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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최강
경기의 주요 관람 포인트는 두 가지다.
여느 때와 달리 미드에 초점이 있지는 않다.
브실골플 필밴의 대명사 알칼리.
하위 티어에서나 모습을 보이는 학살자가 전장을 들쑤시고 있다.
타항!
바람처럼 쏘아진다.
쏘아진 대상은 한 그루의 나무.
나무카이의 체력이 뭉텅 깎여나간다.
붙자마자 반격을 함에도 시원치가 않다.
<대화 안 통합니다. 유지력 싸움에서 상대가 안됩니다. 나무카이 무조건 빼야 돼요!>
언제나 그러하듯 강빈의 해설은 의아하다.
유지력 싸움에서 상대가 안된다니?
세계수라는 이명이 붙은 나무카이가 아닌가?
알칼리의 코어템 건블레이드.
흡혈 능력만 두고 봤을 때 로드 오브 로드 최고의 아이템이다.
능력치가 애매해 잘 쓰이지 않지만 알칼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심지어 이미 3코어가 갖춰져버린 시점이다.
이 정도 큰 알칼리보다 회복 능력 좋은 챔피언은 없다.
그래도 나무카이는 단단해서 죽을 일까진 없을 텐데?
적어도 현재 진행되는 게임에선 강빈 해설의 말이 맞다.
<장작이에요, 장작. 패면 패는 대로 체력바가 뚝뚝 썰리거든요!>
세계수를 부르짖던 전범준 캐스터의 입에서 장작이란 말이 나왔다.
그 정도로 지금 선데이 선수의 나무카이는 볼품이 없다.
라인전 도중 솔킬을 당했던 게 크게 작용했다.
유지력 차이로 갉아먹다 한순간에 콰직!
알칼리는 다이브 킬각 엄청 잘 잡는 챔피언이다.
갱킹으로 한 번, 솔킬로 한 번 더 땄다.
성장 격차가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사이드 라인에서 만나게 되면 일방적으로 잡아먹힌다.
타항!
알칼리가 두 번째 돌격을 감행한다.
이미 건블레이드를 묻혀 놨다.
상대를 2초간 둔화시키는 효과.
느려진 나무카이를 퍽퍽! 패재낀다.
그 의도를 파악한 김은준 해설이 다급하게 외친다.
<끝장 볼 작정입니다. 양 팀 모두 부랴부랴 백업 오고 있어요.>
썩어도 준치라고 일단은 나무카이다.
나름대로 단단한 CC기 덩어리다.
포탑까지 거리가 있다 한들 잡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백업 싸움을 한다면 진영이 가까운 KTX 롤러코스터 A가 한 발 빠르다.
그럼에도 알칼리의 판단에는 망설임이 없다.
한 번 잡은 킬각을 물릴 생각이 없다.
<쓰렉귀 슈퍼 세이브! 일단 살긴 살았습니다. 카지트 뛰어드는데 조냐..! 하지만 핑크 와드 두 개 박히고 레이더 장신구 켜졌습니다!>
김은준 해설의 목소리가 숨 넘어갈 듯하다.
그만큼 지금 게임의 상황이 급박하다.
황금상이 되어 멈춰버린 알칼리.
그 위에 핑크 와드가 두 개 떡하니 박히고 레이더 장신구까지 켜졌다.
빨간 장신구를 업그레이드한 레이더 장신구는 은신 챔피언을 비친다.
고작 알칼리 하나 잡으려고 과한 투자다?
그렇지가 않다.
탄력 받기 시작하면 기하급수 성장한다.
현재 신세상 매직에서 가장 성장을 잘했다.
자른다면 현상금은 물론 운영적 이득이 크다.
KTX 롤러코스터 A에서는 확신을 가지고 던진 승부수다.
미니맵 위치에서 봤을 때 분명 시간이 걸린다.
안타깝게도 그 예상은 정확히 절반만 맞았다.
부왁!
어느새 벽을 넘어온 파사딘이 부왁을 울렸다.
공허한 파동이 퍼지며 광역 둔화를 선사한다.
기동성에 있어 둘째 가라면 서러운 챔피언 아닌가?
다른 팀원들보다 두 발은 먼저 앞서 도착했다.
그리고 한 명, 아니 한 마리가 더 있다.
휘리릭!
보였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후다.
마치 타겟팅처럼 휘감겼다.
스킬 강화시 상대를 1.75초간 속박.
궁극기로 진입한 애꾸사자가 나무카이를 물었다.
<점멸로 물어버리는 판단 깔끔합니다! 일그러진 전진도 못 쓰고 죽었어요. 팀의 유일한 탱커가 죽고 시작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 꼬그모도 아무것도 못하고 전사. 암살자 둘이 무는데 이걸 어찌 사나요?>
종이 한 장 차이로 한타의 구도가 갈렸다.
나무카이가 죽어버리자 팀을 지켜줄 앞라인이 없다.
돌파력 좋은 파사딘과 알칼리를 어찌 막겠는가?
쓰렉귀가 발악을 했음에도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호롱!
콰드득!
그나마 다행인 건 코리아나의 궁극기가 제대로 들어갔다.
꼬그모를 무느라 생존기가 빠진 알칼리와 파사딘을 정확히 찌그러뜨린다.
하지만 알칼리 하나 마무리한 걸로 만족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다.
─해일이당-!
파사딘은 조냐의 물시계를 사용해 회피했다.
이 자체는 KTX 롤러코스터 A도 예상했을 것이다.
어렵지 않은 일이고 못한다면 실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실수가 절실한 시점이라는 게 문제다.
<조냐 풀리면 궁극기 쿨 다시 돌아오죠? 아쉬워도 쫓으면 안됩니다. 못 먹는 감이에요.>
<파도가 밀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씨지맥 선수의 재치와 나머지 선수들의 백업이 기가 막혔어요!>
거대한 파도가 소환자의 전장을 뒤덮는다.
캐리비안베이 마냥 뒤집어썼다가는 큰일난다.
KTX 롤러코스터 A는 살아남은 인원을 수습해서 뒤로 뺀다.
당장 라인 관리가 시급하다.
<지금 탑라인이 문제가 아닙니다. 바론 가고 있어요. KTX 롤러코스터 A 판단 잘해야 됩니다.>
교전이 일어난 위치는 봇라인 2차 포탑 앞이다.
바론까지 걸어가려면 시간이 소요된다.
즉, 아주 무난한 바론 트라이는 아니다.
KTX 롤러코스터 A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바론 트라이를 방해하는 것.
다른 하나는 용을 먹고 만족하는 것.
판단이 좁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왁!
파사딘의 스킬샷이 뿌려진다.
방금 전 한타에서 체력이 많이 빠진 탓에 바론을 치기는 힘들다.
대신 카지트가 올 만한 위치에 대기하고 있다가 한 방 먹였다.
딜템 위주로 올린 카지트는 그것만으로도 반피가 나갔다.
<잘 막았습니다. 첫 번째 세트처럼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아니에요. 스틸 시도 사전에 저지하는 플레이 정말 센스 있고 좋았습니다.>
<클끼리 해설 말마따나 바론 스틸이 꼭 정글러 탓만은 아니거든요? 또 스틸 당하면 올마스터 선수 오늘 경기 빨리 끝내고도 여친한테 바가지 긁힐 수도 있어요!>
여친이랑 놀 예정이 바가지 긁힐 예정으로 바뀔 수도 있다.
관중석에서 한 차례 폭소가 터져 나온다.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도 집에 들어가는 순간 얄짤 없다.
지금 바론을 무섭게 내려찍고 있는 저 애꾸사자에게 할퀼지도 모른다.
크롸라라라-!
신세상 매직이 바론을 가져갔다.
하지만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이제 펼쳐질 예정이다.
<카지트 곧 16레벨 찍힙니다. 지금까지도 격전이 오갔지만 이제부터는 진짜 전쟁이에요.>
<글로벌 골드 7천 차이. 슬슬 의미 없어지는 시점 아닙니까? 인생 역전! 레전드 한타될 수 있는 겁니다!>
애꾸사자가 카지트의 머리통을 뽑을 것인가.
카지트가 염원하던 4단 진화를 이룰 것인가.
그 분기점이 되는 시간이다.
밀리고 있던 KTX 롤러코스터로서는 기회가 왔다.
만에 하나 카지트가 4단 진화를 할 수 있다면?
글로벌 골드 격차는 충분히 메꾸고도 남는다.
실질적인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한타가 시작된다.
.
.
.
* * *
라인전 단계에서 불리하게 끊은 게임 흐름.
첫 세트보다 나으나 결코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후반까지 끌고 올 수는 있었다.
"오히려 기회야. 쟤네 분명 들어올 거거든? 여기서 한 번만 비비면 돼."
언제나 장난기가 가득한 까메오가 진지해졌다.
정말로 딱 한 번이다.
한 번만 이기면 역전이 가능하다.
아니, 이길 필요도 없다.
어떻게든 애꾸사자만 잡으면 된다.
"4단 진화하면 내가 어그로 핑퐁 오지게 하면서 앞라인 커버할 수 있어."
"하기만 하면 진짜 대박이긴 하지.."
아무리 프로게이머고, 게임으로 밥 먹고 산다고 한들 사람이다.
어차피 질 게임이라 생각하면 멘탈이 해이해지기 마련이다.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 희망이 보인다.
사그라들 뻔했던 선수들의 눈길이 불타오른다.
정비를 마친 상대가 진격해오고 있다.
탑라인 억제 포탑 앞에서의 농성.
알칼리는 봇라인을 밀고 있다.
순서대로 2차 포탑부터 돌려 깎겠다는 심산이다.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점차 돌려 깎기가 진행되며 차이가 더욱 벌어져 간다.
하지만 그 뿐이다.
상대도 더 이상 들어오기 애매하다.
"퀘스트 떴지?"
"떴어. 쟤네도 떴을 거야."
"오케이. 쟤네 들어오면 억제탑 내주더라도 빼면서 싸우자."
경기 시간은 30분 중반대를 향해 달리고 있다.
대패를 하지 않는 이상 게임은 안 끝난다.
이전 판과 달리 라인 클리어도 확실히 된다.
억제탑 하나 정도 내줘도 큰 손해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애꾸사자를 잡을 수 있느냐.
양 팀 모두 행동 하나하나가 굉장히 신중하다.
바론 버프가 끝나감에도 좀처럼 이니시가 걸리지 않는다.
계기가 되는 일은 있었다.
봇라인 억제 포탑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나무카이와 알칼리.
한 웨이브마다 조금씩 갉아먹힌다.
타워도, 나무카이의 체력도.
성장과 유지력에서 차이가 나니 어쩔 수 없다.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상대가 노려볼 만한 구석이 있다면 여기 뿐이지 않을까.
평소보다 배 이상은 날카롭게 벼려있는 집중력.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모든 선수들이 움직였다.
크허엉!
신세상 매직의 유일한 이니시에이터다.
그리고 노려야만 하는 대상이다.
애꾸사자가 은신 상태로 진입.
강화된 목줄을 던져 나무카이를 휘감는다.
<해일이당-!>
동시에 거대한 파도가 진영을 사선으로 가른다.
상대 또한 빠른 백업을 예상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발목을 붙잡기 위함.
나무카이의 체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른 속도로 깎여가고 있다.
당연하다.
무척 성장을 잘한 알칼리.
나일아이의 수정창이 완성되자 목표물을 놓치지 않는다.
애꾸사자도 섬광 스택이 상당히 쌓였다.
그럼에도 버텨낸다.
구루룽!
나무카이의 궁극기, 대자연의 포옹이 펼쳐졌다.
게다가 이미 억겁의 스태프를 포함한 3코어가 갖춰졌다.
아무리 못 컸다 한들 이 정도 나오면 장작이 아니다.
순식간에 녹여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
KTX 롤러코스터 A팀의 선수들이 도착할 시간을 벌었다.
푸드득!
가장 먼저 날개를 펴치는 건 카지트였다.
궁극기를 제외한 모든 진화를 마쳤다.
내뱉은 침이 세 갈래로 나가며 적들을 둔화시킨다.
진화시 둔화율이 50%로 증가.
CC기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높다.
들어온 적들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키잉-!
쓰렉귀의 선고가 결정적이다.
점멸을 아낌없이 사용해 박아넣었다.
한타는 예정된 대로 진행된다.
<숨을 곳은 없어!>
빠르게 대응한 덕에 한타의 구도가 유리하다.
상대의 공세를 충분히 받아칠 수 있다.
억제탑은 나갈 것 같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정글러의 목숨 하나와 억제탑.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교환이다.
하지만 KTX 롤러코스터 A는 그 하나면 만족한다.
애꾸사자만 잡아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데구르!
코리아나가 굴린 공이 저지선을 긋는다.
이 이상 진입하면 너희 몰살 당할 수 있다?
한타 비벼질지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코리아나의 궁극기는 막대한 변수를 가진다.
대박이 터지는 순간 글로벌 골드의 격차를 씹어먹는다.
신세상 매직으로서는 물러나는 것이 최선.
같은 시야에서 다른 것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부왁!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점멸과 궁극기로 한순간에 거리를 좁혔다.
그어놓은 저지선을 가뿐하게 돌파했다.
파사딘이 뿜어낸 짙은 파동에 카지트의 외피가 쩍쩍 갈라진다.
호롱!
콰드득!
부랴부랴 쇼크웨이브를 터트려 추가 진입을 막는다.
여기서 파사딘을 때려봤자 의미가 없다.
어차피 조냐의 물시계를 사용해 한 턴 버틸 것이다.
목표물, 애꾸사자를 잡아내는데 전력을 쏟아붓는다.
어느 쪽의 판단도 틀리지 않았다.
한 가지 감안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구웅!
16레벨에 이르러 변화가 생기는 건 두 챔피언만이 아니다.
너프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던 리메이크.
단 한 가지는 확실하게 버프였다.
궁극기가 3레벨에 이르자 쿨타임이 말도 안되게 짧다.
써컹!
상대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다시 한 번.
공간을 도약한 파사딘의 칼날이 붉게 물든다.
부자배인이 묻은 황혼의 칼날이다.
그 강렬한 한 방이 카지트의 배때지에 쑤셔박힌다.
"아.."
점멸을 썼음에도 도망갈 수 없었다.
궁극기 은신도 예상했다는 듯 읽혔다.
플레이 하는 챔피언이 가질 고통이 공유된다.
카지트의, 까메오의 심장이 움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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