.

그리고 로드 오브 로드의 주된 팬층은 학생이다.

준결승전의 흥행이 예고되는 건 당연한 지사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다.

2차로 개방하는 상층부 좌석이 매진됐음은 물론.

꾸역꾸역 입석까지 물밀듯이 밀고 들어온다.

<자칫 무리일 수 있는 확장 공사를 감행한 이유가 그래서였거든요? 나날이 달라지는 E-스포츠의 성장세, 가만히 있다가는 뒤쳐지겠다. 이렇게 미리 대비를 해도 참 어쩔 수가 없네요.>

복잡해진 교통 정리 탓에 진땀을 빼고 있다.

오프게임넷을 대표해서 양해를 구하는 이는 언제나 전범준 캐스터다.

하지만 정말로 곤란하다는 표정은 아니다.

장사 잘되는 가게의 사장님.

손님들이 줄줄이 섰다고 곤란해 하는 일 본 적이 있는가?

평균 손님 수에 비해 너무 대비를 안 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잘못일 수 있지만 해놨다.

스프링 시즌에 경기장을 옮기면서까지 열심히 확장 공사를 마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다.

감당이 안될 정도로 밀고 들어오는데 어쩌란 말인가.

금일 해설을 맡은 강빈이 경기장을 둘러보며 한 소리 한다.

<제가 한창 몽상가로 이름을 떨칠 때 팬들의 환호를 듣는 게 일상이었지만 이만한 규모는 아니었어요. 로드 오브 로드가 E-스포츠로서 갤럭시 크래프트의 열기를 넘어서지 않았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 또 강소리 하는구나.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말 현역 시절의 강빈 해설은 엄청났다.

임요한, 그리고 콩진호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정도니 설명이 필요없다.

그런 강빈의 입에서 대단하다, 넘어섰다.

포장이 절로 나올 정도로 현장의 반응이 뜨겁다.

오늘 경기를 치르는 팀이 특별하다는 것도 이유가 된다.

두 명의 해설진 중 나머지 일각, 김은준 해설도 입을 열었다.

<그만큼 오늘 경기 치르는 양 팀의 기세가 물이 올랐어요. 일이 터져도 그럴 만하구나 자연스러운 흐름일 겁니다.>

<사건이 터질 때 현장에서 함께 하면 감회가 색다르거든요? 절대로 후회할 수 없는 매치업 아니겠습니까?!>

준결승전 A조의 경기는 진작부터 주목도가 높았다.

이번 섬머 시즌 두각을 드러낸 KTX 롤러코스터 A.

명실상부 한국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신세상 매직.

본선 대진표를 따라 올라갔을 때 만날 수밖에 없다.

양 팀 모두 최소 8강에서 떨어질 만한 팀들은 아니다.

때문에 세간에서는 미리 보는 결승전이다.

혹은 결승전을 두 번 치르겠다.

우스갯소리가 있었던 것도 당연했다.

<지난 주 일요일 이전에는 말이죠.>

<확실히 대단했어요.이런 말씀드리기가 참 뭣한데 저는 그때 새로운 전설의 탄생을 느꼈습니다.>

김은준 해설의 성향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오늘 어떤 팀이 어떤 픽을 할지.

어떻게 하면 강팀이 약팀을 떡바를 수 있을지.

평소 경기에서 늘 하는 말이 아니던가.

그런 김은준 해설이 로망틱한 설명을 차용했다.

그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8강 D조의 경기는 그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임팩트가 대단했다.

라인전도, 운영도 어느 하나 빠지지를 않았다.

<과거 얼밤의 트레이드 마크가 탈수기 운영이었어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클끼리 해설을 중심으로 다섯 팀원들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여서 게임을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당겼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완벽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를 보자면 허점 투성이다.

왜 그때는 이런 거 못했지.

여기서 뭐뭐 하면 더 이득 볼 수 있을 텐데.

당연하게도 운영이 덜 발달한 시점에서는 모를 수밖에 없다.

특히 시즌2 당시에는 스노우볼의 개념이 두루뭉실했다.

라인전 강력하게 가서 스노우볼 굴리는 거.

한타 안 해주고 타워 빙빙 깎아 게임 굳히는 거.

혹은 승기를 바탕으로 유리한 한타만 골라하는 거.

못했기 때문에 탈수기 운영은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라인전이 약한 얼밤이 정상에 설 수 있었다.

완벽했던 얼밤의 운영은 사실 그렇지 않았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김은준 해설이 과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삼선 블루가 보여준 모습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라인전 강한 얼밤입니다. 라인전도 센데 운영도 잘해. 빈틈없이 완벽한 게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경기 중에도 말씀드렸지만 SKY T1 K를 꺾은 것, 결코 이변이 아니에요.>

한 마디로 삼선 블루는 딱 김은준 해설의 스타일이다.

라인전 스무스하게 세면서 운영 단계에서도 답답함이 하나 없다.

이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팀은 본 적이 없다.

이쯤 되면 하나 의문이 생긴다.

관중들과 시청자들을 대표해 전범준 캐스터가 마이크를 잡았다.

<라인전 세고, 운영 잘하기로 오늘 경기를 치르는 양 팀 빼놓을 수 없지 않습니까?>

<물론 삼선 블루가 최고의 팀이라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교과서적인 기준으로 프로팀들의 장단점을 체크할 때 가장 점수가 높다, 이상적이다. 당연하게도 인생은 성적 순이 아니죠?>

김은준 해설의 스타일이 아님에도, 사사건건 걸고 넘어짐에도 잘하는 팀들이 분명 있다.

아무래도 그는 이론에 무척 밝다.

반대로 게임을 비이론적, 비상식적으로 푸는 팀들도 존재한다.

오늘 경기를 치르는 두 팀이 정확히 이 케이스다.

<라인전, 한타, 운영 세 가지 파라미터가 있다면 라인전과 한타에 올인을 한 팀입니다. 어설픈 운영은 씹어 먹어요. KTX 롤러코스터 A의 선수들 오늘도 자신만만하게 단상 위로 올라옵니다.>

삼선 블루와는 정반대로 김은준 해설이 마음에 안 들어하는 팀이다.

하지만 팬들로서는 좋아할 수밖에 없는 팀이다.

게임 풀이 정말이지 화끈하다.

잇따라 반대편에서 등장하는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강팀들은 대부분 파라미터가 굳어져 있습니다. 메타에 맞는 팀 색깔을 확보했기 때문에 강팀일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 팀은 몰라요. 저는 아직도 이 팀이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지 예상이 안 갑니다. 미지의 괴물, 신세상 매직입니다!>

강력한 팀일수록, 성적이 잘 나오는 팀일수록 안정감이 필수 조건이다.

그런데 이 두 팀은 다르다.

너무나도 파격적이다.

어디로 튈지 모를 탱탱볼 같은 두 팀이 만나고야 말았다.

김은준 해설이 양 팀이 가진 독특한 색깔에 대해 소개를 마쳤다.

그 사이에 전범준 캐스터가 무대 중앙으로 올라섰다.

마이크를 잡고 강렬하게 소리친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습니까! 절대 져서는 안돼요. 자존심 싸움 이전에 걸린 판돈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다른 건 몰라도 롤드컵,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섬머 시즌의 우승은 한 가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전 시즌 다 집어 넣어두고 현재 가장 강력한 팀.

바로 롤드컵에서 한국을 대표하게 될 팀을 뽑는다.

매 시즌마다 강팀이 바뀌는 로드 오브 로드이기 때문이다.

시기 상으로 가까운 섬머 시즌의 우승팀이 그 나라를 대표한다.

실제로 2012 롤챔스 섬머 우승팀이었던 얼밤이 롤드컵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안타깝게도 작년에는 우승팀이 롤드컵에 진출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벽을 못 넘는 바람에 말썽이 생겼다.

그렇기에 더욱 우승의 자리가 탐이 난다.

<경기 시작에 앞서 양 팀 모두 할 말이 분명 있을 겁니다. 먼저 KTX 롤러코스터 A의 주장 까메오 선수 마이크 받으시죠!>

그가 두각을 드러낸 건 비단 이번 시즌의 일만이 아니다.

사전 인터뷰 하나는 늘 핵폭탄 같다는 소리를 듣던 까메오다.

아니, 예전에 터트린 걸 따지고 들 것도 없다.

SKY T1 K를 상대로 했던 개막전 당시.

테이커를 거세게 도발하고 결국 승리를 움켜쥐었다.

그 핵폭탄이 다시 한 번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얼굴부터 잘 깝치게 생긴 까메오 선수의 손에 마이크가 쥐어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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