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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최강
피로라는 명확한 한계를 가진 챔피언이다.
라인전이 끝나고 한타에 가면 무력해진다.
자랑하는 광역딜.
의외로 대박이 터지는 경우가 적다.
낮은 구간에서는 상관없지만 높은 구간.
적절히 산개하면 궁극기 데미지를 분산시킬 수 있다.
티아매트가 펑펑! 터지는 입롤 같은 한타를 기대하기 힘들다.
실시간으로 오더가 오가는 대회 무대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평타 딜이 나름 강력할 텐데?
상위 티어에서 마검사가 괜히 안 쓰이겠는가.
그리고 피로라가 괜히 여자 마검사라 불리겠는가.
CC기 이후 점사에 아무것도 못하고 녹아내린다.
탈력이라도 걸리면 팔을 내리지 못해 벌벌 떤다.
KTX 롤러코스터 A의 서포터 하차니.
그가 라인전의 손해를 감수하고 틸력을 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거 우리가 딱 한 번만 비빌 수 있으면 버텨볼 만해."
이길 수 있다고 말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다.
하지만 버틸 수 있다면 희망도 생긴다.
시간을 끌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팀의 탑라이너 선데이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나 사이드에서 피로라 마크하는 거 살짝 부담스러운데."
"많이 아니고 살짝?"
"설마 죽기야 하겠어. 나 잘 컸잖아."
미드가 무너진 KTX 롤러코스터 A의 유일한 희망이다.
씨지맥의 티바나를 상대하기 위해 뽑은 잭트.
평타 기반 챔피언들을 완벽하게 카운터친다.
이런 상황이 될 거라고 노리고 뽑은 픽은 아니지만 어쨌든 다행이다.
잘 큰 피로라의 스플릿을 막을 방도가 있다.
즉, 어떻게든 시간을 끌 수가 있다.
물론 안심을 하기엔 한참은 이르다.
아무리 상성이라 한들 성장 격차.
그리고 정식 한타가 걸리면 쪽도 못 쓴다.
한타에서 약한 건 잭트도 마찬가지다.
스플릿 구도를 계속해서 끌고 나가야 한다.
"다행이네. 쟤네도 딱히 무리할 생각 없어 보인다."
"사이드 정리하면서 바론 노리는 거 아닐까?"
"치면 주자. 괜히 나갔다가 광우스타한테 이니시 걸리면 답 없어져."
피로라가 너무 괴물같이 성장했다.
지금 시점에서 맞상대하는 건 자살 행위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성장 기대치.
익히 알려진 대로 피로라는 시간이 갈수록 유통기한이 온다.
반대로 잭트와 파사딘은 코어템이 하나둘 갖춰지면 무서워진다.
운 좋게 잘 풀리면 이거 승산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KTX 롤러코스터 A가 가진 장점이기도 하다.
"형이 스틸 한 번 노려본다."
"뭐? 1+1 이벤트 한다고?"
"야, 형이야. 형 클라쓰 몰라?"
신세상 매직에 올마스터가 있다면 KTX 롤러코스터 A에는 이 선수가 있다.
팀의 슈퍼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까메오.
그는 현 시점 한국 롤챔스의 모든 정글러들 중 가장 캐리력이 높다고 평받는다.
그리고 하나 잘 알려지지 않은 장점이 있다.
팀원들의 멘탈을 캐어 해준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아니다.
현재 진행되는 게임처럼 초중반에 완전히 터지면 프로고 나발이고 없다.
대부분의 프로들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멘탈 관리가 안된다.
경력이 긴 선수들은 덜하지만 KTX 롤러코스터는 해당되지 않는다.
선데이를 제외하면 전부 데뷔한지 1년 안팎이다.
까메오가 있기에 현재의 KTX 롤러코스터 A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한 번 대박을 터트려준다면?
땅에 떨어졌던 사기가 확 올라갈 것은 자명한 이치다.
역시 유리한 신세상 매직은 바론을 트라이했다.
서걱!
서걱!
아무리 유리해도 바론 트라이는 신중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상대에게 기회만 줄 뿐이다.
유리할 때 바론 가지 말라는 명언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
초반 스노우볼을 바탕으로 시야를 잡아 놨다.
게임의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잡고 있으니 당연하다.
결정적으로 조합이 오브젝트를 잡는데 특화돼 있다.
"쟤네 바론 너무 잘 잡는다. 한타는.. 포기해야겠네."
팀의 원딜러 애로우즈가 한탄스럽게 중얼거린다.
파란 장신구를 통해 안개를 들추고 바론을 엿보았지만 거기엔 오직 절망 뿐이었다.
피로라도, 리심도 티바나도 바론 무지하게 잘 잡는다.
데미지도 데미지지만 탱킹력.
체력 관리가 준수해서 걸어볼 엄두가 안 난다.
팀의 위치를 봤을 때 합류하기 전에 무조건 먹힌다.
과연 희망의 등불이 될 수 있을지.
까메오의 이블퀸이 은신 상태로 진입한다.
순식간에 점멸로 바론벽을 뛰어 넘는다.
크롸라라라-!
소환자의 전장에 괴수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리고 잠시 후 어쩔 수 없는 최후를 맞이한다.
"이걸 마진.. 아니, 까메오가?"
"찬양해라. 형이다."
"와 미친! 이거 이기면 진짜로 일주일동안 너 형이라 부른다."
점멸로 들어간 이상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잭팟을 터트리냐, 마냐.
까메오가 어째서 근래에 가장 핫한 관심을 받고 있는 정글러인지.
물이 제대로 올랐다며 팬들도, 중계진도 격찬을 아끼지 않는지.
단 한 방으로 여실히 보여주었다.
.
.
.
* * *
특이한 픽을 꺼낼 때는 항상 상정을 해둔다.
게임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챔피언들 저마다 이상적인 플레이 방식이 있다.
피로라의 경우 스노우볼을 빠르게 굴려야 한다.
게임이 길게 가면 좋을 것이 없다.
조냐의 물시계, 수호 악마.
생존템이 갖춰지는 순간 존재감이 급하락한다.
금은 머리 장식띠 하나로 궁이 풀리는 자드보다야 낫지만 다른 단점들이 부각된다.
생존기가 없다는 점.
CC기에 약하다는 점.
한타는 물론 스플릿 안정감도 떨어진다.
대신 스노우볼을 굴리는데 특화돼 있다.
다이브를 불사하는 솔킬 능력.
그리고 오브젝트를 정말 잘 잡는다.
방금 바론도 나와 리심이 몸을 댔기 때문에 무난하게 잡았다.
"아, 아깝다. 근데 원래 이런 게 운빨이라 어쩔 수 없어."
"그치? 원래 강타 싸움은 반반이잖아. 하, 하.."
"…."
분위기가 살짝 많이 싸늘하다.
예은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상황이다.
자기 때문에 게임 지는 것.
아무래도 여성 선수라 화제 거리가 되기 쉽다.
특히 정글러의 강타 싸움은 상당히 민감하다.
정글러가 바론 뺏겨서 지기라도 하면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들끓는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도 욕 먹기 마련이다.
아직 거기까지는 안 갔지만 혹시 모른다.
예은이 워낙 이런 거에 민감해서 마무리를 잘 지어야 한다.
'열 번 잘하다 한 번 못해서 욕 먹으면 억울하잖아.'
군대에서 정말 오지게 느껴본 억울함이다.
이 감정을 굳이 공유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오늘 해설은 클끼리가 아니다.
정글러가 오브젝트 뺏기면 여지없이 외쳐주는 5대5 이론!
선수 시절 스틸을 많이 당한 클끼리의 애환이 사무치는 부분이다.
하지만 딱히 변호까지 안 해줘도 괜찮다.
경기의 상황은 고작 바론 하나로 어떻게 되진 않는다.
킬 스코어는 8대2 압도적으로 바르는 와중이다.
타워를 포함한 오브젝트도 일방적으로 약탈했다.
구체적인 설명 안 붙여도 글로벌 골드의 격차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래도 흐름이 조금 끊기긴 했어.'
원래라면 스플릿을 할 작정이었다.
1대1 상황에서 다이브 치기에 최적화돼있다.
한 번 흥해버리면 막을 수 없는 폭주 기관차다.
잭트라서 다이브가 힘들 것 같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평타를 무시하는 잭트의 반격.
피로라도 똑같이 궁극기로 받아칠 수 있다.
이미 최후의 숨결까지 갖춰졌기 때문에 어지간한 방어는 뚫어버린다.
'바론 버프 때문에 살짝 애매해.'
바론 버프의 효과는 공격력과 주문력, 그리고 체젠의 증가다.
하이브리드인 잭트를 강력하게 만들어준다.
아이템도 분명 방템 위주로만 사올 것이다.
강제 다이브를 치기에는 상황이 애매해졌다.
찰칵!
그렇기에 선택하는 아이템이다.
피로라는 템트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완전 스플릿형.
다른 하나는 한타 올인.
지금의 상황에서 필요한 건 후자다.
'어차피 교전이 일어나려면 멀었으니까.'
상대는 바론 버프를 억제책으로 시간을 끌고 싶을 것이다.
압박을 한다고 해도 한타라는 결과를 도출하긴 어렵다.
무리하게 들어가다간 바론 버프 때문에 어찌될지 모른다.
그러니까 나도 파밍을 한다.
구입한 아이템은 파밍에 특화된 욕망의 칼.
내가 3코어로 구입할 아이템의 하위템이다.
.
.
.
* * *
미드가 완전히 터지고 봇에서 조그맣게 한 번 더 터졌다.
승패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가지 사고가 터져버렸다.
전범준 캐스터가 집에서 푹 쉬고 있을 모 해설의 속마음을 대변해준다.
<이 자리에 만약 클끼리 해설이 있었으면 강타 싸움은 5대5! 분명히 외쳤을 거에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 안 했는데 듣다 보니 점점 설득 당해버리더라고요. 하지만 경기의 승패에 영향을 주는 수준의 미스는 아닙니다. 신세상 매직, 여전히 유리하고 KTX 롤러코스터 A 벼랑 끝자락까지 몰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바론 백작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스틸을 당하면 게임이 터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고작 그 한 번으로 뒤집기엔 워낙 압도적이었다.
특히 파사딘의 인생이 거의 망한 수준이다.
펜타킬이라도 먹지 않는 한 게임 끝날 때까지 복구가 안된다.
그러니까 KTX 롤러코스터 A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지금이야 바론 버프 때문에 버티지만 곧 끝나거든요? 잭트에게 CS 몰아줘서 힌두인의 철갑옷 뽑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피로라를 1대1로 마크할 수 있어요.>
길게 설명할 필요없이 한 마디로 요약이 된다.
KTX 롤러코스터 A가 원하는 바, 김은준 해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풀템전이다.
그것말고는 승산을 찾아볼 수 없다.
어찌 보면 이미 졌다고 돌려 말하는 듯도 싶지만 아니다.
<제가 앞서 두어번 크게 던져줘야 한다, 말씀 드렸는데 이미 한 번 나왔어요. 쉴 새 없이 몰아치던 신세상 매직이 한 발 물러서야 했습니다. 만에 하나 두 번째 나온다면 게임 정말 모릅니다.>
그 한 번이 나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승산이 있을 거라 여기지 않았다.
모두가 고개를 저은 상황에서 터져버린 슈퍼 플레이.
까메오 선수가 실낱 같던 불씨를 기적적으로 살려냈다.
한 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나 또 한 번이 터지면 모른다.
그리고 이 선수라면 기대해 볼만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 스프링 시즌에 귀신 들린 선수가 다대기였다면 이번 섬머 시즌은 바로 까메오다.
팬들 사이에서 올마스터의 캐리를 막을 유일한 대적자.
그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 정도로 현재 폼이 장난 아니게 올랐다.
이 선수라면 오늘 일내도 이상하지 않다.
<드디어 파사딘 억겁의 스태프 나왔습니다. 억만년의 고통 끝에 드디어 해방됐어요. 여기서 조냐의 물시계까지 나오면 꿈에 그리던 1인분 가능합니다.>
<하지만 올마스터 선수는 이제 집 가면 3코어 나오죠? 저 욕망의 칼을 스토커의 단검으로 업그레이드 하면 정말 무시무시하게 강력해집니다!>
아니, 무슨 스토커의 단검이야.
피로라는 당연히 유령의 영혼검이지.
방어구 관통력을 극도로 올리는 게 보통이다.
혹은 피흡을 강화시켜 흡혈귀를 만들어버린다.
이미 욕망의 칼을 올렸기 때문에 당연히 방관 템트리.
강빈 해설이 또 참지 못하고 강소리를 해버렸구나.
피로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헷갈릴 수가 없는 내용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은준 해설이 실소를 흘리며 강빈 해설의 말을 정정했다.
-역시 강빈 죽지 않았네. 오늘도 강소리 잘 듣고 갑니다 총총!
-그래도 피로라는 모를 수 있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ㅇㅈㅇㅈ 근데 오늘부턴 아닐 듯?
-미드 피로라 충들이 미쳐 날뜁니다!
잉벤을 포함한 커뮤니티, 중계 플랫폼들의 채팅창에서는 시시각각 반응들이 올라온다.
지금 경기로 인해 일어날 미래 또한 예측이 되고 있다.
어디 하루이틀 일이어야지.
하지만 이 한 가지 만큼은 알래야 알 수가 없었다.
<어? 이걸 스토커의 단검을 사나요..?>
<제가 스토커의 단검 갈 것 같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냥 골드가 약간 부족했나 봅니다. 유령의 영혼검으로 방관 세팅을 극대화하는 게 당연하거든요.>
따지는 듯한 강빈 해설의 물음에 김은준 해설이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그도 그럴게 유령의 영혼검을 올리는 게 당연하다.
돈이 부족했거나, 어차피 이긴 경기니 재미삼아 올린 거겠지.
올마스터는 그 당연하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선수다.
기존의 상식이 바뀌기까지 정확히 1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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